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탐욕(眈)'의 지배에서 벗어남
(앞에서,,,,, )
1) 나와 나 아닌 것들이 부질없이 '불타오르고' 있을 뿐인' 실상(實狀)을 보아
잠쉬도 쉬지 않고 '불타오르고' 있는,,,,
거짓 없는 내 진짜 모습을 보고 아는 것이 시작입니다.
(이어서,,,, )
2) 연기(緣起)로써 '일체'가 일어나고 사리지는 것을 여실히 알고 보아
■ 연기(緣起)란?
이 '성스러운 연기(緣起)의 법'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어떤 이들은 '인연(因緣)' 혹은 '인과(因果)' 정도로 이 법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런 의미와는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 '연기(緣起)'의 법(法, dhamma)은
'세상의 모든 것', '일체', '나'와 '나 아닌 것', '일체 물질·정신현상',
혹은 색(色, form)은 일체 물질현상을,
느낌(受, feeling), 지각(想, perception), 형성(行, 지음, sankhara, formation), 앎(識, consciousness)의
4가지는 일체 정신현상이기에,, 합하여 '다섯 무더기'(오온, 五蘊),
혹은 자신에게 감득(感得)된 이 다섯 무더기를
'나' 내지 실체, 현실(reality)로 거머쥐고 애착하기에 '오취온(五取蘊)',
혹은 이 '일체' 자체가 오온의 형태로 괴로움이 '드러난(emerge)' 것이기에 '괴로움',
혹은 '일체' 자체가 번뇌가 그에게 그렇게 '드러난' 것이기에 '번뇌',,,,
하여,,,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이들 전부가,,,,
왜 생겼는지, 왜 머무는지, 어떻게 소멸하는지를 설명하는 어마어마한 법입니다.
일체 '존재'의 '존재됨'을 설하는 법이므로,,, 세존께서 설하신 '존재론'이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어마어마한 법에 대해 세존께서 아같이 설하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연기(緣起)을 보는 자는 법을 보고,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라고,"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긴 경, M28, https://ibakdal.tistory.com/17371972)
'연기(緣起)'가 동전의 앞면이라면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는 동전의 뒷면과 같습니다.
연기 없이 세존의 가르침(法, dhamma)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나', '세상', '일체' 등을 이해함에 있어서,,,,,
어떤 이들은 '나'의 실체 혹은 세상은 영속한다고 생각하는 영속론,
어떤 이들은 몸은 소멸하지만 영혼은 영속한다는 일부영속, 일부 비영속론,
세상은 유한하다는 유한론, 무한하다는 무한론,
알 수 없는 그런 것들을 알 필요가 있느냐는 애매모호로의 일관 내지 달관,
우연일 뿐이며 우연히 생기고 사라진다는 우연론,
사후에 자아가 인식은 있다는 이,
사후에 자아는 인식이 없다는 이,
사후에 자아는 인식이 있기도하고 없기도 하다는 이,
'죽으면 그것으로 끝이다.'라는 이,
'직금여기에 열반'이라는 이,
과거로 실체를 모색하는 이,
미래의 나는 세상은 이럴 것이며 이래야 할 것이라는 이,,,,,
이들 모두가,,, 잘못된 견해(外道의 62見)일 뿐이며,,,,
그들에게 어떤 이유로 어떤 느낌이 생겼고,,,
그 느낌을 취착하여 동요된 나머지 견해를 거머쥔 것에 불과하며,,,
결국 그것은 그에게 괴로움을 가져오고,,,
'연기(緣起)'의 도(道)를 따라 '나', '세상', '일체'를 꿰뚫어 알지 못한 결과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십니다.
(* 범망경, D1, https://ibakdal.tistory.com/17369844)
'세존께서는 이 '연기(緣起)'의 도(道)를 따라,,,,,
'나', '세상', '일체'의 실상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서 알고 보아,,,
'나', '세상', '일체'에 대한 일체의 잘못된 견해의 그물을 벗어나는 것에 대하여,,,,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법문을
뜻의 그물(義網)이라고 받아 지녀라.
법의 그물(法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범천의 그물(梵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견해의 그물(見網)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無上戰勝)라고 받아 지녀라."
이러한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이 설해졌을 때
일만의 세계가 진동하였다."
(* 범망경, D1, https://ibakdal.tistory.com/17369849)
■ 일체 부처님들께서 연기(緣起)를 통찰하여 깨달음을 얻으심
91겁 전의 위빳시 부처님, 31겁 전의 시키 부처님과 웻사부 부처님,
이 행운의 겁에 까꾸산다 부처님, 꼬나가마나 부처님, 깟사빠 부처님, 그리고 고따마 부처님,,,
세존께서는 이 일곱 부처님들이 어떻게 깨달음에 이르렀는지 「대전기경」(D22, 디가니까야 제14경)에서
상세하게 설하십니다.
이 세상에 세존·아라한·정등각자이신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직 부처님의 법을 만날 수 있는 '정법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는 큰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놀랍게도 이 일곱 부처님들은 모두 같은 방법으로 깨달음을 성취하셨습니다.
바로 이 '연기(緣起)법을 통찰해서 입니다.
그 내용은 아래와 같습니다.
【 '일체'의 생겨남】
"1)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2)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하여 정신 · 물질이,
3)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여섯 감각장소가,
4)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5)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6)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7)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8)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9)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10)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 ·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있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일어난다."
(* 대전기경, D14,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1)
이 알듯말듯한 기괴한 법문을 듣고,,, 이 뜻을 아는 이는 거의 없습니다.
혹은 힘들여 논리적으로는 겨우 이해할지 몰라도,,,
수행을 통해 참뜻을 체득하고 증득하여 매순간 이에 확고한 이는 더욱 없습니다.
참으로 '일체가 생겨나' 내 앞에 드러나 있는 도리를 설하시는 심심미묘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 이 세상 저세상을 끝없이 윤회하며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
"정신 · 물질(名色)이 있을 때 앎(識)이 있으며,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앎(識)이 있다.
이 앎(識)는 정신 · 물질에 다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못한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 대전기경, D14,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1)
연기(緣起)의 법으로 일체를 꿰뚫어 알고 보지 못하여 끝없이 윤회하는 것입니다.
【 '일체'의 사라짐】
"1) 정신 · 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2)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 · 물질이 소멸하고,
3) 정신 · 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4)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5)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6)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7)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8) 취착이 소멸하기 때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9)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10)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 ·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한다."
◎ 위빳사나의 도(道)를 증득
이렇게 '일체'가 생겨나고 소멸하는 도리,,, '연기(緣起)'의 법을 증득하였을 때,
위빳시 보살께선 이렇게 생각하십니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둘었다.
'나는 (위빳사나의) 도(道)를 증득하였다.'"
이렇게 연기(緣起)의 도(道),
즉, '일체',,, '나', '세상', '모든 것'의 "생겨남, 사라짐"의 실상을
알고 보는 도리를 증득하셨을 때,,,,
위빳시 보살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생겨남, 생겨남'이라고
'사라짐, 사라짐'이라고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1) 눈(眼)이 생겼다.
2) 지혜(智)가 생겼다.
3) 통찰지(慧)가 생겼다.
4) 영지(明)가 생겼다.
5) 광명(光)이 생겼다."
(* 대전기경, D14,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1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2)
3)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함
【 해탈】
이 성스러운 '연기(緣起)'으로써,,,,
오온(五蘊) 즉, 일체 물질정신현상들의 실상(實狀)을 '바로 봄(正見)'에 의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이들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고
모든 부처님들이 그렇게 해탈했다고 세존께서는 설하십니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은
그 후에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것이 물질(현상,色, form)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 feel)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 지각, perception)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行, 의도, 정신적 형성, sankhara, formation)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앎(識, 식별하여 아는 것, 인식작용, consciousness)이다.
이것이 앎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앎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자
오래지 않아
1) 취착이 없어져서,
2) 번뇌들로부터,
3) 마음이,
4) 해탈하였다."
(* 대전기경, D14, https://ibakdal.tistory.com/17371153)
모든 부처님들이,,, 모든 아라한들이,,,
이같이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풀어서 벗어납니다(解脫).
이렇게 '괴로움'을 종식합니다. 이렇게 '일체'의 족쇄로부터, '존재'의 사슬로부터 벗어납니다.
이렇게 '번뇌들',,,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들(慾漏),
있고 없음에 기인한 번뇌들(有漏),
무명에 기인한 번뇌들(無明漏)
로부터,,, 벗어납니다.
다른 방법, 다른 깨달음에 의해서 이 궁극의 '깨달음', '열반(닙바나)'에 이르는 길은 없습니다.
사무량심에 의한 해탈,,,
즉, 자심해탈(慈心解脫), 비심해탈(悲心解脫), 희심해탈(喜心解脫), 사심해탈(捨心解脫)을 한 이라도,,,,,
삼매(사마타) 즉, 초선∼사선,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선정,
그리고 멸진정(상수멸)을 증득한 이라 하더라도,,,,
그 끝에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함"이라는 다리를 건너기 전에는,,,
말입니다.
이것은 세존께서 설하신 그대로 "유일한 길"입니다.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지지 않은 길'입니다.
"비구들이여,
이 도는 유일한 길이니,
,,,,,,,,,, (하략)"
(* 대념처경, D22, https://ibakdal.tistory.com/17370319)
4) 여섯 가지 감각기능(六根) _ 오온을 바로 보는 장소
■ 수행자가 마음챙김을 하며 연기를 통찰할 때,,,, '어디서' 그렇게 관찰합니까?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서 그렇게 합니다.
'오온을 바로 본다.'함은 이 여섯 가지 감관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身)으로부터 시작하여 일체 '물질(色)'을,,,,
자신의 느낌(受), 자신의 마음(心)으로부터 일체 '정신(심리현상, 名)을,,,,
이들 물질정신현상(名色)을 관통하고 지배하는 법(法, dhamma)에 대해서,,,
차례로 마음챙겨(sati) 념념불망토록 새기며,,,
'꿰뚫어 아는' 것이 그 구체입니다.
" 1)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감각 기능(六根)에서,,,
2)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심리현상의 여섯 감각대상(六境)에서,,,
3) 눈에 의한 앎, 귀에 의한 앎, 코에 의한 앎, 혀에 의한 앎, 몸에 의한 앎,
마음에 의한 앎의 여섯 가지 앎(六識)에서,,,
4) 눈의 감각접촉, 귀의 감각접촉, 코의 감각접촉, 혀의 감각접촉, 몸의 감각접촉,
마음의 감각접촉의 여섯 가지 감각접촉(六觸)에서,,,
5) 눈에 의한 느낌, 귀에 의한 느낌, 코에 의한 느낌, 혀에 의한 느낌,,,
몸에 의한 느낌, 마음에 의한 느낌의 여섯 가지 느낌(六受)에서,,,
6) 눈에 의한 지각, 귀에 의한 지각, 코에 의한 지각, 혀에 의한 지각,,,
몸에 의한 지각, 마음에 의한 지각의 여섯 가지 지각(六想)에서,,,
7) 눈에 의한 형성(의도, 지음), 귀에 의한 형성, 코에 의한 형성, 혀에 의한 형성,
몸에 의한 형성, 마음에 의한 형성의 여섯 가지 형성(六行)에서,,,
8) 눈에 의한 갈애, 귀에 의한 갈애, 코에 의한 갈애, 혀에 의한 갈애,
몸에 의한 갈애, 마음에 의한 갈애의 여섯 가지 갈애(六愛)에서,,,,
9) 눈에 의한 생각 일으킴, 귀에 의한 생각 일으킴, 코에 의한 생각 일으킴,
혀에 의한 생각 일으킴. 몸에 의한 생각 일으킴, 마음에 의한 생각 일으킴(六尋)에서,,,
10) 눈에 의한 갈애로 인해 계속해서 생각함, 귀에 의한 갈애로 계속해서 생각함,
코에 의한 갈애로 계속해서 생각함, 혀에 의한 갈애로 계속해서 생각함,
몸에 의한 갈애로 계속해서 생각함, 마음에 의한 갈애로 계속해서 생각함의
여섯 가지 계속해서 찾고 생각함(六伺)"
에서입니다.
(*대념처경, D22, https://ibakdal.tistory.com/17370354)
이 60가지는 모두 우리가 '즐겨하고 기분 좋아하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이들을 의식하지 않고 살지만,,, 매순간 쉼 없이 하는 것들입니다.
이 60가지에서 각각 '갈애(愛)'가 '생겨'납니다.
이 60가지가 각각 '갈애'가 '소멸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참으로 놀랍게도,,,, 세존께서는,,,,,
이 60가지에서 '일체가 생겨난다.'라고 설하십니다.
이 60가지에서 '일체가 소멸한다.'라고 설하십니다.
'존재'가 매순간 '생겨나고 소멸하는(Rise & Fall)' 것입니다.
'오온'이 생멸하는 곳입니다.
이것이 연기(緣起)입니다.
이렇게 일체가 일어남을 꿰뚫어 아는 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고
이렇게 일체가 사라짐을 꿰뚫어 아는 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諦)'입니다.
세존께서 이같이 설하신 바입니다.
어떤 수행자가 깨달음을 위해서 수행을 하고 있다면,,,,
적어도 자신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여섯 가지에서,,,
각각 그 감각기능(根), 감각대상(境), 그로 인한 각각의 앎(識), 감각접촉(觸),
각 감각기능으로 인한 느낌(受), 지각(想), 각각의 형성(行, 의도, 지음),
거기서 일어나 갈애(愛), 생각을 일으킴(尋), 그로 인한 계속 생각함(伺)의 10가지,,
총 60가지에 대해서 면밀하고 상세하게 잘 살펴봐야(위삣사나, vipasanna)하는 과정이 불가결합니다.
온전히 그 개인의 일이요,,, 누가 대신 할 수 없습니다.
이렇게 치열하게 법답게 수행, 정진하기 전에는,,,
그는 '세존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을 들었을 뿐이요,,,
그 실체를 알거나 그 법을 체득한 실다움을 얻을 수 없습니다.
60가지에 대한 실로 방대한 작업이요 수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오온(五縕)을 '바로 본다'함은 오온을 '어떻게' 보는 것인가?
【무아(無我) _ '나' 아님을】
"1) ("나'의 몸을 포함한) 일체의 물질현상(色),
2) 네 가지 정신현상(名) _ 느낌(受), 지각(想), 행(行, 의도, 정신적 형성, sankhara),
앎(識)의 4가지
즉, 오온(五蘊)은 그 어느 것이라도,,,,
'나'가 아니기 때문에
'나'를 괴롭히고 고통이 따른다
이같이 되기를, 이같이 되지 말기를' 하더라도 그대로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 다섯 가지는 '나'가 아니다(無我)"
(* 무아경, 무아상경, S22:59, https://ibakdal.tistory.com/17371040)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임을】
"이 다섯 가지는(각각에 대하여),,,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영원하지 않은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영원하지 않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이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이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무아경, 무아상경, S22:59, https://ibakdal.tistory.com/17371042)
【시공(時空)을 초월하여서도 '나'가 아님】
"이 다섯 가지는(각각에 대하여),,,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시간을 초월하여)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나든 나 밖에 다른 것이든)
거칠 건 미세하 건,,,, (욕계세상에 속한 것이든 색계 혹은 무색계 천상의 것이든)
저열하든 수승하든,,,, (마음에 드는것이든 아니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공간을 초월하여)
'이것은 내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성스러운 도의 지혜)로 보아야 한다."
(* 무아경, 무아상경, S22:59, https://ibakdal.tistory.com/17371042)
어떤 이들은 세존께서 "상락아정(常樂我淨)"을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오온에 취착함을 그대로 가지고 그것을 즐김을 자랑하면서 이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존의 가르침은 위와 같이 그와 정반대입니다.
오직 오온에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사무치게 알고 볼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여 열반에 이른 것을 두고 "상락아정(常樂我淨)"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에,,,, 그런 '나(我)'는 없습니다.
영원함(常)도 영원하지 않음(無常)이 없고,,,시간이 멸했고,
즐거움(樂)도 괴로움(苦)도 떠났으며,,,,
'나(我)'라 부를만한 그 어떤 것도 없기에,,, 있고없음(有無)을 벗었기에,
께끗함(淨)과 더러움(不淨)을 벗었기에,,,
사람들의 인습적인 표현을 빌어 '적멸청정(寂滅淸淨)'이라 하기 때문입니다.
4) 오직 '무더기(蘊)가 일어나고 무더기(蘊)가 사라질 뿐인 것'을 보아
"누가 이 꼭두각시를 만들었는가?
꼭두각시를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소멸하는가?"
"이 꼭두각시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요
이 불쌍한 것은 남이 만든 것도 아니다.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났으며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
(중략)
그와 같이
무더기들(蘊)과 요소들(界)과 여섯 감각장소들(處)은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났지만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
(*셀라 경, S5.9, https://ibakdal.tistory.com/17370027)
그는 '나' 자신이나, '나 아닌 모든 것'들에 대해서,,,
오직 '무더기(蘊)들이 일어나고 무더기들이 사라질 뿐'인 것을 봅니다.
그는 그렇게 알고 보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그렇다면 이것을 보고 있는 나는 대체 무엇인가?'라고 고찰합니다.
그는,,,, '나 역시 무더기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모아 놓고
인습적으로 표현을 따라 '나'라고 하고 있구나.'라고 알게 됩니다.
일체 물질정신,,, 다섯 가지 무더기,,,, 어디를 어떻게 살펴보아도,,,
'나'라 할만한 실체가 없음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렇게 그는 '나'라는 족쇄로부터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비구들이여,
'나는 있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망한 생각은 병이며, 질병이고, 가시이다.
(* 『中部』140『界分別經』MA III, 246, https://ibakdal.tistory.com/17371165)
그는 이렇게 '유신견(有身見)'으로부터,,,
'내가 있다.'라는 허망한 생각,,,,
'뭐라고?,,, 내가 내가 아니면,,, 그럼 여기 이 내가 뭐란 말여?'라는
질병과 가시로부터,,, 분명하게 벗어납니다.
그가 누렸던 '감각적 욕망'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감각적 욕망'과 '감각적 욕망을 향한 열망'과 그 '즐김'에서도,,,
그는 오직 '무더기(蘊)들이 일어나고 무더기들이 사라질 뿐'인 것을 봅니다.
거기에 '나'도, '나의 것'도, '나의 자아'도 없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기 마련이고, 해체되기 마련이고, 분해되기 마련이며',,,
그 '즐김'이야말로 '괴로움'의 시작일 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알고 봅니다.
그렇게 그는 '감각적 욕망'에 의한 지배,
'감각적 욕망을 향한 열망'에 의해 꼭두각시처럼 지배당하고 있던 자신의 모습을 보고,,,
거기서 벗어나기 시작합니다.
끝을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단지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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