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당시의 인도에서는 바라문교의 영향 때문에 일반적으로 여성들은 별로 대우를 받지 못했다.
때로는 남성의 예속물로서 천시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당시 여성들 중에도 철학적 문제와 같은 지적 분야에 대해서 해박한 지식을 보여주고 있는 예가
더러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여성들의 지위가 현저히 상승된 것은 역시 부처님의 덕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부처님은 당신의 너그러운 마음과 큰 도량으로 언제나 여성들을 자상하고 정중하게 대하셨으며
그들에게도 똑같이 청정 그리고 성스러움에 이르는 고귀한 길을 가르쳐 주셨다.
세존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머니는 집안에 계신 친구요, 아내는 남편에게 최상의 벗이다.”72)
암바빨리는 평판이 좋지 못한 여자였지만 부처님께서는 그 여인의 공양 초대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여인이 올리는 음식을 다 드신 다음, 보답으로 법의 선물(법공양)을 주셨다.
그 가르침을 받고 깊이 신심을 일으킨 여인은
지금까지의 불성실했던 세속 생활을 청산하고 출가하여 비구니가 되었다.
그리고 매우 열심히 정진한 끝에 드디어 성자의 경지에 이르렀다.
부처님이 그 크신 자비심으로 여인들을 도와주신 예로서 끼사고따미의 얘기를 빠뜨릴 수는 없다.
불교의 지혜와 자비를 가장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 감명깊은 일화이기 때문이다.
사와티 태생인 끼사고따미는 고따마족이었고 따라서 부처님과는 친척이 되는 셈이다.
너무나 몸이 야위고 연약해서 사람들이 끼사(말라깽이)고따미라고 불렀다.
여인은 부유한 상인의 아들과 결혼해서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걸음마도 하기 전에 갑자기 병에 걸려 죽어버렸다.
아기의 죽음은 어머니에게 형언할 수 없는 비탄을 안겨주었다.
오직 하나뿐인 외아들을 향한 한없는 모정 때문에 어머니는 아기가 죽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슬픔에 가슴이 메어져 정신이 나간 여인은 자기가 무엇을 하는지도 알지 못한 채
아기를 살려낼 약을 구하러 미친 듯이 여기저기를 쏘다녔다.
그러나 사와티 성의 어떤 의사도 죽은 시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헤매던 끝에 마침내 부처님 앞에까지 이르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세존의 발아래 내려놓으면서
자기 아들의 생명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대비주(大悲主)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다.
“누이여! 좋은 영약이 있느니라.
내가 그대의 고통을 치유해 줄 테니 가서 겨자씨를 얻어 오너라.
그러나 고따미여! 겨자씨를 얻을 때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에서 얻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해라.”
그러자 고따미는 곧 마을로 쫓아가서 겨자씨를 구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녔다.
마을 사람들은 동정심에서 모두 겨자씨를 주려고 했다.
그렇지만 어쩌랴! 그 많은 집 중에 어디에도 사람이 죽지 않았던 집은 찾을 수 없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헤매던 고따미는 마침내 죽는다는 게 얼마나 보편적인 사실인가를 알아차리게 되었다.
이 세상의 그 모든 사랑스럽고 소중한 것들이 덧없다는 것을,
또 모든 만남은 이별로 끝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그리고 생명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슬픔에서 벗어나게 된 여인은 죽은 아기를 시체 안치장에 안치한 후 사원 쪽으로 발길을 돌리며
다음과 같이 읊조렸다.
“모든 것은 무상하다는 이 법,
이는 마을의 법도 도시의 법도 아니네.
이 씨족의 법도, 저 씨족만의 법도 아니네.
온 세상 아니 천상세계마저도
이 법에선 벗어날 수 없네.”73)
부처님의 지도하에 끼사고따미는 무상이야말로 모든 조건 지어진 존재의 근본적인 특징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첫 번째 성위인 예류과를 성취했다.
이 밖에도 부처님께서 삶의 간난신고로 고통받는 여인들을 위로하고 도와주신 예는 수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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