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굿따라니까야3/A3. 셋의 모음

A3.89 공부지음 경2: 높은 계/높은 마음/높은 지혜 수행함을 '도닦는다', '계가 청정하다' 하고,,, 등불의 꺼짐과 같은 마음의 해탈에 이르노라

이르머꼬어리서근 2025. 3. 30. 07:37

1.

     "비구들이여,

      세 가지 공부지음이 있다.

 

      무엇이 셋인가?

 

      높은 계를 공부지음, 높은 마음을 공부지음, 높은 통찰지를 공부지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높은 계를 공부지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계를 잘 지킨다.

      그는 빠띠목카(계목)를 구족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지녀 공부짓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높은 계를 공부지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높은 삼매를 공부지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일으킨 생각 [尋]과 지속적인 고찰 [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높은 삼매를 공부지음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높은 통찰지를 공부지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아라한)

 

      비구들이여,

      이것이 높은 통찰지를 공부지음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가지 공부지음이다." 

 

 

 

2.

          "정진력을 갖추고 굳세고 활력이 넘치며

           명상을 하고 마음챙기고 감각기능들을 보호하는 자

           높은 계높은 마음높은 통찰지를 공부짓노라.

 

           앞에처럼 뒤에도 뒤에처럼 앞에도

           아래처럼 위에도 위처럼 아래도

           밤에처럼 낮에도 낮에처럼 밤에도

           무량한 삼매로 모든 방위를 지배하노라.

 

           이런 자를 일러 유학이라 하고

           도닦는다 하고 청정한 계행을 가졌다 하며

           세상에서는 그를 일러 바르게 깨달았다 하고

           활력이 넘치며 도닦음을 완성했다 하노라.

 

           [그러나 최후의] 알음알이가 소멸하였고

           갈애가 다하여 해탈한 [아라한]에게는

           등불의 꺼짐과 같은 마음의 해탈이 있노라."

 

 

 

        *'앞에처럼 뒤에도'라고 옮긴 원문은 yatha pure tathá paccha인데

           주석서에서는 처음 삼학을 공부지을 때처럼 나중에도 그렇게 한다는

           뜻이라 하고,

 

           아랫줄의 '아래처럼 위에도'라는 것은 yathā adho tathā uddha인데

           아랫부분의 몸에 대해서도 부정하다고 보고 윗부분에 대해서도 

           그렇게 본다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다.(AA.ii.352)

 

 

        *'등불의 꺼짐'은 pajjotasseva nibbanarn을 옮긴 것이다.

           nibbana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불어서 꺼진 상태라는 문자적인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열반이다.

 

           여기서는 두 가지 뜻을 다 적용할 수 있는데

           문자적인 의미를 존중하여 등불의 꺼짐이라 옮겼다.

           주석서도 등불의 꺼짐 (padipa-nibbana)이라 설명하고 있고(AA.ii.352)

           PED도 이렇게 설명 하고 있다.(PED s.u. pajita)

 

 

        *"여기서 알음알이(vinñana)란 최후(carimaka)의 알음알이이다.

           갈애가 다하여 해탈한 것(tanhakkhaya-vimutti)은

           아라한과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것을 말한다.

 

           즉 번뇌가 다하여

           최후의 알음알이가 멸함에 의해서 반열반과 같은 마음의 해탈이 있고

           태어날 곳(gata-tthana)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다시는 개념적 존재(pannattika-bhava)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다.”(AA.ii.3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