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실천의 짧은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빈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설하신 네 가지 종류의 법 실천에 대하여 설하신 경입니다.
세존께서는
1) 지금은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2) 지금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3) 지금은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4) 지금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이 있음을 말씀하시는 바, 비구들에게 설하신 수행자로서 법을 수행함에 어떻게 임할 것인가를
설하시는 것이기도 하지만 재가자들이 어떻게 삶에 임해야 하는지 설하시는 경이라고 보아도
될 것입니다.
1) 지금은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 '감각적 욕망에 아무란 잘못이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고 감각적 욕망에 탐닉하면서 살다가
악처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겪는 것이 이것이라고 설하십니다.
- 세존께서 말루와 넝쿨의 씨앗이 어떤 살라나무 아래 떨어져서,
처음에는 그것이 별 것아 아니라고 생각하고, 자라나서 어리고 연약할 때도 그것을 기분이 좋다고
즐기다가, 자신을 완전히 감싸고 큰 가지를 부러뜨리는 지경에 가서야 그것이 참으로 두려운 일임을
알게 되는 것에 감각적 욕망에 탐닉함을 비유하셨습니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참으로 합당한 비유가 아닐 수 없습니다.
감각적 욕망 자체가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탐닉하기 쉽고 빠지기 쉬워 바로 보고 제어하지 않으면 모든 것을 그르치는 지경에
필경 이르게 됩니다.
2) 지금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
- 나체수행자의 그것처럼 먹고, 입고 등에서 관습을 거부하고 철저한 고행을 실천하지만
결국 닦아야 할 것은 닦지 않은 것이 되어 악처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겪는 것이 이것이라고 설하십니다.
- 세존께서는 고행에 대해서 그러한 고행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1]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2] 마음의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묾'
과 같은 것이야말로 어려운 것이며, (* http://blog.daum.net/ibakdal/17370047)
- 그보다 당신께서 행하신 바와 같이 더한 극한 고행으로도 인간의 법을 초월한 지와 견을 증득하지
못하며, 그것은 결국 고행으로는 '성스러운 통찰지'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며,
(* http://blog.daum.net/ibakdal/17371129)
- 결국 그러한 수행이 '염오로 인도하지 못하고, 탐욕의 및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함'을 천명하신 것을 새겨야 하겟습니다.
3) 지금은 괴로우나 마래에는 즐거움을 가져오는 법 실천
- 선천적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강하여,
그에 따른 괴로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항상 경험하지만,
그리하여 그가 비록 괴롭고 정신적 고통이 있고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울지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아,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나는 것이 이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4) 지금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 실천
- 선천적으로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강하지 않아서
그에 따른 괴로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항상 경험하지 않고,ㅣ
초선∼제4선의 바른 삼매를 닦아 머물며,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나는 것이 이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이 경을 보면서 제 자신이 첫 번째의 경우에 속한 사람이었구나라고 반조합니다.
말루와 넝쿨의 씨앗은 작지만,,, 조금 자랐을 때는 연약하고 즐겁지만,,,
그것이 자라나서 살라나무를 꼼짝 못하게 묶어버리고 큰 가지를 꺾어버리는 데에 이르러서는
제 얘기를 하시는 건가라고 느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세 번째의 경우에 속한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욕심과 성냄과 지혜없음으로 인해 그것이 가져다주는 괴로움과 고통에
피와 눈물이 범벅이 되어 운다는 데에 이르러서는 저 자신과 말많은 이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참으로 그러함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가르침을 따라 그 원인과 결과를 성찰하게 되었기에
남아있는 삶에 대하여는 방법을 바꿔 보려합니다.
마음을 마음대로 제어하고 조복시키기 전에는 어떤 성취도 있기 어렵습니다.
순간도 멈추지 않고 천방지축 날뛰는 이 마음을 길들이지 않고는,,,,,
계행을 닦고 삼매를 닦고 지혜를 닦아 참된 행복은 이루어진다는 확신이 있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세존께 감사드립니다.
부처님과 그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이 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지혜가 없어 방황하고 그것이 주는 결과로 괴로와 했던 저 자신에게 회향합니다.
이 법다운 회향을 받아 한없는 사악함이라는 이 강을 장애없이 건너게 되기를,,,,,,
탐욕이 빛바래고,,, 명지가 드러나서,,,, 갈애가 소멸하여,,,, 건너게 되기를,,,,
일체 중생이 장애없이 닙바나에 이르게 되기를,,,,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나모 붓다사.
사∼두∼ 사∼두∼ 사∼두∼
2017.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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