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갈애(愛)가 문제인가.
붓다는 이것으로 인해 집착(取)이 발생한다고 가르친다.
괴로움의 현실 즉 고성제를 집약하는 오취온(五取蘊)이 갈애로부터 이루어진다.
늙음과 죽음으로 귀착되는 불건전한 존재상황(有)이 이것을 조건으로 발생한다.
또한 우리는 갈애로 인해 몽둥이를 들게 되고, 칼을 잡게 되며,
다툼·싸움·논쟁·상호비방·중상모략·거짓말 따위와 같은 나쁘고 사악한 행동에 나서게 된다.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부인할 수 없는 것인 까닭에
괴로움의 원인에 관한 거룩한 진리(苦集聖諦)라고 한다.
갈애의 발생 경로는 다음과 같다.
우리는 눈·귀·코 따위의 감관을 통해 특정한 현상에 대한 의식을 갖는다.
즉 감관(根)과 대상(境) 의식(識)이라는 3가지를 통해 구체적인 인식과 경험 활동을 한다.
감관이란 모양과 소리 따위를 인지하는 능력을 가리키며,
대상이란 그러한 능력에 대응하는 개개의 현상을 지칭한다. 한편
의식이란 감관을 통해 그와 같은 현상을 아는 작용이다. 눈의 의식, 귀의 의식, 코의 의식
따위가 그것이다.
이들 3가지 요인이 한데 어우러져 접촉(觸)이 발생한다.
접촉이란 의식된 현상에 대해 갖게 되는 심리적·정서적 반응이다.
이것으로 주관적 정서가 개입되지 않은 의식에 동요가 발생한다.
따라서 접촉은 개인적인 경험세계가 시작되는 관문에 해당한다.
이것에 뒤이어 즐거움이나 괴로움 따위의 내면적 느낌(受)이 발생한다.
우리의 삶에서 이러한 느낌이 지니는 지배력은 매우 크다.
우리는 즐거운 느낌을 추구하고 괴로운 느낌을 배척하는 가운데 현실의 삶을 꾸려간다.
갈애는 바로 이 느낌으로부터 발생한다.
살아가는 모습은 실로 다양하지만, 그 이면에는 즐거운 느낌의 추구라는 공통된 목적이 자리한다.
우리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이 교차하는 가운데 갖가지 내면의 갈증을 증폭시키곤 한다.
즐거운 느낌에 대한 탐닉은 타오르는 목마름으로 바뀌어 원하는 것에 오로지 골몰하게 만든다. 바로 이것을 갈애라고 부른다. 앞서 언급했듯이 우리는 이로 인해 갖가지 부적절한 존재상황에 빠진다.
괴로움의 원인이 되는 갈애는 제거해야 한다.
그렇게 할 때 비로소 괴로움을 종식시킬 수 있다.
사성제의 집성제 이후 과정은 바로 이것을 내용으로 한다.
“괴로움의 원인인 갈애는
제거해야 하며
또한 완전히 제거해 마쳐야 한다”라든가,
“괴로움의 소멸은
실현해야 하며
한 완전히 실현하여 마쳐야 한다”라는 가르침이 그것이다.
이 과정은 명상을 통한 지혜의 개발과 더불어 올바른 실천적 삶을 통해 구체화될 수 있다.
초기불교에서 가르치는 해탈·열반의 경지란 다름 아닌 갈애의 소멸과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
그런데 갈애란 일단 발생하고 나면 그것에 대해 맞서거나 저항하기가 무척 힘들다.
갈애에 빠진 상태에서는 탈출구를 찾는 것이 쉽지 않다.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이미 갈애에 중독된 상태로 작동하는 까닭이다.
그러한 상황에 처하면 갈애를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마저 갈애의 영향 아래에 있게 된다.
그렇다면 어디에서 출구를 찾아야 하는가.
경전에서는 갈애로부터 벗어나는 실마리를 그것의 원인인 느낌에서 찾는다. 즉
느낌에 대해 청정한 마음을 일으켜 쉬거나 멈추게 하면 갈애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즐거운 느낌에서 유래하는 탐냄의 잠재적 경향을 가라앉히고,
괴로운 느낌에서 유래하는 분노의 잠재적 경향을 가라앉히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서 유래하는 무지의 잠재적 경향을 가라앉힌다.
비구들이여,
그러한 비구는
탐냄의 잠재적 경향을 가라앉힌 ‘바르게 관찰하는 이’로서
갈애를 없앤다, 속박으로부터 벗어낟다, 아만(我慢)을 완전히 그쳐
괴로움의 끝에 도달한다.”
이렇듯 초기불교의 실천·수행에서 느낌에 대한 올바른 대처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결국 갖가지 느낌에 물들지 않음으로써 갈애의 발생을 막는 것이야말로
초기불교 수행의 요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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