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citta)은 무엇이고 세계(loka)란 무엇인가.
또한 이들의 관계는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마음이란 대상(ārammaṇa)에 반응하여 일으키는 내면의 인식과 정서를
가리킨다.
그리고 세계란 우리가 살아가는 환경 혹은 주변의 현상을 망라하여 일컫는 명칭이다.
서구적 사고에 친숙한 현대인은 이들을 이분법적으로 나누어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하여 마음과 세계가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는다.
외부의 물리적 세계는 마음과 무관하게 실재하며,
바로 그것에 반응하여 내면의 마음이 발생한다는 것이 상식화된 사고이다.
그런데 초기불교에서는 이러한 사고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과연 우리에게 경험되는 세계는 ‘있는 그대로’의 실재를 의미하는가.
마음과 세계의 본질은 무엇이며, 이들을 따로 구분해서 보는 것은 타당한가.
이러한 문제의식 아래 붓다는
동일한 현상에 대해 다양한 견해와 주장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보게 된다.
그리하여 우리 자신의 입장과 태도에 따라 외부의 사물이 각기 다르게 이해된다는 결론에 이른다.
예컨대 어른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인 황금이 어린 아이에게는 단순히 노랗고 단단한 물체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붓다에 따르면
경험 영역에 드러나는 모든 사물은 우리 자신의 인식 과정을 걸친 연후의 것이다.
따라서 외부에 실재하는 것으로 여겨지는 세계란
실상 내부적으로 인식되고 해석된 결과로서의 세계에 지나지 않다.
이렇듯 외부적 현상으로서의 세계와 내부적 흐름으로서의 마음은 뒤섞여 있으며
서로의 경계는 명확하지 않다.
따라서 붓다는 세계의 발생과 소멸을 우리 자신과 연계시켜 말한다.
“나는 지각을 지니고 마음기능을 지닌
여섯 자 길이의 이 육신 안에
세계(의 끝이 있다고) 말한다.
(또한 나는 이 육신 안에)
세계의 발생과 세계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 있다(고 말한다).”
초기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란
현상계 너머의 초월적 실재와 연관된 형이상학적 탐구의 대상이 아니며,
우리 자신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외부의 객관적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우리의 경험을 가능케 하는 지각(saññā)과 마음기능(manas)이 작동하는 한에서 발생하고 소멸한다. 따라서 세계란 우리 자신의 태도와 정신적 역량에 따라 각기 다른 차원으로 전개될 수 있다. 또한 이와 관련하여 붓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마음이 세계를 인도하고
마음에 의해 (세계는) 이끌려 다닌다.
마음이라는 하나의 원리가 참으로 모든 것을 지배한다.”
그러나 세계는 단순히 비실재적이거나 환상이 아니다.
우리는 이들을 멋대로 변형시키거나 달라지게 할 수 없다.
예컨대 세계를 이루는 물질현상에 대해
“나에게 이러한 물질현상은 있어라 저러한 물질현상은 있지 말라”고 할 수 없다.
그렇지만 세계는 우리 자신과 별개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세계는 우리의 인식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세계로부터 완전히 독립하여 살아갈 수도 없다.
마음과 세계는 별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다고 아예 하나라고 말할 수도 없다.
이들은 서로 의존해 있으며,
삶이 유지되는 한 함께 가꾸고 다스려 나가야 할 내용이 된다.
마음과 세계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스스로를 다스리는 과정을 통해 세계의 발생과 소멸에 개입할 수 있다는 희망을 제공한다.
실제로 초기불교에 따르면
수행(yoga)은 새로운 차원의 세계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된다.
예컨대
욕망에 지배되는 세계(欲界),
순수한 물질현상의 세계(色界),
물질현상을 벗어난 세계(無色界)
따위의 삼계(三界)는
죽고 난 이후 다시 태어나는 세계일뿐만 아니라,
현재의 삶에서 경험할 수 있는 전혀 다른 차원의 세계들이기도 하다.
또한 우리는 삼계의 굴레를 완전히 벗어난 해탈·열반의 경지에 머물 수도 있다.
바로 이것을 가능케 하는 실천·수행은 다양한 맥락으로 시도될 수 있을 것이다.
붓다의 가르침은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차원의 밝은 세계를 열어가는 주인공이라는 자각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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