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경(淨信經)은
세존께서 삭까에서 웨단냐라 불리는 사꺄들의 망고 숲에 있는 중각강당에 머무실 때
쭌다 사미가 안거를 마치고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와서
마침 니간타 나따붓따가 임종하여 그 제자들과 재가신자들 사이에 큰 혼란이 일어난 소식을 전하자
둘이 함께 세존께 가서 이러한 상황을 아뢰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니간타 나따붓따의 임종괴 함께 일어난 혼란이란 이와 같은데 오늘날에도 종종 있는 일이어서
새길 만한 것입니다.
제자들은 분열하여 둘로 갈라져서
입의 칼로써 서로를 찌르며 지내고 있습니다 즉
1)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2)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3)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4)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5)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6)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7) '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제자들 사이에는 오직 투쟁만이 있는 듯합니다
또한 재가신자들은 이런 모습에 넌더리를 내고 질려 버리고 실망하게 되는 모습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상황을 들으시고
'그것은
1) 법과 율이 제대로 설해지지 못하고 잘못 선언되고
2) 출리(出離)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에 이바지하지 못하고
3)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 아니며
4) 탑이 부서진 것이고
5) 귀의처가 없게 된 경우에 속하기 때문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하 세존의 법문은 세존께서 쭌다 사미에게 하시는 것입니다.
쭌다 사미는 니간타 나따뿟따의 임종 후 그 제자들과 재자신자들에게 일어난 일을 보고
'혹시 세존께서 입적하시면 우리 승가도 저렇게 되면 어떡하나?'라는 걱정과 의문이 있었을 것이라
생각되는데, 이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어린 사미가 이러한 걱정과 의문에서 벗어나도록 설하시는
것입니다.
이 쭌다 사미에 대한 세존의 가르침의 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그러한 혼란이 없기 위해서는
바르게 깨친 스승이 가르치고 천명한 바른 법이 필요한 것이다.
세존께서는 누가 누구를 가르침에 있어서 네 가지 경우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1) 스승이 바르게 깨친 자가 아니며 그 제자들도 그 법에 머물지 않는 경우
2) 스승이 바르게 깨친 자가 아닌데 그 제자들은 그 법에 머무는 경우
3) 스승이 바르게 깨친 자인데 그 제자들은 그 법에 머물지 않는 경우'
4) 스승도 바르게 깨친 분이고 그 제자들도 그 법에 머무는 경우
가 그것입니다.
이 中 1), 2)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그대로 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인도하는 사람도, 그렇게 인도하는 것도, 그렇게 인도되는 것도 非공덕이 되지만
3), 4)의 경우는 다른 사람들이 스승의 가르침대로 하라고 한다면
그렇게 인도하는 사람도, 그렇게 인도하는 것도, 그렇게 인도되는 것도 공덕이 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바르게 께친 스승'이 가르치고 천명한 법은
'그 법이
1)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었고
2)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3)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기 때문'
이라고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2. 그러한 혼란이 없기 위해서는 바르게 깨친 스승이 임종하기 전에
제자들이 그 바른 법에 대해서 바로 알고 성취해야 한다.
이어서 새존께서는
1) 스승이 바르게 깨친 자인데 제자들은 그 배움을 안성하지 못하고 스승이 임종하는 경우
2) 스승이 바르게 깨친 자인데 제자들은 스승이 임종하기 전에 그 배움을 완성하는 경우
의 두 가지 경우를 설명하시고
2)의 경우에 그 제자들은 스승이 임종하더라도 큰 자책거리가 되지 않음을 밝히십니다.
제자들이 그 배움을 완성했다는 것은
1)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고,
2) 모든 (배움 및 성취의)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3)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4)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하고 있는 것
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3. 나의 청정범행은 갖추어야 할 모든 요소들을 완전히 갖춘 것임을 알아야 한다.
사람들은 이것을 보면서도 보지 못한다
세존의 쭌다에 대한 가르침은 여기서 1단계의 꼭지를 이룹니다.
세존께서는 청정범행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
위에서 말씀하신 바 3가지의 기본요건 즉
바르게 께친 스승, 바른 법, 스승이 임종하기 전 배움을 이룬 제자들의 조건을 갖춘 것임을
아래와 같이 천명하십니다.
'1]
나는 지금 이 시대에
아라한이요, 바르게 깨달은 자(正等覺)인 스승으로 세상에 출현하였다.
2]
게다가 법도
1) 제대로 설해졌고 잘 선언되었고
2) 출리로 인도하고 고요에 이바지하고
3) 바르게 깨달은 분에 의해서 선언된 것이다,
3]
그러고 제자들도
1) 그 바른 법에 대해서 의미를 제대로 알고,
2) 모든 단계들이 그 안에 모아져 있으며
3) (출리의) 기적을 만들고
4) 인간들 사이에서 잘 설명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청정범행을 드러내고 명백하게 한다.'
를 성취하고 있음을 천명하십니다.
아울러 세존께서는 이 아라한·정등각으로서의 청정범행이 완전히 이루기 위해서는
위와 같이 세 가지 조건을 갖춘 청정범행이 있은 다음에
아래와 같은 11가지 구성요소가 추가로 필요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구성요소들을 잘 갖춘 청정범행이 있고,
1) 노련하고 출가한지 오래되었으며
연로하고 삶의 완숙기에 이른 장로 스승이 있고,
2) 입지가 굳고, 수행이 되고, 출중하며, 유가안은(瑜伽安隱)을 얻었으며,
바른 법을 잘 설할 수 있고, 다른 교설이 나타날 때 법으로 잘 제압하며,
제압한 뒤 기적을 갖춘 법을 설할 수 있는 장로 비구 제자들이 있고,
3) 중진 비구 제자들이 있고,
4) 신참 비구 제자들이 있고,
5) 장로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6) 중진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7) 신참 비구니 제자들이 있고,
8)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사 제자들이 있고
9) 재가자이며 흰 옷을 입고 청정범행을 닦는 청신녀 제자들이 있고
10) 이러한 청정범행이 번창하고 널리 퍼지고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대중적이어서
인간들에게 잘 설명되고
11) 최상의 후원과 최상의 명성을 얻을 때
그런 청정범행은 이런 구성요소 때문에 완성된다.'
고 밝히신 바와 같습니다.
이에 더하여 세존께서는 그 '장로 스승'이 당신 자신임과 함께
지금 이 시대에 이 모든 것들을 다 성취하고 계심을 밝히시고
당신의 청정범행은 후일 완성을 기대되는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이미 완성되어 있음을
천명하십니다.
세존이 출가 후 세존께 비삽비비상처를 가르친 웃다까 라마뿟따와 같이 지혜로운 자라 할지라도
'잘 벼려진 칼날은 보면서, 그 끝은 보지 못하는' 경우와 같이
세존의 청정범행은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온전히 완성된 것임에도
그것을 눈 앞에 두고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또한 경계하셨습니다.
4. 그대들은 내가 설한 법들을 뜻을 합하여 합송하고 분쟁하지 말고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한다.
위와 같이 설하신 後 세존께서는 쭌다 사미에게 이같이 전하십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설한 법들을
1) 그대들은 모두 함께 모이고 평등하게 모여서
2) 서로서로 뜻과 뜻을 합치하고
3) 문장과 문장을 합치하여
4) 합송해야 하며
5) 분쟁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라고.
이 말씀은 마치 세존께서 반열반을 염두에 두시고 하시는 유언과도 같이 들립니다.
'내가 죽은 후에는 니간타들처럼 싸우지 말고
나에 의해 잘 설해진 법을 서로가 평등한 입장에서 뜻을 합해 합송하라.
그것이 세상을 연민하여 법을 설한 이 스승의 뜻을 따르는 길이다.'라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이것이 세존께서 쭌다 사미에게 준 2단계 꼭지의 가르침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쭌다 사미는 세존의 입적 後 니간타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면 아떻게 하느냐가 걱정인데
세존께서는 그런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 방법과 그 목적을 가르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주목할 만한 요소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존께서는 쭌다 사미에게 나의 청정범행은 스승, 법, 제자 및 부수적인 요소 11가지를 다 갖춘
완전함을 이룬 것이기에 내가 입적한 후에는 니간타들과 같은 혼란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라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와 같은 혼란이 생기지 않을 방법과 목적을 분명히 천명하고 계심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됩니다.
5. 그대들이 합송해야 할 나의 법은 무엇인가?
이후 세존이 쭌다 사미에게 주시는가르침은 마치 물이 흘러가는 것과 같이
순서와 곡절을 따라 흘러감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 죽고나면) 뜻을 모아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설한 법들'을 합송하고 분쟁하지 말아야
하는대 그 합송해야 할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설한 법들'이 무엇인지 그 구체물을 말씀합십니다.
이와같이 세존의 가르침은 어디를 보나 엉뚱하다거나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 없이 꼼꼼하고
빈틈이 없으신 것이 여기서도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하갰습니다.
세존께서는 그 합송해야 하는 '법들'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쭌다여, 그러면
나는 어떤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는가?
그것은
1)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2)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3)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4) 다섯 가지 기능(五根),
5) 다섯 가지 힘(五力),
6)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7) 여덟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正道)이다.'
라고 상세하게 특정하신 다음,
세존께서는 그것이 합송해야 할 대상이라고 아래와 같이 다시 한 번 강조하십니다.
'쭌다여,
나는 이런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 설하였나니
그대들은
1) 모두 함께 모이고 평등하게 모여서
2) 서로서로 뜻과 뜻을 합치하고
3) 문장과 문장을 합치하여
4) 합송해야 하며
5) 분쟁을 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
이것이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라고.
6. 이렇게 분쟁하지 않고 합송하며 공부지을 때 동료 수행자들에 대한 자세
이렇게 분쟁하지 않고 합송하며 공부지을 때,
동료 수행자가 승가 앞에서 법을 말하게 될 터인데 그 경우 다음 네 가지가 경우가 있으니
그때는 이렇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동료 수행자가
1) 뜻도 잘못 파악하고, 문장도 잘못 드러내는 경우,
2) 뜻은 잘못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바르게 드러내는 경우,
3) 뜻은 바르게 파악하고 있는데, 문장은 잘못 드러내는 경우
4) 뜻도 바르게 파악하고, 문장도 바르게 드러내는 경우가 그것입니다.
세존께서는 10, 2), 3)이 경우에 그 동료 수행자에 대해서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말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잘못 파악하고 잘못 드러내는 부분에 대해서는
어떤 뜻이 더 타당한지, 어떤 문장이 더 타당한지를 스스로 대답하게 하는 방법으로
그 잘못된 부분을 납득하게 하고,
그가 잘못을 인정하고 납득하게 되면
그로 인해 그를 나무라지도 말고 우쭐하게 하지도 말고
다만 바르게 새긴 그 뜻과 문장들을 잘 준수하도록 인식시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잘못 알고 있는 동료 수행자를 잘못 알고 있다고 해서 공박하지 않고
그렇다고 그가 잘못 알고 있는대로 그냥 인정하지도 않고
더 나은 방향을 향하여 대안을 제시하여 스스로 납득하게 하고
그 결과가 맺어졌다하여 다시 그를 나무라거나 우쭐하게 하지도 않고
다만 바른 것들을 잊지 않도록 잘 인식시키는
이 화합과 향상의 방법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4)의 경우와 같이 그 뜻을 잘 바르게 파악하고, 문장들을 바르게 드러내는 동료 수행자에 대해서는
이런 동료 수행자를 만났으니 참으로 우리는 큰 이익을 얻었다라고
그를 격려하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컨대 부처임의 가르침을 잘 수지한다는 것은 두 가지의 불가피한 양상이 있습니다.
하나는 가르침의 뜻을 잘 숙고하고 수행하여 그 참된 '뜻'을 꿰뚫는 것과
둘째는 결국 가르침은 말이나 문자로 전하는 것이어서 그 '문장들'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인데
문장들을 바르게 드러내는 것의 최상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수지하는 것이므로
그 '문장들'을 외우고 있어 언제든지 다른 것에 의지하지 않고 잊지 않고 바르게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참으로 큰 공덕이요 요건이 아닐 수 없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7. 나는 지금여기와 미래의 번뇌 둘 다의 단속을 위해 설하는 것이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나는
단지 지금여기에서 번뇌만을 단속을 위해서 법을 설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미래의 번뇌만을 단속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는 것도 아니고
'나는
지금여기에서의 번뇌들을 단속하고
아울러 미래의 번뇌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법을 설한다.'
고 천명하십니다.
이것은 갑자기 무슨 뜻입니까?
갑자기 이러한 뜻을 설하시는 것은
내가 설한 법들은
내가 여기 머무르고 있을 때 제자들에게 닥치는 지금여기의 번뇌 뿐아니라,
내가 입적하고 난 다음에도 그대들에게 일어날 번뇌의 단속들을 위해 설해진 것이니
너희들은 내가 입적한 다음에라도 내가 설한대로 그 법을 잘 수지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라고 새겨야 할 부분이라 생각됩니다.
그리하여 이 다음 비구 제자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법문이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진행은 의미가 있습니다.
- 나의 청정범행은 모든 요건을 겆춘 것이고,
- 그러하니 내가 입적하고 난 다음에 나의 법을 뜻을 모아 합송하고 분쟁하지 말고,
- 합송해야 할 그 법들은 어떤 것인데,
- 그때 동료 수행자끼리는 어떤 자세로 즉,서로 화합하고 향상하는 방향으로 공부지어야 하며,
그뿐 아니라 이 다음은 비구 제자들이 어떻게 살고 지내야하는지를 설하시려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8. 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먼저 세존께서는 그 제자들에게 최소한의 필수품 즉,
옷 입는 것, 탁발 음식, 거처, 병구완을 위한 약품을 허락하신 바
이것들은 모두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도닦음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 것들 내지 검소하고 청빈한 생활에 그 기준들이 맞추어져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삶으로 인해 외도들로부터
'세존의 제자들은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낸다.'라는 비난으로부터
기본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음을 세존께서는 밝히고 계십니다.
2] 그러나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세존께서는 세존의 제자들이
네 가지 세속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면서 지내지 않을 것을 분명히 가르치십니다.
그것은
1) 생명을 계속 죽이면서 자신은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
2) 주지 않은 것을 계속 가지면서 자신은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
3) 거짓말을 계속하면서 자신은 기뻐하고 즐거워 하는 것
4) 다섯 가지 감각적 욕망에 빠져서 사로 잡혀 맴도는 것
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
'이러힌 네 가지 즐거움을 추구하는 것은
1)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2) 이익을 주지 못하며,
3)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4)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5)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6)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8)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9)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10)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한다.'
라고 밝히시며
당신의 제자들이 결코 이러한 즐거움을 추구하지 않을 것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3] 세존께서는 당신의 제자들이 추구하는 즐거움은 바로 초선∼제4선까지의 삼매에 드는 것임을
천명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러한 선정 수행이
1)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2)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3) 소멸로 인도하고,
4)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5)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6)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7) 열반으로 인도
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밝히고 계십니다.
4] 세존께서는 이러한 선정 수행의 결실과 이익이 무엇인가?
즉, 무엇을 위해서 그러한 수행을 하는가에 대해 그 수행의 결실이 네 가지 도과(道果)임을
분명히 밝히고 계십니다,
1) 흐름에 든 자(豫流者)
-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서 흐름에 든 자(豫流者)가 되어,
-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 (해탈이) 확실하며
-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는 것
2)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
-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 한 번만 더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드는 것
3) 돌아오지 않는법을 얻은 자(不還者)
-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 화생하여 그 곳에서 열반에 들어
- 그 세계에서 다시 돌이오지 않는 법을 얻습니다.(不還者)
4) 번뇌를 멸진한 자(阿羅漢)
-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 바로 지금여기에서
-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 구족하여 머뭅니다.(阿羅漢)
가 되는 것이 선정 수행의 결실이요 이익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5] 이어서 세존께서는 외도들이 '세존의 후예들인 사문들은 일관성이 없다.'라고
비난하는 경우를 빌어서 '세존께서는 제자들에게 목숨이 있는 한 범하지 못하는 법들을
설하시고 천명하셨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래와 같은 9가지의 경우를 제자들이 목숨이 있는 한 범하지 말아야 법들로 천명하셨습니다.
1) 의식적으로 산 생명을 뺏을 수가 없다는 것
2) 주지 않는 것을 가지는 도둑질이라는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
3) 성행위를 할 수가 없다는 것
4) 고의적인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는 것
5) 전에 재가자였을 때처럼 축적해 두고 감각적인 욕망을 즐길 수가 없다는 것
다시 이러한 계(戒)들에 대해서,
6) 열의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
7) 성냄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
8) 어리석음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
9) 두려움 때문에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할 수가 없다는 것
이 바로 그것들임을 천명하셨습니다.
6] 그 다음 세존께서 설명하시는 것과 설명하지 않는 것의 기준을 말씀하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스승인 세존께서 그러한 기준을 가지시므로
그 제자들도 말을 하는데 있어 따라야 핳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는 외도들이 종종
'세존께서는 과거에 대한 제한 없는 지(知)와 견(見)은 천명하지만,
미래에 대한 지와 견을 천명하지 못한다.
무엇에 대해서 그러하며 왜 그러한가?'라는 의문을 던지는 것을 빌어서 말씀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먼저
'과거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전의 것을 기억하는 알음알이가 있다.
그는 원하는 만큼 무엇이든지 기억한다.
그러나
미래에 대해서
여래에게는 '이것이 마지막 생이다. 다시 태어남은 없다.'라는 깨달음에서 생긴 지혜가 생긴다.'
라고 천명하십니다.
과거는 이미 일어난 일이니 그렇다치고, 미래에 대한 세존의 말씀은 아주 특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미래는 이미 결정되어 있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과거든, 미래든, 현재든
1) 그것이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이익을 줄 수 없는 경우
2) 그것이 사실이고 옳더라도, 이익을 줄 수 없는 경우에는
이를 설명하시 않으시니 그 기준이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인가?'가 그 기준임을 알 수 있고
3) 그것이 설사 사실이고 옳고, 이익을 줄 수 있다하더라도
그 질문을 설명해 줄 바른 시기를 안다라고 하셨으니
옳은 말씀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바른 시기인가'가 그 기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스승의 기준이 이와 같으므로 그 제자들도 마땅히
할 말의 올고 그름을 기준 삼을 것이 아니라
'이 말은 이익을 줄 수 있는지?', 그리고 '이 말을 할만 한 바른 시기인지?'를 기준을 삼아
말하고 말고의 기준을 삼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러한 말함에 있어서의 기준에 따라 그 기준을 어떻게 적용하는지를 다음과 같이
차례로 설명하심으로써 외도들이 궁금해 하는
'무엇에 대해 그러하며, 왜 그러한가?'에 대해서 그 상세를 밣리시고 계십니다.
1】'여래'(Tathagata)를 '여래'로 부르는 이유
세존께서는 말의 기준에 대해서 설하시는 이 부분에 있어서 여래가 왜 여래로 불리는지에 대해서
먼저 이야기를 꺼내십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여래((Tathagata)가 여래로 불리워지는 중요한 이유가 바로 '말'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읍니다. 아래에 세존께서 설하시는 이유 5가지 中 적어도 3개는 바로 그 '말'에
관련된 것이기에 세존께서는 별론(別論)으로 쭌다 사미에게 이것을 설하신 것이라는 상상입니다.
그 이유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래는
1) 과거, 미래, 현재의 현재의 법들에 대해서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옳은 것을
말하기 때문이다.
2) 신들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신과 인간들을 포함한 생명체들이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얻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한 것을
모두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3)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철저하고 바르게 깨달은 그 밤으로부터
받은 몸이 없는 무여열반의 요소로 반열반에 드는 그 밤 사이에
설하고 말하고 가르친 그 모든 것은
여여(如如)한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4) 설하는 대로 행하고, 행하는 대로 설하는 자이기 때문이다.
5) 그리하여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오류가 없이 보는 자요, 자재자이기 때문이다.
이와같이 위 1), 3), 4)는 모두 '말'과 관련되는 것이요,
2)는 왜 그렇게 말하게 되는지 그 이유를 설함이요, 5)는 그러함의 결과인 갓이라고 보아도
무방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2】설명하지 않는 것의 사례와 그 이유
세존께서는 본론과 같은 말함의 기준에 따라서 십사무기(十事無記)의 예(例)인
'여래의 사후 존재 여부' 문제와 같이 설명하시지 않는 사례와 그 이유에 대해서 밝히십니다.
그것은 예를 들면
1) 여래는 사후에 존재합니까?
2)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3)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4)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와 같은 질문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그 어느 경우에도 세존께서는 그러하다라고 설명하시지 않았다라고
대답하라고 제자들에게 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것은
1)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2) (출세간)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3)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4)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5)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6)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7)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8)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9)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10)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3】설명하시는 것과 그 이유
(그러하다면 도대체)
'세존께서는 무엇을 설명하셨읍니까?'라는 것에 대한 세존의 천명이십니다.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1)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2)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3)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4)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라고 설염하셨습니다.'
라고 말해 주어야 한다.라고.
제 개인적으로는 초기경전을 접하게 된 근본 동기가
도대체 세존께서 깨달으셨다는데 '무엇'을 깨달으셨다는 건지
그리고 깨달으신 後에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가 그 이유였습니다.
저는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또한 이와같은 것에 대해서는 살명하시는 그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히십니다.
'이것은
1)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2) 이것은 (출세간)의 법에 바탕한 것이고,
3) 이것은 청벙범행의 시작이고,
4)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5)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6) 소멸로 인도하고,
7)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8)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9)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10)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셨습니다.'라고.
7] 다음으로 세존의 거르침은
비구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하십니다.
그 中에서도 비구가 취착하지 않아야 할 견해에 대해서 먼저 설명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먼저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과,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에 대해서
설명되어야 하는 것들은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하였다라고 천명하십니다.
또한 이러한 것들은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므로
내가 왜 그대들에게 그대로 설명하겠는가?'라고 말씀하셔서
그러한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이란 설명할 가치가 없는 것임을 천명하고 계십니다.
견해의 국집(局執)이란 무엇입니까?
견해의 국집이란 어떤 견해에 대한 취착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견해란 바로 내 앞에 펼쳐지는 정신·물질(名色) 혹은 세상(界) 내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한 인식론이요 존재론이어서 어떤 세상의 어떤 존재가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의 바탕이 되는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먼저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에 대해서 설명되어야 할 모든 것이
아래와 같은 것들임을 설하십니다.
자아와 세상에 대해서,
1)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다.
2)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
3)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4) '자아와 세상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5)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다.
6) '자아와 세상은 끝이 없다.
7)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8) '자아와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9) '자아와 세상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10)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다.
11)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12)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13) '자아와 세상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14) '자아와 세상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즐거움과 괴로움에 대해서,
1)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다.········
2)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다, ········
3)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4) '즐거움과 괴로움은 영원하지 않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5)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다.········
6)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없다.········
7)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8) '즐거움과 괴로움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9) '즐거움과 괴로움은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10)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다.········
11)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들기도 했고 남이 만들기도 했다.········
12)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13)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만든 것이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14)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가 만든 것도 아니고 남이 만든 것도 아닌 우연히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이며 그것에 괸해 설명되어져야 할 모든 것이며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모두 설하신 것들입니다.
세존께서는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에 대해서 설명되어야 할 모든 것들은
아래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1) '물질은 가지는 자아는 죽고난 후에 인식을 가지고 병들지 않는다.'
2) '물질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
3)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는 자아는 ········
4)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닌 자아는········
5) '인식을 가진 자아는········
6) '인식을 가지지 않은 자아는········
7)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자아는········
8) '자아는 단멸하고 파멸하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
이러한 것들이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이며 그것에 괸해 설명되어야 할 모든 것이며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모두 설하신 것들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 28가지,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 8가지 中 하나를 부여잡고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者들에 대해서
그들의 말을 인정하지 않으심을 천명하십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천명하십니다.
'여기에 대해서 다른 인식을 가진 중생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세존께서는 이러한 비구가 취착하지 않아야 할 견해를 설하시고
그 마지막에 다시 강조하여 아래와 같이 천명하십니다.
'이러한 개념들에 관한 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지혜를 가진) 자를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그러므로 참으로 높은 개념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쭌다여,
이것이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 가운데 설명되어야 하는 것을
내가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설명해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을
내가 왜 그대들에게 그대로 설명을 하겠는가?'라고.
8] 마지막으로 세존께서는 위와 같은 과거나 미래에 대한 견해의 취착이 아니라면
그렇다면 세존의 제자들은 어떤 자리에 서서 삶을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치시는 것으로 본경은 끝을 맺습니다.
세존께서는 먼저
'이러한 과거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과 이러한 미래에 대한 견해의 국집들을
제거하고 뛰어넘기 위해서
나는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가르치고 천명하였다.'라고 천명하십니다.
그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란
1)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2)
여기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3)
여기 비구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4)
여기 비구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의 이 네 가지임을 천명하셨습니다.
이것이 외도의 사문·바라문들이 주장하는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견해의 취착을 제거하고 뛰어넘기 위해
세존께서 설하신 '세존의 제자들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임을 천명하신 것입니다.
本 정신경(淨信經)은 다소 흥미로운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니간타 나따뿟따가 임종하여 그 제자들과 재가신자들에게 큰 혼란이 일어나자
그것을 본 쭌다 사미가 본경에 그런 말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혹시 세존께서 입적하시면 우리 승가에도 저런 혼란이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걱정을 하는 것에
대하여 세존이 법랍이 짧은 한 사미에게 주시는 가르침으 형태를 띄고 있는데,
일개 사미에게도 정성을 다해 가르치시는 것을 보면 세존의 제자 사랑하는 마음이 얼마나
지극하고 정성스러운 것이엇던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가르침에서 그 곡절과 구성요소가 간결하고 분명한 것이 놀랍기만합니다.
쭌다 사미에게 일어난 걱정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신이 출가하여 이제 닦고 있는 가르침에 대한 의심과 혼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쭌다 사미의 그것은 2,500여년이 지난 우리에게도 항상 일어날 수 있는 일반적인
의문들과 일치하는 것들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에 대한 세존의 쭌다 사미에 대한 가르침을 곡절을 따라 새겨보면 이와 같습니다.
1] 나의 가르침은 바르게 깨친 스승, 바른 법, 배움을 바르게 성취한 제자들이라는 기본적인
요소들 이외에 청정범행을 완성시키는 11가지의 구성요소를 모두 갖춘 것이다.
2]그대들은 (내가 죽은 뒤) 내가 최상의 지혜로 알고 바르게 설한 법을 서로 뜻을 합하여
합송하고 (니간타 나따쁫따의 무리들처럼) 분쟁해서는 안된다.
그리하여 법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도록 해야하고
그것이 이 스승이 세상을 연민하여 법을 전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다.
3] 그대들이 합송하여야 할 그 법이란 7가지 바른 길에 서있는 법(37보리분법)이다.
4] 그대들이 분쟁하지 않고 법을 합송하며 공부지을 때
공부가 서로 다른 동료 수행자들이 법을 말할 때 그가 모자라다고 하여 공박하거나 나무라지 말고
서로가 화합하고 향상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5] 나의 법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지금여기에서 번뇌만을 제거하기 위해서 설해진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은 뒤) 미래에 그대들에게 일어날 번뇌를 제거하기 위해서도 설해진 것이니
그대들은 이러한 법을 (내가 죽은 뒤에도) 잘 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다.
6] 그러면 나의 제자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1) 도닦음에 필요한 필수품들 즉, 내가 허락한 네 가지만을 가지고 검소하고 청빈하게 살아야 한다.
2) 네 가지 세속적인 즐거움 추구하면서 살아서는 안된다.
3) 초선 ∼제4선의 선정수행을 즐거움으로 살아야 한다.
4) 그러한 수행의 결실과 이익은 4가지 도과를 증득하는 것이니 그것이 수행의 목적이다.
5) 목숨이 있는 한 9가지 범하지 말아야 할 법들이 있나니 그렇게 살아라
6) 말함에 있어서 그것의 올고 그름보다는 이익을 주는 것인지, 바른 시기인지를 따라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설명할 것과 설명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고 그 이유들이 각각 있는 것이다..
7) 과거 혹은 미래에 대한 견해의 취착에 대해서 나는 그대들에게 모두 설명하였나니
그러한 것들은 설명해봤자 의미가 없는 것이고 취착할 것들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8) 그러한 견해의 취착을 제거하고 뛰어넘어야 하나니
그것이 (지금여기에서의)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法)이다.
(쭌다여, 이와같이 알고, 이와같이 행하면
내가 죽은 뒤에 니간타들과 같은 혼란은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다.)와 같이
세존은 쭌다 사미가 가질 수 있는 혼란과 의심을 제거하신 가르침입니다.
이 한편의 가르침은 마치 실로 구슬을 꿰어 염주를 만든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양상에 있어서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어떻게라는 모습을 온전히 갖추고 있을 뿐 아니라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 외도 사문·바라문들의 입을 빌어서
출가한 제자들이나 재가신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혼란과 의심을 온전하게 해소하고 있고
또한 그 지향점 내지 그리하여 지금여기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까지가
새벽안개를 차례로 걷어내고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명명백백하게 드러나 있기 때문입니다.
세존의 뒤에서 부채질을 하고 있던 아라한으로 알려져 있는 우빠와나 존자는
이 법문이 이러한 위력과 감흥이 있는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합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은 청정한 믿음을 줍니다.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이것을 다 아시는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빠와나여,
그렇다면 이 법문을 '청정한 믿음을 주는 것'이라고 호지하라."
이와같이 새겼습니다.
모든 의문과 혼란을 제거할 수 있는, 그래서 청정한 믿음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이러한 경을 설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예경올립니다.
나무 석가모니불 ((()))
이 경을 사경한 공덕을
삼십일천 거주하는 모든 존재들에게 회향합니다.
회향을 받아 기쁘고 행복하시기를,,,,
이 정신경의 태양과 같은 위력으로
회향을 받아 의심과 혼란의 쇠살이 뽑혀지기를,,,,
심연에 뿌리하였으며, 튼튼히 박혔고 요지부동이며,
침투해 들어갈 수 없는 석주나 철기둥 같은 청정한 믿음이 생겨나기를,,,,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과 그 가르침과 승가를 따라 닙바나 성취하시기를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요.
사 두 ∼ 사 두 ∼ 사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요.
사 두 ∼ 사 두 ∼ 사 두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요.
사 두 ∼ 사 두 ∼ 사 두 ∼
2014. 3. 13
'디가니까야(長部) > D29.정신경-청정한 믿음을 주는 경'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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