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50. 바른 견해(正見) - 진리의 완성에 이르는 첫 걸음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6. 1. 18:08

 

바른 견해(正見)란 무엇인가.

 

팔정도의 첫 번째 항목으로서 붓다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보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바른 견해는 팔정도의 출발점이 되는 동시에 이후의 다른 항목들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이것이 철저하지 못하면 나머지 항목의 닦음 역시 온전할 수 없다.

 

따라서 팔정도는 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도성제의 첫 번째 항목인 이것으로부터 사성제의 진리는 완성에 이른다.

 

 

 


‘대사십경’에서는 바른 견해의 중요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 가르침 안에서 바른 견해는 선행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가 어떻게 선행하는가?

 

 비구들이여,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삿된 견해가 소멸하고, 또한

 삿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나는 무수한 사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소멸한다

 

 (MN. III. 76-77).”

 

이렇듯 올바른 견해를 갖추는 것은 실천·수행의 영역에서 절대적이다.

이것은 깨달음을 강조하는 불교라는 종교의 본래적 특징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경전에서는 바른 견해의 성격에 따라 팔정도의 차원이 달라지는 것으로 설명한다.

세간적인 바른 견해출세간적인 바른 견해가 그것이다.

 

전자를 확립한 사람바른 안목으로 많은 공덕을 쌓을 수 있지만

번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이것의 사례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보시의 공덕이 있고,

  제사의 공덕이 있고,

  공양의 공덕이 있고,

  선악의 과보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이 있다.…’라고 본다면,

 

  그것은 공덕은 있으되 번뇌가 남아

  집착의 결과가 따르는 바른 견해이다(MN. III. 72).”

 


세간적인 바른 견해는 출세간의 그것에는 미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을 갖춘 사람은 사회의 모범으로 살아갈 수 있다.

이웃에게 베풀고 스승을 공경하는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다.

 

 

 

한편 출세간의 바른 견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거룩한 바른 도를 닦는 자에게

 

 반야(慧),…

 법에 대한 분별이라는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바른 견해(正見)라는 거룩한 팔정도의 요소가 생겨난다.

 

 비구들이여,

 바로 이것을 거룩하고 번뇌가 없는

 출세간의 도의 요소에 해당하는 바른 견해라고 한다

 

 (MN. III. 72).”

 

 

 


세속적인 팔정도가 되느냐 혹은 출세간의 팔정도가 되느냐의 문제는

최초의 바른 견해에 달려있다.

 

세속적인 팔정도는 재가자들에게 건전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멸성제 혹은 열반을 실현한 이들이 닦는 거룩한 팔정도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편 출세간의 거룩한 바른 견해는 사성제의 진리를 꿰뚫는 지혜로도 바꾸어 말할 수 있다

(DN. II. 311-312).

 

이것의 확립은 나머지 팔정도의 실천을 출세간의 차원으로 이끈다.

출세간의 바른 견해는 그 자체로서 완성된 닦음의 실현이라고 말할 수 있다.

 

 

 


다음의 경구 또한 동일한 맥락이다.

 

“비구들이여,

 무명(無明, avijja-  )이 선행하면 불건전한 상태에 도달하여

 부끄러움도 없고 창피함도 없게 된다.

 

 비구들이여,

 무명에 빠진 무지한 자에게는 삿된 견해가 생겨난다.…

 삿된 의도, 삿된 언어, 삿된 행위,… 삿된 삼매가 생겨난다.

 

 

 그러나 비구들이여,

 앎(明, vijja- )이 선행하면 건전한 상태에 도달하여

 부끄러움과 창피함을 알게 된다.

 

 비구들이여,

 앎을 지닌 자에게 바른 견해가 생겨난다.…

 바른 의도, 바른 언어, 바른 행위,… 바른 삼매가 생겨난다(SN. V. 1-2).”

 

 

 

 

세간적인 바른 견해는 출세간의 바른 견해로 나아가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분명한 간극이 자리한다.

세간적인 바른 견해를 유지하기 위해서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반면에 도성제에 속한 출세간의 바른 견해는 무명의 타파를 통해 얻어지는 것이며,

또한 멸성제를 이미 실현한 연후에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한 닦음은 번뇌라는 잡초의 뿌리를 뽑고서 행하는 것으로

‘닦음이 아닌 닦음’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