그의 노래, 그의 이야기/그의 야그

13) "자신을 조복시켰던,,,"_3) 삼매/마음을 길들임_【2】정신(名)·물질(色)

이르머꼬어리서근 2023. 1. 3. 18:16

3) 마음(心),, 그리고 정신(名)과 물질(色)

 

■ '세상의 장막'을 감춤 없이 벗겨버림

 

세존께서는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린 분"이십니다.

 

     "그런데 만일 그가 집을 나와 출가하면

      아라한 ‧ 정등각자가 되어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린다."

 

              (* 브라흐마유 경, M91,https://ibakdal.tistory.com/17372569?category=781426)

 

 

어째서 그헣습니까?

'나'와 '나 이닌 것',,, '이 모든 것',,,, 이 '세상'의 실체가 무엇인지,,,,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 뽓타빠다 경, D9,https://ibakdal.tistory.com/17370638)

 

그렇게 '나', '나 아닌 것', '이 모든 것', '세상', '전부'에 대한 것을

낱낱이 상세히, 더할 나위 없이 밝히고 드러내셨기 때문입니다.

'유일(有一)한 정등각자',,, '유일하게 바르게 깨달으신 분',,,,,,맞습니다.

 

     "나는 세상에서 3)아라한이고4)위없는 스승이며

      5)유일한 정등각자이고,,,,,, "

 

                 (* 성스러운 구함 경, M26,https://ibakdal.tistory.com/17371946)

 

 

여기 이러한 부분에서,,, 세존의 가르침(法)에는 비밀이 없습니다.

누구에게는 가르치고, 누구에게는 드러내지 않고,,,

제자 중 어떤 이에게는 알려주고, 어떤 이에게는 알려주지 않고,,,,,

비밀스런 교리가 따로 있고, 드러난 교리가 따로 있고,,,

혹은 당신만 알고 제자들에게는 감추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세상의 비밀'에 대해서 말입니다.

 

 

세존께서는 4아승지 십만대겁을 닦으셔서 그 '비밀'을 아셨고,,,

그것을 밝은 태양 아래 모든 이들에게 "보라!"고 값없이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세존의 법이야말로 '누구에게나 드러나 있는 세상 최고의 비밀'이라고

해야할 것입니다.

 

     "아난다여,그런데 비구 승가는 나에 대해서 무엇을 (더) 바라는가?

      아난다여,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아난다여,여래가 (가르친) 법들에는 스승의 주먹(師拳)과 같은 것이 따로 없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 장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법을 가르침에 있어

      드러난 교리와 비밀스런 교리를 각각 따로 세우지 않았다.

 

      아난다여! 여래는

      드러난 교의와 비밀스런 교의를 구별짓지 않고 법을 설해왔다.

 

      왜 그러느냐 하면, 아난다여, 여래에게는

      주요한 지식을 제자들에게 감추는 ‘주먹 쥔 손’ 같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 대반열반경, D16,https://ibakdal.tistory.com/17371203)

 

 

[1] 정신 & 물질

 

어째서 정신과 물질(名色)이라고 합니까?

그리고 이 일체 정신물질현상(名色)과,,, 마음(心)은 어떤 관계입니까?

 

정신이든 물질이든 모두,,,,

마음(心, mano)에 의해 알아졌을(識, mano-vinnana) 때,,,

비로소 그 '존재'를 말할 수 있고,, '대상'으로서의 의미를 가지기에,,,,

실체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은 '정신현상', 물질은 '물질현상'이라고 해야 정확한 의미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연기의 법을 모르므로,,,

감각가관을 통해서 감득되는대로 인식하고 느끼고 

그러면서 축적되고 사용되어졌기에,,,,

'사람들의 인습적인 표현'을 빌어서,,,

'정신' 혹은 '물질'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이들이 다양하고 무더기의 모습을 하므로,,,

'정신 무더기(名身) 혹은 '물질무더기(色身)'이라고도 합니다.

 

 

세존께서는 대인연경(D15)에서 물질무더기와 정신무더기에 대해서,

그들이 무엇인지 혹은 그 특성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전에 이전에 그것들이 왜 생겨났는지에 대해서 천명하십니다.

                          

참으로 경천동지할 본질에 대한 가르침이요, '전부'에 대한 가르침입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바로 보아야 할 '다섯 무더기(五蘊)'라는 것을 알 수 없으며,

그 다섯 무더기를 '바로 본다.'함도 말이 그럴뿐,,,

그 '알고 본다'함이 모래위에 집을 지은 것과 같게 되는 것입니다.

                       

 

                         

정신(nama)과 물질(rupa) _'이름'과 '부딪힘'

                          

     "1) 각각의 성질, 특징, 표상, 개요들에 의해서 정신·물질의 무더기라는 개념이 생긴다.

                        

       2) 정신의 무더기에 이러한 성질, 특징, 표상, 개요들이 존재하므로,

           물질의 무더기에서 '이름 짓기'로 얻어지는, 정신의 감각접촉을 말할 수 없다.

                           

       3) 물질 무더기에 이러한 성질, 특징, 표상, 개요들이 존재하므로,

           정신의 무더기에서 '부딪힘'으로 얻어지는, 물질의 감각접촉을 말할 수 없다."

                              

                     (* D15, 대인연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1)

                               

세존께서는 정신과 물질의 무더기를 말씀하시면서 그 뿌리와 차이를 '감각접촉'에 두십니다.

 

                      

'이름 짓기'로 얻어지는 정신의 감각접촉을 통해 '정신의 무더기'가 감득되고,

'부딪힘'으로 얻어지는 물질의 감각접촉을 통해 '물질의 무더기'가 감득되는 것을 설하셔서

'전부'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 이 두 가지 현상,,,, 정신과 물질은,,,,

접촉(觸)에 의해 감득되고,,,,

그 감득되는 방식이 다른 것을 각각의 특징으로 함을 천명하십니다.

 

 

 

물질과 정신미음(心)의 앎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1) 모태에 들지 않거나 (알음알이, 마음, 마음의 앎)가 생기지 않거나),

           모태에 들어간 뒤 잘못된 경우,

           어릴 때 '알음알이'가 잘못 되어버린 경우,

                                  

           정신 ·물질의 무더기가 발전하거나,

           오온(정신 ·물질의 무더기)을 구비하거나,

           정신 ·물질의 무더기가 향상하고 증장하고 번창하는 일은 없다.

                                  

       2) 그러므로 정신 ·물질의 무더기는

           알음알이(마음, 마음의 앎)를 그 원인, 근원, 기원,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 D15, 대인연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2)

                                     

 

참으로 심오하신 가르침입니다.

부딪힘으로 감득되는 물질(현상)과 이름 짓기로 감득되는 정신(현상)은,

어떤 '존재'의 마음(心, 意, mano, citta)의 앎(알음알이, 識, mano-vinnana)을 원인으로

'생겨난다'고 세존께서는 천명하십니다.

경천동지할,,, 삼계를 뒤흔드는 세존의 가르침입니다.

 

 

 

마음(心)의 맒물질과 정신을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1) 알음알이가 정신·물질에 확립되지 않는 경우

           태어나고 늙고 죽는 괴로움이 미래에 생겨난다고 말할 수 없다.

                             

      2) 그러므로 알음알이는

          정신·물질의 무더기를 그 원인, 근원, 기원, 조건으로 생겨나는 것이다."

                               

                   (* D15, 대인연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3)

                                 

 

세존께서는 그렇다면 

마음(心, 意, mano, citta)의 앎(알음알이, 識, mano-vinnana)은

왜 생겨났는가를 설하십니다.

다시 말하면 '이 마음(心)은 왜 생겨났는가?'를 설하시는 것입니다.

 

이 마음(心, 意, mano, citta)의 앎(알음알이, 識, mano-vinnana)은,,,,,

마음의 앎이 정신·물질(현상)에 확립되었기 때문이다,

즉, 마음(心)은 정신물질현상을 조건으로 '생겨난다'고 세존께서는 천명하십니다.

 

 

 

물질이나 정신현상이,,,

즉, 대상이 없으면 마음(心), 마음의 작용, 혹은 마음의 앎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눈과 형색이 있을 때, 눈으로 인한 마음(眼識)이 생겨납니다.

      귀와 소리가 있을 때, 귀로 인한 마음(耳識)이 생겨납니다.

      코와 냄새가 있을 때, 코로 인한 마음(鼻識)이 생겨납니다.

      혀와 맛이 있을 때, 혀로 인한 마음(舌識)이 생겨납니다.

      몸과 감촉이 있을 때, 몸으로인한 마음(身識)이 생겨납니다.

      마음과 정신현상이 있을 때, 마음으로 인한 마음(意識)이 생겨납니다.,,,,"

 

               (* 꿀 덩어리 경, M18, https://ibakdal.tistory.com/17371868)

 

 

"마음이 부처"라는 견해를 가지고 있은 이들에게는,,,,

'마음이 대상을 있을 때 '생겨나고',,, 

대상 즉, 물질(현상) 혹으 정신(현상)이 없으면,,,,

아예 마음이란 것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기가 막힐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선 한결같이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모르면,,, 연기(緣起)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자신에게 속한 마음이므로,,, 

잘 살펴보면,,, 누구나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한 수행자가 아닌 한 살아있는 동안 이 마음은 이 몸에 매인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맘을 '맴'이라고도 합니다.

맘은 몸을 드러나게 히고, 몸에 마음은 매여있으며,

하여 몸이나 맘이나 우리말에서 기실은 같은 말이기도 합니다.)

 

 

 

해탈했을 때,, '마음(心)'이라는 감각기능은,,,,

그 '마음(心)'이라는 감각기능의 기능이 '앎(알음알이, mano-vinnana)'이기에,,,

자신이 해탈했다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

 

그러나,,,, 그 뿐일 뿐,,,

그로부터 시작하여 그는 바로 '알음알이(心)의 소멸'

'그 알음알이(心, 마음의 앎)로부터의 벗어남'에 이릅니다.

 

정신을 잃거나 기절하거나 의도적으로 죽은 것이 아닙니다.

'존재계'에서,,, '오온의 무더기'를 '자신'이라고 거머쥐고 있다가,,,,

혹은 '이 마음(心), 마음의 앎(알음알이, mano-vinnana)을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고 거머쥐고 있다가,,,,

그것이 완전히 오류고 잘못된 것임을 분명히 알고 보면서,,,

그것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때 '알음알이의 소멸'이 무엇입니까?

'마음(心)의 소멸',,, '마음의 작용',,, '마음의 앎(mno-vinnana)'이,,,,

소멸하는 것,,, 그친 것,,, 그로부터 벗어남,,,, 놓아버림,,,

비로소 '고요해진 것(寂滅)'을,,,, 의미합니다.

 

이런 '그'에게는 더 이상 '그'라 부를 그 무엇도 없습니다.

「청정도론」(Visuddhimagga)에서 붓다고사(Buddhaghosa)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리석은 이들에게 자칫 오용될 수 있는 말이어서,,, 위험한 말이기도 하지만,,,,

지극히 청정한 지경에 이른 이들에게만이라면,,, 법다운 말이라 생각됩니다.

 

     "괴로움이 있을 뿐, 괴로움을 받는 자는 없다.
      행위(業)가 있을 뿐, 행위를 하는 자는 없다.
      열반이 있을 뿐, 열반에 들어가는 자는 없다.
      道가 있을 뿐, 그 道를 가는 자는 없다."

 

                                                                          『淸淨道論』 XVI, Vism 513

 

 

세존께서는 '존재의 소멸'을 설하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心), 마음의 앎(mano-vinnana)이

'내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니고,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는 것을 꿰뚫어 알 것을 설하십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존재 더미(有身)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

 

            (* 여섯씩 여섯 경, M148, https://ibakdal.tistory.com/17371701?category=781483)

 

 

세존께서는 '알음알이의 소멸'을 설하시는 분입니다.

'알음알이의 소멸',, 즉, '마음(心)의 소멸',, '마음의 앎의 소멸'을 설하시는 분입니다.

 

     "'(열반이라는) 특별한 경지는

        볼 수 없고 무한하며 

        모든 곳으로부터 (도달하게 되는) 성소의 계단을 가졌다. 

 

        여기서 물(水)과 땅(地)과 불(火)과 바람(風)은 굳건히 서지 못하며 

        여기서 길고 짧고, 미세하고 크고,

                   아름답고 더러운 것과 

                   정신과 물질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알음알이(心, mano-winnana, 마음의 앎, 앎)가 소멸하면 

        남김없이 소멸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장자의 아들 께왓다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 께왓다 경, D11, https://ibakdal.tistory.com/17370107)

 

 

'알음알이의 소멸',, 즉, '마음(心)의 소멸',, '마음의 앎의 소멸'에 이를 때,,,,

물질과 정신도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세존께서는 본 경에서 설하십니다.

'마음(心)'과 그 대상인 일체 '정신물질(名色)'이,,,, 쌍멸(雙滅)하는 것을 설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같이 설하십니다.

 

      "그것은

       의처(依處)를 여의고,

       전생(轉生)을 여의고,

       대상(對象)을 여읜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다."

 

                (* 우다나, 빠딸리가마의 품, 열반의 경 1, 

                                          https://ibakdal.tistory.com/17370609)

 

 

 

'마음(心)의 앎(알음알이)의 소멸', '마음(心)의 소멸',,,,

'대상(對象)을 여읨', '정신·물질의 남김없는 소멸', '열반'은 모두 같은 말입니다.

'존재의 소멸', '존재에 매여있음을 벗어남'도,,,,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어디에 '태어난다.'는 말이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지 않는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기도 하고 태어나지 않기도 한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고,

'태어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도 적용될 수 없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왓차곳따 불 경, M72, https://ibakdal.tistory.com/17372379)

 

왜 그렇습니까?

그런 이야기를 할 '그'가,,, '그'라고 부를 그가 이미 없기 때문입니다.

'존재의 소멸'입니다.

 

연기(緣起)로써 '존재'를 바로 보아 그 거머쥠을 놓아버렸기 때문이며,,,

「왓차곳따 불 경」(M72)에서 세존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것과 같이,,,,

풀과 나뭇가지가 있어 다 타서 그 불이 꺼진 후에,,,

'여기 있던 그 불이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묻는 것이 적절하지 않고

그 불은 '연료가 없어서 꺼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2] 마음(心)과 정신·물질(名色)의 관계

 

■ 마음과 정신·물질은 서로 비추어 무더기들(존재들)의 상태를 천명한다

 

그렇다면 마음과 정신·물질은 어떤 관계에 있습니까?

 

     "아난다여,

      이와같이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이름짓는 토대가 생기고,  어원에 입각한 언어의 토대가 생기고,

      개념을 얻는 토대가 생기고, 통찰지의 영역이 생기며,

  

      이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윤회)는 전개되는 것이다.

 

 

      정신·물질(名色)은

      이 알음알이(心, 마음, mano-vinnana)와 더불어

      (오온의) 이러한 상태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 대인연경, D15, https://ibakdal.tistory.com/17371166)

 

 

 

참으로 심심미묘한 법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여기 "'이 모든 것'이 무엇인가?" 설하고 계십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 혹은 '나는 무엇인가?'라는,,,,,

4아승지 10만 대겁을 지고 오셨던 그 물음에,,,

혹은 '집 짓는자가 누군지 알기 위해',,,,,

'끝없이 태어나셨던' 그분은,,,,

이렇게 답을 얻으셨습니다.

                           

 

이것을 더할 나위 없이 상세하고 명확하게 '알고 보셨기' 때문에

끝없이 펼쳐졌던 세상, 혹은 정신·물질(현상)은 더 이상 갈 데가 없어졌습니다.

보리수 아래 정등각을 이루시고,,, 처음으로 하신 말씀,,,,

'아!, 집 짓는 자여, 나 이제 그댈 보았나니!'라고 설하심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한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서

      집 짓는 자가 누군지 알기위해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괴로움(dukka)이었네.

 

      아! 집 짓는 자여! 나 이제 그댈 보았나니,

      그대 더 이상 집 짓지 못하리. 

      이제 그대의 모든 골재들은 무너졌고

      대들보는 산산이 부셔졌나니, 

 

      나의 마음은 업 형성을 멈추었고

      갈애의 부숴짐을 성취하였다."

 

                          (* 법구경 153~154

                           * 디가니까야 주석서 서문, https://ibakdal.tistory.com/17371457)

                                                         

 

일체 정신·물질이 그 정체를 드러내고 무릎을 꿇은 순간입니다.

삼계의 일체 '존재'가,,,

'정신·물질'이라는, 혹은 '다섯 무더기(오온)'이라는,

혹은 '나', 혹은 '존재'라는

그물과 족쇄를 벗어날 도리를 얻게된 일대 사건입니다.

 

이 일로 인해 정신과 물질은 비로소 제 설 자리를 얻었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일체 '존재'들은 비로소 그 '존재'의 이유를 얻었습니다.

비로소 '이 모든 것'은,,,, 허망에 떨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두∼ 사∼두∼ 사∼두∼ !!!   ((()))

 

 

 

■ 마음(心)과 정신·물질(名色)이라는 두 마리의 용

 

마음은,,,

그 앞에 펼쳐진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을 대상으로 그것을 '그'의 방식대로 '압니다'.

그것을 두고 그는 '안다'라고 합니다.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은,,,

'그'의 업(kamma)과 마음(앎)을 따라 '그'에게 그렇게 드러나고 전개됩니다.

그것을 두고 그는 '나' 혹은 '세상' 혹은 '현실(reality)'라고 합니다.

 

 

마음과 정신물질현상은 서로가 서로를 비추는 거울과 같습니다.

이 두 마리의 용이 서로 얽혀서 만들어낸 거울은,,,

이렇게 '그'의 상태를,,, 중계방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그'라는 '무더기' 혹은 '다섯 무더기'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천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가 만난 '세상'이요 '우주'요 'Matrix(자궁)'입니다.

 

잠시 폭력행사가 있겠습니다.  ^  ^*

스승님의 가르침에서 폭력은,,,  근본43계에서 엄히 금하시는 바입니다. 

 

 

 

 

 

어째서 존재는 끝없이 늙고 병들고 죽고 태어나면서,,,

그러하기 마련인 세상을 윤회하는 것입니까?

그가 그것을 즐기고 거머쥐고 '나'라 하면서,,,, 

'괴로움'을 '즐거움'이라 노래 부르면서 그럴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대부분 그렇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기에 천상의 삶(生)을 받으려 합니다.

 

그분은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이 모든 것'들은,,,

무상하여 무너지고 파괴되기 마련(無常)이며,,,

그러므로 결국 괴로움이 될 수 밖에 없고(),,, 

이 모든 것들은 그런 형태로 괴로움이 드러난 것이며,,,

그러한 것들을 거머쥐고 '즐김이 바로 괴로움의 뿌리'요,,, 

그것에서 결코 '나'라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음(無我)을 천명하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에 더 이상은 하면서 넌더리를 치면서,,, 

그것을 벗어나려합니다. 

그러나 그 '존재'의 출구를 찾을 수 없습니다.

여기 세존께서는 그 이유와 그 출구를 밝히셨습니다.

윤회의 이유와 윤회(轉生)으로부터의 출구입니다.

 

바로 이 마음(心)과 정신물질(名色)이라는 두 마리의 용(龍)이 만들어내는

실시간의 요술을 바로 보아 넘어가지 못하는 것이 그 이유요,,,,

이를 '바로 보아' 넘어가는 것이 그 출구입니다.

 

매순간도 그러하고,,, 매 생(生)에도 그러합나다.

실로 어려운 연기(緣起)의 법입니다.

 

     "이 알음알이(識, 마음, 心, 마음의 앎, mano-vinnana)는

      정신 · 물질에 다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 대전기경, D14,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1)

 

 

 

[3] 마음(心)이 하는 일 _ 대상/정신·물질(名色)을 '앎'

 

그런데,,, 이 '마음(心)'이란 것이 하는 일(기능)이 무엇입니까?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arammanam cinteti"입니다.

                                              (담마상가니 주석서, DhsA.63)

 

세존의 가르침에서,,,

이것은 한결같은 것입니다.

 

 

■ 이 마음이 나?

 

혹자는 이 물질이나 정신현상을 '대상으로 생겨난' 여섯 가지 마음 외에,,,,

이를 벗어난 별도의 마음이 있어,,,

그것이 '참나(眞我)'의 마음이요,,,

그것이 '참나(眞我)'요, '불성(佛性)'이요, '본래진면목(本來眞面目)'이요,

'본성(本性)'이요, '본래 마음자리'아고,,,,

궁극 '열반'에 든 마음이라 알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心)'은 없습니다.

 

여기 

마음의 무더기는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난 것일 뿐이고,,,,

원인이 소멸하면 그 마음무더기도 소멸하는 것입니다.

 

대상(名色)이 없으면,,, 정신물질현상이라는 대상이 없으면,,,,

마음(心)은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둘은 무명(無明)으로 인해,

'네 가지 거룩한 진리을 알지 못함'으로 인해,,,

지음, '업 형성'(行, 형성, 샹카라, shankara)이 그치지 못했고,,,

그로 인해 같이 생겨난 것이고,,, 같이 소멸하는(雙滅)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조건이 없으면 마음은 일어나지 않는다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心, 마음의 앎, mano-vinnana)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쓸모없는 자여,

       그러나 그대는 그대 스스로 잘못 파악하여 

       우리를 비난하고 자신을 망치고 많은 허물을 쌓는구나.

 

       쓸모없는 자여,

       그것은 그대를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https://ibakdal.tistory.com/17372045)

 

 

여섯 가지를 조건으로 일어난

           마음/마음의 앎(알음알이),

                그리고 그 접촉/느낌/인식/'일으킨 생갹/사량분별/사량분별과 함께한 인식의 더미들

 

     "눈으로, 귀로, 코로, 혀로, 몸으로 인해 일어난 알음알이(마음, 心)

      ,,,,,,,,,,,,,,,  (중략) 

 

      도반들이여,

      1) 마노(마음, 心)와 법(정신현상·심리현상)을 조건으로

           마노의 알음알이[意識, 마음의 앎, 알음알이, mano-vinnana]가 일어납니다."

 

                         (* 꿀 덩어리 경, M18, https://ibakdal.tistory.com/17371868)

 

 

● '마음(心)'도, '마음의 앎(mano-vinnana)'도 자아가 아니다

 

     "만일 '마노(意, 마음, 心)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마노(意)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다.

   

       일어남과 사라짐을 알 수 있기 때문에

       ('마노가 자아다.'라고 말하면)

      '나의 자아가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말이 되어 버린다.

 

 

       그러므로 '마노(마음, 心)가 자아다.'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타당하지 않다.

       그러므로 마노(마음, 心)는 자아가 아니다.

 

        ,,,,,,,,,,,,,,,(중략)

 

        그러므로

        1] 마노(意, 마음, 心)는 자아가 아니다.

        2} 법들은 자아가 아니다.

        3] 마노의 알음알이(마음의 앎, mano-vinnana는 자아가 아니다.

        4] 마노의 감각접촉은 자아가 아니다.

        5] 느낌은 자아가 아니다.

        6] 갈애는 자아가 아니다."

 

                (* 여섯씩 여섯 경, M148, https://ibakdal.tistory.com/17371699)

 

 

● 마음(心)이 내가 아니다.

           내가 마음을 가진 것도, 이 마음이 나도아니며,

                   내 안에 마음이 있는 것도, 이 마음 안에 내가 있는 것도 아니다. 

 

     "스님, 그러면

       어떻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깁니까?"

 

       ,,,,,,,,,, (중략)

 

       알음알이(마음, 心)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마음, 心)를 가진 것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자아 안에 알음알이(마음, 心)가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마음, 心)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도반 위사카여, 이렇게 해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겨납니다."

 

              (* 교리문답의 짧은 경, M44, https://ibakdal.tistory.com/17372142)

 

 

● 닦아서 생긴 청정한 마음(心), 깨끗한 마음(心),,,,  

                        열반에 든 마음(心)조차도,,,,

                                  '나'가 아니요, '나의 것'이 아니요, '나의 자아'가 아니다.

 

     "비구들이여,

      알음알이는 조건을 반연하여 생기는데,

      그 각각의 조건에 따라 알음알이는 이름을 얻는다.

 

      1) 알음알이가 눈과 형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눈의 알음알이[眼識]라고 한다.

      2) 알음알이가 귀와 소리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귀의 알음알이[耳識]라고 한다.

      3) 알음알이가 코와 냄새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코의 알음알이[鼻識]라고 한다.

      4) 알음알이가 혀와 맛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혀의 알음알이[舌識]라고 한다.

      5) 알음알이가 몸과 감촉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몸의 알음알이[身識]라고 한다.

      6) 알음알이가 마노[意]와 법들을 조건하여 일어나면 그것은 마노의 알음알이[意識]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마치

      어떤 것을 조건하여 불이 타면 그 불은 그 조건에 따라 이름을 얻나니,

 

      1) 장작으로 인해 불이 타면 장작불이라고 하고,

      2) 지저깨비로 인해 불이 타면 모닥불이라고 하고,

      3) 짚으로 인해 불이 타면 짚불이라고 아고,

      4) 소똥으로 불이 타면 소똥불이라고 하고,

      5) 겨로 불이 타면 왕겨불이라고 하고,

      6) 쓰레기로 불이 타면 쓰레기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 (중략)

 

     "비구들이여,

     '이것은 생긴 것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것은 음식(덩어리 음식, 감각접촉, 일으킨 생각·의도, 마음의 앎)에서 생긴 것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음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그 생긴 것도 소멸하기 마련이다.'라고 보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 (중략)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마음의 앎)를 

      집착하고 즐기고 재산으로 여기고 내 것으로 여긴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이와 같이 청정하고 이와 같이 깨끗한 견해를 

 

      집착하지 않고 

      즐기지 않고 

      재산으로 여기지 않고

      내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법은 건너기 위한 것이지 

      움켜쥐기 위한 것이 아니라고 뗏목에 비유해서 설한 것을

      이해했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

 

                  (*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https://ibakdal.tistory.com/17372048)

 

 

● 이 마음(心), 이 마음의 앎(識, 알음알이, mano-vinnana),,,,

               '나'도, '나의 것;도, '나의 자아'도 아님을,,,,

                                있는 그대로 성스러운 도의 지혜로 보아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마음(, , 식별하여 아는 작용, 마음의 앎, 알음알이, mano-vinnana)이건,

 

      그것이

      1) 과거의 것이건, 2) 미래의 것이건, 3) 현재의 것이건

      4) 안의 것이건, 5) 밖의 것이건

      6) 거칠건, 7) 미세하건

      8) 저열하건, 9) 수승하건

     10) 멀리있건, 11)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성스러운 도의 지혜)로 보아야 한다."

 

                 (* 무아경, S22:59, https://ibakdal.tistory.com/17371042)

 

 

● 그러므로,,,, 마음(心)이 윤회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이들은 이 마음(心)이야말로 자신의 실체이므로,,,,

이 마음(心)이 윤회한다. 

혹은 그 존재의 실체라 할만한 '영혼'이 있어,,,

이 영혼이 윤회한다라는 견해를 갖습니다.

 

그런 '마음(心)' 혹은 그런 '영혼(靈魂)'은 없습니다.

어떤 존재의 자아, 혹은 실체, 혹은 그 존재의 동일성(identity)을 구성하는,,,

그것이야말로 '그'라고 할,,, 영속하는 실체로서의,,, 마음 혹은 영혼 말입니다..

적어도 세존의 가르침에서는 그런 마음이나 영혼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

그것은 조건을 따라 일어났다가 조건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어떤 '무더기'요 '현상'일 뿐입니다.

 

그것을 두고,,,

사람들의 인습적인 표현'을 빌어,,,,

'그'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무더기들(蘊)과 요소들(界)과 여섯 감각장소들(處)은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났지만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

 

                     (* 셀라경, S5.9, https://ibakdal.tistory.com/17370027)

 

 

     "만일 어떤 사람에게

     '나는 여자'라거나 '나는 남자'라거나

     '나는 무엇'이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다면

      전적으로 그것은 마라에게나 어울리도다."

 

                  (* 소마경, S5.2, https://ibakdal.tistory.com/17370019)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 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行)들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

 

                (* 롸지라 경, S5.10, https://ibakdal.tistory.com/17370029)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갈애 멸진의 긴 경」(M38)에서

어부의 아들 사띠라는 비구에게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의식, 마음, 心)가 계속되고 윤회한다.'

 

라는 '이런 아주 나쁜 견해'가 생겼을 때,,, 그를 불러

 

     "쓸모없는 자여,

      도대체 내가 누구에게 그런 법을 설했다고 그대는 이해하고 있는가?

 

      쓸모없는 자여,

      참으로 나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알음알이(마음, 心)는 조건 따라 일어난다고 설했고, 

      조건이 없어지면 알음알이(마음, 心)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https://ibakdal.tistory.com/17372045)

 

라고 그를 경책하십니다.

 

 

'그' 혹은 '그'라 불리는 '존재'에게는,,,,

어떤 때,,, 어떤 것을 조건으로 형성된,,, 어떤 마음무더기가 있을 뿐입니다.

그것이 그 어떤 마음이라하더라도,,, 그 마음은 변합니다.

 

마음은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되었다가,,,  원인이 사라지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다섯 무더기(五蘊) 중의 하나의 무더기인

'알음알이' 즉 '식(識)', '마음', '마음의 앎(mano-vinnana)'인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있는 그대로, 바로 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 그러나,,, '마음(心)'이 해탈하는 것이다.

 

해탈한다고 합니다. 무엇이 해탈합니까?

 

     "1) 취착이 없어져서

       2) 번뇌들로부터

       3) 마음이

       4) 해탈하였다."

 

                     (* 대전기경, D14,https://ibakdal.tistory.com/17371153)

 

'마음'이 해탈합니다.

 

정신현상(名), 물질현상(色) 이 두 가지를 대상으로 '아는',,,,

그 마음(心)이 해탈하는 것입니다.

 

정신현상(名), 물질현상(色)을 마치 마주 보는 거울처럼,,,

서로가 서로 비추며,,, 

마음이 정신물질을 만들어 내어 비추고,,,,

 

     "알음알이(心)를 조건으로 정신 · 물질이 있다(識緣名色)고 말하였다."

                     (* 대인연경, D15, https://ibakdal.tistory.com/17370182)

 

정신물질을 대상으로 연료로 마음을 만들어 내는,,,,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알음알이(心)가 있다(識緣名色)고 말하였다."

                    (* 대인연경, D15, https://ibakdal.tistory.com/17370183)

 

 

 

이 괴이하고 벗어날 수 없는 요술과 족쇄에서,,,,

 

이 요술을 꿰뚫어 알고 보아,,,

비로소,,, 그 마음(心)이 거머쥠을 놓고 '존재계의 족쇄'를

풀어서 벗어나는(解脫) 것입니다.

 

그는 비로소 일어남 사라짐에서 벗어나,,,,

생겨나고 죽는 것에서 벗어나(不死),,,

'고요함(寂滅)'에 이릅니다. 

'열반(涅槃, nibbana)'입니다.

 

 

 

● 어떻게 '마음(心)'이 해탈하는가?

          _  존재를 성립시키는 다섯 무더기(五蘊), 정신·물질(名色)을, 세상을,,,,

              '마음(心)'이 "철저하게 꿰뚫어 알았기 때문에' 

 

 

【1】 「초전법륜경」에서 _ '철저하게 알아서' 깨달음은 실현된다.

 

「초전법륜경」(S56:11)은 세존께서 정등각을 이루신 후,,,

처음으로 법을 전하시기 위해 바라나시의 녹야원에 머물고 있던, 같이 고행하던

다섯 명의 수행자, 나중에 오비구에게 가셔서

처음 법(dhamma)을 전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본 경에서 세존께서는,,,,

1) 나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2) 나는 '어떻게' 그 깨달음을 얻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것을 설명하지 않으시면,,, 달리 무엇을 설하시겠습니까?

 

 

1) 나는 '무엇'을 깨달았는지?,, 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나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깨달았다라고 설하셨습니다.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무엇입니까?

 

1]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苦聖諦)이다.'

     → 이 모든 것(이 모든 정신물질) 대체 무엇인가?

          해결되지 못한 (나의) 괴로움이 오온(정신물질)의 형태로 내게 드러난(emerged) 것이다.

 

2]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苦集聖諦)다'

      → 이 모든 것은 왜 생겨났는가?

 

3]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苦滅聖諦)이다'

       → 이 모든 것은 어디서 소멸하는가?

 

4]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苦滅道聖諦)이다.'

        → 어떻게 이 모든 것,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가?

 

가 그것입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2) 나는 '어떻게' 그 깨달음을 얻었는지?,,, 에 대해서

상세히 설하십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참으로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1)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춰서(轉十二行)',,,, 

2)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3)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지극히 청정해졌기 때문',에,,

4) '바른 깨달음(正等覺)'을 실현했다.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해지지 못하였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1)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2)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3)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해졌기 때문에

 

      4)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

      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지(知)와 견(見)이 일어났다."

 

                     (* 초전법륜경, S56:11, https://ibakdal.tistory.com/17370893)

 

 

여기,,,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춰서(三轉十二行)'가,,,

무엇입니까?,,,,

 

1]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이라는 진실,

     이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는 사실,

     이 진리를 '철저하게 알았다'라는 스스로의 증명(自內證)에 따르는 

     전에 없던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paññā), 명지(明), 광명(光)의 증득

 

2] '이 모든 것이 왜 생겨났나?'에 대한 진실,

      이것은 '버려야 한다'는 진실,

      이것을 '버렸다'라는 스스로의 증명(自內證)에 따르는 

      전에 없던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paññā), 명지(明), 광명(光)의 증득

 

3] '이 모든 것의 소멸, 이 모든 것으로부터 벗어남'에 대한 진실,

      이것은 '실현해야 한다'라는 진실,

      이것을 '실현했다'라는 스스로의 증명(自內證)에 따르는 

      전에 없던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paññā), 명지(明), 광명(光)의 증득

 

4] '이 모든 것, 이 모든 괴로움의 소멸/벗어남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진실,

     이것은 '닦아야 한다'는 진실,

     이것을 '닦았다'라는 스스로의 증명(自內證)에 따르는 

     전에 없던 눈(眼), 지혜(智), 통찰지(慧, paññā), 명지(明), 광명(光)의 증득

 

                              (* 초전법륜경, S56:11, https://ibakdal.tistory.com/17370892)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세 가지씩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춰서(三轉十二行)

일체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다함은 이를 두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의 가르침은,,,,

'알아야 할 것을 알고, 버려야 할 것을 것을 버리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아서,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법'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철저하게 알아야 한다.'고 할 때,,,,

무엇이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진리를 압니까?

 

바로 '마음(心)'입니다. 마음이 대상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心, 意, mano)으로 인해 아는 것이,,,

마음의 앎(mano-vinnana, 意識, consciousness)입니다.

 

그러므로,,,

마음(心)이 해탈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의 '앎'(mano-vinnana)으로 인해,,,,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는 것입니다.'

 

 

 

【2】 「뿌리에 대한 법문 경」에서

             _ '마음(心)'이 이 '모든 것'을 철저하게 '알았기' 때문에 해탈한다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은,,,

1차 결집 때, 양면해탈하신 500명의 아라한들께서,,,

 

세존께서 '나', '존재', '세상'에 대한 잘못된 견해(外道62見)을 타파하신

「범망경」(D1)으로 디가니까야의 처음을 장엄하셨듯이,,,

 

세존께서 '모든 법들의 뿌리'를 설하신 「뿌리에 대한 법문 경」으로

맛지마니까야의 처음을 장엄하신 심심미묘한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이 경을 시작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법들(諸法)의 뿌리에 대한 법문(sabba-dhamma-mula-pariyaya을 설하리니

      그것을 들어라. 듣고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그것을 설할 것이다."

 

             (*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 https://ibakdal.tistory.com/17371503)

 

 

본 경에서 세존께서는 '모든 법들의 뿌리'를 설하시면서,,,,

 

1) 지·수·화·풍(地·水·火·風)에 대하여,

2) 존재, 신들, 빠자빠띠, 브라흐마에 대하여,

3)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승자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에 대하여,

4) 본 것, 들은 것, 감지한 것, 안 것에 대하여,

5) 동일한 것, 다른 것에 대하여,

6) 일체에 대하여,

7) 열반에 대하여,

 

전부 7가지(각각으로는 24가지)에 대해서 설하시면서,,,이들 7가지에 대해서

범부, 유학(有學, 예류자, 일래자, 붛환자), 아라한(無學), 여래((如來, tathagata)가 각각 

1) 위와 같은 7가지을 대상을 '어떻게 아는지',

2) 그러한 앎으로부터 시작하여 자신과 그 대상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3) 그러한 대상들을 기뻐하는지, 

4) 그 다음으로 그들은 왜 각각 그러한지 그 이유에 대해서 설하고 계십니다.

 

 

본 경의 마지막 부분에서,,,

세존께서는 아라한·정등각자인 여래는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설하십니다. 

 

     "그는

      열반을 열반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안다'.  

      열반을 열반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잘 알아'

 

      1) (자신을) 열반이라 생각하지 않고,

      2) (자신을) 열반에서 생각하지 않고,

      3) (자신을) 열반으로부터 생각하지 않고,

      4) 열반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열반을 기뻐하지 않는다.

 

 

      그것은 어떤 이유 때문인가?

 

      그는

      1) 즐김이 괴로움의 뿌리라는 것을 알았으며,

      2) 존재(有)로 인해 태어남(生)이 있고, 중생들의 늙음과 죽음이 있다고

          '알았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 여래는

       갈애들을 모두 끊고빛바래게 하고소멸하고포기하고놓아버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았다고 나는 말한다."

 

            (*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 https://ibakdal.tistory.com/17371533)

 

 

 

세존께서 이 법문을 설하시면서 그 대상인 7가지(각각으로는 24가지)는

그냥 설하신 것이 아닙니다. 뜻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뜻이길래,,, 그 7가지를 대상으로 법의 뿌리를 설하시는 것입니까?

 

1) 지·수·화·풍(地·水·火·風) → 근본물질인 4대(四大)이므로 '물질'에 대해서

2) 존재, 신들, 빠자빠띠, 브라흐마: → 삼계(三界)의 모든' 존재'에 대해서

3) 광음천, 변정천, 광과천, 승자천,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 삼계의 존재가 거하는 모든 '세상(界)'에 대해서

         (비록 색계2∼4선천, 무색계 4처만이 언급되었으나, 그 이전에 존재를

         언급하실 때 욕계와 초선천은 이미 언급하셨으므로)

4) 본 것, 들은 것, 감지한 것, 안 것

     → 여섯 가지 감각기능(六入)의 대상인 여섯 가지 감각장소(六處)를 통해 일어난

         일체의 '오온(五蘊)' 내지 일체의 '알음알이(六識, 心)'

         혹은 '일체의 감득(感得)한 것'에 대해서

5) 동일한 것, 다른 것 → '나'가 있음으로 인한 일체의 판별이나 '사량분별'에 대해서

6) 일체 → 수행자의 인식이 더욱 높아져 나와 나 아닌 것 '일체'가 융섭된 경지에 대해서

7) 열반 →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한',  

                 즉 '구경의 지혜로 해탈'하여 탐욕, 성냄, 어리석음으로부터 벗어나,

                 실상을 바로 알고 바로 보는, 즉 나고죽음을 여읨(寂靜)

 

을 대상으로 하여 이 법문을 설하시는 바,,,,,,,

    

다시 말하면,,,

1)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존재',

2) 그 존재 앞에 폂쳐지는 '물질·정신현상(名色)',

3) 그들이 존재, 거주하는,,, 그들 앞에 펼쳐진 '세상(界)',

4) 그곳에서 그들이 감득하는 일체와 그 알음알이(識, 마음, 心),

5) 그 알음알이로부터의 일체의 사량분별,

6) 그리고 나라고 하는 개아(個我, 아트만, atman)를 초월한

    전체(梵, 브라만, brahman)로의 범아일여(梵我一如)라는 견해,

    즉 '일체'라는 견해에 대해서,

7) 그리고 그 모두를 바로 보아(正見) 초월한 '열반'

이라는 개념의 7가지이니,,,

 

이것은 각각으로 혹은 연하여,,,,

'전부'라는 것이 있다면,,,, 그 전부를 넘어선 것까지의 전부라고 하여도 좋을

7가지 대상인 것이며,,,

세존께서는 이런 대상을 연료로 하여 법을 설하고 계신 것입니다.

 

 

핵심은 그 다음입니다.

 

1) 배우지 못한 범부는,,,

 

   - 이러한 것들을 사성제 내지 연기법에 따라 있는 그대로 실상을 보지 못하고

     감관되는 대로 인식하여,

 

  - 자신을 이러한 대상이리고, 혹은 이러한 대상에서, 혹은 이러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생각하고, 혹은 이러한 대상이 자신의 것이라 생각하고,

 

  - 이러한 7가지의 것들을 즐기고 기뻐하는 바,

 

 - 그 이유는 그것을 철저히 '알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하십니다.

 

            (* 예를 들면, 뿌리에 대한 법문, M1, https://ibakdal.tistory.com/17371506)

 

 

2) 유학(有學, 성자이지만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남아있는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는,,,,

 

아라한과를 얻지 못한 유학은

 - 이러한 것들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지만,

 - 자신을 이러한 대상이라고, 혹은 이러한 대상에서, 혹은 이러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생각하거나, 혹은 이러한 대상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야 하고,

- 그러한 대상들을 즐기거나 기뻐하지 않아야 하고,

- 그 이유는 그것을 철저히 '알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하십니다.

 

 

3) 아라한(無學)은,,,,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하였고, 할 바를 다했으며, 짐을 내려 놓았고,

참된 이상을 실현하였고, 삶의 족쇄를 부수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은

 

  - 이러한 것들을 최상의 지혜로 잘 알고,

  - 자신을 이러한 대상이라고, 혹은 이러한 대상에서, 혹은 이러한 대상으로부터

    자신을 생각하거나, 혹은 이러한 대상이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 그러한 대상들을 즐기거나 기뻐하지 않고,

  - 그 이유는 그것을 철저히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하십니다.

 

             (* 뿌리에 대한 법문, M1, https://ibakdal.tistory.com/17371521)

 

 

 

'철저하게 알았기 때문에',,, '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무엇이 무엇을 안다는 것입니까?

마음(心)이,,,,,

이 '모든 것'을,,, 이 모든 대상을,,, 이 모든 정신물질을,,, 오온을,,,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이 드러난 것임을,,,

'이것은 괴로움이다.'라는 첫 번째 진리(苦聖諦)를,,,

'철저하게 알았기 때문에',,,깨달음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같이,,,

1) 알아야 할 것을 철저하게 꿰뚫어 알고, 

2)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3) 닦아야 할 것을 닦아,

4)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세존의 법에서,,,

'단박에' 깨닫는 법은 없다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구경의 지혜가 단박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순차적인 공부지음과, 순차적인 실천순차적인 도닦음으로

       구경의 지혜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 끼따기리 경, M70, https://ibakdal.tistory.com/17371189)

 

 

 

[4]세존의 가르침(法)으로부터 멀어짐

 

세존께서 입적하신 후,,,,

21일이 되던 날에 양면해탈하신 500명의 아라한들의 갈마가 있었습니다.

바로 세존의 사리를 분배하던 날이었습니다.

 

세존께서는 웨사카 달의 보름날 새벽에 반열반에 드셨는데

칠일 간은 자금색 존체를 향과 화환 등으로 예배하였고, 

그 뒤 칠일 동안은 화장을 하였으며

다시 칠일 간은 격자모양의 통을 만들어 집회소에서 사리에 예배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여 21일이 지나갔습니다.

그날에 사리를 분배하고 갈마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 갈마에서,,,

좌장인 마하깟사빠 존자는 징로들에게 40일간의 기한을 주고

라자가하에 다시 모일 것을 말하고 장로들은 이에 동의합니다.

 

     "그는 이러한 승가의 모임이 다시 있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였다.

 

      '이와 같은 경우가 있을 것이니,

       사악한 비구들이 '스승의 가르침은 끝이 났다.'라고 생각하여

       기회를 포착한 뒤 오래지 않아서 정법을 사라지게 할 것이다.

       그러나 법과 율이 확립되어 있는 한 스승의 가르침은 끝이 나지 않는다.

     

       세존께서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D16, 6.1)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는 이 교법이 오랜 세월동안 오래오래 머물게 하기 위해서

      법과 율을 합송하도록 하리라.'"

 

바로 법과 율을 합송하기 위해서입니다.

 

 

마가다국의 왕 아자따삿뚜는 라자가하 웨바라 산허리에 있는 칠엽굴을 장엄하고

법과 뮬을 결집하는 동안 500 아라한들에 대한 공양을 책임집니다.

7개월 동안 합송, 1차 결집이 이루어집니다.

 

 

율장 「소품」은 아래와 같이 전합니다.

 

     "그러자 마하깟사빠 존자는 비구들을 물러서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한때 나는 500명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빠와로부터 꾸시나라로 통하는 대로를 따라 가고 있었다."(Vin.ii.264)라고
      설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늦깎이) 수밧다에 대한 부분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그 뜻은 「대반열반경」읕 통해서 앞으로 설명할 것이다.

 

      그런 후에 그는

    "도반들이여, 그러나 우리는

 

     1) 비법(非法)이 드러나고 법이 사라지기 전에,

     2) 비율(非律)이 드러나고 율이 사라지기 전에,

     3) 비법을 설하는 자들이 강성해지고 법을 설하는 자들이 힘을 잃기 전에,

     4) 비율을 설하는 자들이 강성해지고 율을 설하는 자들이 힘을 잃기 전에,

 

     법과 율을 합송해야 합니다."(Vin.ii.285)라고 말하였다."

 

 

세존께서 입적하신 후 약 100년이 지나,,

소금을 비축해도 좋은가로부터 시작하여

얏사 장로가 웨살리 지역을 갔다가 금전 보시를 허용해도좋은가

등의 문제(十事)로 확대되어,,,

'상좌부(小乘)'와 '대중부(大承)'의 소위 '근본분열'이 있었습니다.

700 장로들이 모여 2차 결집하는 계기가 됩니다.

 

이어지는 오사(五事) 등,,,

교단 내 법과 율에 관한 이설(異說)들을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어, 

세존께서 입적하신 후 약 250년 경으로 추정되는 아쇼카 왕 당시,

왕의 비호 아래 목갈리뿟따띳사 장로를 상수로 1,000명의 아라한들이 모여

카타밧투(Katha-vatthu, 論事) 등을 통해 세존의 가르침을 바로 세우는 노력을

하게 됩니다. 

 

'상좌부(小乘)'도 '대중부(大承)'도 분열합니다.

장로들 중심의 상좌부는,,

'소승(小乘)'이라는 말은 '상좌부'를 폄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말입니다,,,

다시 40여개로 '지말분열'합니다.

 

개탄스러운 것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서로 다른 경(經, sutta)를 가지게 되었고,,,

이 전승에는 없는 경이 다른 전승에는 부처님의 종지를 담은 요의경으로,,,

화엄경도 금강경도 반야심경도,,,

아미타불도 관세음보살도 지장보살도,,,, '니까야'에는 없습니다.

다른 율을 가지게 되었고,,,

각각 다른 아비담마(論藏)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따라서 그 전승에 출가하게 된 이는,,, 그 전승에서 전승해 오는 것을,,,

'부처님의 가르침'이다라고 생각하며 평생을 닦게 되었습니다.

 

 

금을 숨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어디에 한 곳에 모아두는 것이 아니라,,,,

수없이 많은 모래에 그 금을 흩뿌려 놓는 것입니다.

각각의 전승들에,,,,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예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의 가르침 중,,, 실로 거룩하고 성스러운 한 부분씩을 담고 있습니다.

 

이러한 양상이야말로 사람들로 하여금,,,

부처님의 가르침이 무엇인지 평생을 구해도 찾지 못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사악한' 마라의 장난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은 사변적인 것도,,, 철학적인 것도 아닙니다.

개념적인 희론도 아닙니다. 멀리 돌아가는 법도 없습니다.

실전적이고, 직설적이고, 더할 나위 없이 구체적이고 전투적인 것입니다.

 

세존께서 입적하신 후,,,,

법은 점점 더 사변적인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개념의 장난들로 얼룩지고 말았습니다.

 

사다리 위에 사다리를 놓고,,,, 

세존께서 연민하신 이 세상을 내팽겨쳐두고,, 다른 세상으로 가버렸습니다.

그것을 위해 세존께서 설하시지 않은 개념들이 경(經)들이 생겨났고 만들어졌고,,,

그것을 법으로 숭상합니다.

 

심지어는,,, 세존께서 미쳐 설하시지 못했던 부분을,,,

우리 제자들이 비로소 완성하여 설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불교가 발전했다.'라고 말합니다.

 

세존께서는 열반보다도 열반에 이르는 길을 힘써 설하셨습니다.

이들은 세존에 의해 잘 섷해진 '열반'을 내팽겨치고,,,,

무엇이 진짜 열반인지를 두고,,,,2,000년을 넘게 다투어 왔습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열반, 열반'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열반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 이를 일러 열반이라 합니다."

 

                     (* 상윳따니까야 38주제 잠부카다까 상윳따의 「열반 경」(S38:1)

 

 

     "도반 사리뿟따여, '아라한 됨, 아라한 됨'이라고들 합니다.

      도반이여, 도대체 어떤 것이 아라한됨입니까?"

 

     "도반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 - 이를 일러 아라한됨이라 합니다."

 

                         (* 「아라한됨 경」, S38:2)

 

 

그 사다리 끝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라."라고도 말합니다.

"부처님은 단 한 법도 설한 적이 없다."라고도 말합니다.

그런 그는 부처님이 도대체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자체를 모릅니다.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입니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 사문과경, D2, https://ibakdal.tistory.com/17369872)

 

고 논쟁에 몰두하고 상대를 도와주지 못할망정 공격합니다.

니까야에 수도 없이 세존께서 설하신 근본43계를 읽다보면,,,,

하지 말라고 하신 거의 대부분이,,, 절에서 자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깨달았다', '한 소식을 했다.'라고들 합니다.

법이 없는 절이요,,, 율이 없는 절이요,,,, 스님들의 모습입니다.

눈 뜨고 보지 못할,,, 참상입니다.

참으로 눈물 흘릴 일입니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설해졌습니다."

 

     "존자들이여, 바르게 말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1)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2)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3) 시간이 걸리지 않고,

      4) 와서 보라는 것이고,

      5) 향상으로 인도하고,

      6)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

      라고 하고, 다시

 

     '불사(不死)의 문은 활짝 열렸다.'라고 한다면

      바로 이것을 두고 말해야 합니다."

 

         (* 자나와사바 경, D18, https://ibakdal.tistory.com/17371246?categoryId=922959)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지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완성되지 않은 채 설해진 것이 아닙니다.

부족하게 설해진 것이 아닙니다.

더할 나위없이 잘 설해진 것이며,,,

그 누구도 세존보다 법을 더 잘 설할 수는 없습니다.

 

비밀한 뜻도 없거니와, 누군가가 설명해주어야만 알 수 있는 법도 아닙니다.

찬란한 태양 아래 환하게 힘써 45년간 드러내신 진리를,,,

마굿간에서 바늘 찾듯 하는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기이한 모습인 것입니다.

 

 

● "마음이 부처"?

 

"마음이 부처((心卽是佛)"이라고 합니다.

마음의 묘용(妙用)을 세존의 가르침대로 '있는 그대로' 알면,,,,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일면을 얘기한 것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대상이 있을 때 일어나고,,,

대상이 없으면 마음조차 일어나지 않는 것이니,,,

"마음이 부처"라는 말을 세존의 가르침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심재(深材)를 구하는 이가 겉껍질을 얻은 것을 두고

'심재(深材)를 얻었다'라고 할 수 없는 것과 같다 하겠습니다.

 

길을 가다 만 것입니다.

 

 

● "오직 모를 뿐"?

 

마음을 산만히 하지 않고 조복시켜서,,,

먹을 때는 먹고, 일할 때는 오직 그 일이며,,,,

잠이 오면 자고,,, 오직 지금여기뿐,,,,

만행시 삼매니 마음은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몰라서는 모르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모든 것을 오온을,,,

사성제를 꿰뚫어 알아서,,, 깨달음에 이른다고 하셨습니다.

 

 

● '문득' 깨달았다?

 

아난다 존자와 같이,,,, 닦으시던 분이,,,,

두 다리와 두 팔이 땅에 닿지 않은 채로 '문득' 깨닫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계를 수지하고, 

여섯가지 감각기능을 단속하고,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갖추고,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며, 한거하면서 수행에 전념하고,

다섯 가지 장애를 벗어난 이가,,,

삼매와 선정에,,  네 가지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위빳사나를 닦는 이가,,,

'문득' 깨닫는 것은 가능한 일입니다.

 

그도저도 아닌 이가 '문득' 깨닫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헌데,,, 이때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다는 것입니까?

'깨달았다'는 많은 이들이 무엇을 깨달았냐고 물으면,,,,

답하지 못합니다.

 

말이나 글로서 나타낼 수 없는 도리이기에,,,

할(喝)이, 주먹이, 몽둥이가, 때로는 칼이,,

'뜰 앞의 잣나무'가,,, '설거지'가 나오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일 뿐,,, 그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세존의 법에는 그런 것이 없습니다.

그런 방편도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사성제를 깨달아아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네 가지 거룩한 진리'를 '깨닫는' 것입니다.

사성제를 깨닫는 것을 두고 '깨달음'이라 합니다.

무엇을 닦아서입니까? 

'팔정도'를 닦아서 입니다.

 

 

 

[5]그런 중요한  '마음'에 대한 세존의 가르침

 

세존께서는 그 '마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고요하게 가라앉히기는 어렵다.

      흔들리고, 불안정하며,지키기도 자제하기도 어렵다.

      마치 물에서 건져 마른 땅에 내던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린다.

      제멋대로 방황한다."

 

                                        (*『법구경』, 「마음의 품(品)」 , 게송 34)

 

 

     "비구들이여,

      이것과 다른어떤 단 하나의 법도

      이렇듯 빨리 변하는 것을 나는 보지 못하나니,

      그것은 바로 마음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얼마나 빨리 변하는지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 쉽지 않다."

 

                    (* 앙굿따라니까야, A1, 하나의 모음, https://ibakdal.tistory.com/17369946)

 

 

 

[6]삼매(samadhi)

 

삼매가 무엇입니까?

어째서 세존께서는 삼매를 닦아야 한다고 말씀하십니까?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내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1)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2)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기를(漏盡通)

      하고 원한다면,

  

      그는

      1) 를 원만히 하고,

      2)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止)에 전념하며,

      3) 선(禪)을 경시하지 않고,

      4) 위빳사나(觀)를 구족하여

 

      빈집에 머물기에 전념해야 한다."

 

            (* 원한다면 경, M6, https://ibakdal.tistory.com/17371675)

 

 

"물에서 건져 마른 땅에 내던진 물고기처럼 파닥거리고, 

 제멋대로 방황하는",,, 이 마음,,,

 

"이것처럼 빨리 변하는 것을 보지 못하나니,

 그 비유를 드는 것조차도 쉽지 않은',,,, 이 마음,,,,

 

이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여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조복'시키지 않고는,,,,

언제든지 그렇게 할만큼 '길들이지' 않고는,,,,

그가 저 언덕으로 간다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