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제(苦聖諦)란 무엇인가.
고귀한 진리(ariyasacca)로서의 괴로움을 가리킨다.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괴로움이라는 거룩한 진리(苦聖諦)가 있다. 즉
1) 태어남도 괴로움이요,
2) 늙음도 괴로움이요,
3) 병듦도 괴로움이요,
4) 죽음도 괴로움이요,
5) 슬픔·비탄·괴로움·불쾌함·번민도 괴로움이다. 또한
6)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요,
7)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며,
8)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다섯 가지 집착된 경험요소(五取蘊)가 괴로움이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태어났고 그리고 늙어간다.
태어남 자체에 대해 즐거움으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태어남이 자신의 바람이나 의지에 따른 것은 아니라는 데에 큰 이견이 없을 것이다.
늙음·병듦·죽음 역시 마찬가지이다.
이들은 우리의 바람과 무관하게 우리를 강제한다.
우리는 떠밀려 태어났고 또한 떠밀려 살아가다가 마침내 떠밀려 최후를 맞이한다.
이러한 사실을 직시한다면 태어남과 죽음을 즐거움으로 여길 수 없다.
이들 네 가지 일대사에서 우리의 의지대로 거부하거나 건너 뛸 수 있는 것이란 없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은 또한 어떠한가.
물론 사랑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즐거움일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결코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다.
관계 속에 살아가는 한 경쟁과 다툼의 위치에 놓이는 사람은 생겨나기 마련이다.
반대로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 또한 피할 수 없는 이치이다.
사랑의 상실은 외부적 조건의 변화에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흐르는 세월과 더불어 첫 만남의 야릇한 감정은 종적도 없이 퇴색하고 만다.
사랑의 상실에서 오는 괴로움 역시 피할 수 없다.
얻고자 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괴로움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갈구하며 살아간다. 이것은 인간의 삶에서 기본적으로 전제될 수밖에 없다.
육신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더 만족스러운 무언가를 찾게 되어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만족의 기쁨은 곧 권태로 바뀌고 새로운 욕구와 불만족의 비애 속에 살아가는 것이
인생이다.
이것은 배운 사람, 배우지 못한 사람, 교양이 있는 사람, 교양이 없는 사람 가릴 것 없이
공통적으로 경험한다. 다만 이들에 대한 태도와 반응에서 개인적인 차이가 있을 수는 있다.
고귀한 진리로서의 괴로움에 해당하는 마지막 내용은 5가지 집착된 경험요소(五取蘊)이다.
이들은 앞서 기술한 모든 것을 포섭한다.
즉 앞서의 상황은 다름 아닌
물질현상(色) · 느낌(受) · 지각(想) · 지음(行) · 의식(識) 따위에 붙들려 안달하는 상태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렇듯 우리는 육체와 정신이 빚어내는 갖가지 갈등 상황에 얽히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붓다는 바로 이것을 보통의 인간이 처한 보편적 실존으로 규정한다.
그리고 이것에 대한 바른 인식이 전제될 때 고양된 삶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고 가르친다.
괴로움이란 저마다의 삶에서 각기 다른 무게로 나타난다.
괴로움은 스스로를 돌이켜 보게 만드는 소중한 기회일 수 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의 가장 고유한
차원은 감당하기 어려운 괴로움에 직면하였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것일 수 있다.
따라서 괴로움이란 그 자체로서 삶의 방향과 의미를 일깨우는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허황된 바람이나 도피를 꿈꾸지 말아야 하며
괴로움이라는 현상에 대해 솔직한 태도로 마주해야 한다. “이러한 괴로움이 있다.”라고
직시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괴로움을 완전히 이해해야 하며(pariññeyya),
또한 그것에 대한 완전한 이해를 끝마쳐야 한다(pariññāta).
붓다는 바로 이와 같은 3단계의 과정을 걸친 연후에 비로소
괴로움의 원인이라는 고귀한 진리(苦集聖諦)의 가르침으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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