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2/28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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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로잔(Lausanne)은 유럽 불교에서 역사의 현장을 목격한 선구자와도 같은 도시이다.
유럽최초의 보살계와 사미계가 바로 이 로잔에서 이루어졌다.
또 이곳 로잔대학에는 불교학과가 있어 틸레만스(T. Tillemans) 교수가 과장직을 맡고 있다.
로잔에는 불교센터가 4곳 있는데 그 중 3곳은 티벳불교이고 나머지 1곳은 선불교이다.
그리고 로잔에서 가까운 몽페렐랑 산에 1977년 설립된 겔룩파의 수행센터인 랍텐 춀링 승원(Rabten Choeling Buddhist monastery)이 있다.
서구의 스님들을 키우기 위한 목적은 이루지 못했지만 현재 25명이 비구와 비구니 스님들이
스위스에 거주하는 티벳인들을 지도하며 그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주고 있다.
<랍텐춀링의 사원(상)과 사원에서 바라본 제네바 호수의 모습(하)>
스위스는 독일어 문화권에 있기 때문에
이미 1800년대 중반부터 문학과 예술, 철학에서 불교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하지만 실체적인 불교와 접한 것은 1900년대에 들어서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상좌부불교승인 냐나틸로카(Nyanatiloka)는
1909년 겨울 스위스 남부의 루가노에 머물며
재가불자 후원자들과 함께 5명 정도의 스님이 거주할 수 있는 비하라를 세웠는데
그것이 바로 스위스 내에 불교기관이 세워진 효시라고 할 수 있다.
부처님의 계율을 따라 살아가며 독일어권에서 법을 펼치고자 온
당년 32세의 젊은 스님 냐나틸로카는 알프스 목동의 산장에서
가사를 입고 빈약한 샌달을 신고 소박하게 살았다.
팔리어 문법책을 쓰고 아비달마를 번역하던 그는
그러나 끝없이 내리는 눈과 ‘형언할 수 없는 추위’로 인한 고통을 견디다 못해
결국 날씨가 따뜻한 북아프리카의 튜니지아로 떠나고 말았다.
하지만 프랑스 식민지정권이 승원 설립을 불허하자 다시 스위스로 돌아왔는데
이때 로잔에 살고 있는 갑부 로돌프-아드리엔 베르지에(Rodolphe-Adrien Bergier)의 초청을 받아들였다.
베르지에는 1880년대에 미국에서 막노동 광부로 시작하여 후에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1901년 로잔으로 돌아온 뒤 불교를 만났다고 한다.
1911년에 독일팔리협회 회원이 된 베르지에는 후에 보살계를 받고 스위스 최초의 재가불자가 되었다. 베르지에는 로잔에 차리타스 사원(Caritas-Viharo)을 세웠는데 모습도 이국적이었고 외부에 불교마크도 달아놓은 정식 사원이었다.
<20세기 초 건설된 카리타스 비하라(좌)와 냐나틸로카 스님(우)의 모습>
로잔으로 냐나틸로카를 초청한 베르지에는 그와 3명의 제자들을 몇 달동안이나 후원했다.
유럽 역사에서 최초로 사미계를 내린 역사적 기록도 로잔에서 이루어졌다.
1910년 독일인 바르텔 바우어(Bartel Bauer)가 사미계를 받고 콘단나라는 법명을 받았다.
베르지에는 또 스리랑카의 폴가스두바 섬을 1911년 매입하여 니야나틸로카에게 보시했고
이에 서구의 비구들이 거주하며 수행할 수 있는 비구섬이 설립되었다.
냐나틸로카가 스리랑카로 떠난 후 약 30여년이 지난 1942년 막스 라드너(Max Ladner)가 취리히에 상좌부 불교단체를 설립하고 불교저널을 발간하였다. 라드너의 집에서 10여명이 한 달에 1번 모임을 가졌고 작은 모임으로서는 드물게 잡지도 발간했던 이들 모임은 그러나 1961년에 해체되었다.
<루체른에 있는 관음보살상(좌)과 스위스 내 일본식 선방>
1960년대와 70년대에 스위스인들은 선불교와 티벳불교로 관심을 돌렸다.
60년대 초에 1000명의 티벳 난민들을 받아들였던 스위스는 이어서 1000명을 더 받아들였다.
강인한 정신력을 지녔고 가족을 중시했으며 마약을 하지 않았던 티벳인들은
인도적 차원을 떠나서도 서양국가들이 받아들이기에 좋은 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스위스에 정착한 티벳인들의 정신적 문화적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1968년에는 리콘에 티벳연구소(Kloesterliche Tibet-Institut)가 설립되었다.
2세들에게 티벳어와 티벳문화를 가르치는 티벳문화센터라고도 할 수 있는 이곳은
동시에 승려를 양성하는 종교기관으로서 현재 7명의 스님이 상주하고 있다.
겔룩파 스님들에 의해 설립된 이 연구소는 사캬파나 카규파 등 다른 종파의 스님들에게도 열려있으며 스위스 내 티벳불자들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1985년 달라이 라마는 이 티벳연구소에서 약 6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칼라차크라 입문식을 거행하여 명실공히 티벳불교의 중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었다.
<리콘연구소(상)와 2005년 연구소를 방문한 달라이 라마(하)>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선불교가 인기를 얻으면서 스위스 내에도 선방이 많이 생겼다.
스위스 내 최초의 선원은 프랑스 르와르 계곡에 수행본부를 둔 일본 조동종의 데시마루 선사가 1972년 제네바에 개설한 선원이다.
현재 이 선원은 'AZI Group'이란 이름으로 부다넷에 등록되어 있다.
일본 임제선의 테츠오나가야 키이치 선사가 ‘참선주간’을 선포하여 집중수련을 실시한 이후
1971년에는 테씬의 카비아노에서도 ‘참선주간’이 열려 스위스인들에게 참선의 열기와 장점을 각인시켰다.
이후 스위스의 큰 도시에는 수많은 참선모임과 단체 및 선원이 개설되어 불교도와 일반인들에게 선수행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참선 단체들이 한데 모여 ‘스위스 선협회(Zen-Vereinigung Schweiz)’를 결성했는데 이는 프랑스 파리에 본부를 둔 데시마루 선사가 설립한 국제 선협회(Association Zen Internationale: AZI)의 스위스 지부이다.
<AZI의 2007년 1월 정진 중 한 장면>
우리나라 불교의 경우 서울 화계사 숭산 스님의 관음선종이 취리히에 취리히 참선모임(Zurich Zen Group)을 가지고 우봉스님이 지도하고 있다. 재미 교포 지광법사의 달마사도 스위스에서 한국불교를 알리고 있다.
1970년대 중반에는 티벳불교의 진출이 약진적이었다.
1974년 12월 티벳불교 카규파의 종정 칼마파는 장기간의 유럽불교 순회강연과 입문식을 가졌고
이때 후에 다이아몬드웨이 불교를 설립하게 될 덴마크의 법사 올레 니달 라마가
칼마파를 수행했다.
북구의 노르웨이에서 시작해 남쪽 지중해의 그리스까지 대장정을 했던 이 여행에서
칼마파는 스위스의 취리히와 리콘에도 들렸다.
스위스의 백만장자 슐츠가 소유한 취리히 성에 묵었던 칼마파는
유력한 기업인들과 지식인들을 개인적으로 접견하며 그들에게 후에 올레 니달 라마를 초청해 법문을 들을 것을 권유했고 그들이 곧바로 법문 날짜를 예약하면서 카규파의 유럽 진출이 포석을 놓아가고 있었다.
달라이 라마는 2000년 12월 말 스위스를 방문하여 법문과 입문식을 주관했는데
이때 스위스의 주간지 디망쉬(Dimanche.ch.) 지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도교도와 불교도가 서로를 개종시키려고 하지 말자’는 제안을 했다.
‘서양인들은 자유의지에 의한 선택을 믿지만 불교도는 업을 믿는다.
우리 티벳인들은 우리가 전생에서 지었던 악업, 봉건주의, 세상에 문을 닫은 것 등의 과보를 받고 있다. 우리가 이 업을 다 갚으면 비로소 자유롭게 될 것이다.’고 말했다.
또한 동인도의 산악지역에 사는 사람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미국선교사들이 경제적 논리를 사용하는 것을 비난하면서
‘사람과 문화에 대해 마치 전쟁을 벌이듯이 개종을 시도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다’고 말하여 다종교 시대에 종교간 평화를 위한 바른 원칙을 제시했다.
스위스에는 스위스 티벳 우의회(The Swiss Tibetan Friendship)가 결성되어 티벳인들을 돕고 있다. 또 카담파도 센터를 가지고 있어 2003년 1월 말에는 축제(NKT Swiss Festival)를 열기도 했다.
1970년대는 선불교와 티벳불교의 기세에 뒤로 물러났던 상좌부 불교가 위빠싸나라는 새로운 얼굴로 다시 무대의 중심에 선 시기이기도 하다.
셍갈렝에 위빠싸나 명상원이 설립된 이후 80년대에 잇다른 동남아시아인들의 유입으로 인해 상좌부 불교의 교세가 더욱 커졌다. 캄보디아인들은 취리히에 크메르 문화센터를 세웠고 베트남인들도 여러 곳에 법당을 세웠다.
스위스 내 타일랜드 불교는 1990년대 초반에 베르네 근처의 칸데르스텍에
다마팔라 승원(Dhammapala Monastery)를 세웠는데 이는
타일랜드 불교의 개혁가인 아잔차 스님의 법맥인 숲속승가의 승원이며
영국, 이태리, 독일 등에 있는 숲속승가의 승원들의 자매 승원이 다.
1996년에는 스위스에 거주하는 9000명의 타일랜드인들의 종교와 문화를 지켜갈 승원인
왓스리나가린다라바람(Wat Srinagarindravaram)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완성되었다.
<아잔차가 근본스승인 Wat Srinagarindravaram에서 2007년 여름에 열린
청소년을 위한 여름 다르마 캠프에서 개회식(상)과 프로그램 중 하나(하)>
1976년엔 스위스불교연합(Schweizerische Buddhistische Union: SBU)이 결성되었고
한동안 활동이 저조했다가 다시 1990년대에 부활하였다.
현재 30개 단체를 회원으로 가진 스위스 불교연합은 활동이 활발하지는 않지만
부처님 오신날 같은 큰 축하 행사는 함께 하고 있다.
스위스불교연합에 1995년 등록된 기록과 스위스 통계청의 자료(Répertoire des centres
bouddhiques en Suisse 1997-1999)를 참고하면.
스위스에는 98개의 불교단체와 센터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중 48%에 해당하는 46개 단체가 티벳불교, 29%에 해당하는 30개 단체가 대승불교, 그리고 21%에 해당하는 21개 단체가 상좌부 불교에 속한다.
특히 티벳불교가 거의 반을 차지하는 것은 이들이 비교적 늦게 도착하긴 했어도
스타급에 해당하는 큰스님들의 맹활약과 그에 부응하는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
그들에게 제공할 알맞은 프로그램 등의 준비가 제대로 되어있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부다넷(www.buddhanet.net)에 등록된 스위스 내 불교단체는 150개가 넘었다.
이들 불교 센터는 스위스 전역에 분포되고 있기는 하지만 특히 북부와 서부의 광역도시권에 밀집되어 있다.
특히 취리히에는 16개 단체와 센터가 모여 있어 가히 스위스 불교의 중심지라 할 만하다. 1999년엔 취리히에서 세계불교학술대회가 열려 우리나라에서도 현각, 해주, 현원 스님이 참석하여 주제발표를 하기도 했다.
어떤 단체는 10여명이 모여 명상을 하는 정도의 소그룹이지만
반대로 유럽 전역에 연결망을 가지고 있으며 회원이 수백명인 큰 단체도 있다.
불교도 수는 아시아에서 스위스로 이주한 불교도가 2만명 정도 되고
스위스에서 태어나 불교도가 된 사람들은 약 3000-7000명 정도라고 마틴 바우만 교수는 추측하고 있다.
이들을 25000명이라 추정할 때 7백만 스위스 인구 중 0.36퍼센트를 차지하여
스위스 내 유태인과 비슷한 비율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25만명으로 인구의 2.2%를 차지하는 모슬렘교도보다는 훨씬 소수인 셈이다. ]
(2004년 '금강'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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