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81.가띠까라 경-어느 도공의 이야기

※後記: 가띠까라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7. 12. 8. 14:34


가띠까라 경은


한때 세존께서 많은 비구들과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실 때

세존께서 가던 길을 벗어나 어떤 곳에서 미소 지으신 일을 계기로 그 연유를 묻는 아난다 존자에게

깟사빠 부처님 시절에 가띠까라라는 도공(陶工)과 관련한 일화를 설하신 경입니다.


「대전기경」(D14)에 따르면 깟사빠 부처님은 이 행운의 겁에 석가족의 성자 고따마 부처님 바로 전에

오셨던 부처님이시며, 인간의 수명은 2만년이고, 끼끼라는 왕이 있었는데 그 수도는 와라나시라는

도시였음을 세존께서는 밝히고 계십니다.

                                                         (* D14, 대전기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136)



세존께서는 평소에 어떤 표정을 하고 계셨을까?,,, 웃으셨을까?,,, 그분 같은 분이 미소 지으시면

얼마나 아름다웠을까?,,, 라는 생각을 늘 하고 있었는데, 이때까지 경을 접한 바로는 그런 이야기가

일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본 경 「가띠까라 경」(M81)에서 '세존께서 미소 지으셨다.'라는 구절을

대하는 저의 마음은 참으로 기쁩니다. '아! 그분도 미소지으셨구나. 미소 지으실 때가 있었구나.'하는

마음입니다.


본 경을 따르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분은 항상 미소 지으신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여래는 이유없이 미소 짓지 않으신다.'라고 아난다 존자는 말씀하시고, 세존께서는 그것을 부인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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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생담을 받아들임


■ 전생담의 진실 


주석을 따르면 와라나시(Varanasi, 바라나시)는 옛적부터 까시(Kasi) 혹은 까시까(Kasika)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깟사빠 부처님 시대에 그 까시의 왕이 끼끼였습니다. 자따까에 따르면 끼끼의 딸들

가운데 우랏차다는 16살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 그에게는 7명의 딸이 더 있었는데 사미니, 사마나,

굿따, 빅쿠다시까, 담마, 수담마, 상가디시입니다. 그들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에 각각 케마,

웁빨라완나, 삐따짜라, 끼사고따미, 담마딘나, 마하마야 부인, 위사카 청신녀로 태어났다고 합니다.


케마, 웁빨라완나, 끼사고따미, 담마딘다 비구니는 다른 경들에 의하면 모두 아라한인 비구니들

이시며, 마하마야 부인이 부처님의 어머님이신 줄은 모르겠으나, 위사카 청신녀는 도과를 얻은 유명한

청신녀입니다.



세존께서 전생담을 말씀하시면 우리는 그것이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야기인지라 과연 사실일까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냥 있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어 교훈 삼아 하시는 것은 아닐까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하시는 전생담은 지금도 '까시'라고 불리는 바라나시의 나라의 이름, '끼끼'라는

왕의 이름이 「대전기경」에서 나오는 것 등과 같이 앞뒤가 틀리는 것이 없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지어낼 수는 없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끼끼 왕의 딸들을 보면 그들의 공덕도 있겠지만 부모의

공덕이 자식들의 다음 생까지 실로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고귀하고 선한 마음으로

지은 공덕은 특히 부처님의 법을 호지하는 거룩한 승가에 지은 공덕은 그 과보가 '측량할 수 없는 것'

이라는 부처님의 말씀은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지혜가 없어 살아오면서 만난 혹은 살아가면서 만날 사람들이나 존재들을 우연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행하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르고 마음대로

행합니다. 그러나 거짓이 없으신 그분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면, 내가 만났거나 만날 존재들은 단

명도 우연이 아닙니다. 배움이 없거나 수행이 덜 익어서 눈이 멀어서 그런 것이지, 그들은 내 옆에

참으로 가까이 있었던 사람들이고 전생의 다하지 못한 깊은 인과가 있어서 불가피하게 다시 만나지게 된 존재들입니다. 그러기에 내가 지금 그들에게 짓고 있는 행위(業)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새기게

됩니다. '뿌린대로 거두는' 것이고 뿌리는대로 거둘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설하셨습니다.


   "이처럼 존재로 인해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행한 업 때문에 태어난다

    태어나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한다.

    그러므로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 M57, 견서계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2258)



    "비구들이여, 모든 중생들 

     자신들의 행위()의 소유자이며, 행위의 상속자이고, 

    행위로부터 태어났으, 행위에 묶여 있고, 행위를 피난처로 하고 있다.


    선한 행위이던지 악한 행위이던지 그 어떤 행위라 하더라도  그 행위의 상속자가 된다."

                                                                                           (* 增支部  X 206. AN V, 288.)



위와 같은 세존의 말씀은 삼계 일체 중생의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하시는 천명이요 가르침입니다.

사람만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악처에 태어난 자, 축생, 귀신들, 천상의 신들, 심지어는

당신 자신까지를 두고 존재라면 '1) 그 존재가 왜 있는지?'를, '2) 그 존재 앞에 왜 어떤 세상 혹은

정신물질이 펼쳐지는지?'를 천명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그의 행위에 묶여 있습니다.'



■ 일체지자요, 한마디도 거짓이 없으신 분


이 세상에서 '유일한 정등각자'시요, 스스로 '일체지자'라고 선언하신 세존께서는

일체 세상을 연민하여 법을 설하셨습니다.

                                              (M26, 성스러운 구함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1946)



그렇게 법을 설하신 세존께서는 그 아들인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실 때에도 이렇게 설하십니다.


   "라훌라여, 그와 같이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는

    누구든지 어떠한 악한 행위라도 저지르지 못할 것이 없다고 나는 말한다.


    라훌라여, 그러므로 너는

   '나는 농담으로라도 결코 거짓말을 하지 않으리라.' 공부 지어야 한다."

                                (M61, 암발랏티까 라훌라 교계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2280)

                   

                        

이와 같으신 분이 본경 「가띠까라 경」이나 다른 과거의 이야기나 전생담을 하실 때 없는 이야기를

교훈을 하기 위해 만들어 내서 하실 이유가 있으실까 하는 생각입니다.                         



■ 어디서 들어본듯한  비슷한 이야기?


어떤 이들은 석가모나 부처님의 가르침은 윤회를 비롯하여 많은 부분이 베다를 근거로 하는

브라만교를 포함하는 힌두교의 전승을 빌려서 그대로 쓴다고 합니다. 그들도 해탈을, 열반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실제 학자들은 그렇다고 합니다. 세존께서 출가하셔서 첫 번째

하신 일이 당시 최고의 스승들로 알려졌던 알라라깔라마와 웃다까 라마뿟따를 찾아가서 그들로부터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를 배우시는 일이었습니다. 이는 세존의 가르침에서도 무색계 4처 선정 중

최고의 선정입니다. 그러한 삼매(samadhi)의 전승도 이미 있었던 것임에 분명합니다.


그러나 경에서 드러나는 수많은 왕들이나 유행승들 혹은 재가자들의 이야기들은 그 당시 살아있었던

사람들의 역사와 같은 것인데, 경을 보면 그 어느 것에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은 다른 스승들의 전승들과 다르고 오히려 시비논란과 충돌을 일으킵니다. 그러므로 저는 세존께서 그들과 비슷하거나 그들의

가르침으로부터 유래된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브라만이나 힌두의 전승은 부처님의 가르침 훨씬 이전부터 있었으므로 오랜 전승에 의지하지만

'근거없고 허망하고 결핍된' 것이었다면, 세존께서는 그야말로 이 세상의 '유일한 정등각자'로서

온전히 완성된 가르침을 설하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다른 이름은 '삼마 삼붓도' 즉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신 분'이십니다. 금광에 들어 금과 비슷한 것을 캐서 사람들에게 이것이 금이라하는 것은 쉽습니다. 참으로 어려운 것은 바닷가의 그것처럼 많은 모래에 정금(正金)이 뒤섞여있을 때, 아무도 거기서 금을 찾아낼 생각조차 하지 못할 때 그곳에서 포기하지 않고 금을 찾아내고 알아보고 검증하고 드러내는 일입니다. 그분의 깨달음은 그런 환경에서 니온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일체승자'이십니다.



어째서 '완전히 다른 가르침'입니까?


범아일여(梵我一如)를 이야기하지만 세존께서는 일체(梵)조차의 꿰뚫어 앎과 그 소멸을 설하십니다.

일체를 거머쥐고 있는 자, 부처님의 제자가 아닙니다. 참 나(眞我)와 상락아정(常樂我淨)의 달콤함을 이야기하지만 세존께서는 그런 '나'는 없음을 그런 영원과 행복은 없음을 바로 보라고 설하십니다.

그들은 마지막까지 정신물질과 그 있고없음을 의지한 영원한 행복을 이야기하지만 세존께서는 나의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호작용의 소멸과, 하여 나와 세상으로부터의 벗어남을, 그런 존재의 소멸을

'회상의 행복'이라고 설하십니다. 열반이 있으나 열반에 머무는 '자(者)'는 없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그들은 '이 모든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지 못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모든 것은 '괴로움'이라고 꿰뚫어 천명하셨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그 원인을

설하셨고, 이 모든 것의 소멸이 이 모든 것으로부터의 벗어남이 있음을 설하셨고, 어떻게 그 소멸에

이르는지를 설하셨습니다.


오온, 12처, 18계의 법도 유일한 것이요, 22근과 성스러운 연기(緣起)의 법도  사성제의 거룩한 진리도

유일한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와 비슷한 것조차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나를 포함한 이 모든 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분명히 설하시어 중생들과 세상의 족쇄를 벗겨버리셨습니다. 참으로 '세상의 장막을

걷어내버리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당신만이 아실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지, 팔정도의 37가지 미망에서

벗어남에 이르는 '도닦는 법'을 남김없이 드러내어 우리에세 주신 분이십니다. 이것도 유일한

법입니다. 그 누구도 이와 비슷한 것도 이야기한 적이 없습니다.

참으로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습니다..'



■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나와 세상을 바라보아야 한다.


전생담의 그 어떤 이야기도 허구가 아닙니다. 전생담의 어떤 이야기 혹은 단 한마디라도 허구가

있다면 부처님의 가르침 전체가 허구에 떨어지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있는 그대로 사실로 받아들이지 못히는 나의 '눈멂'과 '귀먹음'이야말로 문제요,

나의 그 무지(無知)와 무명(無明)이야말로 날 때부터 제가 지고 나온 병입니다.


나는 참으로 세존의 말씀대로 형색(形色)을 바로 보는가라고 가만히 물어봅니다.

나는 참으로 세존의 말씀대로 소리를 바로 보는가라고 가만히 물어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일어나서부터 잠들 때까지 온종일 형색과 소리와 갈애에 끌려다닙니다.

잠자고 꿈을 꿀 때마저도 마음 속 깊은 곳 갈애와 거기서 펼쳐지는 물질과 정신에 혼이 빠져버리는

저 자신을 봅니다. 이리저리 치달리며 잠시도 고요한 적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의 진실입니다.


오온에서,,, 근(根), 경(境), 식(識), 촉(觸), 수(受), 상(想), 행(行), 애(愛). 심(尋), 사(思)에서,,,

나 자신과 세상이라는 매순간 부딪히는 일상사를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보야아만 하는

것입니다. 고요히 침잠하여 낱낱이 보고 아는 시간을 늘려 나가야 하겠습니다. 결국 수행입니다.



세상은 물결치며 변해 갈 것입니다. 정해진 것은 없습니다. 행한대로 흐르고 행한대로 정신과 물질은

펼쳐질 것입니다. 우주는 앞으로도 무한히 성주괴공할 것입니다. 인간의 문명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할 것이고, 정신작용과 물질작용은 더욱더 증장할 것입니다. 뿝바위데하에 가서 다른 인간들을

만날지도 모릅니다. 우주는 불과 물과 바람에 의해서 주기적으로 파괴될 것이고, 사람의 수명은

8만4천살에서 10살까지 줄엇다가 늘었다가를 반복할 것입니다.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의 31처의 존재들은 끝없이 태어나고 죽음을 계속할 것입니다. 사람들은 세상이 멸할 때 선한 마음을 내어 광음천의 신들로 태어날 것이고, 그중에 누구는 범천이 생겨날 때 먼저 거기에 태어나서 내가 원하니 모든 것이 생겨나더라고 내가 이 모든 것을 창조했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삼십삼천의 신들은 아수라들과 전쟁을 할 것입니다. 인간들은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다가 천상의 신들과 같이 하늘을 날아 다니다가 타고난 광채가 사라지자 태양과 달이 드러난 것을 두고 생겨났다고 날 것이고, 땅을 탐하는 일은 또 일어날 것이고, 남녀가 생겨날 것이고, 돌도끼 들고 쫓아다니는 일은 다시 일어날 것입니다. 인간세는 지난 5천년에서 유감없이 드러내었듯이 1, 2차 세게대전에서 번연히 보였듯이 지금도

그렀듯이 증오와 폭력과 대량살상은 더 큰 규모 더 발전한 기술로 일어날 것입니다. 원하고, 구하고,

얻고, 판별하고, 더 욕심내고, 거머쥐고, 인색하고, 인색을 근거하여 지키려하고, 지킴을 근거로

칼과 몽둥이 들고 거짓말하고 죽이는 모든 악행들은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입니다. 

탐욕과 성냄과 이 지긋지긋한 무명(無明)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세에서

정의와 평화가 구현되는 것은 꿈처럼 아주 잠깐의 일일 뿐입니다. 세상은 항상 불완전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다 무엇이란 말입니까? 세상에 부처님이 오심은 축복입니다. 부처님의 법을

만날 수 있는 것은 더 없는 행복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닦아서 나와 세상을 바로 보는 일말고는

일이 없습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오직 괴로움이 일어나고 오직 괴로움이 사라질 뿐입니다.'  마음챙겨

나와 세상을 바로 보는 일말고 해야할 다른 일이 없는 것입니다. 숨에 마음챙갸는 것을 시작으로,

몸과 마음을 바로 보고, 형색과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의 즐거움에 끌려다니지 않으면, 그렇게

자신의 마음을 바로 정복한 그가 무한한 미래에도 과거에도 현재에도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시공(時空)과 생사(生死)를 넘어서, 어둠의 심연과 최상의 광명을 모두 담아버린, 일어남 사라짐을

벗어나 그쳐버린, 지고한 고요힘이요 행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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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띠까라 경으로 돌아와서


■ 으뜸가는 신도


세존께서는 까시의 왕 끼끼에게 가띠까라 도공에 대해서 이럴게 말씀하십니다.


1)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완전한 믿음을 구족했고, 성자들이 좋아하는 계율을 구족했고,

2) 괴로움,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의심이 없고,

3) 한 번 먹는 자이고, 청정범행을 닦고, 계를 구족햇으며, 좋은 성품을 지녔고,

4) 보석과 황금과 금과 은을 버렸고,

    - 훔치지 않은 흙으로 도기를 만들어서 누구든지 원하는 사람들에게 가져가라고 함

5) 눈멀고 연로한 부모를 봉양하고,

5)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아나함의 도과를 얻은 자



■ 부처님들


실로 측량할 수 없는 분들십니다만. 과연 부처님들은 어떤 분들이신가 궁금한 적이 많습니다.



「성스러운 구함 경」(M26) 등 니까야에 드러난 모든 석가모니 부처님의 모습과 가르침,

「대전기경」(D14)에 나타난 위빳시 부처님의 모습,마라 견책 경」(M58)에 상수인 위두라 존자와

탁발을 가시다가 존자께서 돌을 맞아 머리가 깨졌을 때 까꾸산다 부처님의 모습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본 경에서 '친근함이 친척이다.'라는 우 또다나 사야도의 말씀처럼 재가신자의 집에 가셔서

부엌에서 손수 솥과 냄비에서 밥과 국을 퍼서 드시며 신뢰와 친근함을 표하시는 모습, 비가 새는

토굴에 거하시며 가띠까라 도공의 집에 가서 지붕을 벗겨오라고 공덕을 짓게 하시는 깟사빠 부처님의 모습,,,,어찌 보면 삼계의 위없는 스승께서 저런 공양과 거처를 쓰시다니하는 생각에 눈물이 나기도

하고,,, 어찌 보면 그 차별하고 가리지 않는 모습과 검박함과 스스로 낮추심에, 아! 저런 모습이 진실

부처님의 모습이구나라고 느끼게 됩니다.


일체 중생을 내가 구했다는 모습도, 나야말로 세상과 중생들의 주인이라는 모습도, 그러한 나이니

나는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모습도, 신통자재하신 분으로 다른 이를 위압하여 겁을 주는

모습도,,, 터럭 하나라도 이 모습은 이상한데라는 모습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낮은 데로 더 내려

가십니다. 왕의 공양청을 받으시고, 기녀의 공양에도 응하시고, 80세의 노구에 반열반하시기 전까지도 탁발을 나가시고 계를 구족하시며 탈 것이 없이 유행하시어 전법을 계속하셨습니다. 그 어디에도 화를

내시거나 다투는 모습이 없습니다. 



'다섯 눈을 깆추시고 위엄을 갖추신' 위빳시 부처님도,

'모든 존재를 연민히시는'는 시키 부처님도,

'씻어낸 분이시요, 고행자(高行者)'이신 웻사부 부처님도,

'마라의 군대를 정복하신' 까꾸산다 부처님도,

'청정범행자시요 도의 완성자'이신 꼬나가마나 부처님도,

'모든 곳 모든 번뇌로부터 해탈하신'  본 경의 깟사빠 부처님도,

'이 법을 설하시고, 모든 괴로움 몰아내셨으며, 광명을 나투시고 위엄을 갖추신' 석가족의 성자

 고따마 부처님도,,,


모두 이같이 한량없는 자애와 연민을 갖추신 분들이고,

미천하고 낮은 데라 할지라도 행함이 이같은 분들이셨습니다.

이같이 위없는 스승들이신 여래님들께 예경합니다.  ((()))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은 행하심과 가르침을 보여주신 깟사빠 부차님께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도덕있음이 이같이 높을 수 있음을 보여주신 정거천에 머무실 가띠까라 존자님께 예경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그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은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이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를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새로이 인연을 맺게된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늪을 벗어나고 강을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7. 12.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