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37.갈애멸진의짧은경-느낌을바로봄

※後記: 갈애 멸진의 짧은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7. 1. 21. 07:23


갈애 멸진의 짧은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 동쪽 원림[東園林]의 녹자모 강당에 머무실 때

삼십삼천 신들의 왕인 삭까가 세존을 뵙고


   '간략하게 말하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하고,


    구경의 목표에 이르고, 구경의 유가안은을 얻고, 구경의 청정범행(梵行)을 성취하고,

    구경의 완성을 성취하여,

    신들과 인간들 가운데 으뜸이 됩니까?'



라고 여쭙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삭까가 세존의 가르침에 흡족하여 돌아간 것을 알고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삭까가 세존으로부터

무슨 말씀을 들었는지 혹은 그가 그 의미를 알고 기뻐한 것인지를 알기 위해 삼십삼천을 찾아가

삭까에게 그것을 묻습니다.


까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그것을 바로 답하지 않고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자신이 

아수라들과의 전쟁에서 이긴 후 지은 웨자얀따 궁전을 둘러 볼 것을 권하며 자신의 공덕과 영예를

뽐내는 바,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발끝으로 웨자얀따 궁전을 흔들리게 하는 신통으로 삭까에게

경각심을 일으키십니다.


에 마하목갈라나 존자가 다시 묻자 삭까가 자신이 들은 바를 얘기하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다시 돌아와 세존께 그 이야기를 다시 여쭙는 것이 본경의 흐름입니다.




공덕에 의해 삼심삼천에서 신들의 왕으로 감각적 욕망을 완비하고 방일함을 지적받는 삭까도

궁극의 해탈에 대해 답을 구하는 장면도 그런 존재에 대한 자각을 일게 합니다만,

이미 위없는 해탈을 이룬 아라한도 세존의 법문을 구하고 듣고 싶어하는 장면도 세존은 어떤 

분이시며 그러한 세존과 아라한들과의 관계를 볼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간략하게 설하신' 이 세존의 법문은 우리에게 참으로 요긴한 가르침을 남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잊어버리지 않을만큼 참으로 간략하기 때문입니다.

이 간략한 세존의 가르침은 아래와 같습니다.




■ 어떻게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하는가? 참으로 간략하게

                                                                 - 느낌을 바로 보고 관찰하여


    1]

   '모든 법들은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배운다.


    신들의 왕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모든 법들은 집착할만한 것이 못 된다.'라고 배우면 

    그는 모든 법들을 완전히 안다


    모든 법들을 완전히 안뒤

    모든 법들을 철저히 안다



    2]

    모든 법들을 철저히 알아

    그가 어떤 느낌을 느끼더라도

    그것이 즐거운 느낌이든 괴로운 느낌이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이든, 

    그 느낌들에 대해서


    1) 상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2) 탐욕이 빛바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3) 소멸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4)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3]

    그가 이렇게 머물 때 

    세상에서 그 어떤 것에도 취착하지 않는다


    취착하지 않으면 번민하지 않고,

    번민하지 않으면 스스로 완전히 열반에 든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세존께서는 위와 같이


- 일체 정신·물질, 혹은 어떠한 것도 궁극에 집착할만한 것이 못된다고 꿰뚫어 알면,

- 그는 어떤 느낌이 일어나더라도

   거기에서 '무상, 탐욕의 빛바램, 소멸, 놓아버림'을 관찰하게 되므로,

- 취착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번민하지 않게 되고, 따라서 열반에 들게 된다.


이와 같이 갈애를 멸진하여 해탈한다라고 '간략하게' 설하셨습니다.



핵심은 무엇입니까?

갈애를 멸진해야 하는 바, 그것은 느낌에 마음챙겨 그것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 설하신 것입니다.




적어도 디가니까야나 맛지마니까야의 경우 각 경의 순서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오백 아라한들께서

경를 결집하실 때 아무 의미없이 되는대로 니까야를 묶고, 그 니까야의 처음을 장엄하시거나, 

각 경의 순서를 정하신 것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본경을 사경하면서 역시 그렇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앞서 「삿짜까 긴 경」(M36)에서 '느낌에 지배당하지 않는 자'가 되라고 '느낌'에 대한 가르침을

설하셨는데, 이어지는 본 「갈애 멸진의 짧은 경」(M37)에서도 그러한 느낌에 대한 실전(實戰)을

통하여 결국 해탈에 이르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계신 것입니다.


결국 '간략하게' 설하시면 느낌을 바로 보는 것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것을 구체적으로 길게 그 상세를 설하시면 그것은 연기법을 따라 '오온을 바로 보는' 것으로

오온에서 그 무상함과, 그러기에 괴로움인 것과, 그러기에 나라고 취착할 만한 것이 없고 

결국 그러한 것들이 내가 아님을 꿰뚫어 알아 갈애를 멸진하고 취착이 없어져서 해탈에 이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신 바, 이는 뒤에 이어지는 「갈애 멸진의 긴 경」(M38)에서 다시 상술되는 

것입니다.


참고로 이어지는 「갈애 멸진의 긴 경」은 사띠 비구가 '내가 세존께서 설하신 법을 알기로는,

다름 아닌 바로 이 알음알이가 계속되고 윤회한다.'라는 유신견의 극단적 함정을 연기의 바른 법으로써 벗어나는 내용인 바, 바로 본경에서의 '느낌을 바로 봄'에 대한 상세가 그것이라고 하겠습니다.




느낌에 마음챙겨,

그것이 즐거운 것이든, 괴로운 것이든,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것이든, 그것에서,

무상을, 그리하여 탐욕이 빛바램을, 그리하여 소멸을, 그리하여 모든 것 놓아버림을 관찰하여,,,

일체 갈애를 멸진하여지이다,,,,,   ((()))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요긴하고 간략한  법문을 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또한 이 법문을 듣게 해주신 마하목갈라나 존자께, 삼십삼천 신들의 왕인 삭까께 감사드립니다.




이 법문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야다나에게 회향합니다. 삼십삼천 신들의 왕이신 제석천황께 회향합니다.

공덕이 더하기를,,,  발판이 되기를,,,,

모든 선함을 설하신 부처님들의 한없는 공덕의 위신력으로 허공에서라도 발판이 만들어지기를,,,


사∼두∼  사∼두∼ 사∼두∼


2016. 1.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