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비구 중에서도 사리뿟따는 남을 돕는 일에 탁월하였다.
「데와다하경(『상응부』 22:2)」에서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현명하고 다른 비구들에게 도움을 주는 이다."라고
당신의 훌륭한 제자에 대해서 직접 말씀하고 계신다.
주석서에서는 이 말씀을 설명하면서 남을 돕는 방식에 대한 전통적인 구분의 한 예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사리뿟따는 물질적인 도움과 법을 통한 도움, 두 길로 도움을 주는 이다."
그가 어떤 식으로 물질적인 도움을 주었는지는 주석서에 자세히 나와있다.
다른 비구들이 이른 아침에 탁발하러 갈 때에도 사리뿟따는 가지 않았다.
그 대신 모두가 떠난 후에 도량을 구석구석 돌며 비질이 안된 곳은 쓸어내고
쓰레기가 남아있으면 치웠다.
침상이나 의자나 그릇이 제 자리에 있지 않으면 가지런히 놓았다.
불자가 아닌 수행자들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 무질서한 것을 보게 되면
비구들을 욕하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그 다음, 그는 간병실로 가서 환자들을 위로해주고 필요한 것이 없는지 물었다.
그리고나서 필요한 것과 약품을 구하기 위해 늘 탁발을 다니던 곳이나 아니면 다른 적당한 곳으로
어린 사미들을 데리고 갔다.
약을 구하면 사미에게 건네주며 이렇게 말했다.
"병든 이 돌보는 것을 세존께서는 칭찬하셨네. 이제들 가보게나. 선한 이여, 조심하시게!"
사미들을 간병실로 돌려보낸 후에야
그는 탁발을 가거나 공양을 올리겠다고 한 집으로 가거나 하였다.
수행처에 머무를 때 사리뿟따의 일과는 늘 이와 같았다.
세존을 모시고 길을 떠날 때에도 그는 상수제자임을 의식해 신을 갖추어 신거나
햇빛가리개를 들지 않았으며 앞장서서 걸어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어린 사미에게 자신의 발우와 가사를 맡겨 일행을 따라가게 한 다음,
노약자나 어린 사람들을 돌보고 상처난 사람에게는 약을 발라주고 나서
같은 날 늦게나 다음 날 그들을 데리고 떠나는 것이었다.
한번은 사람들을 보살피다가 앞서 간 일행이 쉬고 있는 곳에 아주 늦게 도착했다.
사리뿟따는 마땅한 잠자리를 구하지 못해 가사로 이슬을 가리고 앉은 채 밤을 지새야 했다.
그것을 보신 세존께서는 다음날 비구들을 모이게 하신 후 「자고새 전생담」(37)을 설하셨다.
그 이야기는 코끼리와 원숭이와 자고새가 누가 가장 연장자인가를 확실히 하고 나서
그분에게 존경을 표하며 함께 살았다는 내용이다.
그런 다음 부처님께서는
"숙소는 연장자 순으로 배정해야 한다."(『율장』 2:160-61)는 계율을 정하셨다.
사리뿟따는 사람들에게 물질적 도움을 주는 동시에 그 못지 않게 법의 도움을 주었다.
예를 들어 요양실에서 나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미띠굿따라는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벗이여, 오온이 지속되는 한 모든 느낌이 바로 고(苦)라오.
오온이 멸해야 고도 사라지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느낌의 관찰[念受]이라는 명상주제를 주고 나서 떠났다.
사미띠굿따는 그의 가르침을 따라 통찰력을 증진시켰고 아라한이 되어 육신통을
증득하였다
(『장로게』 81게와 주석서).
또 다른 예로 사리뿟따가 부처님의 대시주자인 아나타삔디까에게 들려준 병상법문이
「예류도상응」에 있다(『상응부』 55:26).
머리가 으스러질 듯한 격심한 고통으로 시달리고 있는 아나타삔디까에게
사리뿟따는 다음과 같은 법문으로 이미 상당한 경지에 이른 이 재가신자를 위로하고 있다.
그가 예류도에 들었으니
이제 비참한 고통 속으로 다시 태어나도록 이끄는 나쁜 습성으로부터는
완전히 해방되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또한 그가 불법승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자에게 걸맞는 계행이라는
네 가지 예류지를 이미 갖추고 있다는 점도 상기시켜 주었다.
아울러 그는 팔정도를 확고히 닦았고
그리하여 도과와 깨달음과 해탈에 이를 것이 분명하다는 것도 알려주었다.
그 말을 듣자
아나타삔디까는 고통이 가라앉았고 바로 그 자리에서 병이 씻은 듯이 나아버렸다.
그는 감사의 표시로 자기를 위해 마련된 음식을 사리뿟따에게 공양했다.
한번은 부처님께서 가르침이 충분하지 않았다고 사리뿟따를 은근히 나무라신 적이 있다.
브라만 다난자니의 임종의 자리에 사리뿟따 존자가 방문했다.
브라만들은 범천을 동경하고 있다고생각한 존자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범천에 이르도록 자비희사의 사무량심을 설하였다.
하지만 해탈의 길은 가르쳐주지 않은 채 그의 설법을 마쳤던 것이다.
사리뿟따 존자가 돌아왔을 때 세존께서 물으셨다.
"사리뿟따여, 브라만 다난자니에게 가르쳐 줄 것이 더 있었는데
왜 그의 생각을 열등한 범천세계에 머물게 두고 그 곁을 떠나왔느냐?"
이에 사리뿟따는 대답했다.
"저는 '브라만들은 범천을 동경하니
브라만 다난자니를 범천의 브라만들과 합류하도록 안내해 주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니 브라만 다난자니가 죽어서 다시 범천에 태어나지 않았느냐, 사리뿟따야."
「다난자니경(『중부』 97)」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윤회를 끝낼 수도 있는 사람이 열등한 범천에 태어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한 예로서
주목할만하다.
때로는 「삼명경(Tevijja Sutta)」에서처럼 부처님께서도 범천까지만 이끌어주시기도 한다.
하지만 다난자니의 경우,
그가 더 높은 가르침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음을 부처님께서는 아셨던 반면,
사리뿟따는 중생의 근기를 알아보는 부처님의 혜안을 갖지 못해서
그 점을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그 결과, 다난자니는 범천에서 오랜 세월을 보내야 했고
해탈을 이루려면 다시 인간의 몸을 받아 태어나야만 했을 것이다.
찬나 장로가 앓아누워 심하게 고통받고 있을 때에
사리뿟따 존자가 마하쭌다 장로와 함께 그를 방문한 적이 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보고 사리뿟따는 필요한 약과 음식을 찾아 나서겠다고 했으나
찬나는 이미 죽을 결심을 했으니 그만 두라고 했다.
그런 결심을 거두라고 그에게 간청해 보았으나 아무 소용없었고,
그들이 떠나고 난 뒤 찬나는 칼로 목숨을 끊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일을 두고 찬나 장로는 잘못이 없노라고 말씀하시고 있다.
죽어가는 동안 아라한과를 이루어 구경열반에 들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는 「찬노와다:찬나 훈계경(『중부』 144)」에 나온다.
아나타삔디까가 세상을 떠나게 되었을 때였다.
그는 사리뿟따 존자께 자비심을 베풀어 자기를 찾아와 달라고 간청하였다.
즉시 아난다와 함께 찾아온 사리뿟따는
이 죽어가는 사람에게 염리(厭離)에 대하여 감동적인 법문을 설해주었다
(『중부』143).
조건지어진 세계의 모든 현상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하고
육근, 육경, 육식, 육촉, 육수(六受),
즉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한다는 내용의 법문이었다.
이 심오한 설법에 감동되어 아나타삔디까는 눈물을 흘리며
이에 견줄만한 법문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노라고 했다.
이 법문을 듣고 얼마 후 아나타삔디까는 죽어서 도솔천에 다시 태어났다.
온 세상이 잠들어 있는 어느날 밤
새로 천신이 된 아나타삔디까가 천신의 모습으로
기원정사를 방문하여 세존 앞에서 상수제자 사리뿟따를 칭송하는 게송을 읊었다.
지혜와 계행과 마음의 평화를
진정 사리뿟따는 갖추었도다.
아무리 빼어난 비구라도
그를 능가할 수 없으리.
다음날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이 일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방문객이 누구였는지는 알려주시지 않았다.
그러자 아난다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 천신은 틀림없이 아나타삔디까일 것입니다.
그는 사리뿟따 존자에 대한 믿음이 돈독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아난다의 추측이 맞다고 하셨다.
법으로 도움을 베풀 때에도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듯 감동적이었다.
그는 훌륭한 인도자이며 정신적으로도 탁월한 조언자였다.
사람을 이끄는 일에 있어서 인간의 마음을 예리하고 깊이 있게 이해했으며
그들에게 따뜻하고 동정어린 관심을 기울였다.
그의 지도를 받은 사람들은 바로 이러한 점에서 크게 고무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사리뿟따는 자신이 지도하고 있는 비구들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보살펴주며
다정한 훈계로 자제심을 길러주었다.
또 비구들이 정진을 잘 하면 칭찬을 아끼지 않고 격려해 주는 것을 보아도
그가 스승으로서 완벽했을 뿐만 아니라 훌륭한 도반의 자질 또한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작게든 크게든 어떻게든 늘 도움을 베풀곤 했다.
스스로 성스러운 삶의 계행을 구족하고 있기에 남들의 계행이 구족되어 있는지도 바로 알 수 있었고,
덕성이 잠재해 있는 경우 그 성품을 계발하는데 능숙했으며,
계행이 완성된 경우 누구보다 먼저 그것을 칭찬해 주었다.
정녕 그의 완벽한 성품은
냉담하거나 무관심한 것이라기보다는
한 인간의 섬세하고도 다정다감한 자질이
고양된 정신 속으로 넉넉하게 녹아든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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