흠 없음 경은
아나타삔디까 원림에서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 즉 두 분 상수제자 간의 대화를
그 축으로 하고 있습니다.
두 분의 상수제자는 모두 세존께서 반열반하시기 전에 먼저 입적하시므로 이 대화는 세존께서
재세시에 설해진 것이 분명한 바, 과연 부처님의 제자들 혹은 아라한들이신 장로들 간에는 어떤 류의
대화가 오갔는지 알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합니다.
또한 이 경의 마무리에서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본 경에서의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을 지닌
비구들과 이러한 오염원들을 버려버린 비구들을 각각 '믿음이 없이 생계를 위해 출가한 자들'과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자들'에 대응하여 말씀하시는 바, 「법의 상속자 경」(M3)에서 세존께서
'법의 상속자'와 '재물의 상속자'를 대비하여 말씀하신 것을 봐서도 알 수 있듯이,
부처님이 살아 계시던 바로 그때도 부처님이 설하신 바처럼,
'잘 수행하는 승가이며, 바르게 수행하는 승가이며, 참되게 수행하는 승가이며, 합당하게 수행하는
승가'의 모습 즉 '수행하는 승가'의 모습이 아니라 삿된 원(願)을 세우고 그러한 것들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를 내고 기분 나빠하는 오염원에 사로잡힌 비구들이 있었고, 이러한 이들을 경책하고 계도
하기 위한 세존과 사려깊은 장로들의 노력이 있었음을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합니다.
먼저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흠있음과 그것을 그 사람이 자각하는지 여부에 따라 네 가지 사람의
분류가 있고, 그 중에서 흠이 있는 자들이라면 자신에게 그러한 흠이 있는 것을 아는 사람이 수승히고,
흠이 없는 자들이라면 그 중에서 자신에게 그러한 흠이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더욱 수승하다고
밝히십니다.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무슨 '원인과 조건'으로 그러한가를 사리뿟따 존자에게 물으시는 바
이와 같은 두 분 상수제자의 문답은 닙바나를 증득하시고 도리를 남김없이 깨우치고 실현하신
아라한들간의 문답이라는 것을 상기할 때 간과할 수 없는 깊은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흠이 있으면서도 '내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해 의욕을 일으키지도, 노력도, 정진을 시작하지도 않을 것이기 때문에
결국 탐냄, 성냄, 어리석음,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이고,
흠이 있으면 '내안에 흠이 있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흠을 제거하기 위헤 의욕을 일으키고, 노력을, 정진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에
결국 탐냄, 성냄, 어리석음, 흠이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이고,
흠이 없으면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은
그 원인과 조건을 꿰뚫어 알지 못하기에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할 것이 예상되고
그러하기에 결국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킬 것이기에
탐냄, 성냄, 어리석음, 흠을 가지고 마음이 오염된 채로 죽을 것이고,
흠이 없으면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아는 사람은
그 원인과 조간을 꿰뚫어 알기에 아름다운 표상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을 것이고
그러하기에 탐욕이 그의 마음을 오염시키지 못할 것이고
결국 탐냄, 성냄, 어리석음, 흠이 없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로 죽을 것이라는 것이
그 수승함과 열등함의 원인과 조건임이라고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설하고 계십니다.
흠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도 그러하거니와, 이와 더불어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채 죽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인가를 깊이 새기게 하는 가르침이라 생각됩니다.
또한 흠이 없으면서도 '내안에 흠이 없다.'라고 꿰뚫어 알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의 가르침에 있어서는
어린 아이의 경우의 그것과 같이 아직 오염되지 않아 흠이랄 것도 없는 천진난만한 그 모습은
많은 사람에게 청정함과 즐거움을 주고 그러한 모습이야말로 어른들이 본받아야 할 궁극의 지경처럼회자되기도 합니다만,
그런 어린 아이의 모습은 꿰뚫어 아는 지혜없음을 원인으로 결국은 마음이 오염되는 것이며,
비유하면 깨끗하고 광이 나는 그릇을 사용하지 않고 닦지 않고 먼지 구덩이에 던져 놓은 것과 같다는 가르침에 이르러서는,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며 남산에 옥돌도 갈아야 옥이된라는 옛 격언에 생각이 미치게 됩니다.
또한 그러할 바에야 지혜 없이 흠이 없는 자의 경우보다도, 오히려 흠이 있어도 그것을 알아 노력하고
정진하여 흠을 제거하는 자가 더욱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면, 주변의 뭇 삶을
볼 때 오히려 숙연해지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흠', '흠'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무엇을 두고 하는 말입니까?"라고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라한이라 할지라도 도반에게 거리낌 없이 그 견해를 듣고 배우고자 하는 모습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합니다. 나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닦고 버리고 실현한 자이거늘 더 이상 무엇을 누구에게 물으리오
라는 자세란 아예 찾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 '흠이 없다.'라는 표현은 세존이 설하신 여러 경에서 반복하여 나오는 표현이지만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흠'을 '나쁘고 해로운 바람(願)의 영역들'이라고 명확하게 설하고 계십니다.
달리 말하면 '좋지 않고 유익하지 못한 바람'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며, 바르지 않은 혹은 법답지 않은 '삿된 바람(願)'이라고 해도 좋을 것입니다.
이러한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에 대해서 존자께서는
- 계를 범하고 비구들이 그것을 알지 못했으면,
- 그러한 범계로 질책을 받을 때 남의 눈을 피할 수 있기를,
- 질책을 받더라도 나와 동등한 사람에게 질책받기를,
- 세존께서는 나를 통해 법을 설하시기를,
- 나를 앞세워 마을에 탁발 나가기를,
- 식당에서 내가 가장 좋은 자리, 물, 음식을 얻을 수 있기를,
- 식당에서 공양을 한 후 내가 축원 법문을 할 수 있기를,
- 승원에서 내가 비구들, 비구니들, 청신사들, 청신녀들에게 법을 설할 수 있기를,
- 비구들, 비구니들, 청신사들, 청신녀들이 나만을 존경하기를,
- 내가 수승한 의복을 얻을 수 있기를,
- 내가 수승한 음식을 얻을 수 있기를,
- 내가 수승한 거처를 얻을 수 았기를,
- 내가 수승한 약품을 얻을 수 았기를,
과 같은 것들을 그 예로 설하시면서, 이와 같은 '나쁘고 해로운 바람'을 품고는,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화내고 기분 나빠'하는 것이 모두 흠이라고 상세히 설하셨습니다.
살펴보면 위의 예로 든 사례들은 모두가 탐냄, 성냄, 어리석음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며,
「법의 상속자 경」(M3)에서 사리뿟따 존자께서 설하신 바 16가지의 오염원(탐냄, 성냄, 분노, 적의,
모욕, 얕봄, 질투, 인색, 속임, 사기, 완고함, 뻔뻔함, 자만, 거만, 허영, 방일)이 드러나는 양상이기도
하며, 괴로움의 근본인 갈애, 자만, 사견, 무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어서 사리뿟따 존자께서는
이와 같이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비구들은
설사 그들이 두타행을 하고 있다 하더라도 동료 수행자들의 존경을 받지 못한다하고 천명하시고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리지 못한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또한 이들 비구는 깨끗한 그릇 안에 시체를 담아 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려버린' 비구들은
그들이 설사 두타행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존경받음을,
그 이유는 그들이 그러한 나쁘고 해로운 바람의 영역들을 버리버린 것을 보고 듣기 때문이라고
밝히셨습니다. 또한 이들 비구는 깨끗한 그릇 안에 좋은 음식이 담겨있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이에 대하여 마하목갈라나 존자께서는 '믿음이 없으면서 생계를 위해 출가한 자들'로 표현하시면서
이들은
"1) 교활하고
2) 속이고
3) 사기치고
4) 들뜨고
5) 오만하고
6) 촐랑대고
7) 수다스럽고
8) 함부로 말하고
9) 감각기능의 문을 지키지 않고
10) 음식에 대해 적당한 양을 모르고
11) 깨어있음에 전념하지 않고
12) 사문의 결실에는 관심이 없고
13) 공부지음을 전혀 존중하지 않으며
14) 사치하고
15) 게으르며
16) 퇴보에 앞장서고
17) 한거(閑居)를 멀리 내팽겨쳐버리고
18) 태만하고 정진하지 않고
19) 마음챙김을 놓아버리고
20) 분명히 알아차림(正知)이 없고
21) 집중하지 못하고
22) 마음이 산란하고
23) 통찰지가 없고
24) 귀머거리와 벙어리와 같고"
이와는 반대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자들'은
"1) 교활하지 않고
2) 속이지 않고
3) 사기치지 않고
4) 들뜨지 않고
5) 오만하지 않고
6) 촐랑대지 않고
7) 수다스럽지 않고
8) 함부로 말하지 않고
9) 감각기능의 문을 잘 지키고
10) 음식에 대해 적당량을 알고
11)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12) 사문의 결실을 기대하고
13) 공부지음을 극히 존중하며
14) 사치하지 않고
15) 게으르지 않고
16) 퇴보를 멀리 내팽겨쳐버리며
17) 한거에는 앞장서고
18) 열심히 정진하고
19)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20) 분명히 알아차리고(正知)
21) 집중하며
22) 마음이 산란하지 않고
23) 통찰지가 있고
24) 귀머거리와 벙어리 같지 않다."
고 설하시고,
또한 이들 바른 비구들이 이같은 자세를 취하는 이유를
어떤 이가 그에게 '소중한 것'을 받으면
그것을 천시하지 않고 두 손으로 받아 그의 최상인 머리에 놓는 것과 같은 이치임을 비유를 들어
설하셔서,
그와 같지 않은 자들을 경계하고 교계하셨습니다.
철저히 앎으로써 갈애를 소멸한다는 방법으로 열반을 설하신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 그 열반이
모든 번뇌의 소멸이라면 그 모든 번뇌를 없애고 단속하여 머무는 법으로 열반에 이르는 길을 설하신 「모든 번뇌 경」(M2), 그리고 그 열반에 이르는 길 내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진리인 팔정도를
닦아 없애야 하는 법들인 16가지 오염원들과 그것으로부터 벗어남을 설하신 「법의 상속자 경」(M3),
그러한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나고 마지막 족쇄라고도 할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원인과 그것을
어떻게 극복하셨는가를 설하시고 그를 넘어,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하여, 어떻게 삼명을 얻고 해탈에
이르시게 되었는지를 상세하게 알려주신 「두려움과 공포 경」(M4)에 이어서,
본 경 「흠 없음 경」(M5)은 출가 비구 혹은 수행자들이 닦음에 있어서 위와 같은 큰 가르침에 따른
수행말고도, 작은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일상에서도 '흠 없음'을 지향해야 함을, 그리고 어떤 자세로
수행에 임해야 바른 것인가 하는 것임을 미리 가르치고 확립하고 계신 것이라 받아들여집니다.
사소한 것이라 하여 그냥 넘어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을, 흠이란 뿌리가 있는 것이기에
오히려 청정으로 나아가는 이 길에 있어서는 정반대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두 분 큰 용들께서는 이러한 깨알같은 부분에 있어서는 일부러 스승이신 세존의 말씀을 거치지 않고
상수제자들로서 대변해 주신 가르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이 받아 지녔습니다.
흠없음이 어떠한 것인지, 나쁘고 해로운 바램이 어떤 것인지, 그로 인해 화내고 기분 나빠함이
어떠한 것인지, 오염원에서 벗어난 수행자의 모습이 어떠한 것인지,,,
이같이 깨알같이 상세한 법문을 남겨주신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목갈라나 존자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가르침과 거룩하신 승가에 공경삼배하옵고 귀의합니다.
이 「흠 없음 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길,
수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나쁜 것들 안 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기를,
오늘 지금 행한 모든 공덕몫을
부모 스승 친척 친구 자신보호
천신들을 시작으로 삽심일천 존재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
성취하길 바라면서 회향합니다.
삼십일천 모든 중생 이 가르침대로 닦아 한 점 흠도 없어지이다,,,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나무 석가모니불 ((()))
2015. 8. 2
'맛지마니까야(中部) > M5.흠없음 경-흠 없음' 카테고리의 다른 글
7. 생계 때문에 출가한 자 vs 믿음으로 출가한 자 (0) | 2015.07.31 |
---|---|
6. 오염원을 버려버린 비구는 두타행을 하지 않더라도 존경받는 것이다. (0) | 2015.07.30 |
5. 오염원을 버리지 못한 비구는 두타행을 하더라도 존경빋지 못한다. (0) | 2015.07.30 |
4. 흠: '나쁘고 해로운 바램(願)'과 화내고 기분 나빠함 (0) | 2015.07.28 |
3. '흠'이란 나쁘고 해로운 바램(願)의 영역들 (0) | 2015.07.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