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로움(苦)이란 무엇인가.
우리의 존재 자체가 괴로움이라는 의미이다.
‘나’ 자신을 구성하는
육신(色)괴로움에 대한 가르침·느낌(受)·지각(想)·지음(行)·의식(識)의 5가지 경험적 요인들, 즉 오온(五蘊)이 그렇다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이러한 다섯 요인을 자기 자신으로 여기며 살아간다.
나의 몸, 나의 느낌, 나의 이미지, 나의 충동, 나의 인식이라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그러나 이들은 원해서 생겨난 것이 아니며, 또한 맘대로 사라지거나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들에 대해 지극히 무력하기만 하다.
삼법인(三法印)의 두 번째 진리에 해당하는 괴로움이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는 스스로 선택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며, 또한 원해서 병에 들거나 죽어가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좋아하는 느낌에 대해서는 항상 있어 주기를 갈망하고 싫어하는 느낌은 당장이라도 없어져 주길 바란다. 그런데 그게 어디 마음대로 되는가.
우리는 좋든 싫든 갖가지 느낌과 충동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리고 이들에 대해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가운데 스스로의 괴로움을 키워 나간다.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마음이 강할수록
그것의 상실 혹은 지속에서 오는 내면의 격정과 괴로움은 커져만 간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괴로움이란 외부의 사물에 대한 객관적 언명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육신·느낌·지각 따위는 타인의 몸이나 마음에 속한 것이 아니며,
지금 이 순간 ‘나’의 실존을 구성하는 경험적 내용을 가리킨다.
붓다는 바로 이러한 현상들에 집착하여 얽매이는 것을 괴로움으로 규정한 것이다.
따라서 붓다가 말하는 괴로움이란 ‘너’라든가 ‘그’ 혹은 ‘우리’가 아닌
바로 ‘나’ 자신에 일단의 초점을 모은다고 할 수 있다.
괴로움이라는 가르침 역시 ‘나’ 자신에 대해 돌이켜 보라는 실천적 메시지로서의 성격을 지닌다.
우리는 자신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 채 타인에 대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타인에 대한 배려의 마음을 나쁜 것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타인에 대한 배려에 앞서 더욱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마음가짐이다.
자신만의 느낌과 생각에 사로잡혀 베푸는 보시는 오히려 자신과 타인 모두에게 해로운 독약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나’ 자신이 겪고 있는 내면의 장애와 괴로움이 과연 무엇인지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자기 자신을 청정하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이타적 삶의 출발점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불교에 대한 학문적 연구가 시작되면서 생겨난 중대한 오해가 있다.
붓다의 가르침을 염세주의(厭世主義)로 잘못 이해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사실 불교에서는 인간의 현실을 괴로움으로 파악한다. 또한 붓다는 바로 이것을 직시하라고 이른다. 이러한 가르침은 삶의 부정적인 측면만을 강조하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언뜻 생각하면 세상에는 재미있고 즐거운 일들이 부지기수이며 그러한 즐거움만을 추구하기에도 바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의 존재 자체를 괴로움으로 규정하는 붓다의 가르침은 염세적 색채를 지닌 것으로 오인될 수 있다.
붓다의 가르침이 괴로움을 드러내는 데서 그쳤다면 염세주의라는 평가는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괴로움에 대한 강조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과정으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붓다는 결코 괴로움만을 드러내는 데에 매몰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넘어선 영속적인 행복의 경지를 알리는 데에 주력하였다.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상태로 표현되곤 하는 해탈 혹은 열반이 바로 그것이다.
붓다는 모든 괴로움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보았으며,
바로 그것을 직시하는 것으로부터 해소의 과정은 시작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느낌이나 지각 따위의 실제를 통찰하게 함으로써
그들로 인해 파생된 동요와 격정을 가라앉히는 방법을 일깨운 것이다.
해탈 혹은 열반의 경지는 그렇게 해서 도달된 궁극의 이상적 경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실천적 내용이 포함되는 한 붓다의 가르침을 염세주의로 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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