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그대는 무엇을 두고 '나'라고 하는가 14

아누라다 경(S22:8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많은 외도 유행승들이 아누라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라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외도 유행승들은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아누라다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1) ‘여래는 죽고 난 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2)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3) ‘여래는 죽고 난 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

'나는 있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요, 질병이요 가시이다 (界分別經 MA III, 246)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망한 생각은 병이며, 질병이고, 가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허..

윤회의 시작(S15.1 풀과 나무 경 - 무더기 상윳따에서)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 수 없..

있음·없음(有無)과 바른 견해(正見) - 깟짜나곳따경(S12:15)

2. 그때 깟짜나곳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깟짜나곳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바른 견해[正見], 바른 견해' 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바른 견해는 어떻게 해서 있게 됩니까? " 4. "깟짜야나여, 이 세상은 대부분 두 가지를 의지하고 있나니 그것은 있다는 관념과 없다는 관념이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없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깟짜야나여, 세상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는 자에게는 세상에 대해 있다는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 5. "깟짜야나여, 세상은 대부분 [갈애와 사견으로 인해] 집착과 취착과 천착에 묶여 있다. 그러나 [..

아라한의 사망(열반)은 완전한 파멸이 아니다 - 마하시 사야도(Mahasi Sayadaw)

죽음 이후에 불멸의 영혼 또는 완전한 파멸은 없다. 불교는 실체로서의 자아를 부정하며, 단지 원인과 결과의 법칙에 의해 조건화되는 정신-육체의 과정만을 인정한다. 단지 원인과 결과의 연속만이 있을 뿐인데, 즉 무지함이 업(業, Kamma)의 형성을 일으키고, 이 업의 형성이 차례로 새로..

유신견(有身見)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지난 시간은 유신견이 무엇이며, 유신견이 어떤 사견을 일으키며, 어떻게 해로운지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여러 경전을 통해서 유신견, 상견, 단견에 대한 이해를 좀 더 깊이 하는 시간입니다. 1. 맛지마니끼야 유명소경(有明小經) - 근본 오십품 유명소경에서는 아나함인 위사카와 그 부..

'나'라는 소견(유신견)은 어떻게 일어나는가? - 담마디나 비구니

붓다께서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계셨을 때 그 곳에는 위사카라는 이름의 부자와 후에 비구니가 된 그의 아내 담마디나가 살고 있었다. 위사카는매일 저녁 붓다께서 하시는 법문을 들으려고 죽림정사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법문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사랑스런 아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

'나'는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S22:47 관찰 경)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아를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을 [자아로] 관찰하는 것이지 그 외 다른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

'나는 있다.'(有身見)에서 어떻게 벗어나는가? (S22:89 케마까 경)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렀다. 2. 그 무렵 케마까 존자는 도기공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장로 비구들은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 다사까 존자를 불러서 말했다. 3.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