붓다께서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계셨을 때
그 곳에는 위사카라는 이름의 부자와 후에 비구니가 된 그의 아내 담마디나가 살고 있었다.
위사카는매일 저녁 붓다께서 하시는 법문을 들으려고 죽림정사를 방문하였다.
그리고 법문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사랑스런 아내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
그들은 팔짱을 끼고 집안으로 들어가곤 했다.
어느날, 여느 때와 같이 담마디나는 문 앞에서 남편을 기다렸다.
그러나 평소보다 다소 위엄있는 모습으로 나타난 남편은 부인에게 팔을 내밀지 않았고
담마디나는 남편의 이러한 태도에 마음이 편치 못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이 들 무렵이 되어 담마디나는 남편에게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의 태도가 그토록 심각하고 평소와는 다른지를 물어보았다.
남편은 그 자신이나 아내가 어떤 잘못을 한 것이 아니라
그가 좀더 높은 통찰력(아나함과)을 얻었기 때문에 그의 태도가 심각해 보이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그리고 그는 담마디나에게 모든 재산을 물려줄 것이며 만일 그녀가 원하면 다른 사람과
재혼해도 좋다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담마디나는 질문하였다.
'부군이시여, 당신은 높은 지혜에 대해 말하십니다. 이 법은 남자에게만 허락된 것입니까?
여자는 높은 법을 얻을 수 없는 것인가요?'
남편은 대답하였다. '아니오, 부인이시여, 붓다의 법은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며칠 후 담마디나 자신도 비구니가 되어 비구니 승가에 들어갔으며
그녀는 결국 아라한과를 얻었다.
다음은 아나함과를 얻은 위사카와 아라한이 된 비구니 담마디나 사이에 오고 간
몇 가지 질문과 답변이다.
위사카가 질문했다.
'스님이시여, 붓다께서 가르치신 '몸이 있다[有身]'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보시 수행자 위사카시여, '몸이 있다'는 유신(有身)은 오온입니다.'
오온을 잘못 이해하고 오온을 실재라고 믿으며 자아 혹은 나라고 그릇되게 파악할 때
유신견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그리고 무엇 때문에 유신견이 일어나는 것인지 다시 물어 봐도 되겠습니까?'
'위사카시여, 붓다의 성스런 질서에 따르면
첫째로, 속세에 무지한 범부는 성자(聖者)의 법을 받아들이지 않아
성자의 법에 밝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와 조화를 이루지 못합니다.
두번째로, 범부는 덕있는 자나 성자를 가까이 하기를 원치 않아
법문을 쉽게 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물질[色]이 나 또는 자아다,
나는 물질이다,
물질 안에 나 또는 자아가 있다,
나 또는 자아 안에 물질이 있다'라고
그릇되게 이해합니다.
그리고 느낌[受], 지각[想], 행(行), 의식(識]을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여서
나, 자아 등으로 잘못 이해합니다. 즉
의식이나 나 또는 자아를 가지고 있으며
의식 안에 나 또는 자아가 있고
나 또는 자아는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위사카시여, 이는 마치
타오르는 불과 불빛을 구분하지 못하고 타오르는 불을 불빛으로 오해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같이 법문을 들을 기회가 없어 그것에 정통하지 못하고,
무지해서 가르침을 받지 못한 범부는
'물질이 나 또는 자아다,
느낌이 나 또는 자아다,
지각이 나 또는 자아다,
행이 나 또는 자아다,
의식이 나 또는 자아다'라고
보고 이해하며 잘못 믿게 됩니다.
이것이 유신견이 어떻게 일어나는가를 말하는 것입니다."
『中部』『유명소경(有明小經)』
* 출처: 유신견은 어떻게 일어나는가|작성자 calm
어디서 와서 어디로가는가, 우 탄 다잉, pp161-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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