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있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이것은 나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될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나는 이렇게 되지 않을 것이다'라는 생각은 허망한 생각이다.
허망한 생각은 병이며, 질병이고, 가시이다.
하지만 이러한 모든 허망한 생각을 극복하면
그는 침묵의 성자[muni]라고 한다.
이 침묵의 성자에게는
더 이상 (윤회하여) 태어나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으며,
떨리는 것도 없고,
욕망하는 것도 없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그 어떤 것(번뇌와 무명)이 있어서
그것에 의해서 태어나야 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태어나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나이를 먹어 늙겠는가?
늙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죽음이 있겠는가?
죽음이 없는데 어떻게 떨리는 것이 있겠는가?
떨리는 것이 없는데 어떻게 욕망하는 것이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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