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世界, loka)는 어떻게 구성되는가.
세간(世間)으로도 옮겨지는 이것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반영하여 여러 차원으로 나뉘어 설명된다.
우리가 마주하는 세계란 우리에게 해석된 결과로서의 세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란 우리 자신의 정신적인 역량과 밀접한 상관관계에 놓이게 된다.
그렇다고 세계란 단순히 환상이나 허구가 아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의지와 무관하게 이 세계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인간은 오랜 세월에 걸쳐 세계에 대한 이해와 견해를 성숙시켜 왔으며
또한 그 속에서 각자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초기불교의 세계관은 고대 인도의 그것을 계승한다.
전통적인 분류에 따르면 세계는
욕망에 지배되는 세계(欲界),
순수한 물질현상의 세계(色界),
물질현상을 벗어난 세계(無色界) 등으로 구성된다.
욕망에 지배되는 세계 중에서도
지옥계․축생계․아귀계․수라계 등의 넷은 괴로움으로 점철된 세계이다.
한편 인간계․천상계 등의 둘은 즐거움과 괴로움이 뒤섞인 세계로 간주된다.
우리는 이러한 방식으로 구성된 3가지 차원에 속한 6가지 부류의 세계에 머문다.
이들 각각의 세계는 초기경전 도처에 산발적으로 등장하며,
부파불교에 이르러 삼계(三界)와 육도(六道, 六趣)로 정형화된다.
삼계와 육도의 세계는 얼핏 비합리적이고 신화적인 것으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초기불교의 세계관은 인간의 심리상태를 투사한 것이라는 점에서 매우 독특하다.
따라서 이 가르침은 자신의 내면을 돌이켜 보도록 유도하는 교훈적 성격이 강하다.
우리는 순간순간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굴레에 묶이곤 한다.
그러한 부정적 정서와 사고의 심층부에는 ‘나’라는 관념이 굳건히 자리한다.
‘나’를 내세우고 ‘나 아닌 것’을 배척하는 가운데 우리는 탐냄과 성냄 따위에 빠져든다.
바로 이것이 삼계와 육도가 전개되는 원리이다.
탐냄과 성냄에 휘둘릴수록 우리의 삶은 더욱 메말라가고 비참해진다.
바로 그 극한에 지옥계가 자리한다.
지옥계가 만들어지는 조건은 잔인함과 살생이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분노와 공포에 지배되어 모진 괴로움에 시달린다.
축생계는 어리석음과 식욕 따위를 생성의 조건으로 한다.
여기에 속한 이들은 본능적 욕구에 압도되어 감각적 쾌락만을 추구한다.
아귀계에 속한 이들은 끝없는 공허감에 사로잡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한다.
이 세계는 집착과 인색을 조건으로 한다.
수라계에 속한 이들은
자신에게 거슬리는 일체의 장애물을 파괴하려는 공격적 본성에 지배된다.
이 세계는 성냄을 조건으로 이루어진다.
한편 인간계에서는
타인과의 갈등이 부각되며 자신으로부터 도피하려는 성향이 문제시된다.
이 세계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살생이라든가 도둑질 따위를 하지 않는
계율에 대한 인식이 요구된다.
천상계에 속한 이들은 감각적·심미적 쾌락에 경도되어 오랜 시간 즐거움만을 탐닉한다.
이 세계에 태어나기 위해서는 윤리적 덕목의 준수와 함께 믿음과 보시의 실천이 필요하다.
특히 천상계 중에서도 욕망의 굴레를 벗어난 이들이 머무는 몇몇 세계는
명상의 숙련 정도에 따라 현재의 삶에서 체험이 가능하다.
순수한 물질현상의 세계(色界)와
물질현상을 벗어난 세계(無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삼계와 육도는 누군가가 그렇게 태어나도록 조정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마음상태에 따라 자명한 이치로서 드러나는 세계이다.
초기불교에서 이 가르침이 지향했던 원래의 의도는
스스로를 잘 다스려 갖가지 존재의 속박에 매이지 말자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현재의 삶에서 온갖 번뇌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자는 데에 있었다.
이와 관련하여 아난다(Ānanda) 존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봄의 세계에서 최고의 세계는
지금 이 몸으로 보면서 번뇌가 다할 때의 세계이고,
들음의 세계에서 최고의 세계는
지금 이 몸으로 들으면서 번뇌가 다할 때의 세계이며,
즐거움의 세계에서 최고의 세계는
지금 이 몸으로 즐거움을 누리면서 번뇌가 다할 때의 세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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