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기능을 닦음 경은
세존께서 까장갈라의 무켈루 숲에 머무실 때
빠라사리야의 제자인 웃따라 바라문 학도와 감각기능을 닦는 것에 관해 말씀을 나누시다가
그와 아난다 존자에게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을 닦음'에 대해서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웨사카의 보름날 새벽에 입적하신 후, 대반열반경, 디가니까야 주석서 서문 등을 따르면
7일 동안은 세존의 존체에 향과 화환으로 예배하고, 그 뒤 7일 동안은 화장을 하고, 다시 7일 동안은
격자 모양의 틀을 만들어 집회소에서 사리에 예배합니다. 이 21일째 되던 날 결집을 위한 갈마를
진행하여 그로부터 40일 후에 라자가하에서 모일 것을 정합니다. 아자따삿뚜 왕이 장엄한 칠엽굴에서
7개월에 걸쳐 대합송, 1차 결집은 진행됩니다.
디가니까야가 '존재에 대한 외도의 62견'을 파하는 「범망경」(D1)으로 그 처음DL 장엄되고, 그
마지막은 사리뿟따 존자께서 하나의 구성요소를 가진 법 10개로부터 차례로 10개의 구성요소를
가진 법 10개까지 전부 550개의 법을 설하시어 '모든 매듭을 풀어버리고, 열반을 증득하고, 괴로움을 끝장내는' 34번 째 경인 「십상경」(D24)으로 그 처음과 끝이 장엄되는 것처럼,,,
이 맛지마니까야는 그 처음이 '모든 법의 뿌리'를 설하시는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으로
장엄되고, 그 마지막은 152번 째 경인 본 경 「감각기능을 닦음 경」(M152)으로 장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各 니까야의 처음과 마지막을 해당 경들로 장엄한 것은 경을 결집하신
아라한들의 생각과 배려를 엿볼 수 있게 하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 '감각기능을 닦음'으로 맛지마니까야의 마지막을 장엄하심
- 세존의 위없는 가르침은
1) 이 모든 것은 무엇인가?, 2) 이 모든 것은 왜 생겨났는가?, 3) 이 모든 것은 그 끝이 어디인가?,
4) 어떻게 그 끝에 이르는가?에 대한 것입니다.
그분은 1) 이 모든 것을 다섯 무더기로 '괴로움'임을 드러내셨고, 2) 무명과 여섯 감각장소의
갈애에서 생겨났다고 설하셨고, 3) 여섯 감각장소에서 갈애가 소멸하면 이 모든 것도 소멸한다고
설하셨고, 4)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탐닉과 자가학대에 몰두하는 둘 다를 여읜 중도 즉, 팔지성도를
닦음에 의해 그 끝에 이름을 설하셨습니다. 이같이 '네 가지 거룩한 진리' 즉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셨습니다.
(* 대념처경, D2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http://blog.daum.net/ibakdal/1737035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 http://blog.daum.net/ibakdal/17370354)
- 그러므로 세존의 가르침의 요체는 '여섯 감각장소'를 떠나지 않습니다.
'오온(五蘊)' , '이 모든 것' 즉, 다섯 무더기는 이 '여섯 감각장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일어나고 사라지는 도리가 '연기(緣起)'입니다.
사성제를 설하심이 동전의 앞면이라면, 그 뒷면은 여섯 감각장소(육내외처, ayatana)요, 오온이요,
연기여서 이 둘은 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한 쪽을 설하면 다른 한 쪽을 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섯 감각기능을 닦음'은 세존의 가르침에 있어서 그 처음이요 중간이요 마지막과도
같은 것입니다. 맛지마니까야가 이 「감각기능을 닦음 경」으로 장엄되는 것은 참으로 지당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이유입니다.
■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의 닦음
- 세존께서는
1) 눈으로 형색을 보고, 2) 귀로 소리를 듣고, 3) 코로 냄새를 맡고, 4) 햐로 맛을 보고,
5)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6)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마음에 드는 느낌,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한 느낌이 일어날 때
'이것은 형성되았고, 거칠고, 조건에 따라서 일어난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아
이러한 감각접촉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러한 느낌들을 소멸하여 흔들리지 않고,
그 반대로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고 할 '평온'을 확립하는 것이
성자의 율에서 위없는 감각기능을 닦은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눈있는 사람이 눈을 떳다가 감듯이, 힘센 사람이 별 어려움 없이 손가락을 튀기듯이,
연잎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남아있지 않고 굴러 떨어지듯이, 혀끝에 모아둔 침을 별 어려움 없이
내뱉듯이. 힘센 사람이 팔을 펴고 구부리듯이, 달궈진 철판에 물방울이 떨어지면 즉시에 증발해서
사라지듯이,,, 그렇게 빠르고 신속하고 쉽게 그에게 어떤 것이 일어나든 어떤 느낌이 일어나든
그것은 그에게 소멸하고 '평온'이 확립된다라고 설하셨습니다.
■ 유학의 감각기능을 닦음
- 1) 눈으로 형색을 보고, 2) 귀로 소리를 듣고, 3) 코로 냄새를 맡고, 4) 햐로 맛을 보고,
5)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6)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마음에 드는 느낌,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한 느낌이 일어날 때
그에 대해서 부끄러워하고 수치스러워 하는 것이 유학의 도닦음이라고 설하셨습니다.
■ 감각기능을 닦은 성자
- 세존께서는
1) 눈으로 형색을 보고, 2) 귀로 소리를 듣고, 3) 코로 냄새를 맡고, 4) 햐로 맛을 보고,
5) 몸으로 감촉을 느끼고, 6) 마노로 법을 지각하고,
마음에 드는 느낌, 마음에 들지 않는 느낌, 마음에 들기도 하고 들지 않기도 한 느낌이 일어날 때
1] 혐오스러운 것에서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기를 원하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며 머물고,
2]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서 혐오스럽다고 인식하기를 원하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며 머물고,
3]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기를 원하면
혐오스럽지 않다고 인식하여 머물고,
4]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혐오스럽다 인식하기를 원하면
혐오스럽다고 인식하여 머물고,
5]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피하고 평온하게 머물기를 원하면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평온하게 머문다
라고 설하시고, 이것이 '감각기능을 닦은 성자'라고 설하셨습니다.
- 일체 물질정신현상(名色)은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되어 나의 여섯 감각장소를 통해 드러난 것입니다.
그것을 만나는 것은 나의 업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어떤 감각대상을 만나서 감득(感得)할 때,
1) 혐오스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에서 세존께서 라훌라 존자를 교계하셨듯이
땅, 물, 불, 바람이 깨끗한 것, 더러운 것, 똥, 오줌, 침, 고름, 피를 다 받고, 씻고, 태우고, 날리듯이
허공이 이들을 다 담고도 어느 곳에도 머물지 않는 것처럼
그 때문에 놀라지도, 모욕을 당하지도, 넌더리치지도 않는 것처럼
그 혐오스러운 것이 마음을 사로잡지 않아 혐오스럽지 않다는 인식으로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 M62, http://blog.daum.net/ibakdal/17372299)
2) 혐오스럽지 않은 것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무상한 것이요, 조건을 따라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이요, 변하기 마련인 것이요,
소멸하기 마련인 것이며,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고,
결국은 생노병사의 괴로움을 피할 수 없고, 본질이 괴로움이 드러난 것이요,
나의 것도 나도 나의 자아도 아닌 것이거늘, 저것에 미혹되고 이끌리고 거머쥐어
끝없는 괴로움이 계속되는 것이구나라고 마음챙겨 혐오스럽다는 인식을 가지고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http://blog.daum.net/ibakdal/17372052)
3)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에 대하여
생겨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영을 원인으로 갈애를 조건으로 생겨난 것이고,
무상하고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아며,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어서
혐오스럽지만. 그것이 세상이고 그것이 중생이므로 잘 생겼든 못생겼든 깨끗하든 더럽든
그에 대한 자애(慈)와 연만(悲)과 더불어 함께함(喜)과 평온(捨)의 머묾으로
'모든 세상 모든 중생 나같이 여겨' 나 또한 그러했다라고 인식하면서
'일체가 오직 청정하다.', 진속일여(眞俗一如)하니 '드러난 일체가 평등하다.'라고 생각하여
혐오스럽지 않다는 인식과 함께 머물 수 있을 것입니다.
(* 빠띠까 경, D24, http://blog.daum.net/ibakdal/17370421)
4) 비록 그러하나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에 대하여
생겨나지 말아야 할 것이 무영을 원인으로 갈애를 조건으로 생겨난 것이고,
무상하고 영원하지 않고 변하기 마련아며,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라고,
괴로움이며 괴로움이 드러난 것이며,
나의 것도 나도 나의 자아도 아닌 것임을 꿰뚫어 알아서
염오하여 마땅하고, 혐오스럽다고 인식하면서 부정상(不淨想)을 닦으면서
일체 오온에 대한 탐욕의 빛바램을 닦을 수 있을 것입니다.
(*라훌라를 교계한 짧은 경, D147, http://blog.daum.net/ibakdal/17373099)
5) 그는 혐오스러운 것에서 혐오스럽지 않음을 보고,
혐오스러럽지 않은 것에서 혐오스러움을 봅니다.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에서 혐오스럽지 않음을 보고
그 둘 다에서 혐오스러움을 봅니다.
그런 그는 이제 혐오스럽다든가 혐오스럽지 않다든가 하는 번잡함을 피하고
평온하게 머뭅니다. 마음챙기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면서 평온하게 머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이 모든 것이 일어나고 사라짐을, 그리하여 이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꿰뚫어 알아
취착이 없어져서 그러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이 모든 것의 끝에 도달하여 이 모든 것을 벗어낫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수순(隨順)합니다. 그는 더없이 편안하기에 평온합니다.
그런 그는 거기서 그 어떤 것에도 흔들림이 없습니다.(無搖)
그런 그는 나고죽음을 여의었습니다.(不死)
(* 마간디야 경, M75, http://blog.daum.net/ibakdal/17372408)
이같이 그 뜻을 새겨봅니다.
■ '성스러운 신통'과 '성스럽지 못한 신통'
- 기실 이 '감각기능을 닦은 성자'의 법문은 「확신경」(D28)에서 '성스러운 신통'이라고
세존께서 설하신 바라고 사리뿟따 존자는 설하십니다.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신통변화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두 가지 신통변화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고,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습니다.
1]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툽니다.
1)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2)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3)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4)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합니다.
5)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합니다.
6)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합니다.
7)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합니다.
8)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9)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합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2]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고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가
1) 만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하여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2) 만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라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3)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4)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5)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제거한 뒤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거기서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신통변화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다른 (법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 확신경, D28, http://blog.daum.net/ibakdal/17371348)
이같이 새겼습니다.
'감각가능을 닦음',,,, 세존의 가르침의 시작이요 중간이요 끝입니다.
말로는 쉽습니다. 아는 것도 쉽습니다. 그러나 행하기는 어느 하나라도 어렵습니다.
저는 매미만한 벌에 머리를 쏘인 적이 있습니다. 병원을 찾아가서 치료를 하기 전까지는 정신이
아뜩하고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으며,, 그후에도 한 달 정도는 통증에 시달린 기억이 납니다.
다른 일로 병원을 찾았을 때도 마찬가집니다. '이제 이렇게 죽는구나.'라는 절박함,,,
온몸에 주사기 여러 개 호스 줄을 달고 소변기를 달고 꼼짝할 수 없이 병상에 누워서
나라 할 것이 하나 없는 초라함과 무너짐의 기분 등이 생각납니다.
살다보면,,, 그보다 끔찍한 일들도 많이 겪습니다.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법들,,, 이들에 대한 탐냄, 성냄, 어리석음,,,,
한발짝이라도 벗어난 적이 있었는지,,, 아니 한 번이라도 그들을 바로 보고 벗어나려 노력한 적이라도
있었는지 돌아보게 됩니다.
세존께서는 「톱의 비유 경」(M21)에서
'양쪽에 날이 달린 톱으로 사지를 마디마디 잘라낸다 하더라도 그들에 대해 마음을 더립힌다면
그는 나의 가르침을 따르는 자가 아니다.'라고 설하십니다.
(* 톱의 비유 경, M21, http://blog.daum.net/ibakdal/17371899)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죽음의 고통에 허덕이는 아나타삔디까 장자에게
'여기서 그대는 이렇게 공부지어야합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여섯 감각 장소에 마음챙겨
육내외처에, 알음알이에, 감각접촉에, 느낌에, 요소(dathu)에, 오온에, 무색계 4처에,
이 세상 저 세상에, 보고 듣고 생각하고 알고 탐구하고 마음으로 고찰 그 어떤 것도 취착하지 말고
마음에 의지하지 않을 것을,, '마음챙길 것을' 주문하십니다.
(* 아나타삔디까를 교계한 경, M143, http://blog.daum.net/ibakdal/17373068)
세존의 가르침은 그러한 것입니다.
공부를 할 만큼은 하여 알 만큼은 알았으니,,,
버릴 것은 버리고, 닦아야 할 것을 닦아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학대와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오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악의와 잔인함과 싫어함과 적대,
감각적 욕망을 향한 갈애와 나라는 자만,,,
다른 이에 대한 비난과 사악함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 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야다나바투의 공부 성취되기를 바라면서,, 야다나바투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불모산과 반룡산과 보리원, 지리산과 실상사, 설악산, 영천의 식진암,
그리고 기흥의 보라산, 치악산과 감악산과 용두산에 거하시는
모든 천신들과 약카들, 간답바들, 꿈반다들,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전하시는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또한 야마천왕과 그를 따르는 천신들에게,,,,
삽심일천의 삭까 천왕과 그를 따르는 천신들에게,,,
약카들을 거느리시는 꾸웨라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약카들,
간답바들을 거느리시는 다따랏따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간답바들,
꿈반다들을 거느리시는 위룰하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꿈반다들,
용들을 거느리시는 위루빡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용들과 그 권속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공덕을 새기고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이
부처님의 법을 만나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하신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고통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슬픔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20.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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