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長部)/D14.대전기경(大傳記經)-칠불·보살

28. 後記: 대전기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9. 2. 16:43

 

 

대전기경(大傳記經)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있는 까레리 토굴에 머무실 때

비구들이 전생에 관한 법담읋 나누는 것을 아시고

'그대들은 전생에 괸한 법문을 듣고 싶은가?'라고 비구들의 의향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존께서는 과거 일곱 부처님 즉,

위빳시 부처님, 시키 부처님, 웻사부 부처님,

까꾸산다 부처님, 꼬나가마나 부처님, 깟사빠 부처님, 그리고 지금의 고따마 부처님이 계심과,

 

각각 그분들의 태생, 이름, 종족, 그 시대의 수명, 깨달음의 장소, 상수제자, 제자 비구들의 회중,

시자, 부모, 그때의 왕과 수도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설하십니다.

 

 

 

이에 비구 제자들은 어떻게 세존께서는 이 모든 것을 다 아시는가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고,

세존께서는 이는 당신 스스로 법의 요소를 잘 꿰뚫어 알기 때문에,

그리고 또한 신들도 그러힌 내용을 세존께 말씀드렸기 때문에 그러하다고 설하십니다.

제자들이 전생에 관한 법문을 더 듣고 싶어하지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먼저 91겁 전의 위빳시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설하십니다.

 

그리고

1) 보살이 도솔천에서 몸을 버리고 어머니의 태로 들어갈 때 법의 정해진 법칙,

2) 보살이 태어날 때 보살의 어머니에 대한 법의 정해진 법칙,

3) 보살이 태어날 때 법의 정해진 법칙

을 설하십니다.

 

또한,

그 보살이 타고난 32가지 대인상과 함께

재가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하면 아라한·정등각이 되어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릴'

두 가지 정해진 길이 있을 뿐이라는 것,

 

보살이 보내는유년기와 성장,

그리고 보살의 아버지가 보살이 출가하지 않도록

궁전들을 지어 감각적 욕망을 즐기도록 하는 것,

 

궁전 밖을 나가서

태어난 자는 반드시 늙음, 병듦,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되고

괴로움과 슬픔으로 번민하는 것,

 

출가하여 도를 닦는 자와 만남, 그리하여

감각적 욕망을 즐기는 것과는 달리

법대로 잘 실천하고, 고요함을 잘 실천하고,

유익함을 잘 받들어 행하고, 항상 공덕을 짓고, 해코지를 전혀하지 않고,

뭇생명을 항상 연민하는 삶이 있음을 보시고 공감하여 흡족해 하심,

 

그 자리에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출가하심,

 

많은 사람들이 따라서 출가하였으나 나중에 혼자서 은둔하심을 각각 설하십니다.

 

 

 

 

이어서 보살이 해탈하는 곡절을 설하십니다.

 

먼저, 과연 보살이 의문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것에 대해 명백히 설하십니다.

 

'참으로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구나.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도대체 어디서

 이 늙음·죽음이라는 괴로움의 출구를 꿰뚫어 알 것인가?'

 

 

 

고따마 부처님의 깨달으신 後 읊으신 오도송(悟道頌)에

 

'한량없는 세월의 생사윤회 속에

 집을 짓는 자가 누구인지 알려고

 찾아 헤매다, 헤매다 찾지 못하여

 계속해서 태어났나니 이는 괴로움이었네.'

 

라는 하셨슴을 보면,

 

단순히 늙고 죽음 자체를 괴로움이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윤회 그에 따른 끝없는 존재의 입음을 말씀하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존께서 '세상에 대해 욕심도 싫어하는 마음도 취착하지 말라.'고 설하셨음을 보면

이것은 존재 자체를 아예 혐오하는 것도 아닌 것으로 생각됩니다.

 

오온을 취착한 그 어떤 존재로서의 삶이라는 것도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면할 수 없어 결국 괴로움이요 고통이라는 것을  통찰하신 말씀이라

생각되므로 저 위빳시 보살의 의문이야말로

모든 존재가 부딪힐 수 밖에 없는 최후의 명제라 생각됩니다.

 

 

 

 

한편 보살께서 어떻게 이 의문을 해결하여 괴로움을 끝내셨는가에 대해서는

 

1]

먼저,

 

 '1)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2)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하여 정신 · 물질이,

  3)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여섯 감각장소가,

  4) 여섯 감각장소를 조건으로 하여 감각접촉이,

  5)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하여 느낌이,

  6) 느낌을 조건으로 하여 갈애가,

  7) 갈애를 조건으로 하여 취착이,

  8) 취착을 조건으로 하여 존재가,

  9) 존재를 조건으로 하여 태어남이,

10) 태어남을 조건으로 하여

          늙음 ·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있다.'

 

 와 같이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로 십지연기의 순관을 통해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일어남'을 통찰하셨고,

 

 

또한

'이 알음알이(識)는

 정신 · 물질에 다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라는 위빳시 보살의 게송과 같이

 

 

연기의 끝에서,

알음알이를 조건으로 정신·물질이 있고(識緣名色),

다시 정신·물질을 조건으로 알음알이가 있는 바(名色緣識),

여기서 더 넘어가지 못함, 바로 이것이

태어나서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나는 '윤회'가 끝나지 않은 이유임을 천명하십니다,

 

 

 

2]

두 번째로,

 

 '1) 정신 · 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알음알이가 소멸하고,

  2) 알음알이가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 · 물질이 소멸하고,

  3) 정신 · 물질이 소멸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고,

  4) 여섯 감각장소가 소멸하기 때문에 감각접촉이 소멸하고,

  5) 감각접촉이 소멸하기 때문에 느낌이 소멸하고,

  6) 느낌이 소멸하기 때문에 갈애가 소멸하고,

  7)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이 소멸하고,

  8) 취착이 소멸하기 대문에 존재가 소멸하고,

  9) 존재가 소멸하기 때문에 태어남이 소멸하고,

10)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 ·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소멸한다.'

 

 

 와 같이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로 십지연기의 역관을 통해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소멸함'을 통찰하셨습니다.

 

 

또한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혹은 세상의 '일어남·소멸함'을 꿰뚫어 아신 뒤에야

비로소 '나는 도(道)를 증득하였다.'고 천명하셨슴을 알 수 있습니다.

 

 

 

 

3]

세 번째로,

 

그리하여

1) 괴로움의 발생을 통하여, 무슨 이유로 이 윤회가 끝나지 않는지 꿰뚫어 아시고,

2)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일어남·사라짐의 이유를 꿰뚫어 아신 뒤,

3) 이제 '이 알음알이는 정신·물질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이것을

    넘어가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상세히 설하십니다.

 

 

 

   "그러자 위빳시 보살은

 

    그 후에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것이 물질(현상,色, form)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受, feel)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想, 지각, perception)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상카라(行, 정신적 형성, sankhara, formation)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상카라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識, 식별하여 아는 것, 인식작용, consciousness)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그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자

 

    오래지 않아  

 

    1) 취착이 없어져서 

    2) 번뇌들로부터  

    3) 마음이  

    4) 해탈하였다."

 

라는 부분입니다.

 

위빳시 보살께서 어떻게 해탈하였는지를 명확히 설하시는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각묵스님은 경전의 이 부분에 대하여,

 

"본경의 문맥을 잘 읽어보면,
연기의 순관과 역관을 통해서 위빳사나의 도(vipassana magga)를 얻고,

이를 바탕으로 본 문단에서
오취온의 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여(udayavyaya-anupassi)
해탈하였다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연기구조의 통찰을 통해
연기구조의 정점을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호관계(識緣名色, 名色緣識)로 극명하게 드러낸 뒤,

정신·물질이란 오온을 일컫는 것이므로

오온의 일어남과 사라짐을 통찰하여 해탈을 성취한 것으로 밝히고 있다.


그리고 분명히 본경에서는
연기법에 대한 안,지,혜,명,광이 생긴 것을 두고 해탈이라고 하지 않고
위빳사나의 도를 얻은 것이라 표현하고 있으며,

주석서에서는 얕은 위빳사나(taruna-vipassana)를 얻은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라고 주석을 더하고 계십니다.

 

 

 

먼저 연기의 순관을 통해 '괴로움의 일어남'을 통찰하신 끝에

어째서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나는' 이 윤회가 끝나지 않는지의 이유는

'이렇게 하여' 즉, '이 알음알이는 정신·물질로 다시 되돌아 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기' 때문이며,

 

연기의 역관을 통해 '괴로움의 소멸'을 통찰하신 끝에

비로소 '나는 (위빳사나의) 도를 증득하였다.'고 천명하셨다면

즉, '일어남·사라짐'의 도를 증득하셨다면,

그러하다면 그 '괴로움의 소멸'의 끝에서 논리적으로 볼 때,

 

 어떻게 그것이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것을 넘어가셨는지

혹은 그것을 넘어간 상태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천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천명이 바로 윗 부분에 해당하므로

12지 연기와는 달리, 본 「대전기경」에서 10지 연기의 정점을 설하신 것,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넘어서셨는지에 대한 'slow motion'과도 같은 본 경 부처님의 가르침은

참으로 그 의미가 깊다고 하겠습니다.

 

 

 

어떻게 넘어설 수 없는 그것 즉,

'이 알음알이는 정신·물질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 그것을 넘어셨는가에 대해서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 최후에 넘어갈 수 없는 그 '정신·물질'을

증득하신 '(위빳사나의) 도'로써 '바로 보아'  넘어가신 것이라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장막을 벗겨버린' 분이 되셨다고 말입니다.

 

 

정신·물질은 결국 오온(五蘊)이며,

여기서 색(色)은 인식된 물질(현상)이며,

수(受), 상(想), 行(行), 식(識)은 정신(현상)이므로

결국 오온을 바로 보았다 함은

존재를 구성하는 다섯 다발 혹은 무더기를 낱낱히 해체하여 '바로 보았다'(正見)는 뜻이며,

 

 

'바로 보았다.'함은 그러한 존재의 다섯 구성요소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임'을 보았다 하심이고,

'일어남·사라짐'이란 모든 것 즉, 정신·물질(名色)이 원인을 조건으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이어서

영원하지 않고,

그에 '나' , '나의 자아', 혹은 '나의 것'이라고 취착할 어떤 것도 없음을 꿰뚫어 보아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 버렸음을, 혹은 풀어서 벗어남(解脫)을 실현하신 것이라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이 부분 부처님의 말씀은

위빳시 보살이 '도를 증득'한 後 어떻게 하여 해탈하였는지를 분명히 천명함과 동시에

무엇이 어떻게 되어 해탈하게 된 것인지?,  무엇이 해탈하는지?, 무엇으로부터 해탈하는지?를

아래와 같이 분명히 가르치신 것이라 생각됩니다.

 

1) 무엇이 어떻게 되어 해탈하게 되는가? - '취착이 없어져서'

2) 무엇이 해탈하는가? - '마음이'

3) 무엇으로부터 해탈하는가? - '번뇌들로부터'

 

 

 

 

이후 위빳시 세존에 대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가르침은

 

감각적 쾌락에 탐닉하는 사람들이

연기를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

모든 형성(行)된 것의 가라 앉힘, 일체의 생존에 대한 집착의 포기, 갈애의 소진,

욕망의 빛바램, 소멸, 열반 등 이러한 것들을 본다는 것이 어려운 것,

부처님의 설법을 완전히 알아듣지 못할 경우의 피로와 성가심 등으로

법을 전하고자 하는 처음의 마음을 바꾸어 무관심으로 기우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는 당신이 증득하신 도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표현하신 것은

오늘의 우리 역시 상기할 필요한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1) 흐름을 거스르고

 2) 미묘하고 깊고

 3) 보기 어렵고

 4) 미세하여

 

 탐욕과 성냄으로 가득한 자들이

 이 법을 실로 잘 깨닫기란 어렵다.' 라고.

 

 

 

또한 어떤 대범천이

'눈에 먼지가 덜 덜어간 중생들'이 파멸하지 않고, 법에 대해 구경의 지혜를 가질 수 있다고,

슬픔에 빠지고, 늙음과 죽음에 압도된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하시라고 세 번을 간청함,

 

위빳시 부처님께서 그의 간청을 들어

세상에 대한 연민으로 설법을 하기로 하신 것,

 

 

하여 위빳시 세존께서

 

'그들에게 불사(不死)의 문은 열렸도다.

 귀 있는 자 믿음을 내어라.'

 

라고 선언하신 것,

 

 

누가 이 법을 빠르게 이해할 것인가라고 가늠하신 후

칸다 왕자와 궁중제관의 아들 띳사에게 초전법륜하신 것,

 

 

 

그 두 명의 상수제자에게 순차적으로 법을 설하시되

 

1) 보시, , 천상의 가르침, 감각적 욕망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됨, 출리의 공덕을 먼저 설하시고

 

2) 이것이 괴로움인 것,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소멸,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

    즉, 사성제를 설하셨고, 

 

    이에 그 두 명의 상수제자들이 법안(法眼)이 생겨서

 

    법을 보았고, 얻었고, 체득햇고, 간파했고,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무외(無外)를 얻었고,

    스승의 교법에서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자가 된 것,

 

3) 위빳시 세존께서는 그로 인헤 출가한 이들레게

    형성된 것들(行)의 위험과 타락과 오염됨과 열반의 이익을 밝혀주셔서

    이들이 취착이 없어져서 마음이 번뇌들로부터 벗어나 해탈한 것,

 

 

 

또한, 수도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출가하여 해탈에 이르게 된 것과

위빳시 보살이 출가할 때 같이 출가했던 많은 사람들이 해탈에 이르게 된 것,

 

 

 

때가 되어 비구 회중에게

 

1)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해서,

2)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해서,

3) 세상을 연민하여,

4)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

 

눈에 먼지가 적게 들어간 자들이 파멸하지 않고 법에 대한 구경의 지혜를 가지도록

법을 설하고 지극한 청정범행을 드러내는 방법으로 전법을 허락하신 것,

그러나 매 6년마다 계목(빠띠목카)를 배우기 위해 다시 모일 것을 지시하신 것,

 

 

 

나중에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이 기나긴 생사의 여정에서 내가 거주해 본 적이 없는 곳은 정거천 밖에는 없구나.

나는 정거천의 신들에게 기봐야겟다라고 하시고 정거천에 가셨을 때,

 

그리고 정거천의 차례대로 무번천, 무열천, 선현천, 선견천, 색구경천에 각각 들러셨을 때

각 정거천 마다 수천명의 신들이 차례대로 부처님께 예경하고 말씀올리기를,

 

저희들을 각각 위빳시 부처님, 시키 부처님, 웻사부 부처님, 까꾸산다 부처님, 꼬나가마나 부처님,

깟사빠 부처님, 지금의 고따마 부처님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아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욕탐을 빛바랜 뒤 '여기에 태어났다.'고,

 

또한 각각의 부처님들에 대해서 그분들의 태생, 이름, 종족 등과  이러한 계를 가지셨고,

이러한 법을 가지셨고, 이러한 통찰지를 가지셨고, 이렇게 머무셨고, 이렇게 해탈하셨음을

부처님께 고하였음을 설하십니다.

 

 

 

하여 부처님께서는

스스로 법의 요소를 잘 꿰뚫으셨기 때문에,

또한 이와 같이 정거천의 신들이 과거 부처님들에 대한 내용을 부처님께 알려주었기 때문에

과거 일곱 부처님들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아시는 것이라고 비구들에게 설하시는 것으로

이 경은 끝을 맺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대전기경」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하여 6년마다 비구들이 계목을 배우기 위해 수도 반두마띠로 모였을 때

비구 대중에게 계목을 가르치기 위해 위빳시 부처님께서 읊으신 게송입니다.

 

그것은 이렇습니다.

 

 '1) 관용이 (그 특징인)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고 

  2)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

 

  3) 남을 해치는 자는 출가자가 아니며

  4) 남을 괴롭히는 자는사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5)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諸惡莫作)

  6) 유익함을 구족하며 (衆善奉行)

  7) 자신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自淨其意)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교법이다.(是諸佛敎) 

 

 

  8) 비방하지 않고

  9) 해치지 않고  

10) 계목으로 단속하며

11)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12) 외딴 거처에 머물며

13) 높은 마음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교법이다.'

 

 

이 위빳시 부처님의 게송은 어쩌면 아주 오랜 전

잊혀져버린, 그러나 잊혀질 수 없는 옛 노래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가져다 줍니다.

 

 

 

 

전에 동봉한의원의 황팔욱 원장님께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한 마디로 무엇이냐고

제게 물으시고, 대림스님께서 최근에 번역을 마치신 맛지마니까야의 서문에서 발견하셨다고

즐거워하시면서 제게 들려 준 말씀이

"제악막작 중선봉행 자정기의 시제불교(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였습니다.

 

참으로 어떤 분이시길래 간결하게도 말씀하셨구나라고 생각했고,

인터넷에서 출처를 검색하다가 당나라 때 도림선사(道林禪師) 혹은 조과선사(鳥窠禪師)께서

부처님의 법을 묻는 백거이에게 답한 말이라는 것을 듣고는,

그 조사께선 어디서 무슨 법을 배웠길래 저리도 간결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리도록

그것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요약할 힘이 있는 분이 되셨을까?

참으로 부럽고도 신통한 일이다리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대전기경을 보면서 그 말씀은 원전이 바로 위빳시 부처님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91겁이 지난 지금에도 하나도 어색함이 없는

부처님의 제자들이라면 이 시대에도 반드시 따라야 할, 간결하면서 빠진 것이 없는

아름답기 그지없는 이 노래를 외우고 싶은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관용을 특징으로 하는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요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

 

 남을 해치는 자 출가자가 아니며,

 남을 괴롭히는 자 사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모든 악을 행하지 않고

 모든 선행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자기의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비방하지 않고

 해치지 않고

 계목으로 단속하며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외딴 거처에 거하며

 높은 마음에 전념하는 것

 이것이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다.'

 

 

 

대전기경은 위빳시 부처님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모든 보디삿따 즉 보살(菩薩)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모든 부처님들이 세상에 출현할 때 한결같은 법의 정해진 법칙을 설하고 계신 바,

위빳시 보살의 일대기는 모든 부처님들의 일대기로 간주되며, 사실 후대 불전문학(佛傳文學)에서는

이러한 위빳시 보살의 일대기가 그대로 부처님의 일대기로 간주되고 있다고 합니다.

 

대전기경(Mahapadana Sutta)는

단순한 과거 칠불(七佛)에 대한 이야기 혹은 보디삿따에 대한 이야기일 뿐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십지연기(十支緣起)의 순관과 역관에 따른 윤회의 원리,

괴로움의 일어남·소멸함을 보는 (윗빠사나의) 도의 증득,

정신·물질 즉, 오온(五蘊)을 바로 보아 해탈하는 과정,

그리고 해탈이 무엇인지, 어떻게 이루어지는를

상세하게 별기하신 부처님의 설법이라고 새기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받아지녔습니다.

 

 

 

 

이 대전기경을 사경(寫經)하여 여러 사람들이 알기 쉽게 볼 수 있도록 한 선업 공덕으로

평화롭고 더 없는 행복을 얻었기에

닙바나 깨달음 성취할 때까지

어리석고 삿된 길 따르지 않고

지혜롭고 올바른 길 정진하여 걷겠으며

수 많은 생 도는 동안 고통, 위험, 적과 모든 장애를 만나지 않고

모든 소망 뜻대로 이루기를 기원합니다.

 

31천 거주하는 모든 존재가

모두 취착이 없어져서 마음이 번뇌들로부터 해탈하시기를,,,

모두 닙바나 성취하시기를 ((()))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모든 중생들께 이 공덕을 회향하오니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나무 석가모니불 ((()))

 

 

2013.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