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대보시경(『장부』 14)」에서
아흔 한 겁 전의 위빳시 부처로부터 시작되는 여섯 과거불에 대해 상세한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이분들이 누구며 이 세상에 나왔던 때는 언제며 어느 부족, 어느 계급 태생이고
얼마나 오래 살면서 교화하였는지 밝히신다.
그분들이 거느렸던 두 상수제자들이 각각 누구였는지도 말씀하시면서
매번 '한 쌍의 상수제자, 뛰어난 한 쌍'이라고 하신다.
『상응부』(47:14)에서는 당신께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거느렸듯이
모든 과거불도 다 한 쌍의 상수제자를 거느렸으며
모든 미래불도 한 쌍의 제자를 거느릴 것이라고 하신다.
이로써 상수제자라는 직위가 부처님 승단체제의 필수 요건임을 알 수 있다.
우리 고따마 부처님께서 두 비구를 상수제자로 삼으신 것도 그분 자의로 하신 것이 아니라
시간을 초월해 정해져 있는 어떤 틀에 따라 그렇게 하신 것이다.
그것은 과거의 모든 정등각자가 따랐고 미래의 모든 계승자들이 따르게 되어있는 그러한 틀이다.
승단체제 안에서 상수제자의 기본적 역할은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불법이 굳건히 뿌리내려 인간과 천상의 많은 존재에게 정신적 변화를 가져오고
해탈의 수레가 될 수 있도록 세존을 도와 드리는 것이 그 첫째이다.
둘째는 다른 비구들의 수행을 지도하면서 진실로 본받을만한 모범이 되는 일이다.
셋째는 승가의 운영을 돕는 일이다.
특히 세존께서 독거(獨居)에 드시거나 긴요한 일로 홀로 길을 떠나시면 승가를 돌보아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승단체제의 수장으로 언제고 지고의 권위를 지니시기에,
상수제자를 지명한다는 것이 오늘날 민주사회의 권력이양과 같은 것은 아니다.
모든 가르침은 유일한 원천, 세존으로부터 나온다.
그분만이 길을 보여주실 수 있고 그분만이 '사람을 가장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다.
임금이 나라 일을 보는 데 재상이 필요하듯이
법의 왕이신 부처님께서도 여러 제자를 그 재능에 따라 수행의 각 방면에 책임 맡기신 것이다.
맡은 일을 누구보다 탁월하게 해낼 수 있는 두 상수제자에게 가장 중요한 임무를 맡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상수제자가 된다는 것은 특권이나 특혜의 개념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상수제자가 되는 것은 승단체제 전반에 걸쳐 참으로 중차대한 책임을 맡는 것이다.
이는 부처님의 자비행을 거들어드리고,
가장 가까이에서 부처님을 도와 정법이 '성공적으로 번성, 확산하여 널리 호응을 받는 가운데
천상과 인간세계에 잘 선양되게끔'(『장부』16; 『상응부』 51:10) 다지는 작업이다.
모든 부처님이 하필이면 한 쌍으로 상수제자를 지명하는 이유는
각기 다른 책임 영역과 그 책임을 수행할 수 있는 자질간의
바람직한 균형을 이루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은 몸소 모든 바라밀을 완성해낸 분이시며 '모든 면에서 완성에 이른 성자[正遍知]'이시다.
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중생들은 말할 것도 없고
깨달은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각기 성품과 재능이 달라서, 알맞은 소임이 차이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모든 부처는 예외 없이 맡은 바 책임 영역을 나누어 잘 살필 수 있도록
좌우에 두 상수제자를 거느리고 있다.
그 둘 중에 오른쪽이 부처님과 제일 가깝다고 여겨지는 지혜제일의 제자인데,
고따마 부처님의 경우에는 사리뿟따 존자였다.
승단 체제에 있어서 그가 특별히 맡은 소임은 불법을 체계화하고 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하는 것이다.
진리를 궁극에까지 꿰뚫는 깊은 통찰력과 천양만태의 현상계에 대한 날카로운 식별력으로
법의 미묘한 함축적 의미를 드러내고 그 의미를 아주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이 바로 그의 책임
이다. 이런 일은 승단체제의 수장이신 부처님께서 몸소 하실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의 왼쪽에 서있는 또 한 분의 상수제자는 신통력을 자유자재로 발휘하는 데 뛰어난 분
이다. 고따마 부처님의 승가에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신통력은 완전하게 무아의 깨달음을 이룬 뒤에 얻어지는 것으로서
남을 지배하거나 자기를 과시하려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 신통력은 정(定)수행을 통달하는 데서 나온다.
정 수행은 우리의 눈을 열어주며 마음과 물질(名色)
그리고 그 양자의 미묘한 상호관계를 지배하는 근본적인 힘을 깊이 이해하도록 해준다.
불법 특유의 자비정신을 지침으로 삼는 이 신통력은,
승단체제가 이 사바세계에 뿌리내리는 데 장애가 되는 것들을 제거하고
또 점잖은 설법만으로는 감화하기 힘든 사람들을 교화시키는 방편으로 쓰인다.
상수제자로서 사리뿟따가 해야 할 가장 주요한 임무는 불법을 체계화하는 일인데, 이에 관해서는
다음 장에서 '법륜을 굴리는 이'로서의 그의 역할을 살펴볼 때에 자세히 이야기할 것이다.
여기서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함께 상수제자로서 어떻게 비구들의 모범이 되고
교사로서의 역할을 해냈는지, 그리고 어떻게 승가 운영을 보좌했는지에 대해서만 살펴보겠다.
부처님께서는 승가의 여러 비구들에게 두 상수제자를 본보기로 따르라고 훈계하신 적이 있다.
"비구들이여, 신심 깊은 비구는 이와 같은 올바른 서원을 품어야 할 것이다.
'아, 이 몸도 사리뿟따나 목갈라나처럼 되어지이다!'
이는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나의 비구 제자들에게 모범이자 귀감이 되기 때문이다"
(『증지부』 2:131).
계·정·혜 삼학을 통달함으로써
이 두 사람은 수행하는 비구들이 터득해 갖추어야 할 자질을 이미 체현하고 있었다.
또한 탁월한 분석력과 언어구사력을 갖고 있었던 그들은 젊은 비구들에게 교훈과 지침을 줄 수 있는 이상적인 스승이었다.
부처님은 「진리의 분별경[諸分別經]」에서 남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
두 상수제자의 역할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 말씀하고 계시다.
"비구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가까이하고 그들을 따르라.
두 사람 다 현명한 비구이고, 동료 비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들이다.
사리뿟따는 아이를 낳는 어머니와 같고 목갈라나는 갓난아이를 돌보는 유모와 같다.
사리뿟따는 제자들을 가르쳐 예류과에 들게 하고
목갈라나는 더 높은 단계로 이끌어 올려준다"(『중부』 141).
이 구절을 『중부』의 주석서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자신이 수계를 주었든 남이 주었든 관계없이 일단 제자로 받아들이면
물질적 정신적 도움을 베풀었다.
병들면 돌보아주고, 명상주제를 주고,
마침내 그들이 예류과에 들어서 인간계에 들지 못할 위험으로부터 벗어났음을 알게 되면
'이제 이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더 높은 성스러운 도에 이를 수 있겠구나'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들을 떠나보냈다.
이렇게 그들의 앞날에 관한 염려에서 벗어나면 그는 새로 제자들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목갈라나는 같은 방법으로 수행시키더라도 그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할 때까지는
염려를 놓지 않았다.
세존께서
'아주 작은 똥에서도 악취는 난다.
그처럼 '탁'하고 손가락을 퉁기는 순간보다 짧더라도
일단 존재를 받으면 그것은 칭찬받을 일이 못된다.'고 말씀하신 바를
가슴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리뿟따는 제자를 가르칠 때에도 한량없는 인내심을 보여주었다고 한다.
그는 제자들이 예류과를 성취할 때까지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일깨우고 가르치곤 했다.
그런 다음에라야 그는 새 제자를 받아들였다.
그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라 아라한과를 성취한 이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중부』 주석서에서는 보통 사리뿟따가 제자를 예류과까지만 이끌었다고 하지만,
몇몇 비구에게는 더 높은 경지를 성취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도 했다.
예를 들어 『감흥어』 주석서를 보면
"그때에 이미 높은 수행과정에 있던 비구들이 다음 더 높은 세 단계의 경지를 성취하기 위해
명상주제를 받으러 사리뿟따를 찾아가곤 했다."고 쓰여 있다.
그때까지 예류과였던 라꾼띠까 밧디야 장로도 사리뿟따의 가르침을 받은 후 아라한과를 성취했다(『감흥어』 7-1).
세존께서는 두 상수제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로 하여금 승가의 일을 분담하여 보살피도록
하시고, 당신이 안계실 때에는 그들이 승가의 일을 책임지도록 하셨다.
「짜뚜마 숫따(『중부』 67)」를 보면
부처님께서 사리뿟따 존자가 자기 책임을 제대로 알지 못했음을 꾸짖으시며
이 점을 분명히 하신 일이 있다.
한번은 새로 수계를 받은 비구들 여럿이 처음으로 부처님께 경배하러 왔다.
주석서에는 이들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서 수계를 받은 것으로 되어 있다.
짜뚜마에 도착해 숙소를 분배받고 난 그들은 거기에 있던 비구들과 잡담을 하기 시작했다.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에 부처님께서는 먼저 있던 비구들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으시고,
새로 온 사람들 때문에 그렇게 소란스러웠음을 아시게 되었다.
새로 온 비구들까지 그 자리에 있었는지는 주석서에 나타나 있지 않지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 것을 보면 거기에 있었던 것 같다.
"물러가거라 비구들이여, 여래는 너희들을 만나지 않겠노라.
너희들은 여기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새로 수계를 받은 비구들은 말씀에 따라 그곳을 떠났으나 재가불자 몇 사람이 간청을 드려
다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 부처님께서 사리뿟따에게 이렇게 물으셨다.
"사리뿟따여, 여래가 비구들을 물러가게 하였을 때 무슨 생각을 하였느냐?"
사리뿟따가 아뢰었다.
"세존께서 평온[捨, upekkha]에 드시어 '지금 여기'의 지복상태에 머물고자 하시니
저희들도 평온에 들어 '지금 여기'의 지복상태에 머물러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아니니라, 사리뿟따여! 다시는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라!"하고 부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는 목갈라나에게도 똑같은 질문을 하시자 그는
"세존께서 비구들을 물러가라고 하셨을 때에
저는 '세존께서는 평온에 드시어 지금 여기의 지복상태에 머물고자 하시니
사리뿟따와 나는 승가를 돌보아야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옳도다! 목갈라나여, 바로 말하였다!
승가는 여래가 아니면 그대나 사리뿟따가 돌보아야 하느니라."라고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께 승가 계율을 정해주십사고 최초로 간청한 사람도 또한 사리뿟따 존자였다.
어떤 과거불의 교법은 오래 지속된 반면, 다른 과거불 교법은 그렇지 못했던 이유가 무엇인가를 그는 부처님께 여쭈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법을 많이 설하지 않으셨거나, 제자들을 위해 규칙을 제정하지 않으셨거나,
계본의 낭송을 제도화하지 않으셨던 부처님들의 경우에는 교법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하신 부처님의 교법은 오래 지속되었다."라고 하셨다.
그러자 사리뿟따는 일어나 세존께 경배하고 이렇게 말씀 드렸다.
"지금 바로 규율을 선포하시고 계본을 제정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래야 고귀한 삶이 오래 지속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냥 두어라, 사리뿟따여. 언제 해야 할 지 여래는 아느니라.
승가에 타락의 징후가 드러나지 않는 한 제자들에게 규율을 만들지 않을 것이고
계본도 일러주지 않을 것이다."(『율장』 3:9-10).
교법이 가능한 한 오래 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사리뿟따의 성격을 잘 드러내는 생각이라면,
계율은 반드시 필요한 시기가 되기까지는 제정하지 않으려는 것,
그것 또한 부처님 특유의 생각이었다.
당시 승가에서 가장 향상이 더딘 비구마저도 예류과에 도달했기에(이 점을 사리뿟따는 간과한 듯함) 아직은 비구생활의 계율을 정할 필요가 없다고 부처님께서는 설명하셨다.
부처님께서는 긴요한 상황이 생기면 특별한 임무를 두 상수제자에게 부여하시는 일이 자주
있었다.
예컨대 부처님의 사촌인 야심만만한 데와닷따가 젊은 비구들 한 무리를 외도로 유인해가자
두 제자를 보내어 다시 데려오도록 하신 적이 있다.
데와닷따는 승단을 별도로 이끌겠다고 선언하며 승가를 양분하고 난 후,
5백 명의 젊은 비구를 부추겨 영취산으로 데리고 갔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돌려 데려오도록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영취산으로 보내셨다.
데와닷따는 두 장로가 다가오는 것을 보자
그들이 부처님을 버리고 자기 무리에 동참하려고 결심한 줄 알았다.
그는 두 사람을 따뜻이 맞이하고 마치 그들이 자기 상수제자나 되는 듯 대했다.
그날 저녁 데와닷따가 쉬고 있을 때 두 장로는 비구들에게 설법을 하여 예류과로 이끈 후,
그들을 세존께로 돌아오도록 설득했다(『율장』 2:199-200).
또 다른 예로는,
깃타기리에 살고 있던 뿌납바수와 앗사지(앞에 나온 장로 앗사지와는 다른 사람)가 이끌던
한 무리의 비구들이 비행을 저질렀을 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함께 승가의 질서를 회복하려 한 일이다.
그 비구들은 저녁에도 음식을 먹었고, 마을의 젊은 처녀들과 노래하고 춤을 주었으며,
속인들과 어울리는 등 승가의 위엄을 욕되게 하였다.
여러 차례 꾸짖었음에도 불구하고 행실을 고치려 하지 않자
부처님께서는 두 상수제자를 보내 계율 따르기를 거부한 그들에게 파문의 벌을 선언하셨다
(『율장』 2:12; 3:1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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