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해(diṭṭhi)는 어떻게 발생하는가.
그것은 왜 필요하며 또한 그 위험성은 무엇인가.
우리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견해를 지닌다.
험난한 인생의 여정에서 견해를 바로 세우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바른 견해는 우리로 하여금 나아가야 할 목적지를 분명히 해준다.
만약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견해가 없다면 동물적 본능만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따라서 바른 견해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는 이유는 스스로를 다잡는 올바른 견해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견해의 위험성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인간은 본능이 요구하는 이상의 행위들에 전념하곤 한다.
단순히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신념과 가치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기도 한다.
그런데 문제는 그와 같은 고상한 행위들이 상충하는 견해와 부딪쳤을 때 발생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과 견해를 달리하는 이들에 대해 불편해 한다.
심지어는 더 이상 견해의 일치를 얻어내기 어렵다고 여겨질 경우 적으로까지 간주한다.
엄청난 규모로 자행된 종교전쟁이라든가 이념적 충돌이 그렇게 해서 야기되었다.
견해의 차이에서 오는 불화와 갈등은 멀쩡한 세상을 지옥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견해를 지녀야 할 것인가 버려야 할 것인가.
이러한 상황에 대해 붓다는 첨예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팔정도(八正道)로 집약되는 실천적 가르침에서
바른 견해(sammādiṭṭhi)는 첫 출발점으로서의 의의를 지닌다.
붓다는 바른 견해와 더불어 일체의 그릇된 사고와 행동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는 견해 자체가 지니는 문제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비판한다.
많은 경우 우리의 견해는 믿음(saddhā)이나 기호(ruci) 혹은 전승(anussava) 따위로
야기된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우리는 그렇게 형성된 갖가지 견해들로 인해 자신과 타인을 억압하기 일쑤다.
인류 역사상 등장했던 수많은 사상가 혹은 종교가들은 스스로에 대해 한 결 같이 진실만을 따른다고 강변하였다. 나아가 자신들과 반대되는 견해에 대해서는 집요한 반론과 공박을 펼치는 가운데 스스로의 입장을 구체화하였다.
그러나 붓다는 내면의 정화가 전제되지 않는 한 그러한 행위들은 오히려 오만과 독선만을 조장할 수 있다고 보았다. 입증될 수 없는 논리로써 변화무쌍한 경험세계를 한정짓는 어리석음에 빠지게 된다고 보았다.
이점에서 붓다는 인류 역사상 가장 독특하고 분명한 태도로 인간의 견해와 인식이 지닌 한계를 지적했던 냉철한 지성이었다고 할 수 있다.
붓다는 주변의 사상가들과 달리
인간의 심리 혹은 마음을 분석함으로써 다양한 견해들이 발생하는 이유를 해명하고자
하였다. 또한 그것을 통해 갖가지 독단적인 사고와 견해의 족쇄로부터 벗어나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따라서 붓다는 별도의 형이상학적 견해를 내세우는 작업을 단념하고서,
과연 인간의 실존이 어떠한 방식을 걸쳐 괴로움의 상황에 빠져들게 되는지를 규명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유형의 형이상학적 견해들에는
내면의 분노라든가 두려움 따위와 같은 정서적 요인들이 그 추동력으로 은밀히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파하게 되었다.
붓다에게 바른 견해란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형이상학적 논변이 아니며,
괴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실천적 지침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맥락에서 붓다는 진리 추구의 와중에 무엇보다도 심리적·정서적 안정을 중요시 한다.
그는 내면의 정화를 통해 번뇌를 가라앉힌 연후라야
비로소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파악할 수 있고, 또한 견해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타인을 영속적인 행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와 관련하여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일체의 망상적 견해들에 대해
환대하지도 않고 집착하지도 않으면,
결국 탐냄·의혹·자만·무명 등의 잠재적 성향이 사라지고,
싸움·분쟁·언쟁 등의 사악하고 불건전한 법들도 남김없이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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