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리뿟따 존자의 설법과 그에게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 기록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버금가는 폭넓고 다양한 교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다.
사리뿟따는
무궁무진한 불법의 소재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제시해주는 독특한 방법을 알고 있었는데,
이는 지적으로 자극을 주고 실제적인 정진에도 영감을 불어넣는 그런 방법이었다.
상좌부 불교 전통에서는, 큰 중요성을 지닌 많은 경전을 지은 사람이 바로 사리뿟따라고 여기고
있으며, 비중 있는 삼대 주석서도 그로부터 영감을 받아 이루어진 것으로 간주한다.
또 아비담마[論藏]의 결정판을 편집하는 데에도 그가 몸소 책임을 맡았던 것으로 여기고
있다. 이제 이러한 그의 업적을 하나 하나 살펴보기로 하자.
법을 설하는 자로서 사리뿟따가 가졌던 능력은 무엇보다도
『중부』에 있는 고전적인 두 편의 경,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중부』 28)」과
「정견(正見)경(『중부』 9)」에 잘 드러나고 있다.
「코끼리 발자국 비유경」은 정연한 논리적 구성을 갖춘 걸작이다.
코끼리의 발자국이 다른 모든 동물의 발자국을 다 포용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성제는 모든 선법(善法)을 다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사리뿟따는 먼저 표명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세부적 분석을 위해 사성제 중의 고제(苦諦)를 택하여
개아(個我)의 구성 요소가 오온(五蘊)임을 지적하면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그는 물질적 형체, 느낌, 인식, 의지적 형성력, 의식[色受想行識]의 오온을 열거하고나서,
더욱 면밀하게 살피기 위하여 그 중에서 물질적 형체의 요소[色蘊]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그는 이 색온을 다시, 네 가지 주요 요소[四大: 地水火風]와
그러한 사대로부터 형체를 갖추어 파생된 부차적 물질의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그는 이 각각의 요소들이 안으로는 우리 자신의 몸을, 밖으로는 외부 세계를 번갈아 드나들며
모습을 드러낸다고 밝히고 있다.
내적 요소에 속하는 신체 부위와 기능을 열거하면서,
이런 내적 요소[人我]건 외적 요소[法我]건 그 모두가
결코 자아에 속하지도 않거니와 자아를 구성하지도 않는다고 단언한다.
그 요소들에 대해 이렇게 관함으로써 우리는 요소들에 미혹되지 않을 수 있으며
육신에 대한 집착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서 사리뿟따는 제아무리 거대한 외적 요소라 할지라도
자연의 엄청난 지각변동에 의해 결국은 파괴되고 말 운명이라는 것을 말하며
일체가 무상함을 밝히고 있다.
이런 점을 깨달음으로써
우리는 갈애의 산물인 이 작은 몸뚱이를 '나'니 '내 것'이니 하고 여기는 미혹에
결코 다시는 빠지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제법(諸法)을 이렇게 관할 수 있는 수행자라면 설혹 남에게서 욕설이나 험담이나 매질을 당하여도 상황을 냉정하게 분석하여 평온을 잃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은 마음속에 일어난 괴로운 느낌이 귀와 소리의 접촉에 의해 일어난 것이며
이것은 본질적으로 조건지어진 현상일 뿐이라는 점을 알아차린다.
그는 또한 그러한 모욕적인 경험의 모든 요소들,
즉 촉과 수상행식 따위는 모두 무상한 것임을 알아차린다.
여기에서 사리뿟따는 명상 수행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총체적 경험을 다섯 가지의 무상(無常)하고 무아(無我)인 요소들[五蘊]로
분석해낼 수 있도록
자아의 정신적 구성 요소인 색을 제외한 자아의 네 정신적 요소[受想行識]를
유기적인 방식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는 이어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게 하면 그의 마음은 오로지 그 요소만을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마침내 기운차게 되고 즐거워지고 굳건해지고 집중되어서,
만일에 매를 맞아 다치게 된다해도
'이 몸이라고 하는 것은 이렇게 다치게 마련인 속성을 본디부터 지닌 물건이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존께서 설하신 「까까쭈빠마경(톱의 비유경, 『중부』 21)」을 떠올리며,
자기 생명마저도 돌보지 않고 인욕심으로 모든 고난을 견디어내라는
부처님의 훈계를 따르겠다고 결심하게 될 것이다.
수행자가 불법승을 항상 생각하고 있는데도 마음의 평온을 유지할 수 없다면,
절박감을 느끼게 될 것이고,
삼보(三寶)를 염하는 데도 흔들림 없는 마음을 얻지 못한다는 바로 그 사실을
부끄럽게 여기게 될 것이라고 말을 잇고 있다.
반면에, 끈질긴 마음을 참을성 있게 지켜나갈 수 있는 수행자라면
그는 무량의 행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이 정도만으로도 그 수행자는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라고 말한다.
사리뿟따는 사대(四大)의 다른 세 가지 요소[水火風]에 대해서도
똑같은 분석 방법을 적용하고 있다.
그리고나서 우리의 육신과 신체 부분을 벽돌과 목재와 기와 따위로 이루어져 있어서
그 구성요소를 떼어놓고는 독자성을 갖지 못하는 한 채의 집에다가 비유하고 있다.
또 이 경의 끝 부분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여섯 감각기관을 통하여 조건지어진 채 발생한다는 점을 명료하게 설명하고 있다.
다섯 가지 감각의식의 발생에 기본적 조건이 되는 다섯 가지 감각기관과 감각대상도
사대로부터 비롯된 것이므로,
다른 부차적 물질도 물질적 형체의 요소[色蘊]에 포함시킴으로써
색온에 대한 분석을 끝맺고 있다.
어떤 감각대상과 감각기관으로부터 일어나는 각각의 의식[識蘊]은
그에 관계된 느낌[受蘊]과 인식[想蘊]과 다양한 의지적 형성력[行蘊]을 수반함으로써
오온이 모두 상호관련되게 된다.
사리뿟따는 오온이 서로 의존하여 발생한다[緣而生]는 점을 밝히면서,
"연기를 보는 자는 법을 보며, 법을 보는 자는 연기를 보노라."라는 세존의 말씀을 인용하여
연기법을 소개하고 있다.
오온에 관련된 욕망과 습성과 집착은 고(苦)의 원인이다.
욕망과 습성과 집착을 제거하는 것은 고의 소멸이다.
그는 이 점을 이해한 수행자에 대하여
"이정도까지만 해도 그 수행자는 많은 것을 이룬 셈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사성제에 대한 설명을 마무르고 있다.
참으로 이 경은 숭고하고 장엄한 화음으로 끝을 맺고 있는 아름답게 어우러진 한 편의
명곡과도 같다.
사리뿟따의 또 다른 대표적인 경은 「정견(正見)경」으로서 이것은 교화방법론의 걸작이다.
이 경은 그 방대한 주석서에 나오는 것과 같은
한층 깊이 있고 자세한 설명을 위한 골격을 미리 마련해 놓고 있다.
주석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오부(五部)에 결집된 부처님의 말씀 가운데,
사성제가 32번이나 언급되고 아라한과가 32번이나 언급된 경은 이 「정견경」 말고는 없다."
사리뿟따는 이 경 속에 연기법에 대한 독창적인 해설을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는 약간의 변용을 취하면서도 내용상 본받을 점이 대단히 많다.
그는 선업(善業)과 불선업(不善業)의 근본원인,
음식과 감각과 의지와 의식의 네 가지 자양분,
그리고 연기법의 열두 고리들을
모두 사성제를 예증하기 위해 사용하고 있으며,
또 각각의 항목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명해주고 있다.
그 결과 사성제를 보는 시각이 크게 고양되고 확장되고 심화되는 것이다.
이 경은 수세기에 걸쳐 오늘날까지 많은 불교 국가에서 교화의 목적으로 널리 활용되고 있다.
사리뿟따의 또다른 경은 '적정심에 든 천신들'에게 설해졌다고 하는
「사마찟따 숫따」(『증지부』 2:35)」로서, 이 또한 아주 높이 숭상되어 오고 있다.
이 경은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의 세 가지 성과(聖果)를 얻은 수행자들이
더 받아야 할 재생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그들이 욕계나 색계나 무색계 중의 어느 곳에 다시 날 것인가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경은 비록 아주 짧게 설해졌지만,
법을 들으려고 모여든 무수한 천신의 무리에게 엄청난 놀라움을 안겨주었다고 전해진다.
그때 무리 가운데 아라한과를 얻게 된 천신도 많았고,
예류과에 도달한 천신은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고 한다.
이 경은 사실상 천상계의 존재에게 설해져 예외적으로 광범위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몇 안되는 경
가운데 하나이다.
주석서 형식의 설명이 없고 대단히 간결하여 다소 불가해한 면이 없지 않으나,
오랜 세월 존중받으며 연구되어왔다.
마힌다 아라한이 스리랑카에 도착한 날 저녁에 설법한 것도 바로 이 경이었다.
또한 스리랑카의 유명한 연대기 「마하왕사」(14:34 이하)에는 무수한 천신이 이 경을 듣고서
법에 대한 통찰력을 얻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사람들이 이 경을 그토록 존중하고 이 경으로부터 크게 영향을 받게 되는 것은,
향상의 과정에 있는 수행자가 스스로 어떤 재생을 하게 될 것인지 판별해내는 데
이 경이 도움을 준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향상의 높은 단계에 놓여있는 천신들은
때로 자신이 처한 천상계의 지위를 최종 불변의 상태로 여기고서
오욕(五慾)의 감각적 세계[欲界]에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으로 여기지만,
언젠가는 돌아오게 되어있는 것이다.
이 경에서 사리뿟따는 그들에게 자신들이 처한 지위를 판단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을 제시해주고 있다.
이 경은 또한 올바른 길에 미처 들어서지도 못한 범부들에게까지도,
어떻게 정진해 나아가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있게 해주는 값진 지침을 제시해 주고 있다.
사리뿟따의 또다른 두 편의 설법은
「상기띠 숫따 (等訟經)」와 「다숫따라 숫따 (十上經)」로서 『장부』의 마지막 두 경(33, 34)이다.
이 두 경은 많은 분량의 표제어를 1에서 10까지의 산술적 도식에 따라 분류해 놓은 교학 용어의 편집서이다.
그 편집이 10의 항목까지만 이루어진 이유는, 10의 수치를 넘어선 교학 용어들은 수적으로도 매우 드물고, 또한 그런 용어들은 두루 알려져 있어서 쉽게 기억해낼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기띠 숫따」는 부처님이 계신 곳에서 설해졌으며,
경이 끝나자 부처님께서는 이 경을 분명히 인가하고 계셨다.
「상기띠 숫따」가 교학 용어를 단지 1에서 10까지 산술적으로 배열해 놓고 있는 반면에,
「다숫따라 숫따」는 각각의 수치 항목을 분류함에 있어서 그 용어군의 실질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하는 10가지 조목에 맞추어서 이를 분류해 놓고 있다. 그 예를 들자면 다음과 같다.
(1)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成法]
(2) 계발해내야만 하는 것[修法]
(3) 충분히 알고 있어야만 하는 것[覺法]
(4) 떨쳐버려야 하는 것[滅法]
(5) 퇴보를 의미하는 것[退法]
(6) 향상을 의미하는 것[增法]
(7) 꿰뚫어보기 어려운 것[難解法]
(8) 살려야 하는 것[生法]
(9) 체험으로 알아야만 하는 것[知法]
(10) 깨달아야만 하는 것[證法].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 것이란 무엇인가? 선근(善根)에 대하여 주의깊음이
그것이니…
떨쳐버려야만 할 것이란 무엇인가? '나는 어떠하다'하는 아만심이 그것이니…
깨달아야만 하는 것이란 무엇인가? 요지부동의 심해탈(心解脫)이 그것이다.
이 경은 부처님 교화 시기 중 비교적 말년에 편집되었음이 분명하다.
그 때는 이미 방대한 분량의 교설이 성립되어 있었으며,
손쉽게 이용되기 위해서는 더 짜임새를 갖추어야 할 경들도 조심스럽게 구전되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런 상황이다보니 불법의 정수를 담고 있는 경문 선집들이
법을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아주 큰 도움을 주고 있었다.
「상기띠 숫따」는 마하위라라고도 알려져 있는 자이나교 지도자 니간타 나따뿟따가 죽은 직후에 설해졌다. 그가 죽자마자 자이나 교도들 사이에 일어난 의견 차이와 교리적 상위(相違)와 종파 분립에 관한 이야기가 이 경에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죽음이 사실상 이 경을 설하게 한 동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사리뿟따는 자이나교의 내부 갈등이 표출되는 것을 보고 이를 불교도들에 대한 경책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말하기를,
"이 경은 모든 대중이 이의 없이 화합하여 낭송하여야 한다.
이는 천신과 인간의 안락과 행복을 위하여
고귀한 삶[梵行]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주석가들은 「상기띠 숫따」가 설해진 의도에 대해서,
불법이 본디 지닌 직절성(直截性, 바로 분별하여 아는 것)이라는 훌륭함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화합의 향내음'이 교설에서 풍겨나도록 하려는 뜻에서 이 경이 설해졌다고 말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다숫따라 숫따」의 첫머리 게송에서 이 경을 설하는 목적을 밝히고 있다.
여기 다숫따라 경을 설하노니,
이는 열반을 얻기 위함이요
고를 멸하기 위함이요
윤회의 굴레에서 풀려나기 위함이다.
이 두 경은 정선된 교설에 대한 일종의 색인 구실을 한 것으로 보인다.
수없이 많은 경문을 일일이 다 기억하지 못하는 비구들이
교설의 무수한 면면에 얼른 다가가서, 그것을 쉽게 기억해내고 소화하여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주었을 것이다.
사리뿟따가 법을 영원히 지켜내기 위해 마음 쏟았다는 점과
그의 체계적인 방법을 통해서 법이 털끝만큼도 손상되지 않고 전해내려올 수 있었다는 점을
위의 두 경은 놀랍도록 잘 드러내고 있다.
사리뿟따가 이 경들과 『닛데사(Niddesa)』 같은 몇몇 경들을
경학의 보조수단'으로 삼게 했던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목적에서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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