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여러 가지 방법으로 자아를 관찰하는 자들은
모두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을 [자아로] 관찰하는 것이지
그 외 다른 것을 [관찰하는 것이] 아니다.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느낌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느낌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느낌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인식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인식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인식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심리현상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심리현상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심리현상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심리현상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이와 같이 하여
[사견을 통한] 관찰과
'나는 있다.'는 [사량분별이] 그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4.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생기면
눈의 감각기능,
귀의 감각기능,
코의 감각기능,
혀의 감각기능,
몸의 감각기능
이라는
다섯 가지 감각가능들이 출현한다.
비구들이여,
거기에는
1) 마노[意]가 있고,
2)[마노의 대상인] 법들이 있고,
3) 무명의 요소가 있다.
무명과 함께하는 감각접촉에서 생긴 느낌에 닿은 배우지 못한 범부는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고,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한다.
5.
"비구들이여,
비록 다섯 가지 감각기능들이 바로 거기에 남아있지만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이들에 대한 무명을 제거하고 명지(明知)가 일어난다.
그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기 때문에
1) '나는 있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2) '나는 이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3) '나는 있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4) '나는 있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5) '나는 물질을 가지게 될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6) '나는 물질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7) '나는 인식을 가질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8) '나는 인식을 가지지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고,
9) '나는 인식을 가지지도 않고 인식을 가지지 않지도 않을 것이다.'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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