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사리뿟따 이야기

2. 서 문

이르머꼬어리서근 2010. 7. 18. 16:20

 

 

스리랑카의 절에 가면 부처님상 양옆에 두 나한상이 모셔져 있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그 나한상은 한쪽 어깨에 가사를 걸친 편단 우견(偏袒右肩) 차림으로

두 손을 합장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서있다.

 

그들의 발치에서는 신심 깊은 신도들이 바친 꽃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두 분 나한이 누구냐 하면, 부처님의 상수제자사리뿟따(Saariputta, 舍利弗,舍利子)

마하목갈라나(Mahaa-Moggallaana, 目連, 目犍連)이다.

사리뿟따는 부처님 오른편에, 목갈라나는 왼편에 서있는데

그것은 바로 두 분이 생전에 차지했던 자리인 것이다.

 

 

19세기 중엽 산치 대탑이 발굴되었을 때 두 개의 석재 사리함이 들어있는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북쪽의 사리함에는 마하목갈라나의 사리가, 남쪽의 사리함에는 사리뿟따의 사리가 모셔져

있었다.

 

역사가 2천년 이상 인간 삶의 무상한 드라마를 연출하며 흐르는 동안

그들은 그런 모습으로 함께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로마제국이 일어났다 스러지고, 고대 그리스의 영화는 이미 아득한 추억으로 변한 지 오래고,

새로운 종교들이 세력을 다투면서 심지어는 검붉은 피와 불로 지구를 물들이다가

종국에는 테베나 바빌론의 전설이나 매한가지가 되고 말았으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어보지도 못한 세대들이 태어났다 사라져 가는 동안

업주의의 물결은 문명의 거대한 중심축을 서서히 동양으로부터 서양으로 옮겨놓고 말았다.

 

그러나 이 모든 일들에 아랑곳없이 성스러운 두 제자의 유골은 고스란히 보존되어왔고,

정작 그들을 낳아준 고향 땅에서는 잊혀졌지만

두 분에 대한 기억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파된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소중히 간직되어 왔다.

 

그리고 두 분의 생애에 관한 이야기는 처음에는 구전으로,

나중에는 그 어떤 종교의 성전보다 훨씬 방대하고 상세한 삼장(三藏)의 기록을 통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상좌부 불교국가에서는 이 두 분이 부처님 다음으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다.

불교 역사에서 부처님의 존함만큼 빼놓을 수 없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분들의 이름이다.

그들의 생애를 둘러싸고 그토록 많은 전설들이 생겨났다면,

이는 두 분에 대한 존경심이 극진하다보니 세월과 더불어 자연스레 생겨난 결과로 봐야 할 것이다.

 

이분들이 그토록 높이 존경받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부처님 직계 제자들만큼 스승을 지극히 섬기며 참된 길을 걸었던 예가 과연 다른 종교에도

있었던가.

 

이 책을 읽다 보면 여러분은 그런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

이 책은 부처님의 제자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두 제자 중의 한 사람으로

지혜의 깊이나 넓이, 해탈의 교리를 가르치는 능력 등에서 수승하기가 부처님 다음이던

사문 사리뿟따의 이야기이다.

 

삼장에는 그분의 전 생애를 체계적으로 서술한 곳은 없다.

그러나 경전과 주석서 여기저기에 흩어져있는 그분에 관한 토막이야기들을

모아 볼 수 있으며 그 중에는 꽤 중요한 이야기들도 있다.

 

그분의 삶은 부처님의 생애나 교화사업과 매우 밀접하게 맞물려 있어서 때로는

보조자 이상의 중요한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몇몇 대목에서는 그분이 교사이자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서, 친근하고 사려 깊은

도반으로서, 손아래 비구들의 이로움을 지켜주는 보호자로서,

스승의 교의를 충실하게 담는 저장고로서 주도적 역할을 한 것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법의 장군[法將]으로 불리게까 되었던 것이다.

 

그분은 과연 예사로운 장군이 아니었다.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인내와 성실함이 비길 데 없고, 생각과 말과 행동이 겸손하고 고결하며,

자신에게 베풀어진 조그만 친절도 평생 잊지 않고 감사하며 마음속에 간직하는 그런 장군이었다.

그분은 아라한들, 일체의 번뇌망상을 여읜 성자들 가운데서도,

밤하늘을 수놓는 무수한 별 가운데 환히 빛나는 보름달 같은 존재였다.

 

 

이제 심오한 지성과 숭고한 인간성을 지녔고 위대한 스승의 참제자였던 이 분의 이야기를

심혈을 기울여 써보려 한다.

완벽한 품격을 지녔고 가장 높은 경지까지 자신을 끌어올려 완전히 해탈한 분의 이야기,

그런 분이 도반들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말하고 처신했던가하는 이야기가

이 불충분한 기록을 통해서 조금이라도 전해질 수 있다면,

 

그리하여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인간이 어떤 경지까지 이를 수 있는가'하는 의문에 대한

해답을 통해서 믿음과 힘을 얻을 수 있다면,

이 전기는 가치있는 일이 될 것이고 최상의 보답을 받는 셈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