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두 사람의 그 이후 행적에 관해서는 그 이상의 이야기가 없다.
하지만 생사 윤회를 거듭하는 동안 이 두 친구의 행로는
그들보다 훨씬 이전, 과거 스물 네 번째 부처님의 발아래 엎드려
최고의 부처가 되기를 서원했던 한 인물의 행로와 여러 차례 교차되고 있다.
이분이 바로 우리 시대의 깨달은 분,
고따마 붓다가 되신 보디삿따[菩薩, Bodhisatta, 깨달음을 이루기 전의 부처님]이다.
『본생경』은 보디삿따의 550번의 전생 행적을 기록하고 있는데,
사리뿟따는 아난다와 비교한다면 몰라도
부처님의 그 어느 제자보다 자주 등장하고 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서는 사리뿟따와 관계되는 몇 가지 전생담만을 살펴보겠다.
재생의 과정은 존재의 영역사이에 구분 없이 순환되는 것이어서
축생계로부터 인간계와 천상계로, 또 천상계에서 인간계나 축생계로
올라가기도 하고 내려오기도 하는 까닭에
사리뿟따와 보디삿따의 특별한 인연은 세세생생 다양하게 펼쳐지게 된다.
이제부터 이 두 분의 이러한 인연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엮어보기로 한다.
보디삿따와 사리뿟따는 과거생에서 동물로 태어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언젠가 보디삿따가 우두머리 숫사슴이었을 때,
자기 두 아들에게 지도자의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가르쳤다.
한 아들(사리뿟따)은 아버지의 충고를 충실히 따라 제 무리를 훌륭히 이끌었고
다른 아들은 아버지의 가르침을 일축하고 제 고집대로만 하여 자기 무리를 재난으로 이끌었다.
그는 나중에 부처님의 질투심 많은 사촌 데와닷따로 태어나게 된다
(『본생경』 11).
또 보디삿따가 왕궁의 거위였을 때는
두 아들(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이 태양을 앞질러 보겠다고 날다가
지쳐서 떨어지려 하자 보디삿따가 구해주었다(476).
그리고 보디삿따가 자고새로 태어났을 때
그는 친구인 원숭이(사리뿟따)와 코끼리(목갈라나)보다 앞선 자로서
이 두 친구의 선생이면서 지도자였는데
이 사실은 그들이 마지막으로 몸 받는 생에서의 관계를 알려주는 징후가 된다(37).
「토끼전생담」(316)에서도
보디삿따는 지혜로운 산토끼로 태어나 다시 지도자가 되었는데
원숭이(사리뿟따), 자칼(목갈라나) 그리고 수달(아난다)에게
계율과 자비의 소중함을 가르치고 있었다.
그때 신들의 왕인 삭까(제석천)가 그의 뜻이 얼마나 굳은지 시험하기 위해서
굶주린 브라만으로 변신하여 나타나자
그 산토끼는 그의 먹을거리가 되기 위해 불 속에 뛰어들었다.
이 미래의 두 상수제자는 여러 번 보디삿따의 생명을 구해주기도 하였다.
보디삿따가 사슴이었을 때 덫에 걸린 일이 있었는데
동무였던 딱따구리(사리뿟따)와 거북이(목갈라나)는 덫을 부수고 그를 구해낸다.
그때 거북이가 사냥꾼(데와닷따)에게 잡히지만
사슴과 딱따구리가 그를 구해내는 데 성공한다(206).
그러나 보디삿따가 매번 운이 좋았던 것은 아니어서
『본생경』에는 비극적인 운명의 이야기도 있다.
어떤 생에서는
그분께서 젊은 브라만 청년들에게 베다를 가르치는 자고새였을 때
사악한 고행자(데와닷따)가 그를 잡아먹는다(438).
사자(사리뿟따)와 호랑이(목갈라나)가 친구인 자고새를 만나러 왔다가
그 고행자의 수염에 붙어있는 깃털을 보고는 그가 극악한 짓을 했음을 알게 된다.
사자는 자비를 베풀고자 했으나
호랑이는 그 고행자를 갈가리 찢어서 시체를 구덩이에 던져버렸다.
이 사건에서도 두 제자의 기질이 상당히 달랐음을 알 수 있다.
사리뿟따는 사자처럼 힘이 세면서도 너그럽고 온화했던 반면,
목갈라나는 마지막 생에서는 결국 깨달은 비구답게 해칠 줄 모르는 존재가 되었지만
여전히 호랑이 기상을 갖추고 있다.
『본생경』의 다른 곳에서는 보디삿따와 사리뿟따 둘 중의 한쪽이 인간이고
다른 쪽은 동물인 적도 있고 시혜자와 수혜자로서의 처지가 서로 뒤바뀐 적도 있다.
사리뿟따가 전사였을 때 보디삿따는 그의 군마였다(23).
보디삿따가 흰 코끼리로 태어나 베나레스 왕(사리뿟따)을 훌륭히 모시기도 하였다(122).
보디삿따는 자고새였고 사리뿟따는 그를 가르치는 현명한 고행자였던 적도 있다(277).
또 다른 생에서는 보디삿따가 사람이고 사리뿟따는 동물인 적도 있다.
예를 들어 은둔수행을 하던 보디삿따가
사악한 왕자(데와닷따)와 세 마리의 동물을 급류에서 구해낸 이야기도 있다.
그 동물들은 뱀(사리뿟따), 쥐(목갈라나), 앵무새(아난다)였는데,
감사의 표시로 숨겨둔 보물을 은둔자에게 드리려 하자 질투심 많은 왕자는 그를 제거하려 한다(73).
장차 중생제도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이들은 천상에 몸을 받아 나기도 한다.
한번은 보디삿따가 제석천이었을 때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는 각각 달의 신인 짠다와 해의 신인 수리야였다.
그들은 몇몇 다른 신들과 함께 악명 높은 구두쇠를 찾아가 베풀 줄 아는 삶을 살도록 교화한다(450).
보디삿따가 이들 미래의 제자를 이롭게 한 적이 더 많지만,
때로는 사리뿟따가 보디삿따를 도와주기도 한다.
그들이 반신(半神)인 뱀 나가(naaga)의 두 왕자로 태어났을 때
잔인한 브라만이 보디삿따를 잡아 구경꾼들 앞에서 요술을 부리게 한다.
형이었던 사리뿟따는 그를 찾아 나서서 이런 굴욕적인 삶으로부터 구해준다(543).
보디삿따가 덕성스러운 왕자 마하빠두마였을 때 계모가 그를 유혹한 적이 있었다.
이를 거절하자 계모는 그를 중상 모략하였고, 부왕은 그를 절벽에서 내던지게 했다.
그러나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에 산신령이었던 사리뿟따가 그를 받아 안전하게 구해 준다(472).
『본생경』을 보면 보디삿따와 사리뿟따는 인간으로 태어난 적이 훨씬 더 많았다.
이야기마다 보디삿따는 예외 없이 최고의 덕과 지혜를 드러내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거기서 사리뿟따는 그분의 친구, 제자, 아들, 동생으로 나타나며 그분에게 도움을 드리고
있다.
어떤 생에서는 보디삿따가 왕이었고 사리뿟따는 마차를 끄는 시종이었다.(151).
그들이 길에서 상대국의 왕(아난다)이 타고 가는 마차와 마주쳤을 때
사리뿟따와 상대국 왕의 시종(목갈라나)은 자기들이 모시는 왕의 장점을 서로 비교하게 된다.
목갈라나는 사리뿟따의 주인이 더 훌륭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자기 왕은 선한 사람에게는 상을 주고 악한 사람에게는 벌을 주어 다스리는데,
사리뿟따가 모시는 왕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 모두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다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감명 깊은 「인욕전생담」(313)에서
인욕을 설하는 성자인 보디삿따는 사악한 깔라부 왕(데와닷따)에게서 온갖 모욕과 고문을
당한다.
깔라부 왕이 보디삿따의 인내심을 시험하기 위해 사지를 찢었을 때
장군인 사리뿟따는 보디삿따의 찢긴 몸을 싸매주면서 제발 복수심은 갖지 마시라고
간청한다.
『본생경』의 좀더 긴 이야기에서는
보디삿따가 출가수행자의 길을 가게되면 사리뿟따도 그 구도행에 동참하는 일이 잦다.
두 사람의 기질에 그런 식의 출가 성향이 깊이 뿌리 박혀 있었다는 것은
그들이 마지막 생에서도 출가를 하고 난 후에야 영적인 완성을 이루었던 것을 보면 분명히 알 수 있다.
보디삿따가 사제의 아들인 핫티빨라였을 때
그 나라의 왕에게 후사가 없자 왕위를 계승할 상속자로 지명된다.
그러나 세속 삶의 위험을 알아차린 그가 고행자가 되기로 결심하자
세 아우가 뒤를 따르는데 그중 큰 동생이 미래의 사리뿟따였다(509).
「인드리야 전생담」(423)에서 보디삿따는 일곱 명의 상수제자를 거느린 고행자였다.
그 중에 연장자(사리뿟따)를 포함한 여섯 명은 결국 자신의 은둔처를 마련하려고
모두 떠나게 된다.
그러나 아누싯사(아난다)만은 그 분의 시봉자로 남는다.
이는 부처님과 아난다가 마지막 생애에서 맺을 관계를 미리 보여주는 것이다.
하지만 세속을 떠나려는 보디삿따의 결정을 사리뿟따가 항상 따랐던 것은 아니다.
한 번은 왕이었던 보디삿따가 고행자의 삶을 결심했을 때
그의 맏아들(사리뿟따)과 막내아들(라훌라)이 그 계획을 포기하라고 간청한다.
그러자 그는 아들에 대한 애착을 극복하려고 내심 갈등을 겪는다(525).
또 다른 생에서는 보디삿따의 출가 결심이 흔들리기도 하는데,
이번에는 나라다라는 고행자였던 사리뿟따가
신통력으로 모습을 나타내어 그 결심을 확고히 하도록 힘을 북돋워준다(539).
업의 풍랑에 시달리면서
이 두 거룩한 존재는 재생의 윤회 속에 세세생생 이렇게 떠돌며 살았다.
그러나 무지한 중생과는 달리
그들의 방랑은 목적 없는 것도 아니었고 방향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아주 먼 과거에 세웠던 서원에 의해서 인도되고 있었던 것이다.
십바라밀을 행하고 계행을 완성하고 동료애와 상호신뢰를 더욱 더 결속시키면서
그들은 수없이 많은 생을 보낸 후에야
그토록 오랫동안 갈구해 온 목적을 실현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들이 2천5백년 전에 인도 중부에서 마지막 생을 받아 나셨을 때
한 분은 천상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신 고따마 부처님으로,
다른 한 분은 가장 뛰어난 제자인 법장 사리뿟따 존자로 태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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