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長部)/D19.마하고윈다경-완성된 가르침으로

後記: 마하고윈다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11. 12. 14:48

 

 

마하고윈다경은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 산에 머무실 때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가 삼십삼천 신들의 세계에서 듣고 파악한 것을 세존께 아뢰고자 하고

세존께서 이를 허락하시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 이야기는 먼저 삼십삼천 신들의 왕인 삭까(인드라)가 부처님에 대한 있는 그대로 칭송 8가지

아래와 같이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말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세존께서는

 

1)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도를 닦으셨다는 것

 

2) 법은 세존에 의해 잘 설해진 가르침이며, 스스로 보아 알 수 있는 가르침이며, 

    즉시 결과를 주는 가르침이며, 와서 보라고 권유할 만한 가르침이며,

    향상으로 인도하므로 자기 안에 머물도록 인도할 만한 가르침이며,

    지자라면 각자 알 수 있는 가르침인 그러한 공덕을 갖춘 법을 가르치셨다는 것

 

3) 유익하고 해로운 것, 비난받아 마땅한 것과 비난받지 말아야 할 것,

    받들어 앵해야 하는 것과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할 것, 저열한 것과 수승한 것,

    검고 흰 것을 잘 갖춘 것인지 아닌지에 대하여 잘 천명하신 것

 

4) 열반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잘 천명하신 것

 

5) 도를 닦는 유학(有學)들과 번뇌 다한 자들(無學)들을 동료로 하시지만

    마음으로는 그들과 떨어져서 혼자되는 즐거움에 계합하여 머무시는 것

 

6) 큰 이익을 성취하고 명성을 얻으셨고 끄샤뜨리야들이 흠모하는 분임에도

    자만하지 않고 음식을 드시는 것

 

7) 설하시는 대로 행하시고, 행하시는 대로 설하시는 것

 

8) 최상 최고로 존귀한 청벙범행에 대하여

    의심을 건넜고, 혼란을 제거했고, 사유의 끝에 도달하신 것

 

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다음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가 전하는 삼십삼천에서 파악한 이야기는

범천 사낭꾸마라가 삼심삼천 신들의 세계에 나타나서 그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입니다.

 

먼저 범천 사낭꾸마라는 신들의 왕 삭까에게

'우리도 세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칭송을 듣고자 합니다.'라고 청하여

삭까로부터 위의 세존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칭송 8가지를 듣고 흡족해 합니다.

 

그 후 그는 '얼마나 오래 전에 그분 세존께서는 큰 통찰지를 가진 분이 되었겠습니까?'라고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묻고, 그들에게 인도대륙이 각 나라로 쪼개지기 전, 아주 오래 전에

마하고윈다 바라문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이 본경의 내용입니다.

 

 

 

조디빨라는 고윈다 궁중제관 바라문의 아들로 아버지가 죽은 다음 그 자리를 잇게 되어

'마하고윈다'라는 이름을 가지게 됩니다. 그는 그때 왕이었던 디삼빠디 왕이 죽을 것을 예견하고

친구인 여섯 끄샤뜨리야에게 지혜를 주어서 왕이 죽은 후, 왕지였던 레누 왕자와 함께

나라를 7등분하여 가지게 하고, 또한 그 일곱 나라들의 업무를 관장하는 바라문이 될 뿐 아니라

많은 바라문들에게 만뜨라를 가르치는 스승이 됩니다.

 

그는 실질적으로는 왕들의 왕, 바라문들의 바라문, 재가자들의 신과 같은 위세와 명성을 얻게

됩니다.

 

 

이러한 그는 '범천을 눈으로 보고, 범천과 토론하고 이야기하고 상의한다.'라는 명성을 얻게 되지만

실제 그러하지는 못한 자신을 보고 실제 그러한 지경을 얻기 위하여  엣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기철에 넉 달동안 선(禪)을 닦게 됩니다. 그 끝에 그는 범천 사낭꾸마라와 대면하게 됩니다.

 

범천 사낭꾸마라가 그에게 물을 기회를 주자 그는 내생의 이익에 대해서,

어떻게 범천의 세상에 태어날 수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에 대해 사낭꾸마라는

 

'인간들에 있으면서 

 1) 내 것이라는 (애착을) 버린 뒤

 2) 홀로

 3) 연민(하는 禪)에 확고부동하고

 4) 세속의 비린내들이 없고

 5) 성행위를 삼가는 것 

 여기에 서고 여기서 공부지어야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고 알려줍니다.

 

마하고윈다는 다른 것은 알겠으나 '세속의 비린내들'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다며 다시 가르침을

청합니다. 이에 대한 범천 사낭꾸마라의 가르침은 기억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그것은 오염원인 장막이며, 이에 가리게 되면 범천의 세상으로부터 지옥으로 떨어진다고

경은 말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것은 모두 14가지로

1) 분노, 2) 거짓말, 3) 사기, 4) 기만, 5) 허욕, 6) 자만 7) 질투 8) 바람, 9) 의심, 10) 남을 해코지함,

11) 탐냄, 12) 성냄, 13) 취함, 14) 어리석음

이며 우리의 세상에서도 늘 있는 것이며 '세속의 비린내들'이라고 불릴 만한 것들입니다.

 

그는 이러한 '세속의 비린내들'에 대해서 '재가에 머물면서 그것들을 몰아내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하여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마하고윈다는 왕, 끄샤뜨리야, 바라문 제자들, 아내들 等 많은 말림과 유혹을 뿌리치고

좀 더 있다가 출가하라는 말림을 뿌리치고 7일만에 출가합니다.

 

그는 출가하여 네 가지 거룩한 마음(사범주, 사무량심)을 닦습니다.

 

1) 자애(慈)가 함께 하는 마음으로,  2) 연민(悲)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3) 함께 기뻐함(喜)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4) 평온(捨)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육방으로 그리고 온 세상을 가득 채우고,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이

 

위 4가지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무는 그 수행을 닦고 구족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네 가지 거룩한 마음(사범주, 사무량심)을 온전히 닦은 사람은 범천에 태어났고

완전히 닦지 못한 사람은 육욕천(사대왕천, 삼십삼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에

태어나거나 아무리 낮아도 간답바의 무리에는 태어났고 범천 사낭꾸마라는 전하고 있습니다.

 

 

 

경의 마지막 반전은 아래와 같습니다.

위와 같은 삼십삼천에서 범천 사낭꾸마라의 이야기를 전하던 간답바의 아들 빤짜시카가

세존께 '세존께서는 이것을 기억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그것을 기억하며 당신께서 전생에 그 마하고윈다였음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세존께서는 그때 마하고윈다 바라문으로서

그 제자들에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의 도닦음에 대하여는

 

    "나의 그런 청정범행은

 

     1)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2)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3) 소멸로 인도하지 못했고,

     4)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5)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했고,

     6)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했고,

     7)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했다.

 

     그것은 단지 범천의 세상에 태어남으로 인도하는 것이었다."

 

라고 천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다시

 

    "그러나 지금 나의 이러한 청정범행

 

     1)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 2) 욕망이 빚바램,

     3) 소멸, 4) 고요함,

     5) 최상의 지혜, 6) 바른 깨달음, 7) 열반

 

     으로 인도하며,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

 

을 천명하셨습니다.

 

 

이러한 팔정도를 남김없이 완전히 아는 자들은 아라한을

남김없이 완전히 알지 못하는 자들은 불환자, 일래자, 예류자가 되므로

이처럼 모든 선남자들의 줄가는 헛되지 않고 유익하고 결실이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본경 마하고윈다경에서 세존의 가르침을 보면,

 

과거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의 도닦음에 대해서 그것도 옳았고 지금의 가르침도

옳다는 그러한 형태가 아니라, 과거의 가르침은 온전하지 못했고 지금의 가르침은 완성된 것이라고

명확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그 지향점이 시사하는 바가 명확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기독교나 천주교나 이슬람이나 힌두교나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전승과 가르침이 있고

그러한 가르침을 따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한 종교간의 갈등에 의해서 일어나는 수많은 참상을 우리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목도하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은 모두 자비(慈)와 연민(悲)과 함께 기뻐함(喜)과 평온(捨)를 강조하고

지극하고 오염없는 그 무엇과의 합일(梵我一如)을 추구하고 숭상하는 것을, 그리고

그 자의 지은 행위에 따라서 천국이나 지옥에 태어남을 가르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他 종교를 믿고 따르는 자라 할지라도 죽은 뒤의 세상이 다시 펼쳐지고, 그것이 그가 지은 업(業)의

결과에 따를 뿐이라는 세존의 가르침을 생각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他 종교와 전혀 배타적일 수

없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모든 곳에서 모두를 나와 같이 여김'은 어떤 존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거룩하고 숭고한 마음이라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존의 가르침은 특별합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그러한 보편적인 법칙을 넘어서

어디까지나 '괴로움의 종식'에 그 끝이 맞추어져 잇는 그것이 바로 그 점입니다.

 

설사 네 가지 거룩한 마음을 온전히 닦아 신통이 자재한 범천으로 태어난다하더라도

그것이 행복이 아니라는 것, 그것이 온전한 것이 아님을 세존은 말씀하시고 천명하십니다.

 

세존의 가르침의 끝은

 

1)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 2) 욕망이 빛바램을

그리하여 3) 소멸을 4) 고요함을

그리하여 5) 최상의 지혜 얻을 것을, 그리하여 6) 바른 깨달음을

그리하여 7) 열반을

 

가르키십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한 지적인 유희같아 보이는,,,이러한 것을,,,

어째서 그분께서는 보통 사람이 받이들이기 어려운 이러한 것을,,,,

어떻게 그렇게도 힘써 닦으시고 힘써 가르치셨는지,,,,

 

우매한 중생이 곰곰히 헤아려 봅니다.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

,,,,,,,,,,,,,,,,,,,

 

 

이와 같이 받아지녔습니다.

 

 

 

나무석가모니불

 

 

2013.11.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