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25. 철학과 불교 - 사유체계 vs 실존 혹은 진리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3. 15. 16:35

불교는 철학(哲學)인가.

 

많은 연구자들이 불교에 대해 철학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불교가 철학의 일종으로 해석될 여지는 많다.

 

붓다는 어느 종교가보다 철학적으로 뛰어난 면모를 보였고, 당시 유행했던 사상적 경향들을 두루 섭렵하였다. 또한 그의 가르침은 합리적 사고의 토대 위에서 제시되었고, 경험세계에 대한 분석과 해명에 초점을 모으고 있다.

 

그러나 붓다의 가르침은 결코 철학적 측면에 한정될 수 없다. 그는 일방적인 사변적 견해의 추구가 바른 깨달음을 얻는 데에 오히려 방해가 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주지하듯이 철학이란 그리스어 필로소피아(philosophia)에서 유래한다.

 

이 말은 사랑(philoso)과 지혜(sophia)의 합성어로서, 온전히 번역하자면

‘지혜에 대한 사랑’이 된다.

 

철학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정보의 축적이 아니며, 그것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창조적·체계적 사유를 가리킨다. 철학이라는 용어는 바로 이것을 옮기는 과정에서 고안된 번역어로 풀이하자면 ‘배움에 밝다’ 혹은 ‘배움을 밝히다’의 의미가 된다.

 

즉 철학이라는 번역에는 단순한 배움 혹은 지식만이 아닌 역동적이고 창조적인 사유 과정이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필로소피아의 원래 뜻을 비교적 잘 반영한다고 한다고 할 수 있다.

 

 

 


철학이라는 용어가 불교적 가르침의 한 단면을 가리키는 것은 사실이다.

 

붓다는 당시의 사상가들에 대한 첨예한 비판의식 속에서 자신의 입장을 구체화하였다. 붓다의 뒤를 이은 제자들 또한 각자 자신의 입장에 근거하여 붓다의 가르침에 대한 체계화를 시도하였다.

부파·중관·유식불교 등의 새로운 흐름들이 그렇게 해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학문적 흐름들은 불교의 궁극 목적을 완전히 충족하지 못한다.

이들 각각의 불교는 결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었으며,

깨달음이라는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편에 불과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고대 인도에서는 철학이라는 낱말에 상응하는 표현으로 싯단따(siddhānta)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이 말은 성취(siddha)와 궁극(anta)의 합성어로서, 온전히 번역하자면 ‘궁극의 성취’가 된다.

 

인도인들은 궁극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전통적인 배움 혹은 학문적 가르침에 접근하였다. 또한 그러한 과정 속에서 다양한 연구의 성과를 일구어 냈다. 그러나 그들에게서 개념적·사변적 지식은 어디까지나 궁극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를 지녔다.

 

그들은 단순한 지혜의 추구에 매몰되지 않았으며, 궁극적 이상을 성취하기 위해서라면 그것마저 넘어서는 데에 주저하지 않았다.

 

 

 


싯단따라는 표현은 불교라는 종교적 가르침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다.

 

붓다와 그의 제자들이 가졌던 주된 관심은 언제나 인간의 실존에 있었다. 그들은 항상 실제 삶과 연관하여 현실을 통찰하였고, 머리만이 아닌 가슴과 더불어 진리에 접근해 나가는 길을 걸었다.

 

이점에서 불교의 학문 전통은 지혜 일변도의 발달 여정을 밟아 온 서양에서의 철학과 다른 특징을 지닌다. 간혹 서구 전통에 속한 철학자들 중에는 사고와 행동이 일치되지 않았던 인물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초기불교 이래로 불교의 학문 전통은 중생구제라는 일관된 방향성 아래 교리와 실천이라는 두 측면을 놓친 적이 없다.

 

 

 


붓다는 믿음(信, saddhā)이라는 항목을 간과할 수 없는 실천적 요소로 언급한다.

 

우리는 붓다의 완전한 깨달음에 대한 믿음을 전제로 올바른 실천에 전념할 수 있다.

믿음은 의심에 찌든 마음을 정화하여 불신과 불안의 늪으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믿음이 수반되지 않은 지혜는 교만과 방탕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믿음이 뒷받침되지 않은 지혜는 오히려 자신과 타인을 해치는 극약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초기경전에는 “목숨을 다해 귀의합니다(pāṇupetaṃ saraṇaṃ gataṃ)”라는 제자들의 믿음의 맹세가 도처에 등장한다.

 

 

 

 

여기서 우리는 붓다의 완전한 깨달음에 한 걸음씩 다가가는 종교로서의 불교와 마주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불교의 가르침을 철학이라는 테두리에 한정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