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사리뿟따 이야기

3. 법을 찾아서 / 초년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0. 7. 21. 15:54

 

 

 이야기는 인도의 라자가하(王舍城)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우빠띠사꼴리따라는 두 브라만 마을에서 시작된다.

 

때는 부처님께서 세간에 출현하시기 몇년 전이었다.

 

 

 

우빠띠사 마을에 사는 브라만의 아내 루빠사리(Ruupasari)라는 여인이 임신을 하게 되었다.  

같은 날 꼴리따 마을에 사는 목갈리(Moggalli)라는 브라만 여인도 아기를 갖게 되었다.

 

이 두 집안은 7대에 걸쳐서 우의를 맺어 서로 가깝게 지내고 있었다.

태기가 보이는 날부터 양가의 식구들은 장차 어머니가 될 이 두 부인을 정성껏 보살폈고

10개월 후 같은 날에 두 여인은 아들을 낳았다.

 

이름짓는 날이 되자 루빠사리의 아들은 우빠띠사라고 이름지었다.

이것은 그 집안이 마을에서 가장 권세 높은 집이기 때문이었다.

같은 이유로 목갈리의 아들꼴리따라고 이름지었다.

 

 

 

이 두 소년은 자라면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모든 분야에 걸쳐서 많은 지식을 완벽하게 습득하였다. 두 청년을 따르는 브라만 젊은이들이 각각 5백 명이나 되어서

강이나 공원으로 운동이나 휴식을 하러 갈 때면 우빠띠사는 5백 대의 가마를 대동하곤 했고

꼴리따도 5백 대의 마차와 함께 가곤 했다.

 

당시 라자가하에서는 매년 열리는 산마루 축제[山頂祭]가 벌어졌다.

이 두 청년은 둘을 위해 마련된 자리에 나란히 앉아 축제를 관람하였다.

우스운 장면에는 함께 웃고 박진감 넘치는 장면에는 함께 흥분했다.

돈을 써가며 다른 구경거리도 보았다. 이런 식으로 두 청년은 이틀 동안 축제를 즐겼다.

 

그러나 사흘째가 되자 전에 없던 생각이 그들의 마음속에 그림자를 드리우게 되어,

더 이상 웃을 수도 흥을 느낄 수도 없게 되었다. 놀이와 춤을 구경하며 앉아있을 때

문득 사람은 모두 죽어야 한다는 무서운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떠올랐던 것이다. 

 

 

일단 이런 참담한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들의 태도는 전과 같을 수 없었다.

암울한 기분은 점차 떨쳐낼 수 없는 의문이 되어 두 사람에게 뚜렷이 부각되었다.

도대체 여기서 볼 게 뭐가 있단 말인가.

 

이 사람들 모두 100살도 되기 전에 죽어버릴 것이다.

정작 해야 할 일은 우리를 구원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며 두 청년은 셋째 날의 축제가 진행되는 동안 줄곧 그곳에 앉아있었다.

 

 

꼴리따는 의기소침하여 생각에 잠겨있는 우빠띠사에게 물었다.

"왜 그러지, 우빠띠사? 자네는 요 며칠 전처럼 즐거워 보이지도 않고 행복해 보이지도 않아.

뭔가 근심스러운 것 같은데,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꼴리따, 이런 허황된 구경거리를 보고있는 게 전혀 이로울 것이 없는 것 같아.

쓸데없는 짓이란 말이야.

이런 축제에서 시간을 허비하느니

윤회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나서야만 하겠어.

그런데 꼴리따, 자네도 역시 뭔가 불만스러운 것 같군."

 

"나 역시 자네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네."

친구도 같은 생각이었음을 알게 된 우빠띠사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좋은 생각을 한 것 같아.

하지만 구원을 찾기 위한 길은 한 가지밖에 없어. 출가해서 수행자가 되는 것이지.

그런데 어느 문하에서 수행생활을 해야 할까?"

 

 

그 당시 라자가하에는 산자야(Sa~njaya)라는 유행승(遊行僧, paribbaajaka)

한 무리의 제자를 이끌고 있었다. 그의 문하에 들어가기로 결정한 우빠띠사와 꼴리따는

각자 거느리던 5백 명의 브라만 청년들을 이끌고 산자야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이 제자가 된 후 산자야의 명성은 더욱 높아졌고 후원도 풍족해졌다.

얼마되지 않아 산자야의 가르침을 완전히 익히게 된 두 친구는 스승에게 이렇게 물었다.

 

"스승님의 가르침은 이것이 전부입니까, 아니면 더 있습니까?"

 

"이것이 전부라네. 그대들은 내가 아는 것을 모두 다 배웠어."

 

이 대답을 듣자 그들은 이런 생각을 하게되었다.

'그렇다면 더 이상 그의 밑에서 수행생활을 계속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는 구원의 가르침을 찾아 출가를 했으나 이 스승의 밑에서는 찾지 못했다.

 그러나 인도는 광활하다. 크고 작은 수많은 마을과 도시를 찾아다니면

우리가 찾고있는 가르침을 주실 스승을 틀림없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 후 현명한 수도자나 브라만이 어디 있다는 소식을 듣기만 하면

두 청년은 언제나 그리로 찾아가 가르침을 받았다.

그랬지만 남들이 던지는 질문에는 막힘 없이 대답할 수 있었던 이 두 사람은

막상 자신들이 품고 있는 의문에 해답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찾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인도 전역을 다 둘러본 후에 이들은 다시 고향에 돌아와서

누구든지 먼저 불사(不死)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반드시 상대방에게 알려주기로 약속했다.

이는 형제와 같은 깊은 우애로 맺어진 두 청년 사이의 맹세였다.

 

 

 

이런 결의를 맺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존이신 부처님께서 라자가하로 오시게 되었다.

그 시기는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고 첫번째 우안거를 마치신 직후, 길떠나 가르침을 베푸실 때였다.

 

성불하시기 전에 빔비사라 왕에게 깨달음을 얻게 되면

라자가하를 다시 찾아오겠다고 하신 약속을 지키려고 나서신 것이다.

세존께서는 가야를 떠나 설법을 펴시며 라자가하로 오셨고

빔비사라 왕이 바친 죽림정사(Ve.luvana)에 거처를 정하셨다.

 

 

부처님께서 해탈의 가르침을 세상에 펴기 위해 여러 곳으로 보내신

최초의 아라한 61명 중에는 앗사지라는 가 있었다.

그는 부처님께서 성불하시기 전에 함께 있었던 다섯 수행자 중의 한 사람이자 옛 도반이었고,

세존께서 정등각을 얻으신 후에 첫 제자가 된 다섯 명 중의 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아침 우빠띠사는

라자가하에서 평온한 모습으로 발우를 손에 들고

탁발을 위해 집집마다 돌고있는 앗사지를 보게 되었다.

 

앗사지의 고결하고도 평온한 모습에 강한 인상을 받은 우빠띠사는 생각에 잠겼다.

'내 평생 저와 같은 수도자를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저분은 필시 아라한이거나 아니면 아라한이 되기 위해 수행하는 분임이 분명하다.

저분에게로 가서 물어봐야 되지 않을까?'

 

 

그러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지금 저분은 탁발하러 가는 길이니 가서 질문을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을 것 같다.

구하는 자가 하는 법도대로 나도 저분의 뒤를 따라가는 것이 좋겠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했다.

 

장로 앗사지가 탁발을 마치고 공양을 하기 위하여 조용한 곳을 찾고있을 때

우빠띠사는 자기가 들고 다니던 방석을 놓아 자리를 마련하고 장로에게 권했다.

장로가 거기에 앉아서 공양을 마치자 우빠띠사는 자기 물통에서 물을 따라주었다.

이렇듯 우빠띠사는 앗사지에게 스승에 대한 제자로서의 예의를 깎듯이 갖추었다.

 

두 사람이 예절에 맞게 인사를 공손하게 나누고 난 후, 우빠띠사는 말을 꺼냈다.

"벗이여, 당신께서는 참으로 평온해 보입니다.

안색도 맑고 밝아 보이고요. 당신께서는 어느 분의 문하에 출가하셨습니까?

스승은 누구이며 어느 분의 가르침을 따르고 계신지요?"

 

"벗이여, 사꺄(Saakya)족의 후예로서 그 가문으로부터 출가한 위대한 수행자가 한 분 계십니다.

나는 세존이신 그 분의 문하로 출가하였으며, 그 성스러운 분이 바로 나의 스승이시고

나는 그 분의 진리를 따르고 있습니다." 라고 앗사지는 말했다.

 

 

"당신의 스승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시며 무엇을 설하시는지요?"

 

이런 질문을 받자 앗사지는 생각에 잠겼다.

'이런 방랑하는 사문들은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에 반대한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얼마나 심오한지를 이 청년에게 보여주는 것이 좋겠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나는 수행의 길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출가한 지도 얼마 안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같은 가르침과 수행을 접하게 된 것도 최근의 일입니다.

그래서 진리[, Dhamma]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이에 우빠띠사는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저는 우빠띠사라고 합니다. 다만 얼마라도 당신의 법력이 미치는 한 알려 주십시오.

온갖 수단을 다하여 그 의미를 깨우치는 것은 저의 몫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게송으로 덧붙여 말했다.

 

    말씀해 주실 것이 많건 적건
    알고싶은 건 그 속에 담긴 뜻 그것입니다.
    오직 소망은 그 의미를 아는 것
    많은 말이 필요한 것은 아니랍니다.

 

 

 이에 대하여 장로 앗사지는 게송으로 답하였다.

 

 

    원인이 있어 생겨나는 이 모든 것들에 대해


    여래께선 그 원인을 일러 주셨나니,


    이 모든 것들이 멸한다는 , 그것까지도.

 

    대사문께서는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이 게송의 처음 두 구절을 듣고서

우빠띠사는 번뇌를 벗어나 불법에 대한 흠없는 통찰을 이룸으로써

사의 첫걸음인 예류향에 들었고,

 마지막 두 구절을 들을 때는 이미 예류과를 이루었다.

 

그는 곧바로 알아차렸다.

'여기서 해탈의 방법을 찾을 수 있겠구나!' 그리고는 장로에게 말했다.

"존자시여, 진리에 대해 더이상 상세히 설명해 주실 것 없습니다. 이것으로 족합니다.

그런데 큰 스승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지금 죽림정사에 계십니다."

 

"그러면 존자시여, 먼저 가십시오.

제게는 진리를 만나면 같이 나누기로 약속한 친구가 있습니다.

그 친구에게 알려 당신이 가신 길을 따라 함께 큰 스승님 앞으로 가겠습니다."

 

그리고나서 우빠띠사는 그의 발아래 경배를 하고 유랑수행자들이 머물고 있는 숲으로 돌아갔다.

 

 

 

꼴리따는 가까이 오는 친구의 모습을 보자 곧바로 알아차렸다.

'오늘 내 친구의 모습이 사뭇 달라 보인다. 그가 불사의 경지를 찾은 게 틀림없구나!'

그래서 그 일에 대해 물어보자 우빠띠사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렇다네, 친구여, 불사의 경지를 찾았다네!"

그리고나서 장로앗사지를 만났던 일에 관해 모두 이야기해주고 자신이 들은 게송을 읊어주었다.

 

게송이 끝났을 때 꼴리따 역시 예류과를 성취했다.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다.

"벗이여, 큰 스승님께서는 어디 계신가?"

 

"지금 죽림정사에 머무신다고 나의 스승 앗사지 장로가 말씀하셨다네."

 

 

 

"우빠띠사, 그렇다면 우리 그리로 가서 큰 스승님을 만나보세." 라고 꼴리따가 말했다.

그러나 늘 스승을 존경하는 사람이었던 사리뿟따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친구여, 우선 우리를 가르치시던 유행승 산자야에게 가서 불사의 길을 찾았음을 알려야 하네.

그분이 이 사실을 납득한다면 진리를 꿰뚫어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렇지 못하더라도 우리를 믿으니까 함께 큰 스승님을 뵈러 갈 것이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면 그분도 도()와 과()를 성취할 수 있지 않겠나."

 

그래서 두 친구는 산자야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스승이시여, 부처님께서 세상에 출현하셨습니다!

그분의 법은 잘 설해져 있으며

그분을 따르는 승가는 바른 도를 지키고 있으니 우리와 함께 큰 스승님을 뵈러 가십시다."

 

 

 

"그대들은 지금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가?" 하며 산자야는 그들과 함께 가기를 거절했다.

오히려 그 두 사람에게 자기 집단의 공동지도자가 되어준다면

크나큰 이익과 명성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설득했다.

그러나 그들은 결심을 굽히지 않으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끝끝내 제자의 위치에 머물더라도 개의치 않습니다.

다만 스승께서는 갈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셔야 합니다."

 

그러자 산자야는 생각했다. '저들은 아는 것이 많으니 내가 뭐라고 말해도 듣지 않겠군.'

그리고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들은 가도 좋지만 난 못 가네."

 

"어찌하여 못 가십니까, 스승님?"

 

"나는 많은 사람들의 스승이 아닌가.

내가 지금 다시 제자의 자리로 되돌아가게 되면,

이는 마치 큰 물통이 조그만 물병으로 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지.

이제 와서 누구의 제자로 살아갈 수는 없네."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스승이시여!"하고 그들이 간청했다.

 

"그냥 내버려두게, 이 사람들아, 자네들은 가도 좋지만 나는 못 가네."

 

"스승이시여,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셔서 많은 사람들이 그분에게로 구름처럼 모여들어

무리를 이루고 향과 꽃으로 존경을 표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분에게 가야 합니다. 이제 당신은 어떻게 되려고 그러십니까?"

 

이 말에 산자야는 다음과 같이 물었다.

"이 사람들아, 이 세상에 현명한 사람이 많은 것 같은가, 아니면 어리석은 사람이 많은 것 같은가?"

 

"어리석은 사람은 많지만 현명한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여보게들,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명한 자들은 현명한 수행자 고따마에게 갈 것이고

어리석은 자들은 어리석은 나에게 올 테지. 자, 이제 자네들이나 가보게. 나는 가지 않겠네."

 

그래서 두 친구는 이런 말을 남기고 떠났다.

"스승이시여, 언젠가는 당신이 실수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이들이 떠난 후 산자야의 제자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 그의 사원은 거의 텅 비어 버렸다.

텅 빈 사원을 둘러보던 산자야는 뜨거운 피를 토했다.

 

그의 제자들 중의 5백 명이 우빠띠사와 꼴리따를 따라갔으나

그 중에 2백5십 명은 산자야에게 되돌아갔다.

나머지 2백5십 명과 더불어 두 친구는 본디 자기들을 따르던 이들을 이끌고 죽림정사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부처님은 사부대중에 둘러싸여 법을 설하고 계셨다.

이 두 사람이 들어오는 것을 보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저기 오고있는 두 사람 우빠띠사와 꼴리따는 장차 나의 뛰어난 한 쌍의 제자가 될 것이다."

 

두 친구는 부처님 가까이 다가가서 지극한 마음으로 절을 한 후에 한 쪽에 앉았다.

자리를 잡은 후 이렇게 세존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을 거두시어 세존의 문하에 출가하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희들이 구족계를 받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오라, 비구들이여. 불법은 참으로 잘 설해졌도다. 

 고()를 멸하기 위해 청정한 삶을 영위하도록 하라!"

 

이 말씀만으로 부처님께서는 두 존자를 받아들이셨다.

 

그리고나서 부처님께서 듣는 이들의 근기(根機)를 고려하시면서 설법을 계속하시자

우빠띠사와 꼴리따를 제외하고 거기에 있던 모든 이들이 아라한과를 성취하였다.

 

하지만 두 친구는 그 자리에서 자신들의 도과(道果)를 더 높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수제자로서 세존을 받들어야 할 두 사람의

타고난 숙명을 따르기 위해선 더 오랜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두 친구가 부처님의 승단에 들어간 이후로는 경전이나

주석서에서 그들을 칭하여,

우빠띠사사리뿟따로, 꼴리마하목갈라나로 부르고 있다.

 

 

 

목갈라나 존자는 집중적인 수행을 하기 위해

마가다국의 깔라왈라뿟따(Kallavaalaputta) 마을에 가서 탁하며 지냈다.

 

그가 수계한지 7일째 되는 날, 맹렬히 정진하고 있던 중 피로와 혼침이 엄습했다.

그러나 부처님의 독려로 피로를 물리치고,

스승이 설명해주시는 '요소에 대한 관법[界業處, dhaatu kamma.t.thaana]'을 듣고 있는

동안 세 단계의 높은 도(일래향·불환향·아라한향)를 성취함으로써 완벽한 수제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한편 사리뿟따 존자는 계속 스승 곁에 머물고 있었다.

스승의 처소 근처 멧돼지굴(sukarakhata-le.na)이라는 토굴에 기거하며

라자가하에 가서 탁발을 했다.

 

그가 입문한지 보름이 지났을 때

세존은 사리뿟따의 조카인 유행승 디가나카에게 설법을 해주셨다.

그때 사리뿟따는 부처님의 뒤에 서서 부채질을 해드리고 있었다.

 

마치 남을 위해 마련한 음식을 나누어 먹듯이

스승의 법문을 주의 깊게 음미하며 귀기울이고 있던 사리뿟따는

마침내 불제자가 얻을 수 있는 최고의 지혜에 도달하여

아라한과와 사무애해를 한꺼번에 성취했다.

리고 그의 조카는 법문이 끝났을 때 예류과에 들었다.

 

 

 

더러는 이런 의문을 가질는지 모르겠다.

 "사리뿟따는 대단히 지혜로운 분이 아니던가.

그렇다면 그런 그가 어찌 목갈라나보다 늦게 아라한과를 성취했을까?"

 

주석서에는 그만큼 준비할 것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쓰여 있다.

가난한 사람이 어디든 가려한다면 당장에 길을 떠날 수 있다.

그러나 왕이 떠나려면 엄청난 준비를 해야 하기에 시간이 필요하다.

그와 같이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기 위해서도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바로 그날 땅거미가 질 무렵, 부처님께서는 모든 제자를 불러모아서

새로 입문한 두 장로에게 상수제자의 지위를 내리셨다.

 

이에 대해 비구들 몇이 불만스러운 마음을 품고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스승께서는 상수제자의 자리를 먼저 입문한 제자들, 말하자면 오비구들에게 주셨어야 했어.

 아니면 야사(Yasa)가 이끄는 55명의 비구들에게,

그도 아니면 30여 밧다왁기야(bhaddavaggiya, 吉祥)의 무리에게,

아니면 깟사빠(Kassapa) 3형제들에게 주셨어야 했어. 그런데 스승께서는

이 모든 훌륭한 장로들을 제쳐놓고 가장 늦게 입문한 이들에게 주셨단 말이야."

 

 

 

부처님은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물으신 다음 이렇게 설명해주셨다.

"나는 어떤 제자도 편애하지 않고 각자 서원한 대로 성취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서

안냐 꼰단냐(Añña Ko.n.dañña)는 전생에 한 번의 수확기 동안에 아홉 번이나 공양을 올렸는데,

그때 그는 수제자가 되고자 서원하지 않았다.

그의 서원은 누구보다 먼저 아라한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었고 결국 그리 되었다.

 

그러나 여러 겁() 아노마닷시(Anomadassii) 부처님 때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상수제자가 되고자 원을 세웠다.

 

이제 그 서원이 성취될 조건이 무르익은 것이다. 

 

그러니 나는 그들이 서원했던 바를 성취토록 한 것이지

편애심에서 그렇게 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