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28. 무아(無我)의 가르침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3. 15. 17:27

 

 

무아(無我)란 무엇인가.

 

‘나’를 구성하는 육신(色)·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의 5가지 경험적 요인들,

오온(五蘊)이 ‘나’가 아니라는 의미이다.

 

또한 이들 모두가 ‘나의 것’도 아니고 ‘나의 자아’도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다섯 요인을 우리 자신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그리하여 갖가지 충동과 이미지 따위에 일희일비의 시간들을 탕진한다.

분노가 일었을 땐 분노와 하나가 되고 탐욕이 일었을 땐 탐욕 자체와 하나가 된다.

 

스스로의 이미지를 생명처럼 간주하고서,

그것의 손상에서 오는 괴로움에 대해서는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곤 한다.

 

 

 


물론 자신의 육신이나 느낌 혹은 지각이나 이미지 따위는 잘 다스려 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성공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은 ‘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적 요인들을 막무가내로 사라지게 할 수도 없고,

또한 영원히 지속되도록 붙잡아 둘 수도 없다.

 

경전에 묘사되듯이

“나에게 이러한 느낌은 있어라, 저러한 느낌은 있지 말라”라고 말할 수 없다.

 

우리는 이와 같은 현실에 비추어 오온이 ‘나’ 자신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긍해야 한다.

다만 이들은 삶을 마감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다스려 나가야 할 현상들에 불과하다.

 

 

 


우리는 대개 자신이 연루된 특수한 상황이나 사태에 대해서는 초연한 마음을 갖지 못한다.

주관적인 바람이나 의지 따위가 개입이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자신만의 느낌이나 인식에 갇혀 있는 까닭이다.

그리하여 어떻게 해서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만 판단하거나 해석하려 한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현실이 우리의 의지대로 따라와 주는 것은 아니다.

많은 경우 잘못 기대한 정도만큼 혹독한 대가가 기다리기 십상이다.

 

따라서 주관적인 관점을 배제한 상태에서 문제의 상황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더 이상 ‘나’를 개입시키지 말고 있는 그대로(yathabhūtaṁ)를 직시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어떤 심리학자는

“통찰이란 ‘생각하는 사람’의 존재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가장 잘 떠오른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즉 특정한 생각이나 판단에 사로잡히지 않은 상태가 될 때 비로소 있는 그대로를 공정하게 바라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이러한 언급은 초기경전에서 설하는 무아의 가르침에 매우 근접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자신이 마주하는 경험적 현실, 즉 오온이라는 족쇄로부터 벗어나 보다 넓은 시각으로 현실을 바라볼 필요가 있다.

 

거기에서 고정된 존재로서 ‘나’ 혹은 ‘나의 것’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무아의 가르침

매우 유용한 지침이 될 수 있다.

 

 

 


무아의 가르침이 현실적인 삶의 맥락을 벗어나게 되면 형이상학적 원리로 탈바꿈하게 된다.

그리하여 일상의 자아마저 부정하고 일체의 모든 것을 무화(無化)시키는 사변적 논리로 전락하게 된다.

 

그러한 무아 해석은 단멸론(斷滅論)과 다를 바 없으며,

“죽고 나면 모든 것이 소멸한다”라는 방식으로 허무주의를 조장한다.

 

그러나 초기경전 도처에서

붓다는 수많은 사람들의 전생(轉生)에 관한 이야기를 상세하게 전한다.

 

무아란 ‘나의 없음’이라는 형이상학적 주장을 내세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온이 ‘나’ 아님을 밝히는 경험적 가르침으로 이해해야 마땅하다.

 

 

 


무아의 가르침은 ‘나’, ‘나의 것’, ‘나의 자아’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게 하는 데에 그 취지가 있다.

 

오온이라는 족쇄에 붙잡혀 있는 한에서,

우리는 끝없는 갈등과 번민의 수레바퀴를 벗어나지 못한다.

윤회(輪廻)의 세계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묘사라고 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지 못한 범부들은

오온이 만들어 내는

갖가지 불안과 공포, 생리적 욕구와 감각적 쾌락 따위를 자기 자신과 일치시키며 살아간다.

 

붓다는 이러한 악순환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기 위해

오온 하나하나가 과연 ‘나의 것’ 혹은 ‘나의 자아’인지 확인해 보도록 권한다.

 

 

 

 

그리하여 고정된 실체로 믿어왔던 ‘나’가 허상에 불과하며,

또한 문제의 상황에 처한 ‘나’ 자신이 본래적이지 않다는 자각을 일깨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