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세계에 관한 가르침(生天論)이란 무엇인가.
보시와 계율의 실천을 많이 쌓으면 죽고 난 이후 즐거운 천상세계에 태어난다는
가르침을 말한다.
초기불교에 따르면 깨달음을 성취한 아라한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존재는 사후에 다시 태어난다.
어떤 이들은 널리 보시를 베풀고 스스로 지계를 갖춘다.
그러한 사람들은 마치 누군가가 데려다 놓은 것처럼 천상세계에 태어난다고 한다.
반면에 어떤 이들은 인색한 마음으로 베풀 줄도 모르고 방탕한 생활만을 일삼는다.
그러한 사람들은 마치 누군가가 일부러 데려다 놓은 것처럼 괴로움이 가득한 지옥에 태어난다고 한다.
‘자나와사바경’에서 붓다는 나디까(Nādika)라는 마을에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해 상세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예컨대
50명이 넘는 나디까 사람들이 천상에 태어나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 것이고,
90명 이상의 사람들이 한 번 더 이 세상에 태어나 일체의 괴로움을 종식하게 될 것이며,
5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최소한 지옥에는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갖추어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언급은 까시(kasi), 왓지(Vajji), 쩨띠와방사(Cetivaṅsa), 꾸루(Kuru)의 사람들에게도
유사한 방식으로 되풀이된다.
이렇듯 초기불교 경전에 따르면 내세(來世)는 실재한다.
내세에 관한 붓다의 가르침은
일단 분량 면에서 방대할 뿐만 아니라 매우 사실적이고 생생한 방식으로 기술된다.
이것은 결코 가설적인 차원에서 만들어진 이야기가 아니며
깨달은 이의 통찰을 통해 드러나는 현실의 이야기이다.
삼계(三界)의 속박을 완전히 벗어난 존재가 아닌 한,
아라한이라는 깨달음의 경지를 확신하지 못하는 한,
죽음 이후에 대해 일말의 의심과 두려움이 남아 있는 한,
그러한 사람들에게 내세는 엄연한 사실로서 존재한다고 보아야 한다.
사실 내세는 죽고 난 이후의 세계이다.
따라서 이것의 존재 여부를 현재의 삶에서 증명해 보일 수 없다.
내세란 전적으로 믿음의 영역에 속한 세계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현세와 내세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그러나 내세에 대한 올바른 사고는 현재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죽고 난 이후를 대비하는 사람은 현재를 함부로 살지 않는다.
자신만의 안위를 위해 안달하지 않으며 보다 넓은 눈으로 자신과 주변을 헤아린다.
이러한 사람에게 내세는 결코 가설적인 차원의 것이 아니며 현실의 삶 자체가 된다.
붓다는 현세와 내세를 잘 살기 위한 가르침을 따로 전한다.
그리하여 우선 현세를 행복하게 잘 살려면 다음의 넷을 갖추라고 이른다.
첫째, 직업을 가지고서 근면하게 일한다.
둘째, 땀 흘려 벌어들인 소득을 정당하게 관리하고 보존한다.
셋째, 바른 길로 인도해 줄 좋은 친구를 사귄다.
넷째, 소득에 맞게 합리적으로 소비한다.
한편 내세의 안락과 행복을 위해서는 다음의 넷을 갖추라고 권한다.
첫째, 도덕적·정신적 가치를 믿고 신뢰한다.
둘째, 살생하고 훔치고 거짓말하는 등의 파괴적이고 해로운 생활을 멀리한다.
셋째, 재화에 대한 애착과 망상을 내지 말고 관용으로 베푼다.
넷째, 번뇌를 없애고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지혜를 닦는다.
현세를 위한 처음의 넷은 그야말로 현세의 행복을 위해 당연히 요구되는 덕목들이다.
반면에 내세를 위한 넷은 그 결과가 당장 눈앞에는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내면을 맑히고 넉넉한 마음을 가꿀 수 있다는 사실은 어렵지 않게 동의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실천의 누적을 통해 천상세계에 태어나는 것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바로 이것은 붓다의 통찰로써 보장된 내용이다.
붓다는 이들의 실천을 통해 정화된 마음을 갖춘 사람들에 한해
사성제(四聖諦)라는 고귀한 진리의 가르침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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