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신경은
세존께서 한때 날란다에서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실 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을 뵙고
'저는 세존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괸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세존께 확신에 찬 마음을 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 평범해 보이기도 하는 몇 줄 안에는 깨달음에 대한 열망을 가지고 본인의 말씀처럼
'세존 앞에 엎드려 경배할 수 있기까지 무량겁을 십바라밀을 닦아 그 간절한 소원이 이루어졌음;을
밝혔던 수행자으로서 상수제자이며 법의 아들로서 밝히는 확고하며 청정한 믿음이 들어가 있는
심오한 일언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의미는 자기 자신이 검증한 바로는 혹은 그로서는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도 진리를 구하는 자라면
부처님말고 다른 것에서 구할 이유가 없다라는 결론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이야말로 최상이요 유일한 것임을 밝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보다 먼저 반열반하십니다.
자료에 의하면 이 확신경은 존자께서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 자신이 이제 떠남을 고하기 위헤
마지막으로 부처님을 뵙고 제자로서 세존께 대해 이러한 믿음을 고한 것이니
그 의미가 각별하다고 하갰습니다.
올바른 깨달음이라는 목표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사리뿟따 존자처럼 평생을 살아오신 분이
生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고 헛된 말이나 희론을 하셨을리가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 경의 이름을 '확신경'이라고 하는 것은 법다운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세존께서는 이 같은 사리뿟따의 말을 '확신에 찬 사자후;라 하시면서
그런데 그대는 삼세(三世, 즉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아라한·정등각들에 대해서, 그분들이
어떤 계를, 어떤 법을, 어떤 통찰지를, 어떤 머묾을, 어떤 해탈을 성취하신 분인지
그분들의 마음을 마음으로써 아는 지혜(他心通)이 없거늘 어떻게 확신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상수제자인 사리뿟따 존자의 믿음에 대해서'그 확신의 근거가 무엇이냐?'고
반문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경우란 참 있기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제자가 확고한 믿음을 고백하는데 '착하다, 잘한다,'가 아니라 '너의 그러한 믿음이란 근거가
있느냐?'고 물어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과 비견할 사문·바라문이 없다고 하였는데,
세존께서는 그 비교의 대상이 다른 부처님(아라한·정등각)이므로
결국 사리뿟따 존자가 그 근거를 대려면 다른 사문·바라문은 말할 것도 없고,
삼세의 다른 어떤 부처님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현재의 세존과 동등할 뿐이지
그분들 중에 누구라도 련재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초월할 수는없다는 것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대답하기 막막하고 제자가 올린 믿음을 검증하시는 거대한 담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사리뿟따 존자의 확신의 근거: 1) 법다운 추론
사리뿟따 존자는 자신이 삼세의 부처님들이 어떤 분들이신지 즉
어떤 계, 어떤 법, 어떤 통찰지, 어떤 머묾, 어떤 해탈을 성취하신지 그분들의 마음을 자신의
마음으로 아는 지혜(他心通)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그것을 그렇게 알아 확신을 가지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다고 담대하고 솔직하게 `세존께 말씀드립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또한 거기에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단서가 있습니다. 즉
예를 들면 성에 하나밖에 없는 대문을 지키는 자가
성벽이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왓다갔다하는 것까지 다 보지는 못하더라도
이 도시를 드나드는 모든 큰 생명체는이 문을 통해서만 왕래하는 것을 알고 그렇게 잘 지키는
현명한 문지기가 되는 것처럼 자신도 그와 같다고 말씀드립니다.
현명하고 솔직하고 담대한 답변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디면 그 '법다은 추론'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사리뿟따 존자의 추론은 이와 같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먼저,
1]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부처님께서
1)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2)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3)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4)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등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다는 것을 세존께 말씀드립니다.
그리고
2]
자신이 법문을 듣기 위해 세존께 욌던 바
세존께서는 점점 더 높고 수승한 법을 잘 갖추어서 설해주셨으며
존자 당신께서는 최상의 지혜로 이러한 것들을 안 뒤
그러힌 법들 가운데 어떤 법들을 통하여 완성을 이루게 되었으며
3]
그러고 나니
1) 세존께서는 정등각이심을
2)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졌음을
3) 세존의 제자들인 승가는 잘 도을 닦는다는
청정한 믿음이 생겼음을 세존께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 전하는 이 믿음의 이유는 겉으로만 보면 아무 특별한 것도 없는
평범한 확신의 근거처럼 들리지만, 이 평범한 사리뿟따 존자의 고백에는 큰 울림이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부분이야말로 그분을 그분답게 하는 그분만의 향기가 아닐까라고 생각해 봅니다.
간단히 요약하면 이런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저는
1] 세존께서는 어떻게 모든 부처님들께서 정등각을 이루시는지 남김없이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것은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 무력하게 하고,
마음챙김의 법(사념처)을 잘 확립하고, 깨달음의 각 구성요소(칠각지)를 잘 닦으셔서
위없는 정등각(無上正等覺)이 되산 것이 확실하고 그것 말고는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없음을
잘 검증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2] 세존께서는 제게 점점 더 높은 법을 가르쳐 주셨는데, 저는 그 뜻을 남김없이 잘 알고 이해하게
되었으며, 그 중에 어떤 법들을 통하여 닦아서 세존께서 말씀하시는 그 완성을 이루었습니다.
3] 그러고 나니 제게는 세존께 청정한 믿음이 생겨난 것입니다
라고 자신의 맏음에 대한 이유와 그것이 생겨난 과정을 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저는 스승님께서 가르쳐 주신대로 배움과 닦음과 체험과 검증으로 알았고,
그에 따라 저의 믿음은 생겨난 것이지 억지로 만든 것이 아닙니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은 제자가 할 수 있는 말이고 제자가 할 수 없는 말이 아니며
이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말이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이 아니며
이것은 법다운 말이며 법답지 않은 말이 아니며
어떤 존재가 존재로서 하는 참된 말이어서 지울 수 있는 말이 아니며 지워도 좋은 말이 아니라고
생각되는 것입니다.
2. 사리뿟따 존자의 확신의 근거: 2) 새존의 위없는 법문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자신의 확고한 믿음의 이유가 위의 '법다운 추론 즉, '자기검증' 말고도
다음 16가지에 관한 세존의 법문이 위없는 것이기 때문임을 밝히고 계십니다.
이러한 16가지에 관해서 존자께서 '위없는'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첫째는, 사리뿟따 존자 자신께서 숙고하고 검증한 결과
그러한 법문 外에 더 수승한 법문은 있을 수 없다는 자기확신에 관한 것이어서
앞에서 언급한 이유인 '법다운 추론'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이며
둘째는, 만일 자신이 검증한 그러한 결과가 틀린 것이 아니라고 세존께서 추인(追認)하신다면
사리뿟따 존자의 '법다운 추론'에 따른 그 모든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 되어서
세존에 의해 '사실로서 천명된다'는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 위없는 법문 16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유익한 법들에 관한 위없는 법문
유익한 법들이란
1)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2)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3)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4) 다섯 가지 기능(五根),
5) 다섯 가지 힘(五力),
6)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7) 여덟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길(八支聖道)
의 7가지 바른 깨달음의 편에 선 길 즉, 37보리분법(조도품)이며,
그 결과물로써
1)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2)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3) 바로 지금여기에서
4) 스스로
5)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6) 구족하여 머무는
열반이야말로 유익한 법들에 대한 최상이라는 세존의 법문
2] 감각장소와 그 대상(內外入處)의 천명에 대한 위없는 법문
1) 눈과 형상,
2) 귀와 소리,
3) 코와 냄새,
4) 혀와 맛,
5) 몸과 감촉,
6) 마노와 법
이라는
이들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감장소(六內外處)들이 있다라는 세존의 법문
3] 입태(入胎)에 대한 위없는 법문
네 가지 입태가 있는 바,
1)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오는 것
2)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오는 것
3)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머물지만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오는 것
4)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머물고
알아차리면서 모태에서 나오는 것
이라는 입태(入胎)에 대한 새존의 법문
4] 예언의 분류에 관한 위없는 법문
1) 표상을 통한 예언
2)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하는 것
3)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에 기인한
일으킨 생각에 따라 퍼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하는 예언
이와 같은 것들은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하는 것으로
그가 아무리 많은 예언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다는 것.
4)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는 삼매를 구족한 마음으로 마음을 꿰뚫어 아는 것
이것은
'이 존자의 마음작용이 어떻게 향하고 있으니,
이런 마음은 즉시에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아는 것으로
그가 아무리 많은 예언을 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다라는
에언의 분류에 대한 세존의 법문
5] 견(見)의 증득에 대한 위없는 법문
네 가지 견(見)의 증득이 있는 바
1) 이 몸은 발바닥부터 머라끝까지 살갖으로 들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하는 것
2)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하는 것
3) 나아가서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알음알이의 흐름을 꿰뚫어 아는 것
4) 나아가서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알음알이의 흐름을 꿰뚫어 아는 것
이라는 새존의 법문
6] 인간의 부류에 대한 위없는 법문
일곱 가지 인간이 있는 바,
1) 양면으로 해탈(兩面解脫)한 자
2) 통찰지로 해탈(慧解脫)한 자
3) 체험한 자
4) 견해를 얻은 자
5) 믿음으로 해탈한 자
6) 법을 따르는 자
7) 믿음을 따르는 자
가 있다는 세존의 법문
(※ 여기에 대한 각각의 설명은 끼따기리경(M70, http://blog.daum.net/ibakdal/17371182)의
각 말씀을 참조할 것)
7] 도닦음의 노력에 대한 위없는 법문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가 있나니
1) 마음챙김의 깨달의 구성요소(念覺支)
2)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
3)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
4)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
5)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
6)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正覺支)
7)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
라는 도닦음의 노력애 대한 세존의 법문
8] 도닦음의 경우에 대한 위없는 법문
네 가지 도 닦음이 있나니
1) 도닦음도 어렵고 초월지(신통지)도 더딘 것,
2) 도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것,
3) 도닦음은 쉬우나 초월지가 더딘 것,
4) 도닦음도 쉽고 초월지도 빠른 것
이라는 세존의 법문
9] 말의 품행에 대한 위없는 법문
1) 거짓말과 관련된 말을 하지 않고,
2) 이간질을 하지 않고,
3) 중상모략하지 않고,
4) 다른 것을 둘러대어 이기기를 바라지 않고,
5) 이유가 분명하고
6) 시의적절한
7) 지혜로운 말을 하는 것
이라는 세존의 법문
10] 품행에 대한 위없는 법문
1) 진실하고 믿음이 있으며,
2) 계략하지 않고,
3)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4) 암시를 주지 않고,
5) 비방하지 않고,
6)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하지 않고,
7)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고,
8)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9) 몸과 말과 마음으로 바르게 행하며,
10) 깨어 있음에 전념하고,
11)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12) 참선을 하고 마음챙김을 유지하고,
14) 명료하게 표현하고,
15) 행실을 (뒷받침하는 통찰지)를 갖추고,
16)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으며,
17) 마음챙기고 현명하라
라는 세존의 법문
11] 도과의 증득(가르침의 분류)에 대힌 위없는 법문
어떤 이들은 세존께서 설하신 대로 도를 닦아 사람에 따라서 각각
1)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豫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
2)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3)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
4)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阿羅漢)'
와 같은 도과를 증득하게 될 것이라는 세존의 법문
12] 다른 사람의 해탈을 하는 지혜에 대한 위없는 법문
네 가지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가 있는 바,
자신의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각각
이 사람은 설하신 대로 도를 닦아
1)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豫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
2)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3)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
4)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阿羅漢)'
라고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헤에 대해서 하신 세존의 법문
13] 영속론(常見)에 대한 위없는 법문
사문·바라문들은 세 가지 경우로 영속론(常見)을 가지제 되는 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어
1) 한 생 ∼ 수십 만의 전생을 기억하거나
2) 하나 ∼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의 전생을 기억하거나
3) 열 개 ∼ 마흔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의 전생을 기억하고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는데
그런 결과로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했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수축할 것이고 팽창할 것이다.
그러나 자아와 세상은 영속하나니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으며,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천명하게 된다는 세존의 법문
14]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위없는 법문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고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하는데.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하며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태어나
다시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는 세존의 법문
15]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에 대한 위없는 법문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을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삼매를 얻는데
그는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 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들은
1)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2)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3)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4) 성자들을 비방하고,
5) 삿된 견해를 지니어,
6)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1)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2)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3)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4)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5) 바른 견해를 지니고,
6)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선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 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라는 세존의 법문
16]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위없는 법문
두 가지 신통변화(神足通)가 있는 바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고,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다는 것.
마음이 삼매에 들어 여러 가지 신통변화를 나투는 바
1)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2)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고,
3)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4)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하고,
5)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하고,
6)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하고,
7)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하고,
8)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9)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하는 것
이것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며,
1) 만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하여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물고.
2) 만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라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며,
3)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4)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하여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물고,
5)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제거한 뒤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거기서 평온한 자가 되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무는
이것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라는 세존의 법문
이러한 16가지 세존의 버문에 대해서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위없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도 존자께서 세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이유라고
존자께서는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사리뿟따 존자의 확신의 근거: 3) 세존께서 성취하고 계신 것
위 1, 2와 같은 근거 이외에 서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대해 도를 이루신 자로서
새존이 성취하신 4가지에 대해 자기의 경탄하는 견해를 밝히십니다.
세존께서는
1) 신심있는 선남자가 성취해야 항 것을 성취하셨다.
2)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에 빠지지 않으셨다.
3) 자기학대에 몰두하는 것에 빠지지 않으셨다.
4) 4가지 선(禪)을 원하는 대로, 힘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얻으심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1) 법다운 추론 내지 자기검증, 2) 세존의 위없는 법문들, 3) 세존께서 도를 이룬 자로서 성취하신 것
을 근거로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자신의 세존께 대한 확고한 믿음의 근거를 세존께 고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자신의 확고한 믿음은 근거를 세존께 말씀드린 後,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다시 한번 세존께 자신의 확고한 믿음을 표하여 올립니다.
즉, 자신은
1) 바른 깨달음에 관한한
과거나 미래나 현재에 세존과 동등하거나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바라문은 없다고 할 것이라는 것
2) 만일 다른 사람이 당신은 왜 석가모니 부처님 한 사람만 전적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은 인정하지
않는가고 묻는다면,
자신은 세존의 면전에서 과거의 부처님, 미래의 부처님은 현존하시는 부처님과 동등하고
현재를 본다면 하나의 세계에 두 분의 부처님이 동시에 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받아지녔기 때문이라고 할 것이라는 것
을 말합니다.
이로써 사리뿟따 존자는 자신의 확신의 근거를 세존께 다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말한다면 이것이 틀린 것인지 세존께 여쭙습니다.
세존께서는 그렇게 다른 사람들에게 답변하는 것이
내가 말한 그대로 말하는 것이고, 법에 따라 설명하는 것이고,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는다고 제자의 말을 추인하십니다.
이 모든 이야기를 듣고 있던 우다이 존자가
여래의 소욕(小慾)과, 지족(知足)과, 번뇌의 말살을
그리고 큰 신통과 위력을 가지셨음에도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세존을 찬탄하자
세존께서는 역시 그 말도 그러하다고 인정하셨습니다.
일체지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위력과 신통을 드러내지 않는 소요함에 머물거늘
하물며 범부나 작은 깨달음이나 성취를 가진 중생이야 두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러한 담론이 끝난 후에 세존께서는 사르뿟따 존자에게
그대는 이 법문을 자주 비구, 비구니, 청신사, 청신녀에게 설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쓸모없는 인간들에게
여래에 대한 혼란과 의문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이 법문을 듣고
여래에 대한 혼란과 의문이 제거될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무슨 뜻일까요?
부처님을 따르는 자라 할지라도 그 믿음이 사리뿟따의 그것과 같은 '자기검증'에 기반한
청정한 것이 아니라면, 한 때 부처님을 따른다고 하다가도 그것은 마치 유행이나 취향이나
해도 되고 안해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거나 들뜸과 후회같은 것이 되고 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은 여래에 대한 혼란과 의문에 부딪히는 때가 올 수 밖에 없습니다.
예를 들면,
1) 과거, 미래, 현재의 모든 가르침을 꿰뚫어 알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최상인 것을 알 수 있단 말인가?
2) 고따마 부처님이 하신 법문이 위없는 가르침이라는 것을 어떻게 획정할 수 있단 말인가?
그보다 더 수승한 가르침이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
3) 혹시 고따마 부처님은 자신이 아라한´정등각이라고 해서 청정하지 하는 것이나 자만에
빠진 부분이 있는 것은 아닌가?
4) 나에게 세존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하더라도 그것은 네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일 뿐이지 그것이 진시로 법다운 것이고 법이라는 것을 어떻게 확정한단 말인가?
와 같은 것들입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이같은 모든 믿음의 끝에 서있는 질문들에 대해서 그 길이 무엇인가
보여주셨고, 세존께서는 이와같이 제자의 입을 빌어 믿음에 대한 법문을 하신 것입니다.
세존과 같으신 분이 사리뿟다 존자의 마음과 믿음을 읽으실 줄 몰라 그것을 반문하고 검증하고
시험하셨겟습니까?
과연 '법의 아들'이요, '법의 장군'이요 '상수제자'이시며, 제 '형님' 맞습니다.
확고한 믿음에 대해서 본경은 특별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사리붓따 존자의 가르침에 의하면 그것은 막연하고 맹신적인 것이 전혀 아닙니다.
그것은 '법다운 추론'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지만
그 내용은 배우고, 숙고하고, 닦고, 체험하고, 검증하는 '자기검증'이 그 밑바닥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자기검증'에 따른 결과물로서 '청정한 믿음'은 '생겨난' 것이었습니다.
나나 남을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 꽃은 무엇입니까?
1) 신심있는 선남자들이 성취해야 할 것을 성취하는 것
2)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지 않는 것
3) 자기학대에 몰두하지 않는 것
4) 4가지 선(禪)을 원하는 대로 힘들이지 않고 어렵지 않게 얻는 것
5) 소욕(小慾)
6) 지족(知簇)
7) 번뇌의 말살
8) 자신을 드러내지 않음
과 같은 것들입니다.
이와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은 고귀한 가르침을 주신 사리뿟따 존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믿음의 뿌리가 무엇인지 가르침을 남기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확신경(確信經)을 사경한 공덕을
마라에게 회향합니다.
긴 세월 당신는 법다운 공양을 받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 참된 길을 얻지 못하였으므로 긴 세월 당신에게 괴로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당신은 바른 길로 가려는 수 많은 중생들을 방해하고 시험에 들게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당신을 '도반'이라고 부르시는 것을 보았고
당신을 적대시하거나 당신에게 화내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당신께서도 언젠가는 이 모든 것이 괴로움인 것을 알아 괴로움을 끝내고
완전한 평화, 적멸을 얻어야 할, 그 길로 갈 수 밖에 없는 그런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이 회향을 받아 기쁘고 행복하기를,,,,,
이 회향을 받아 바른 법애 대한 의심이 사라지고 '청정한 믿음'이 생겨나기를,,,,
억겁이었을지 모르는 족쇄에서 벗어나시기를,,,,
닙바나 성취하시기를,,,,
그대의 세 딸과 군대들과 그대의 모든 식솔들까지 바른 깨달음으로 이끄는 성자가 되시기를,,,,
십력을 갖추신 부처님들께 청정한 믿음으로 귀의한 제가 이렇게 회향하고 기원합니다,
사 두 ∼ 사 두 ∼ 사 두 ∼
2014. 3.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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