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가라와 경은
세존께서 꼬살라를 유행하실 때,
삼보에 깊은 믿음이 있는 다난자니라는 바라문 여인이 짠달라깝바에 살고 있었는데,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께 귀의합니다.'라는 감흥어를 읊다가, 이를 들은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로부터 바라문이면서 사문을 칭찬하니 비천하다라는 힐난을 듣고, 그에게 '만일 당신이 그분의
계행과 지혜를 안다면 그분을 비난하고 경멸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상가라와가 그 여인에게 세존께서 이 짠달라깝바에 오시면 알려달라고 한 것을 계기로 나중에
세존을 만나 법을 묻는 것을 계기로 설해진 경입니다.
■ 다난자니 여인과 바라드와자
주석을 따르면, 다난자니 여인은 바라문으로 예류과를 얻은 성스러운 여인이었는데 바라드와자라는
족성을 가진 바라문의 아내였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그녀가 세존께 깊은 신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고 어떤 일을 계기로 세존을 뵙고 이렇게 묻습니다.
"무엇을 끊어서 편안히 잠들고
무엇을 끊어서 슬퍼하지 않습니까?
고따마시여,
어떤 법을 죽이는 것을 당신은 허락하십니까?"
세존께서는 이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하십니다.
"성냄을 끊어서 편안히 잠들고
성냄을 끊어서 슬퍼하지 않는다.
바라문이여,
성냄이란 뿌리에는 독이 있고 꼭대기에는 꿀이 있어
그 성냄을 죽이는 것을 성자들은 칭송하나니,
그러므로 그것을 끊어 편안히 잠든다."
* 상윳따니까야 다난자니경(S7:1)
이런 일화를 거쳐 그는 출가하여 아라한이 됩니다. 그의 남동생인 악꼬사까 바라드와자, 순다리까
바라드와자, 삥갈라 바라드와자 들도 각각 부처님과의 문답을 통하여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는 것을
경들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서 성취하는 것 즉 '열반(nibbana)'의 다른 표현은 '탐냄, 성냄,
어리석음의 소멸'입니다. 그 반대에 서있는 것은 '갈애, 자만, 사견'입니다,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
탐욕입니다.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 성냄입니다. '알어나고 사라짐을 모르는 것' 어리석음입니다.
'감각적 욕망의 번뇌로부터 해탈(欲漏)',,, 탐욕을, 그를 향한 갈애를 풀어서 벗어남입니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해탈(有漏)',,, 있어야만 하는데 없다고,, 없어야 하는데 있다고 성냄을, 그 뿌리가
되는 내가 무엇이라는 자만을 풀어서 벗어남입니다.
'무명으로부터의 해탈(無明漏),,,, 나와 이 모든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거머쥔 어리석음, 그 미혹된
사견을 풀어서 벗어남입니다.
그 중 성냄,,,, 성을 내고 회를 내는 것,,,
그 창의 끝에는 자만과 지배를 당장 만족시키는 달콤한 꿀맛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즐겨합니다. 많은 이들이 그것을 즐겨 행합니다. 성을 내고 화를 내면,,, 그 창끝은 상대를 꿰뚫어
죽입니다. 그러나,,, 그 창을 굳게 쥔 나의 손에는 독이 묻습니다. 그 독은 내 살과 척추를 서서히 파고들어갑니다. 그것은 결국 나를 파멸로 죽음으로 몰고갑니다. 고귀한 자 결단코 성냄을 여읩니다.
성을 내지 않아 저도 나도 둘 다가 죽음을 면합니다. 성을 내서 분노하여 자신의 힘으로 갚지 못하면
슬퍼하기에 이릅니다. 성냄과 슬픔,,, 그 뿌리가 같습니다. 자신을 바로 보지 못하고 잘못 거머쥔
'자만'이 그 뿌리입니다.
■ 가지 않은 길 _ 들어본 적이 없는 길 _ 붓다의 길
상가라와 바라문 학도는 세존을 뵙고 '지금 ․ 여기의 법을 특별한 지혜로 알아 완성과 바라밀을
성취하여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친다고 천명하는 사문 ․ 바라문들 가운데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디에 속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1) 전통주의자라서 구전된 것을 의존해서 근본을 가르치는 부류도, 2) 논리가나 탐구가
로서 단지 어떤 믿음을 가지게 되어 근본을 가르치는 부류도 아니며, 3)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서
스스로 법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서 청정범행의 근본을 가르치는 그런 사문·바라문들에 속한다라고
당신을 설하십니다. 기실 이 세 번째 부류에 속하는 분들은 '여래들'말고는 없을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왜 그런지를 아래와 같이 설하십니다. 성스러운 구함 경(M26), 삿짜까 긴 경(M36) 등
여러 경들에 나타나는 이 세존께서 당세에 깨달음을 성취하신 길은 거의 정형구화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그 진실한 '의미'를 꿰뚫어 새기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길이었습니다.
1) 태어나기 마련이고, 늙기 마련이고, 병들기 마련이고, 죽기 마련이고,
슬퍼하기 미련이고, 오염되기 마련인 이것들의 '재난'을 알아
태어니거나, 늙거나, 병들거나, 죽거나, 슬퍼하게 되거나, 오염되지 않는 '열반을' 구하여 출가하심
2) 알라라깔라마, 웃다까 라마뿟따와 같은 당대의 스승들을 찾아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와 같은
무색계 선(禪)을 증득하여 머무심
→ 그러나 이들은 결국 각각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임' 아시고,
이를 버리고 떠나심
3)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버리지 못하고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음을 관하심
→ 물에 젖은 나무토막의 비유 3가지
4)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여의는 방법으로 극단의 고행을 하심: 가장 근본적인 욕구인 자신의 마음,
숨쉬는 것, 음식을 취하는 것을 끊어버리는 것으로, 사람은 숨쉬고 먹지 않으면 죽음에 이르며,
사람이 자신에게 알어나는 마음조차를 억압하여 굴복시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고행임
→ 이러한 6년의 고행으로 마음, 숨, 음식을 굴복시키고,
보통의 사람들과는 달리 오히려 불굴의 정진이 생기고 나태하지 않고, 마음챙김이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었지만, 이러한 고통스런 용맹정진이 몸을 극도로 긴장시키고 안정되지 않게
하였으며,
이러한 극심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하고 성자들에게 어울리는 지와 견의 특별함을
할 수 없음을 아시게 됨
* 고행의 실상에 대해서는 사자후의 긴 경(M12), 별칭 '온몸에 털이 곤두서는 경'의 상세 참조
5) 어릴 적 삿까족의 농경제 의식을 거행할 때 혼자 시원한 잠부나무 아래서 들었던 행복한 선정(禪定)
을 깨달음의 길로써 반조하심
→ 감각적 욕망을 추구함도 아니요, 해로운 법들과도 상관없는 마음의 길,,,
대영웅께서 비로소 시행착오를 접으시고 중도(中道)의 길로써 마음의 바른 조복을 길잡이로
삼으심. 덩어리진 음식을 드심
6) 초선∼4선의 선정(禪定)을 차례로 증득하심
7) 조복된 마음을 바로 기울여 삼명(三明)의 지혜를 증득하여 해탈, 열반을 증득하심
- 숙명통: 나의 수없는 전생과 그로 인해 여기 있음을 보는 것이니 '나를 바로 봄' 내지
'내가 여기 왜 있는가?'를 깨달음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됨
- 천안통: 중생들이 그 업에 따라 몸이 무너져 다시 태어남을 보는 것이니, '남을 바로 봄' 내지
'존재와 그에게 펼쳐지는 세상이 왜 있는지를을 바로 봄'에 다름이 아니라고 생각됨
- 누진통: 연기(緣起)로써 오온, 즉 정신·물질을 비로 봄이니 '나를 포함한 이 모든 것을 바로 봄'에
다름이 아닌 것이라 생각됨
* 세존께서는 띠뿟사경(A9:41) 등 다른 경에서 당신께서 어떻게 붓다가 되셨는지 혹은 기따기리 경
(M70)에서와 같이 어떻게 양면해탈한 자가 되는지를 설함에서 있어서는, 초선∼사선 뒤에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무색계 4선정과, 상수멸의 9차제주등지를
설하시고, 그 상수멸에서 출정하여 사성제를 꿰뚫어 알아 성취하셨다고 하니, 본경의 설하심은
이러한 부분을 간명하게 축약하여 그 요의만을 전하시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것이 세존께서 깨달음에 이르신 여정입니다. 참으로 이 세상에서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요,
석가모니 부처님 말고는 그 누구도 전한 바가 없는 법입니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4아승지 10만
대겁을 십바라밀을 구족하게 닦으시고,,, 현세에 마지막으로 오셔서 걸으신 대영웅의 치열한 길이요,
처절한 길입니다. 실패와 시행착오도 한 점 숨김없이 드러내시는 사생자부 대자대비하신 부처님의
길입니다. 세존께서 입적하신지 2,562년이 되는 올해입니다. '높고 높은 스승님, 길 가르쳐 주신 분,
억겁 묶인 저에게 자유를 주신 그분'께 두 손 높이 모아 예경드립니다. ((()))
■ 신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_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원인에 따라 안다.
이같은 세존의 설하심을 듣고 상가라와는 세존을 칭송합니다. 그리고 그가 궁금한 것을 여쭙니다.
'신들이라는 것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입니다. 그는 실로 이것이 궁금했던 모양입니다.
세존께서는 '신들이라는 것을 나는 원인에 따라 안다.'라고 답하십니다. 상가라와는 당연히 이를
의아하게 생각합니다. '있으면 있는 것이고, 없으면 없으면 없는 것'이지 무슨 답이 이렇단 말입니까?
그는 세존의 답변이 '공허하고 거짓이 아닙니까?'라고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내가 그렇게 말하더라도 지혜있는 자들은 '신들이 있다.'라는 확정적인 결론에 도달한다고
말씀하시자, 상가라와는 그러면 왜 '신들이 있다.'라는 방법으로 답하지 않으셨느냐고 묻습니다.
세존께서는 이에 '신들이 있다.'라는 것은 세상에 통용되고 있는 당연한 것이기 때문이다라고 답하십니다. 그는 이 말씀을 알아듣고 확신을 가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일화는 재미있고도 심오한 면을 담고 있습니다. 세존과 같으신 분께는 '있다, 없다.'의 단정적인
존재론에 존재의 유무가 붙어있지 않습니다. 그것이 '존재의 실상'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존재'란 '원인을 따라 아는 대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을 세상의 인습적인
표현을 빌면 '존재'가 '존재한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가르침을 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상가라와 바라문의 말처럼
1) 참으로 부처님의 노력은 단호했습니다.
2) 참으로 부처님의 노력은 아라한·정등각자에게 어울리는 대장부다운 것이엇습니다.
위없는 거룩하신 스승께 귀의합니다. ((()))
모든 고지에는 마지막에 오르기 어려운 장애가 있듯이,,,
맛지마니까야 제100경을 사경하기에 가까이 이르러는 이런저런 장애가 있었습니다.
조용히 제 마음을 길들이고 성찰할 뿐입니다.
맛지마 니까야를 마칠 때까지,,, 장애없기를,,,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과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8. 5.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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