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니간타들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이시여,
니간타 나따뿟따는 일체지자요 일체견자로서 완전한 지와 견을 선언합니다.
'내가 걷고 있건 서 있건 자고 있건 깨어 있건 언제나 한결같이 지와 견이 확립되어 있다.'
라고.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 니간타들이여,
전생에 지은 악업이 있으니 이 고통스런 고행으로 없애라.
그리고 여기서 몸으로 제어하고 말로 제어하고 마음으로 제어하면
미래에 악업을 짓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을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게 한다.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음으로써 업이 다한다.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한다.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라고.
이것을 우리는 좋아하고 인정하고 마음으로 기뻐합니다."
11.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마믐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니간타들이여,
이 다섯 가지 법들은 지금 ․ 여기에서 두 가지 과보를 가져옵니다.
무엇이 다섯인가요?
믿음, 찬성, 구전, 이론적 추론, 사색하여 얻은 견해입니다.
도반 니간타들이여,
이 다섯 가지 법들은 지금 ․ 여기에서 두 가지 과보를 가져옵니다.
여기서 니간타 존자들은
과거를 말하는 스승에게
어떠한 믿음이 있으며 어떠한 찬성이 있으며 어떠한 구전과 어떠한 이론적인 추론과
어떠한 견해를 얻음이 있습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설했지만 나는 니간타들에게서 어떤 법다운 대답을 보지 못했다."
12.
"다시 비구들이여, 나는 그 니간타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도반 니간타들이여.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으면
그때 그대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낍니까?
그러나 고된 노력이 없고 고된 정진이 없으면
그때 그대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 않습니까?"
[니간타들이 대답했다.]
"도반이시여,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으면 그때 우리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낍니다.
그러나 고된 노력이 없고 고된 정진이 없으면 그때 우리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13.
"도반 니간타들이여, 참으로 이와 같이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으면
그대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만
고된 노력이 없고 고된 정진이 없을 때에는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간타 존자들이 설명하기를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즐거움이건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것은 모두 이전에 지은 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은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게 한다.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음으로써 업이 다한다.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한다.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타당하지 않습니다."
14.
"도반 니간타들이여,
만일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을 때에도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고,
나아가서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없을 때에도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낀다 합시다.
그렇다면 니간타 존자들이 설명하기를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즐거움이건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것은 모두 이전에 지은 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은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게 한다.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음으로써 업이 다한다.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한다.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타당할 것입니다."
15.
"도반 니간타들이여, 그러나 참으로 이와 같이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있을 때
그대들은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만
고된 노력과 고된 정진이 없을 때에는
격심하고 고통스럽고 쓰라리고 살을 에는 듯한 격통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니간타 존자들이 설명하기를
'인간이 느끼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것이 즐거움이건 괴로움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든
그것은 모두 이전에 지은 업에 기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업들은 고행으로 끝을 내고
새로운 업들은 짓지 않음으로써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게 한다.
미래에 더 이상 결과를 주지 않음으로써 업이 다한다.
업이 다하면 괴로움이 다한다.
괴로움이 다하므로 느낌도 다한다.
느낌이 다하므로 모든 괴로움에서 풀려나게 될 것이다.'라는 것은
무명과 무지와 미혹에서 기인한 것으로 전적으로 잘못된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설했지만 나는 니간타들 사이에서 어떠한 법다운 대답을 보지 못했다."
'맛지마니까야(中部) > M101.데와다하경-업이 다해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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