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많은 장로 비구들이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렀다.
2.
그 무렵 케마까 존자는 도기공의 집에 머물고 있었는데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때 장로 비구들은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 다사까 존자를 불러서 말했다.
3.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견딜 만합니까? 그대는 편안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습니까?
차도가 있고 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습니까?'라고."
4.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묻습니다.
'도반이여, 어떻게 견딜 만합니까? 그대는 편안합니까?
괴로운 느낌이 물러가고 더 심하지는 않습니까?
차도가 있고 더 심하지 않다는 것을 알겠습니까?'라고."
"도반이여,
나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알아질 뿐입니다."
5.
그러자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견디기가 힘듭니다. 편안하지 않습니다.
괴로운 느낌은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습니다.
더 심하기만 하고 물러가지 않는다고 알아질 뿐입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가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합니까?'라고."
6.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입니다.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가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합니까?'라고."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입니다.
나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7. 그때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입니다. …
나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습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는다면
케마까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라고."
8.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
그런데 케마까 존자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가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는다면
케마까 존자는 번뇌 다한 아라한입니까?'라고."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
나는 이러한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가운데
어떤 것도 자아라거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라고 관찰하지 않지만
나는 번뇌 다한 아라한은 아닙니다.
도반이여,
그러나 나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9.
그때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케마까 비구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를 설하셨나니 …
나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라고."
"이리 오시오, 도반 다사까여. 그대는 케마까 비구에게 가시오.
가서는 케마까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시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심리현상들을 두고 …
알음알이를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알음알이를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라고."
10.
"그렇게 하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다사까 존자는 장로 비구들에게 대답한 뒤
케마까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여, 장로 비구들이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심리현상들을 두고 …
알을알이를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알음알이를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라고."
"도반 다사까여,
이 정도로 충분합니다. 왜 그대가 이 일로 왔다갔다해야 합니까?
도반이여, 지팡이를 주십시오. 내가 장로 비구들에게 직접 가겠습니다."
11.
그러자 케마까 존자는 지팡이를 짚고 장로 비구들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장로 비구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케마까 존자에게 장로 바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반 케마까여,
그대는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대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심리현상들을 두고 …
알음알이를 두고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아니면 알음알이를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 말합니까?
도반 케마까여,
그대가 '나는 있다.'라고 말할 때는
어떤 것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 합니까?
12.
"도반들이여, 나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심리현상들을 두고 …
알음알이를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향기가 난다고 합시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향기는 꽃잎에서 난다고 하거나 색깔에서 난다고 하거나 암술에서 난다고 한다면
그는 바르게 말한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도반들이여, 그렇다면 어떻게 설명해야 바르게 설명하는 것입니까?"
"도반이여, 꽃에서 향기가 난다고 설명해야 바르게 설명하는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물질을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물질을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심리현상들을 두고 …
알음알이를 두고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떠나서 '나는 있다.'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나는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해서
'나는 있다.'라는 [사량분별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이들 가운데 그 어느 것에 대해서도] '이것이 나다.'라고는 관찰하지 않습니다."
13.
"도반들이여,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
라고.
그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물 때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은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14.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더럽고 때가 묻은 천이 있는데 주인이 그것을 세탁업자에게 맡긴다 합시다.
그러면 세탁업자는 그것을 소금물이나 잿물이나 쇠똥에 고루 비벼서 빤 뒤
맑은 물에 헹굴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그 천은 청정하고 깨끗하게 되었지만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뿌리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세탁업자가 이런 천을 주인에게 돌려주면
주인은 그 천을 냄새를 제거하는 상자에다 넣을 것입니다.
그러면 뿌리 뽑히지 않고 남아있던
미세한 소금물 냄새나 잿물 냄새나 쇠똥 냄새는 모두 뿌리 뽑히게 될 것입니다.
도반들이여, 그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에게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제거되었다 하더라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이
완전히 뿌리 뽑히지는 않습니다.
그는 나중에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현상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
라고.
그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며 머물 때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자만과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욕구와
'나는 있다.'라는 [미세한] 잠재성향은
완전히 뿌리 뽑히게 됩니다."
15.
이렇게 말하자 장로 비구들은 케마까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케마까 존자를 성가시게 하려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케마까 존자는
그분 세존의 교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케마까 존자는 그분 세존의 교법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였습니다."
16.
케마까 존자의 말을 들은 장로 비구들은
이처럼 마음이 흡족해져서 케마까 존자의 말을 크게 기뻐하였다.
17.
이 상세한 설명[授記]이 설해졌을 때
60명의 장로 비구와 케마까 존자는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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