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에 세존께서는 삭까의 데와다하라는 삭까족의 성읍에 머물고 계셨다.
거기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즐거움이건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것은 모두 이전에 지은 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은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게 한다.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음으로써 업이 다한다.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한다.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니간타들이 이런 주장을 한다."
'맛지마니까야(中部) > M101.데와다하경-업이 다해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6. 업이 다해서가 아니라, 노력과 평온을 향한 정진으로 '괴로움의 원인'을 제거하여, 괴로움이 다하는 것이다. (0) | 2018.05.11 |
---|---|
5. 4) 노력과 정진이 결실이 없는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그대들은 비난받을 수 밖에 없다. (0) | 2018.05.11 |
4. 3) 노력과 정진으로 업의 과보를 바꿀 수 없는 바, 그렇다면 그대들의 노력과 정진은 결실이 없는 것이 아닌가? (0) | 2018.05.11 |
3. 2) 고된 노력과 정진이 있을 때, 괴로움을 겪게 되는 것은 무엇이란 말인가? (0) | 2018.05.11 |
2. 1) 전생이나 업을 모르면서,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끝난다.'고 하는 것인 타당한가? (0) | 2018.05.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