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노래, 그의 이야기/그의 야그

10) "자신을 조복시켰던,,,"_1) 계(戒)를 구족함

이르머꼬어리서근 2022. 11. 30. 06:02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도나 바라문은 세존께서 입적하신 후 그 사리를 서로 가지려는 나라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려 할 때, 그를 중재하여 공평하게 분배하는 방법으로 화합을 중재했던

바라문이요 무리들의 제사장이었습니다.

                        (* 대반열반경, D16, https://ibakdal.tistory.com/17371241)

 

 

세존께서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신지 얼마되지 않은 때,

그는 욱깟따와 세따비야 사이의 길을 가다가,,

천폭륜상, 천 개의 바큇살이 있는 바퀴의 모습이 분명히 찍힌 발자국을 보고,,,

범상하지 않음을 알고 그 발자국을 따라갑니다.

 

무 아래 누가 앉아 있는 모습을 봅니다.

전면에 마음챙김한 채 상체를 곧추 세우고 가부죄를 한 거룩한 모습.

 

위엄 있고, '이것이 위엄이구나'라는 영감을 불러 일으키고,

감관은 고요하고, 마음은 고요하고, 최상의 제어와 적멸을 갖추었고, 

길들여져 있고, 보호되고 있고, 감관들은 자제된 그 모습에,,,

'이것이 용(naga)인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는 묻습니다.

 

    "당신은 신입니까?",,,  "아니오."

    "간답바입니까?,,, "아니오."

    "약카입니까?",,, "아니오."

    "인간입니까?",,,. "아니오, 바라문이여. 나는 인간이 아닙니다."

 

    "신도 아니고, 간답바도 아니고, 약카도 아니고, 인간도 아니라면.,,,,

     하면 당신은 도대체 누구입니까?"

 

 

    "바라문이여,

     신이나, 천상의 간답바나, 약카나, 사람이 될 그런 번뇌를 버리지 않았다면,

     나는 신이나, 간답바나, 약카나, 사람이 되었을 것이오.

 

     나는 그런 번뇌들을 버렸고,

     다시 자랄 수 있는 조건들을 없앴고,

     미래에 다시는 솟아오를 일이 없는 야자수 그루터기처럼.

     그 뿌리들을 잘랐습니다.  

 

     마치 홍련이나 청련이나 백련이 물 속에서 태어났고,

     물에서 자랐고, 물 위로 컸으나

     물에 젖지 않고 서 있는 것과 같이,

 

     세상에 태어났고, 세상에서 자랐고, 세상을 정복했으나,

     세상에 물들지 않고 머물고 있는 것처럼.

 

     그러니 바라문이여,

     나를 '깨달은 자'라고 새기시오."

 

             (* Dona Sutta, 쿳다까 니까야, KN 4.36,

                      https://www.accesstoinsight.org/tipitaka/an/an04/an04.036.than.html

              * 잡아함경 101, 인간경, https://mujuseonwon.tistory.com/7821884)

              

* 「아라한, 완전한 행복」, https://www.youtube.com/watch?v=Q2_4zKxjc9M&t=405s 

 

 

 

"뿔을 잘라낸 횡소처럼 살아가던 사람"

 

세존께서는 먼저 입적한 제자 사리뿟따 존자에게 경의를 표하시면서,,,

"자신을 완전히 조복시켰던 그 사람",,,,

"「뿔을 잘라낸 황소」처럼 살아가던 사람"이라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서 자신을 조복시키고,

어떤 것이 「뿔을 잘라낸 황소」처럼 살아가는 것입니까?

 

 

1] 계(戒)를 구족함

                       _ 몸과 입과 마음에서 쇠살들을 뽑아냄

 

 

■ 세존의 가르침에서 계(戒)는 생명입니다.

 

  계가 성립되지 않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율은 부처님 교법의 생명(ayu)입니다.

       율이 확립될 때 교법도 확립됩니다

       그러므로 율을 첫 번째로 합송해야 합니다."

 

                  (* 디가니까야 주석서 서문, https://ibakdal.tistory.com/17371452)

 

 

 

■ 무엇이 그 계(戒)입니까?

 

  세존께서 수도 없이 설하신 근본43계가 그것입니다.

                                     (* 사문과경, D2, https://ibakdal.tistory.com/17369872)

 

  청신사, 청신녀 즉 재가자들에게는 오계(五戒)가 바로 그것입니다.

                                     (* 오계수지, https://ibakdal.tistory.com/17371061)

 

  그로부터 세존께서 살아계실 때 일이 생길 때마다 제정하신 비구위방가  227계,

  비구니위방가 304계의 '학습계목(빠띠목카)'이 그것입니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계를 잘 지녀라. 

        빠띠목카(계목)의 단속으로 잘 단속하여 머물러라.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아라."

 

                     (* 가나까목갈라나 경, M107, https://ibakdal.tistory.com/17372730)

 

 

  

■ 계(戒)는 깨달음의 대상이요 수행의 대상

 

   계(戒)는 지키기 위해서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하나하나가 바로 깨달음의 대상이요 수행(修行)의 대상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이를 "성스러운 계(戒)"라고 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당신 자신을 포함하여,,,,,

   계(戒)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했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했다고 설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계(戒)

         깨닫지 못히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 대반열반경, D16, https://ibakdal.tistory.com/17371215)

 

 

 

■ 계(戒) 없는 삼매(定)나 지혜(彗)는 성립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마치

       손으로 손을 씻고발로 발을 씻는 것과 같이 

       계를 통해서 청정하게 되는 것이 통찰지이고

       통찰지에 의해서 청정하게 되는 것이 계입니다.

  

       계(sila)가 있는 곳에 통찰지(panna)가 있고

       통찰지가 있는 곳에 계가 있습니다

       계를 가진 자에게 통찰지가 있고

       통찰지를 가진 자에게 계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은 계와 통찰지를 제일로 한다고 일컫습니다."

 

                   (* 소나단다 경, D4, https://ibakdal.tistory.com/17369937)

 

 

  여기 무엇을 두고 '통찰지(panna)'라고 합니까?

  많은 이들이 '반야(般若)' 혹은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을 말합니다.

  그러나 그 '반야(般若)' 가 무엇인지는 꿰뚫어 알지 못합니다.

 

  '반야(般若)' 는 세존께서 법을 설하실 때 사용한 빨리어(Pali)어 'panna'의 음역이요,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은 빨리어 'panna-parami'의 음역입니다.

 

 

  여기 본 경 소나단다 경(D4)에서,,, 

  세존께서는 무엇을 두고 'panna(통찰지)'라고 하는지 분명하 설하십니다.

 

   '계(戒)'는 43가지 근본계율을,,,

 

   '통찰지(panna)'는,,,

 

     1) 여섯 가지 감각기능의 단속의 구족

     2) 마음챙기고 알아차림

     3) 필수품만으로 만족함

     4)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함

     5)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벗어남

                _ 다섯 가지 근본수행과 그 결실

 

     1) 初禪을 구족하여 머묾

     2) 二禪을 구족하여 머묾

     3) 三禪을 구족하여 머묾

     4) 四禪을 구족하여 머묾

                 _ 네 가지 禪定, 즉 '바른 삼매(定)

 

     1) 이 알음알이가 이 몸에 매여있음을 꿰뚫어 아는 위빳사나의 지혜

     2) 마음으로 다른 몸을 만들어내는 신통의 지혜

     3) 신통변화의 지혜(神足通)

     4) 신성한 귀의 지혜(天耳通)

     5) 다른 중생과 다른 인간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

     6)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

     7)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

     8)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

                   _ 여덟 가지 도닦음에 의한 지혜(慧)

 

  이 17가지를 두고 '통찰지(panna)'라고 설하고 계십니다.

 

                       (* 소나단다 경, D4, https://ibakdal.tistory.com/17370530 이하)

 

 

  계(戒)를 수지하고, 계가 청정하지 않으면서,,,

  선(禪定)을 증득한다거나, 참된 지혜(慧)를 증득하는 일은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일어날 수 없습니다.

 

  계(戒)를 철저히 닦은 이에게 삼매(定)가 생기고,

  삼매(定)를 철저히 닦은 이에게 지혜(慧)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1]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2]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3]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그 번뇌들은 바로 이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

 

                         (* 대반열반경, D16, https://ibakdal.tistory.com/17371215)

 

   

    

■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범하지 못하는 법들

 

      "도반들이여,

        알고 보시는 그분 세존·아라한·정등각께서는

        제자들에게 목숨이 있는 한 범하지 못하는 법들을 설하셨고 천명하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예를 들면

        심연에 뿌리하였으며

        튼튼히 박혔고 요지부동이고

        침투해 들어갈 수 없는 석주나 철기둥과 같습니다.

 

        도반들이여, 번뇌가 다한 비구는

        1) 의식적으로 산 생명의 목숨을 빼앗을 수가 없습니다.

        2)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도둑질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3) 성행위를 할 수가 없습니다.

        4) 고의적인 거짓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5) 전에 재가자였을 때처럼 축적해두고 감각적인 욕망을 즐길 수가 없습니다.

 

        6) 열의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7) 성냄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8) 어리석음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9)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을 할 수가 없습니다."

 

                             (* 정신경, D29, https://ibakdal.tistory.com/17371371)

 

 

  이같이 그는 1) 감각적 욕망을 향한 열의(耽) 때문에도,,, 

  2) 성냄 때문에도,, 3) 어리석음 때문에도,, 4) 두려움 때문에도,,,

  계를 범하는 일이 없습니다.

 

  

 

■ 계(戒)를 경시함

 

    "죄무자성종심기(罪無自性從心起)

     심약멸시죄역망(心若滅時罪亦)

     죄망심멸양구공(罪心滅兩俱空)

     시즉명위진참회(是卽名謂眞懺悔)"

 

     죄는 자성이 없어 마음을 따라 일어난 것

     마음이 만약 멸하면 죄 역시 다하네.

     죄가 다하고 마음이 멸하여 양쪽이 다 공(空)하니

     이것을 이름하여 진정한 참회라 하네.

 

대승의 전승에서,,, 천수경(千手經), 혹은 천수천안관자재보살광대원만무애대비심다라니경

(千手千眼觀自在菩薩廣大圓滿無礙大悲心陀羅尼經) 중의 일구입니다.

 

세존께서 입적하신지 2566년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 각 전통과 전승들에 따라, 그분 가르침의 방점을 어디에 두는가에 따라,,,

어떤 지역의 풍습, 환경, 사유체계, 종교, 전승 등과 섞이면서,,,

혹은 어떤 이의 가르침(法)에 대한 이해, 호불호, 견해를 따라서 뒤섞여지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때의 어떤 전승 속에서 출가하여,,, 그것을 '정법'으로 배웠고,,, 

그를 따라 단지 열심히 닦았을 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분의 가르침이 어디 가거나 숨겨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 참으로 경계해야 할 모습이 있으니,,,,

 

 

  “백겁적집죄(百劫積集罪,백겁토록 쌓은죄업),

   일념돈탕진(一念頓蕩盡/한 생각에 모두 없애),

   여화분고초(如火焚枯草/마른 풀을 태우듯이),

   멸진무유여(滅盡無有餘/남김없이 없어지다)"

 

라 하며.... 악행을 거듭하며 악행과 더불어 살아가면서,

스스로는 나는 '한 소식을 했다.', '깨달았다.'하며,,,

선행을 하든 악행을 하든 그것은 모두  '깨달은 자'의 '빙편'이라 하면서,,,

선행이나 악행이라는 것은 모두 근기가 저열하여 

그 '깨달음'을 이루지 못해 '분멸망상'이 남아있는 소치라 하는

무리들이 있는 엄연 있을 뿐아니라,, 그런 풍조가 오히려 만연한 모습입니다.

 

 

'한 생각 돌이키면',,, 유익한 행위(善業)도 해로운 행위(惡業)도 없는 것이기에,,,,

살생하고, 도죽질하고, 삿된음행을 해도 일체 거리낌이 없고,,, 

몽둥이를 들고, 폭행하고, 재산을 축적하며, 승적을 가진 채 여자를 탐하며,,,,

그러면서도 매임없어 자유자재한 그런 모습이,,,,

세존께서 설하신 바 일체 매임을 벗어난

'일체무애인 일도출생사(一切無碍人 一道出生死)'의 모습일까요?

 

사다리 위에 사다리를 놓고,,,

세존의 가르침을 멀리 떠나,,,

잘못 가도 한참을 잘못 간 것입니다.

 

세존의 법에는 그런 법이 없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런 법을 설하신 적 없습니다.

세존께서 그런 모습을 보이신 적 없습니다.

잘 닦은 성스러운 세존의 제자들 중 그런 제자들은 없습니다.

 

세존의 제자들은 "세존을 근원으로, 세존을 길잡이로, 세존을 귀의처로"하기

때문입니다. (* 검증자 경, M47, https://ibakdal.tistory.com/17372169)

 

 

'깨달음'이 무엇을 깨닫는 것인지 모르고,

'깨달았다.'라고 하면서 무엇을 깨달았는지 모르고,

'깨달아야 할 이유'도 없으면서 하여튼 '나는 깨달았다.'라고 하며,

'깨달은 자'라는 이유로,,,

'감각적인 욕망'을 재가자 못지 않게 마음껏 누리고,, 악행을 하면서도,,, 

나는 그런 '인식'에 매임 없이 누리고 행하기에

'분별망상'의 저열함, 무지몽매함에서 그런 것과는 다르다, '벗어났다'라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목숨이 붙어있는 한 범할 수 없다."라고 하셨습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가 감각적 욕망 없이, 감각적 욕망의 인식 없이,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일으킨 생각 없이,

     감각적 욕망에 탐닉할 것이다.'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 뱀의 비유 경, M22, https://ibakdal.tistory.com/17371903)

 

 

   "악기웨사나여, 자야세나 왕자는

     감각적 욕망 속에 살면서

     감각적 욕망을 즐기고 

     감각적 욕망 대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며

     감각적 욕망의 열병으로 불타오르고 

     감각적 욕망을 찾기에 혈안이 되어있는데, 

 

     그런 그가 어떻게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야[出離] 알 수 있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볼 수 있고,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야 얻을 수 있고,

     감 각적 욕망에서 떠나야 실현할 수 있는 것을, 

 

     알고 보고 깨달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불가능하다." 

 

            (* 길들임의 단계 경, M125, https://ibakdal.tistory.com/17372907?category=781460) 

 

 

계(戒)를 수지하지 않는 이 세존의 제자가 아닙니다.

계를 수지하지 않는 이의 '깨달음;,,, '깨달음'이 아닙니다.

계를 수지하지 않는 이가 선(禪定), '바른 삼매'를 얻었다함,,,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계를 수지하지 않는 이가 지혜(慧)를 얻었다함,,,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죽어도 계를 파하지 않는 이가 그분의 제자입니다.

죽을지언정 계를 파하지 않는 이가,,,

바른 삼매, 바른 지혜, 바른 해탈에 이를 뿐입니다.

설사 아직 미치치 못하여 삼매나 지혜를 증득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계를 파하지 않은 이가 공양받아 마땅한 그분의 참된 제자입니다. 

 

 

 

어떤 이들은 '갓난 아이', '어린 아이'처럼 ,,,

무엇을 행하든 선악에 대한 인식이 없고 사량분별 같은 것이 없기에,,

거리낌 없이 행하는 천진난만함이 깨달음의 실상이요 궁극이라고 합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잘못 알고 있는 것입니다.

아직 오염되지 않은 어린 아이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그 '갓난 아이' 혹은 '어린 아이',,,, 혹시 '괴물'이 아닐까요?,,,,,

그 아이가 행복하고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지만,,,,

'괴물'이 되지 않을까요?,,,,

 

      "목수여, 왜냐하면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몸이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움직일 뿐인데 어떻게 몸으로 나쁜 업을 짓겠는가?

       말이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울 뿐인데 어떻게 나쁜 말을 하겠는가?

       사유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부루퉁할 뿐인데 어떻게 나쁜 사유를 하겠는가?

       생계라는 [개념도] 없이 단지 어머니의 젖을 먹을 뿐인데

       어떻게 나쁜 생계로 삶을 영위함이 있겠는가?

 

       목수여,

       나는 이런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인간은 

       유익한 법을 갖춘 자가 아니며,

       최상의 유익함을 갖춘 자가 아니며, 최고의 경지를 얻은 자가 아니며,

       대적할 수 없는 사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는 단지 어리고 아무 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의 특징을 얻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 사마나만디까 경, M78, https://ibakdal.tistory.com/17372457?categoryId=923124) 

 

 

      "말룽깟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 아이에게는 

 

       [불변하는] 존재더미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가 잠재성향으로 내재해있다.

 

        법이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법에 대한 의심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의심의 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계율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계율들에 대해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의 잠재성향이 잠재해 있다.

 

        감각적 욕망이라는 생각조차도 없는데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 감각적 욕망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감각적 욕망의 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중생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중생들에 대해 악의가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악의의 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말룽까뿟따여, 그렇게 되면 참으로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이러한 어린아이의 비유로써 그대를 논박하지 않겠는가?"

 

                      (* 말룽꺄뿟따 긴 경, M64, https://ibakdal.tistory.com/17372324)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 것이 깨달음'이라는,,,

세존께서는 그런 법을 설하신 적이 없기로,,,

후대에 '본성(本性)', '불성(佛性)', '공성(空性)'이라는 사유체계에 근거한

'깨달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는,,,

 

그렇다면 '기절하거나, 술에 취한 사람도 깨달음의 상태에 도달한 것과 같게 될 것이다.'

라는 논박과 더불어 '라사의 종론', '삼예사의 종론'의 논쟁으로까지 이어집니다.

 

                     (* 삼예사의 종론, https://ibakdal.tistory.com/17369749)

 

 

 

세존께서는

"작은 허물에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닦아라."라고 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시기 전에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난다여, 그런데 그대들에게

   '   스승의 가르침은 이제 끝나 버렸다. 

       이제 스승은 계시지 않는다.'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아난다여,

        내가 가고난 후에는

        내가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천명한 

        법과 율이 그대들의 스승이 될 것이다."

 

                           (* 대반열반경, D16, https://ibakdal.tistory.com/17371230)

"

 

 

■ 계(戒)를 수지함의 결실/목적

 

수행자가 계를 수지하는 결실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다음과 같이 설하십니다.

계(戒)를 수지하여 깨닫고, 닦은 결실이니,,,

이것이 계를 수지하는 목적이라고 해도 될 것입니다.

 

      "대왕이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합니다.  

       대왕이여, 예를 들면 관정(灌 예를 )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왕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서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는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합니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합니다."

 

                   (* 사문과경, D2, https://ibakdal.tistory.com/17369872)

 

 

적을 남김 없이 정복한 왕처럼 1) 어디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

2)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하는 것,,,, 이 두 가지입니다.

 

반대로 계를 수지하지 못하면,,,

그는 '두려움'을 '두려움의 표상'을 보게 되고,

자신이 돌아봐도 스스로 비난받을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법(法)이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 계(戒)를 수지함과 물질정신(五蘊)의 전개

 

어째서 계(戒)를 수지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 '계(戒) 따위'에서 자유로우면 안되는 것입니까?

어째서 계(戒)가 '깨달음'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까?

어째서 "성스러운 계(戒)"라고 하는 것입니까?

 

세존께서 법을 설하신 이유는,,,,

"1)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2) 세상을 연민하고

  3) 신들과 인간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

          (* 사자후의 긴 경, M12, https://ibakdal.tistory.com/17371131)

라고 세존께서는 수도 없이 말씀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오온(五蘊)에 대해서 설하신 분입니다.

세상을 물질(色)과 정신(名)으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으로 해체해서 설하시고,,,

오온이 무엇인지, 왜 생겨났는지, 어디서 소멸하는자, 그 소멸에 어떻게 도달하는지

설하신 분입니다.

 

'오온을 바로 볼 것'을 설하시고,,,

그 물질과 정신의 전개에 대해서 설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만일 이것에 대해 다른 이들이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하면,

 

        여래는

   '    단지 전에 철저히 안 [오온]을 두고

        거기에 대해 그들이 이러한 존경을 행하는 것이다.'라고 여길 뿐이다."

 

                   (* 뱀의 비유 경, M22, https://ibakdal.tistory.com/173719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존께서 계(戒)를 설하시는 것은 바로 '물질정신현상의 전개'에 대한 것을,

그 법칙을 설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1)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 바로 그 시간에 죽는다면 

    그는 '마치 누가 그를 데려가서 놓는 것처럼' 천상에 태어난다

         (* 앙굿따라니까야, 바르게 놓임 품, A1.5, https://ibakdal.tistory.com/17369946)

 

2) 만일 누가 세존을 정등각자, 바르게 깨달은 분이라는 것을 부정하고 폄훼하는 

     말을 하고, 그 마음을 버리지 않고, 그런 견해를 버리지 않는다면

     그는 '마치 누가 그를 데려가서 놓는 것처럼' (반드시) 지옥에 떨어진다.

         (* 사자후의 긴 경, M12, https://ibakdal.tistory.com/17371106)

 

3)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선업을 골고루 행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어서

    죽어서 몸이 무너진 뒤 천상이나 인간으로 태어나고,

 

    몸으로, 입으로, 마음으로 악업을 골고루 행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고, 사견업(邪見業)을 지어서,

    죽어서 몸이 무너진 뒤 아귀계나, 축생의 모태나, 지옥에 태어난다.

          (* 저승사자 경, M130, https://ibakdal.tistory.com/17372957)

 

등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출가자든 재가자든 누구라도 세존께서 설하신 계(戒)를 따라,,,

그 계(戒)를 깨닫고, 수지하고, 닦지 않으면,,,

그에게는 원하지 않고 피하고 싶은 물질정신현상이,,,

그가 살아있는 동안이나 다음 생이나 먼 미래라도 과보로써 펼쳐집니다.

시간이 걸리는 것은,,, 그 악행과 과보(果報)가 익기 때문입니다.

계(戒)가 깨지면 그의 삶은 반드시 파멸로 이어집니다.

 

계(戒)를 수지함이야말로 긴 세월 그에게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주므로,,,

스스로를 자유롭게하는 첫 번째 관문입니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수행(修行)입니다.

계를 수지하고 닦는 것은 보시보다 어렵습니다.

 

 

 

이같이 '자신을 완전히 조복시킨 그 사람'은,,,

'뿔 잘라낸 횡소처럼 살아가던 그 사람'은,,,,

먼저 계(戒)를 구족합니다.

 

그 계를 구족함이,,,

'심연(深淵)에 뿌리 박았고', '침투할 수 없는 철기둥'과 같습니다.

 

이렇게 그는 먼저 그 몸과 입과 마음에서,,,,

의심을 건너갑니다.

               (* 제석문경, D21, https://ibakdal.tistory.com/17370313)

 

이렇게 그는 먼저 그 몸과 입과 마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잠재해 있었던 쇠살들'을 뽑아냅니다.

               (* 제석문경, D21, https://ibakdal.tistory.com/17370316)

 

 

 

"아직도 계(戒)에 매여 사느냐"라고요?,,,,

"누가 말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