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질문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탐욕과 공포는 무엇이 지배합니까?",,,,,
새존께서 대각(大覺)을 이루신 후 사함빠디 범천의 청을 듣고 법을 설하기로 하신 후,
같이 고행하던 오비구에게 처음으로 법을 설하시기 위해 바라나시로 가시면서 하신 말씀,,,
"무지(無知)기 지배하는 이 세상에서 나는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리라."라고 하셨던 것과 같이,,,
탐욕과 공포는 '무지(無知)'가 지배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 그렇습니다.
탐욕과 공포는,,, 그 뿌리가 '무지(無知)'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무지(無知)'는 '지혜 없음', '어리석음', 그리하여 '무명(無明)'이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세상살이의 지혜, '꾀', 총명함, 혹은 흔히 세간에서 말하는 '지혜' 와는 아주 다릅니다.
그러면 여기서 무엇을 두고 '지혜 없음', 혹은 '어리석음(癡)'이라고 합니까?
'진리(sacca)가 무엇인지 모르는 것'을 두고 이르는 아주 특별한 말입니다.
"하하! 진리가 뭔데?"라고 비웃는 이들,,, 많습니다.
"그래서 뭐?, 진리를 알면 뭐가 달라지는데?, 진리 같은 소리하네."라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진리'를 말하지만,,, 무엇을 두고 '진리'라 하는지 알지 못합니다.
'1)이 모든것이 무엇인지?(苦), 2)이 모든 것은 왜 생겨났는지?(集), 3)이 모든 것의 끝은 어딘지?(滅),
4) 그 끝에 어떻게 이르는지?(道)'의 네 가지를 '진리'라고 그분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참으로 듣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진리에 대한 참된 정의 아닐까요?,,,,
진리를 말하면서 그 진리를 정의하시는 분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바로 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를 모르고 있는 것을 두고
'무지(無知)', '무명(無明)', '어리석음(癡)', '지혜 없음'이라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일체, 이 모든 것, 오온, 일체 물질·정신현상)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일체, 이 모든 것, 오온, 일체 물질·정신현상)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일체, 이 모든 것, 오온, 일체 물질·정신현상)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괴로움(일체, 이 모든 것, 오온, 일체 물질·정신현상)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이를 일러 무명(無明)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된다."
(* 상윳따 니까야 「무명 경」, S56:17)
왜 여기서,,, '괴로움'이라고 하신 것을,,,
'일체, (나를 포함한)이 모든 것, 오온, 일체 물질·정신현상'이라고,,,,
당신 마음대로 의역하는가라고 물으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분이 발견하고 설하신 첫 번째 '진리'가,,,,
이 모든 것은 '괴로움'이고,,, 그 '괴로움이 드러난 것'이라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기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를 포함한 일체, 내가 '현실(reality)'이라고 거머쥐고 있는 모든 것,
혹은 다섯 무더기(오온, 五蘊)의 형식을 빌어,,, 내 앞에 펼쳐진 일체 물질정신현상(名色)이,,,,
기실 '괴로움'이며,,,, 그 '괴로움'이 내 앞에 그런 형식으로 '드러나(emerge) 있는 것'이라는
진실(truth) 때문에,,,
그분에게 '일체'와 '괴로움'은 동의어입니다.
이것 없이 그분의 가르침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를 알기가 하늘의 별을 따는 것처럼 어렵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렇지 않습니까?
삼천대천세계의 그 누구라도,,, 그분이 '알고, 보시고',,, 천명하신 이 법을,,,
거꾸로 돌릴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첫 번째 '괴로움의 진리(苦聖諦)'를 설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요컨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 대념처경, D22, https://ibakdal.tistory.com/17370352)
그러므로 잘 닦으신 그분의 제자들을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 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行)들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蘊)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인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
단지 괴로움이 생겨나고
단지 괴로움이 머물고 없어질 뿐이니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되지 않도다."
(* 와지라 경, S5.10, https://ibakdal.tistory.com/17370029)
'존재'들의 존재를 뒤흔드는 마라의 질문에,,, 이 비구니께서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고,,,
"단지 괴로움이 생겨나고 머물고 없어지며,,,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하지않는다."라고,,,,,삼매의 힘도 실력 행사도 신통도 기적도 아닌,,,
오직 말로써 그 질문을 파멸시킵니다.
일체 존재가,, 일체가,,, 오직 '괴로움'이 드러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는,,,,
첫 번째 '진리'를 꿰뚫어 증득하지 못하고는 이같이 말할 수 없습니다.
어째서 '진리'를 모르는 것을 두고 '어리석다'고 합니까?
이것을 모르면,,, 그가 누구든,,,,
내가 무엇인지 모르고 삽니다..
내 앞에 펼쳐지는 모든 물질현상(色)이나 정신현상(名)이, 이 모든 것이
이 세상이 무엇인지 모르고 세상을 살아갑니다.
내가 왜 있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고 살아갑니다.
지옥에 태어날 것이 분명한데도,,, 죽은 다음엔 어떻게 되는지 모르고 삽니다.
살더라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며 삽니다.
'어리석다'라고 할 수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하여,,, 여기 어떤 이들은 '지금여기' 뿐이라고 합니다.
"과거는 지나갔고, 미래는 오지 않았고, 지금여기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렇게 소중히 여기는 '지금여기'는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이 몸이나 장소(色)든, 어떤 느낌(受)이든, 어떤 지각(想)이든, 어떤 의도(行)든,
어떤 앎이나 깨달음(識)이라해도 말입니다. ...
"형성된 모든 것은 반드시 소멸하기에",,, 그것은 결국 좋든 싫든 소멸, 죽음에 이르고,,,,
까마득히 잊혀집니다. 그렇게,,,, '출구'를 모르는 미궁 속을 끝없이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실 대부분은 이를 즐깁니다.
그렇지 않은 이는 거의 없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주는 감각적 욕망을 위한 열망에 사로 잡혀서,, 그것을 즐기기 위해,,
압도적이고 현전(現前)하는 '공포'를 애써 외면하면서,,,
'그것이 인생이야'라고 하면서,,, 탐욕과 공포 사이를 줄타기 하듯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어떤 이라 하더라도,,,,'호랑이 굴 앞에 행복한 곰 눈깔'이 아닌 이,,, 희유합니다.
'탐욕'과 '공포'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 그 '출구'를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탐욕과 공포로 존재들을 속박하고 길들이고 지배하는 마라(Mara)를 조복시킨 분이 계신 것입니다.
'어둠에 덮혀 있는 세상'의,,, '무지(無知)가 지배하는 세상'의 '장막을 걷어내고',,,
'세상을 연민'하여 '존재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불사(不死의 북'을 울리신 분이 계십니다.
하면,,,,
"탐욕과 공포가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땅히,,,,
"법(法, dhamma)이 세상을 지배한다."고 해야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실상입니다.
"셀라여, 내가 굴린 바퀴는 위없는 법의 바퀴이니
여래의 아들인 사리뿟따가 뒤를 이어 굴릴 것입니다.
최상의 지혜로 알아야 할 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았고
내게서 버려야 할 것을 버렸으니
바라문이여, 그러므로 나는 부처입니다.
나에 대한 의심을 버리고
확신을 가지시오, 바라문이여.
완전하게 깨달은 자들을 만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 출현이 그토록 어려운
완전하게 깨달은 자이니,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최고의 의사입니다.
견줄 이 없는 브라흐마가 되어
마라의 병사들을 부수었고
모든 적들을 굴복시켜
두려움 없이 기뻐합니다."
(* 셀라경, M92, https://ibakdal.tistory.com/17372579)
그러므로 세존께서는 이같이 말씀하십니다.
"와셋타여,
왜냐하면 지금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이 세상에서 최상이기 때문이다."
(* 세기경, D27, https://ibakdal.tistory.com/17371320)
언뜻 보면,,,, 세상은 마라(Mara)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의 수단인 탐욕과 공포가 지배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 탐욕과 공포에 지배당하는 '존재'들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잘못된 고찰 나머지 이것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그 수레에 올라타 승리를 노래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슴 한켠에는,,,,
'과연 이것이 존재들과 세상의 궁극이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출구' 혹은 방법을 알지 못합니다.
어떻게 하면,,, '두려움 없는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일까 하는 소망이,,,
누구에게든 있는 것입니다.
여기,,,, 4아승기 10만대겁을,,, 무량겁을 찾고 헤매고 닦아서,,,
헤아릴 수 없는 실패 끝에,,,
그러한 마라의 족쇄들을 풀고 끊어서 승리하신 분이 계십니다.
그 마라를 눈 멀게 하신 분이 계십니다.
'세상을 연민하여,,, 인간들과 신들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그것을 천명하셨습니다.
그것은 증명된 것이고...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며,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라면 누구든 알 수 있는 것'이기에,,,,,
(* 옷감의 비유 경, M7, https://ibakdal.tistory.com/17371682)
신이든 인간이든 마라든 범천이든,,, 이 법륜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탐욕과 공포가 세상을 지배한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지금여기에서도,
내세에서도,,,
법이 모든 세상에서 지배한다."
라고 해야 바르게 말하는 것입니다.
하면,,, 어떻게 법이 세상을 지배합니까?
어떻게 법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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