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진암(識盡庵)/임승택교수님의 초기불교순례

33. 탐냄 - 물듦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4. 14. 15:27

 

 

탐냄이란 무엇인가.

 

무언가를 가지거나 차지하려는 마음을 말한다.

이것은 즐겁거나 매혹적인 대상과의 접촉에서 발생한다.

 

우리는 주변의 끌리는 현상들을 마주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탐냄에 물든다.

실제로 탐냄의 원어는 빨리어(Pāli)로 라가(rāga)인데 이것은 ‘물들다’라는 뜻으로부터

유래하였다. 한편 라가와 동의어인 로바(lobha)는 그렇게 해서 ‘몹시 탐내는 상태’를 가리킨다.

탐냄이란 마치 끈끈이처럼 좋아하는 대상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려는 심리이다.

 

 


탐냄성냄(dosa) 어리석음(moha)과 더불어 깨달음의 장애를 이루는 근본 번뇌가 된다.

바로 이들에 얽매이는 까닭에 우리는 스스로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끝없는 윤회의 바퀴 안을 맴돌게 된다.

 

탐냄과 성냄과 어리석음은 내면에서 자라나 스스로를 옭아매는 족쇄가 된다.

그리하여 본능에 압도된 동물적 삶으로 내몰기도 하고, 분노와 공포의 도가니에 빠뜨리기도 하며,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쾌락에 취하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들 셋은 공히 중생들을 괴롭히는 악의 근원이 되는 까닭에 ‘3가지 독(三毒)’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일컬어지기도 한다.

 

 


탐냄의 해악이 어떠한가에 관한 좋은 예화가 있다.

 

옛날에는 원숭이를 잡을 때 나무통 안에 끈끈한 송진을 담아 두었다고 한다.

그러면 호기심 많은 원숭이가 거기에 한쪽 손을 넣었다가 달라붙어 빼내지 못하게 된다고 한다.

아무리 애써도 그 손이 빠지지 않으니까 다른 한 손을 또 넣게 된다.

그래도 안 나오면 발까지 넣는다. 마지막으로는 주둥이까지 넣어 옴짝달싹 못하게 되고 만다.

 

이 이야기는 탐냄이라는 것이 어떠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옭죄게 되는가를 잘 묘사한다.
탐냄이란 처음에는 작게 시작되지만 점점 커져 우리의 온 존재를 삼키고 만다.

 

 

 


탐냄은 마음에 드는 대상과의 접촉으로부터 발생한다.

 

따라서 외부 대상과의 접촉마저 피해야 하는가의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예컨대 “문고리를 걸어두고 아예 문밖을 나서지 않는다면 괴로움의 씨앗이 되는 모든 유혹을 미리 차단할 수 있을 텐데….”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삶이 유지되는 한 우리는 외부 대상과의 접촉을 피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러한 회피는 가능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결코 바람직스럽지도 않다.

우리는 외부적으로 접하거나 내부적으로 느끼는 현상들의 발생과 소멸에 대해 무력하다.

누구도 생(生)·노(老)·병(病)·사(死)를 멋대로 조작하거나 피해 나갈 수 없다.

 

 

 


탐냄의 원인이 되는 안팎의 현상은 억지로 제거할 수 없다. 그렇다면 답은 분명해진다.

그러한 현상들을 접하되 물들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붙잡을 수도 없고 붙잡아서도 안 되는 것이라면 그냥 흘러가도록 내버려 둔 채 상대해야 한다.

 

따라서 붓다의 가르침은 외부 대상을 거부하거나 변화시키는 것보다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을 다잡는 일에 초점을 모은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은 가감 없이 인정하도록 하되 거기에 매몰되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

 

자연적인 현상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것으로부터 생겨나는 탐냄이라는 정서는 충분히 다스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탐냄을 버리라는 가르침은 모든 욕구를 완전히 포기하라는 의미가 아님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현실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적당한 수준의 욕구(chanda)는 필요하다.

 

건전한 욕구는 우리의 삶을 풍요로움으로 이끌 수 있고, 또한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초기불교에서는 탐냄과 욕구를 엄격히 구분한다.

바른 욕구는 올바른 실천으로 이끌 뿐만 아니라 지혜와 해탈에 이르게 하는 추진력이 될 수 있다.

 

 

 

탐냄을 야기하는 외부 대상과의 접촉은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바르게 살아가려는 욕구는 더욱 절실히 필요하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이 있다.

즐기되 물들지 않을 수 있다면 굳이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