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 견책 경은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 박가에서 악어산 근처 베사깔라 숲의 녹야원에 머무실 때
사악한 마라가 목갈라나 존자의 배에 들어가 창자에 붙어 존자를 괴롭히려 한 것을 두고
목갈라나 존자께서 그를 견책하신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존자께서는 마라를 보고 '나오라'라고 하시면서 여래와 여래의 제자들을 성가시게 하지 마라,
너 스스로 오랫동안 불이익과 고통을 받게하지 말라라고 하지만,
마라는 존자께서 그를 보지 못하고 알지 못하면서 저런 말을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나오지 않다가
결국 존자께서 알고 보면서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고 나오게 됩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마라에게 당신이 까꾸산자 부처님 시절에 '두시'라는 마라였으며
깔리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현재의 마라인 그대는 그녀의 아들이었으므로 너는 나의 조카였다라고
밝히십니다.
상수제자이신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 마라였다니 참으로 놀랍기만 합니다.
또한 비록 같은 겁이지만 까꾸산다 부처님께 설법 제일인 위두라 존자와, 상수멸을 자유로이 증득
하는 산지와라는 두명의 상수제자가 있었음을 아는 그런 지혜도 참으로 놀랍습니다.
1. 비난/욕/괴롭힘/모욕에 대해서 사무량심으로 대하다.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당신이 두시 마라였을 때 까꾸산다 부처님을 성가시게 하고
그 제자들을 어떻게 타락시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려 했는지 설하십니다.
그 첫째는 바라문·장자들을 사로잡아 비구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히고, 모욕하는 것이었습니다.
비구들을 보고 1) 올빼미가 나뭇가지에서 생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2) 자칼이 강둑에서 물고기가 나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3) 고양이가 문기둥이나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서 쥐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4) 짐을 내려놓은 당나귀가 문기둥이나 쓰레기통이나
하수구에서 먹을 것을 찾는 것처럼,,,
'우리는 禪을 닦는 자다.' 말하면서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게을러빠진 채'
이리저리 궁리하는 척한다고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 승가나 비구들에 대한 비아냥이기도 합니다.
세존께서는 마라가 이러한 의도가 있음을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그에 대해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의 거룩한 머묾 즉 사무량심 혹은 사범주의 마음을 닦고
그렇게 그 바라문·장자들을 대하라고 가르치십니다.
말로는 쉬운 일이나, 행동으로 그 마음으로 자신을 모욕하고 괴롭히는 이들에게 그렇게 대한다는 것은
참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입니까?,,, 이런 덕목을 실행하는 분을 아직 저는 들은 적은 있으니
본 적은 없습니다.
2. 존경/존중/공경/경의에 대하여 부정관과 무상함을 봄으로 대하다.
비구들을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히고, 모욕하는 것으로 자기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자
마라는 작전을 바꾸어 이번에는 바라문·장자들을 사로잡아 비구들에게 존경과 존중과 공경과 경의를
표하게 합니다. 그렇게 하여 비구들에게 내가 나라하며 우쭐대는 마음을 가지게 하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도 오늘날에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입니다. 국내든 국외든 여러 전승의 비구들의 모습을 보면
나는 출가가라는 망상에 사로잡혀 재가자들을 얕보려 하거나, 약간의 명성이나 회중이라도 생기면
그것을 거머쥐고 세존의 가르침에서 멀어져 버리고 '자신'이라는 헛것에 함몰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마라의 의도를 제자들에게 알리시고, 제자들에게
1) 몸에 대한 부정관(不淨觀)을 관찰하며 머물고,
2) 음식(段, 觸, 意思, 識)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3) 일체 세상에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4) 모든 형성된 것들에서 무상을 관찰하면서 머물 것을
가르치십니다.
'일체 세상에 기쁨이 없다.'라는 한 마디 까꾸산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수브라흐마 게송(제2상윳따 17번째 게송)에서
'모든 것 놓아버림을 제외하고 생명들의 행복을 나는 보지 못하노라.'라고 천명하시는 모습,
그리고 「범천의 초대 경」(M50)에서 '나는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노라.'라는 천명과 더불어
세존·아라한·정등각자이신 여래들께서 세상과 존재와 행복이라는 모든 뿌리들에 대해서 어떻게
보시는지, 어떻게 보아야하는 것인지를 분명히 가르쳐주신다는 점에서 참으로 소중한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거룩하신 까꾸산다 부처님께 에경합니다. 거룩하신 여래들께 예경합니다. ((()))
3. 두시 마라, 뜻대로 되지 않자 승가에 폭력을 행사하다.
_ 마음챙겨 연민으로 非폭력으로 대하다.
비난, 욕, 괴롭힘, 모욕으로도 존중, 존경, 공경, 경의로도 성스러운 제자들을 마음의 오염원으로
존재의 영역으로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지 못하고, 그 비구들의 오고 감을 보지 못하자,
두시 마라는 까꾸산다 부처님을 따라 시자로 탁발을 나간 위두라 존자에게 어떤 소년들의 몸에 들어가
돌을 던져 그 머리를 깨 피흘리게 합니다.
자신의 뜻대로 그 무엇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배욕입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자신이 이미 부족함이 없는데도 자신의 생각대로 되지 않으면 그것을 이유로 성내고 미워하며 상대에게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줘서 그로부터 굴복하는 모습을 보려 하는 것입니다.
자기와 다름을 용납하지 못하는, 상대가 자기와 마치 copy한 것처럼 같기를 바라거나 자기의 지배가
미치는 세계 안에만 안주하기를 바라며, 그것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는 괴이한 마음입니다.
이것은 아주 특별한 '자기 존재의 확인'이며, 또 하나의 '존재 양식'이며 '악행'입니다.
종교, 믿음, 신념,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가진 것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배하려 하고 지배당하지
않으려 함을 이유로 수많은 폭력과 악행이 정당화되고 저질러지고 있음을 우리는 매일 목도합니다.
■ 세상의 모든 악(惡) _ 대인연경에서
세존께서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이치인 연기의 큰 법을 설하신 「대인연경」(D32)에서
'느낌을 조건으로 갈애가 있다(受緣愛)'를 설하신 後, 중간에 별론으로 어떻게 해서 세상의 모든
행악이 일어나는지 설하신 것은 의외의 크나큰 소득입니다.
관점을 달리해 보면 세상에는 대부분의 존재가 그러한 '한없는 사악함'에 빠져있고, 그러한 행악을
상시로 행하므로, 그것을 잘 보고 이 연기법으로 그런 세상을 넘어서라는 각별한 실전적 의미가
있기에, 어찌보면 연기법에 비하면 사소할 수도 있는 세상의 행악을 각별히 설해두신 것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그 종지(宗旨)는 아래와 같습니다.
1) 갈애를 조건으로 추구가 있다.
2) 추구를 조건으로 얻음이 있다.
3) 얻음을 조건으로 판별이 있다.
4) 판별을 조건으로 욕망이 있다.
5) 욕망을 조건으로 탐착이 있다.
6) 탐착을 조건으로 거머쥠이 있다.
7) 거머쥠을 조건으로 인색이 있다.
8) 인색을 조건으로 수호가 있다.
9) 수호를 조건으로 수많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이 생겨난다.
- 몽둥이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며,
말다툼하고, 분쟁하고, 상호비방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함
(*http://blog.daum.net/ibakdal/17370171
여기서 보여주는 위두라 존자의 모습은 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모습은 저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머리가 깨져 피를 흘리면서도 일체의 동요없이 고요한 마음으로 까꾸산다 부처님의 뒤를 계속 따라가며 탁발 나온 시자의 모습을 다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향한 부당하고 이유없는 폭력에,,, 마음을 조복시켜 흔들림없는 마음챙김으로 대한다는 것,,,,
이것이 참으로 제게 가능한 일인지,,,, 곰곰히 생각해 보게됩니다.
이 부분 이러한 행악에 대해서 그 끝이 어떤 식으로 귀결되는지 본경은 보여줍니다.
까꾸산다 부처님께서는 '이 두시 마라는 한도를 모르는구나.'라고 여기시면서,
마치 코끼리가 뒤를 돌아보듯이 뒤를 돌아 보십니다.
까꾸산다 세존께서 그렇게 뒤를 돌아보시자마자 두시 마라는 그곳에서 떨어져 대지옥에 태어납니다.
악행은 무르익어서 스스로 그 끝을 만듭니다. 모든 악행은 그 한도가 있습니다.
4. 두시 마라, 대지옥에서 만년을 고통받다 _ 악행의 결과는 고통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당신이 두시 마라였을 때 그렇게 세존과 그 제자들을 괴롭힌 것을 이유로
그렇게 대지옥에서 태어나 만년을 고통받았음을 말씀하십니다.
나중에 부처님의 상수제자가 되실 분, 신통제일의 그 부처님의 제자도 그 과거가 평화롭고 행복했던
것만이 전혀 아니라, 그 '지은 행위(業)에 따라' 지옥중생으로 지옥에서 긴 고통을 받았다라는 사실에,,,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 매일의 행위에 저는 얼마나 안일한 인식으로 대하고 있는지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부처님도 아라한도 업의 과보를 피하지는 못한다.'라는 말씀을 저는 들었습니다.
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대지옥에 3가지 이름이 있음을 밝히시면서, 지옥의 특성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1) 여섯 가지 원하지 않는 감각접촉을 겪는 '감각장소의 지옥'이요,
2) '창으로 찌르는' 지옥이요,
3) '스스로 겪는' 지옥
이라는 가르침이 그것입니다.
이 중 '스스로 겪는' 지옥이라는 말씀은 특별히 새겨집니다. 누가 그에게 일부러 고통을 주려해서
고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청해서 고통을 받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심장에서 창과 창이 부딪힐 때' 천년동안 지옥에서 고통받앗음을 알 수 잇다는 옥사쟁이의
알림이나, 다시 그 대지옥에 보조감옥이 있어 거기서 '과보로 나타난 최종의 괴로운 느낌'을 느끼면서
만 년을 지냈다는 말씀이나, 그때 나의 몸은 '인간의 몸과 같았지만 머라는 물고기의 모습'이었다라는
가르침은 마치 감옥을 경험하지 않은 자에게 감옥에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말해주는 모습과도
비슷하고, 이 세상이란 우리가 몰라서 그런 것이지 어떤 법으로 유지·운행되는 것인지를 생생히
알려줍니다.
악업과 해로운 법의 결말이 '긴 세월의 고통과 불이익'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5. '그대의 죄악은 익지 않으리라 생각하는가?'
이제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당신의 경험과 당신께서 청정한 세존의 제자임을 말하시면서
마라를 '견책'하십니다.
- 위두라 존자와 까꾸산다 부처님을 공격하여 대지옥에서 스스로 고통을 받은 사실
- 바다 한 가운데 겁을 지속하는 궁전들이 있어 그곳을 방문한 사실
- 부처님의 권고로 녹자모 강당을 발끝으로 흔든 사실
- 삽심삼천 삭까가 방일함을 보고 웨자얀띠 궁전을 발끝으로 흔든 사실
- 삭까에게 세존께서 설하신 바, 갈애가 소멸한 해탈을 묻고 그가 겸손하게 말한 사실
- 수담마 회의에서 범천에게 '범천의 광명도 지나가 버리는 것'임을 확인한 사실
- 대수미산의 정상을 손으로 만지고, 잠부디빠와 뿝바위데하와 땅에 사는 여러 사람들을 만난 사실
을 차례대로 말씀하시면서 두시 마라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공격하고 괴롭혀서 고통을 받은 것처럼,
그같이 그대도 나와 같은 부처님의 제자를 괴롭히면 그같은 고통을 받게 된다고 마라를 견책하고
가르치십니다.
이와 같이 설하신 後,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어리석은 자를 내가 태워버려야지.'라고
불은 결코 의도하지 않지만
어리석은 자는 타오르는 불을 공격하여 스스로 불타네.
마라여, 그대 그분 여래를 공격하여 큰 악업을 쌓았거늘
사악한 자여, 그대 죄악은 익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가?
죽음을 만드는 자여, 그렇게 행할 때
그대 오랜 세월 악업을 쌓나니
마라여, 부처님을 떠나라.
비구들에게 희망을 갖지 마라."
라고 마지막으로 마라를 훈계하십니다.
목갈라나 존자에게 붙어서 존자를 괴롭히려고 나쁜 마음을 먹엇던 마라는 이 가르침에 존자를
떠나게 됩니다.
아라한이시고 세존의 상수제자셨던 이 마하목갈라나 존자의 가르침은
그분께서 마라를 꿰뚫어 보고 아는 신통지를 가지셨다는 것도 놀랍지만, 당신께서 과거
또 다른 마라였음과 누구도 아닌 부처님과 그 상수제자를 괴롭혔다가 그 죄악이 익어 대지옥에
태어나서 긴 세월 고통받았던 부끄러운 과거를 상세히 밝히시는 것도 놀랍습니다.
무엇보다도 마라와 같은 존재를 전혀 두려워함이나 미워함이 없이 오히려 부처님의 법을 따라
흔들림 없이 여법하게 그를 견책하고 가르치는 모습에 이르러서는 아!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의
모습은 저러한 것이구나라고 그 위엄에 마음이 놀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승기에 귀의합니다. ((()))
이같이 새겼습니다.이같은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마하목갈라나 존자께 참으로 감사드립니다.거룩하신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이 경을 사경한 공덕 몫과 삼보에 청정한 믿음에 의지하여위빳시 부처님, 시키 부처님, 웻사부 부처님, 까꾸산다 부처님, 꼬나가마나 부처님, 깟사빠 부처님, 그리고 석거모니 부처님과 진실로 지금 현전하시는 모든 부처님들의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에의지하여 한 가지 간절한 발원이 있습니다.
저는 참으로 많은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로 인해 고통받았고 지금도 고통받고 있습니다.그 모든 잘못을 참회합니다. 저의 악행으로 인해 고통받았던 모든 존재들에게 용서를 구합니다.제게 악행을 저질렀던 모든 존재들을 저는 진실한 마음으로 용서합니다.
제가 받았던 고통들 중에는 창으로 찌르는 듯한 고통들이 있었습니다.그 대부분은 저의 업으로 인한 과보였음을 저는 압니다. 그 과보를 피할 수 없음을 저는 압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잘못을 돌이켜 벗어나려 한다는 이유로,,,부처님의 거룩한 법을 따라 삼계를 벗어나려 한다는 이유로,,,한없이 착한 마음을 가졌다는 것을 이유로,,,, 지혜없음을 비웃고 비아냥하면서,,,,,마라와 그 식솔들이 제게 붙어서 제 주변에 붙어서 끝없이 저를 시험하고 괴롭혀 왔고지금도 그러함을 알고 봅니다.
이 부질없고 불쌍한 중생이 이제 부처님의 법을 듣고 출세간의 도를 닦고 법을 따라 머물고 행하고자 하오니,,,,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 법을 설하여 오직 괴롭히고자 나쁜 마음을 먹은 마라가 떠난 것처럼,,,,긴 세월 자나깨나 나를 시험하고 괴롭혀왔던 마라가,,, 이제,,, 내 옆을 떠나게 되기를,,,,부처님의 제자를 괴롭혀 '긴 세월 스스로 불이익과 고통을 받지 말라'라는 가르침을 새겨서,,,이제 내 심장에서 나와,,,, 나를 떠나기를,,,,,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
사∼두∼ 사∼두∼ 사∼두∼
2017. 4.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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