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長部)/D16.대반열반경-그분의 반열반

後記: 대반열반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3. 11. 1. 16:36

 

 

대반열반경(Mahaparinibbana Sutta, D16)은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독수리봉산(영취산)에 머무실 때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가 웨살리를 수도로 하는 릿차위족 등 부족국가인 왓지를

공격하기 위하여 세존께 왓사까라 바라문을 사신으로 보내 그 의향을 묻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세존께서 꾸시나라 근처의 말라족들의 살라 숲에서 반열반하실 때까지의

모든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1] 비구승가가 번영하고 쇠퇴하지 않는 법(41가지)

 

세존께서는 전에 왓지국 사람들에게 나라가 쇠퇴하지 않는 법 일곱 가지를 설하셨음을

상기하시면서 왓지국이 그러한 법들을 잘 지키고 있으면 번영하고 쇠퇴하지 않을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그 법들은

 

1)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고,

2)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업무를 보고,

3)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내려온 오래된 법들을 준수하고,

4) 연장자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5) 남의 집안의 아내와 딸들을 강제로 끌고외서 자기와 함께 살게하지 않으며,

6) 탑묘들을 공경하여 전에 바치고 이미 시행한 법다운 봉납을 철회하지 않고,

7) 아라한들을 법답게 살피고 보호하고 청하고 편안하게 살게하는

 

7가지의 법입니다.

이러힌 법들은 오늘날의 국가나 조직에도 그것이 번영하기 위하여 반드시 상기해야할

덕목들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마치 당신의 반열반을 염두에 두신 듯이 비구들을 모아서

비구승가가 퇴보하지 않는 법 41가지를 7가지씩 묶어서 설하십니다.

 

먼저 왓지국 사람들에게 쇠퇴하지 않고 번창하는 법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에 견주어

 

1) 정기적으로 모이고, 자주 모이고,

2) 화합하여 모이고, 화합하여 해산하고, 화합하여 업무를 보고,

3) 공인하지 않은 것은 인정하지 않고, 공인된 것은 깨뜨리지 않으며,

    공인되어 온 학습계목들을 준수하고.

4) 장로비구들을 공경하고, 그들의 말을 경청하고,

5) 갈애가 생겼더라도 그것의 지배를 받지 않고,

6) 숲 속의 거처에 대하여 큰 관심을 가지고 있고,

7) 각자 마음챙겨 좋은 동료 수행자들을 청하고, 그들을 편안하게 머물게 하는

 

첫 번째 조직을 유지,발전하기 위한 7가지를 말씀하십니다.

 

 

 

두 번째로

 

1) 잡다한 일하는 것,

2) 말하는 것,

3) 잠자는 것,

4) 무리지어 사는 것,

    등을 즐겨하지 않고, 기뻐하지 않고, 그러한 즐거움에 몰입하지 않는 것

5) 삿된 원(願)을 갖고, 삿된 원들의 지배를 받지 않는 것,

6) 삿된 친구가 되지 말고, 삿된 동료가 되지 말고, 삿된 벗이 되지 않는 것,

7) 낮은 경지의 특별한 증득을 얻었다 하여 중도에 포기해 버리지 않는 것

 

등의 평소 비구들의 생활습관이나 태도에 관련된 7가지를 설하십니다.

 

 

 

세 번째로

 

1) 믿음이 있고,

2) 양심이 있고,

3) 수치심이 있고,

4) 많이 배우고자 하고,

5) 열심히 정진하고,

6) 마음챙김을 확립하고,

7) 통찰지를 가질 것

 

등의 평소 비구들의 마음자세와 관련한 7가지를 설하십니다.

 

 

 

네 번째로

 

1)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2)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3)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4)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5) 편안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6)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고,

7) 평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 것

 

등의 칠각지(七覺支)를 수행할 것을 설하십니다.

 

 

 

다섯 번째로

 

1) 무상(無常)의 인식을 닦고,

2) 무아(無我)의 인식을 닦고,

3) 부정(不靜)의 인식을 닦고,

4) 위험의 인식을 닦고,

5) 버림의 인식을 닦고,

6) 탐욕이 빛바램의 인식을 닦고,

7) 소멸의 인식을 닦을 것

 

등의 평소 혹은 수행하면서  마음을 기울여야 할 바 7가지 수행을 설하십니다.

 

 

 

여섯 번째로

 

1)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고,

2)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고,

3)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 것으로

 

대중에게나,  개인으로나, 동료수행자들에 대한 마음가짐, 그리고

 

4) 법답게 얻은 것을 혼자 사용하지 말고 동료 수행자들과 나누어 사용하고,

5) 대중에게나, 개인적으로,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계를 구족하여 머묾,

6) 대중에게나, 개인적으로,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함께 구족하여 머물 것

 

등의 사부대중이 어떻게 어울리고 머물러야 하는지에 대한 6가지 가르침을 설하셨습니다.

 

 

 

 

2] 네 가지 법의 무더기(法蘊) - 계(戒)·정(定)·혜(慧)·해탈(解脫)을 설하심

 

본경에서 계(戒), 정(定), 혜(慧), 해탈(解脫)로 이루어지는 4가지 법의 무더기는

특이할 정도로 여러 번 반복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디가니까야 앞의 여러 경(범망경 D1∼ 대인연경 D15)에서는 그 계가 무엇인지, 그 삼매가 무엇인지,

그 해탈이 무엇인지를 정형구로 상술하고 있습니다만, 본경에 이르러서는 이러한 상세를 생략하고

줄여서 아래와 같은 정형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이 계다.

    이러힌 것이 삼매다.

    이러힌 것이 통찰지이다.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통찰지는

    큰 결실이 있고 큰 이익이 있다.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그 번뇌들은 바로 

 

    1)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와

    2) 존재에 기인한 번뇌와

    3) 무명에 기인한 번뇌이다."

 

 

가 그것입니다.

 

그러나 本 정형구는 요약 이상의 훨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1) 계를 철저히 닦아서, 삼매는 생기는 것이고,

      → 계를 온전히 닦지 않고 바른 삼매는 생기지 않는다.

 

2) 삼매를 철저히 닦아서, 통찰지는 생기는 것이고,

      → 삼매를 철저히 닦지 않고는 바른 통찰지는 생기지 않는다.

 

3) 통찰지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마음이 해탈한다.

      → 통찰지를 철저히 닦지 않고는 마음이 해탈할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4) 통찰지를 철저히 닦은 마음은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한다

      → 주체는 그 마음이다. 해탈에 다른 곡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즉, 조건을 갖춘 그 마음이

          (취착이 없어져서 저절로 길을 따라) 해탈한다. 그리고 그 대상은 번뇌들이다.

 

5) 그 해탈(解脫, 풀어서 벗어남)의 대상이 되는 번뇌들은 무엇인가?

      → 그것은 3가지 즉 감각적 욕망, 존재, 무명으로부터의 번뇌들이다.

 

와 같은 구조를 명백히 드러내고 있음을 알 수 있읍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요약 이상의 의미, 즉 부처님의 반열반을 맞으면서

최종적으로 부처님의 전체 가르침을 압축하여 전달하는 것과 같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계, 정, 혜, 해탈, 무엇으로부터'가 바로 그것입니다.

 

 

 

 

3] 계행이 나쁜 자의 위험 / 계를 수지하는 자의 이익

 

세존께서는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의 다섯 가지 위험을 설하셨습니다.

 

1) 방일한 결과로 큰 재물을 잃는다.

2) 악명이 자자하다.

3)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도 의기소침하여 들어간다.

4) 매(昧)해서 죽는다.

5)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떨어진다.

 

 

계를 받들어 지키는 자의 다섯 가지 이익을 아래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1) 방일하지 않은 결과로 큰 재물을 얻는다.

2) 훌륭한 명성을 얻는다.

3) 그 어떤 회중에 들어가도 두려움이 없고 당당하게 들어간다.

4) 매(昧)하지 않고 죽는다.

5)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선처(善處) 혹은 천상세계에 태어난다.

 

고 천명하셨습니다.

 

 

 

4] 계를 지키는 승가에 대한 보시의 공덕

 

마가다의 대신인 수니다와 왓사까라는 왕의 명에 따라 왓지를 공격하기 위해 빠딸리 마을에

도시를 건설하던 中 세존과 비구승가에게 공양을 청합니다.

 

승가에 대한 공양에 대한 세존의 다음 게송은 귀담아 들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세존께서는 단 한 마디도 빈 말씀이 없으시고 진실하시기 때문입니다.

 

    "현자는 어느 지방에 거주하든

     계를 지니고 잘 제어된 청정범행을 닦는 자들을 부양한다.

 

     거기서 현자가 그들에게 보시를 베푸는 것을 보고

     신들은 그에게 예배하고 그를 존경한다.

 

     신들은 그를 연민하나니

     마치 어머니가 친아들을 그리하듯이,

 

     신들이 연민하는 그는

     항상 경사스러움을 보게 된다."

 

 

 

5] 사성제(四聖諦)를 설하시다.

 

세존께서는 각각

 

1)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를,

2)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를,

3)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를,

4)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고, 꿰둟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였다라고 설하십니다.

 

그러나 이제,

이 4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닫고 꿰뚫었기 때문에

 

1) 존재에 대한 갈애는 잘라졌고,

2) 존재로 인도함은 부수어 졌으며,

3) 다시 태어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천명하셨습니다.

 

법을 듣는 비구들과 당신을 같이 두고 '나와 그대들'이라고 말씀하시는 부분은

그 담백함과 솔직하심이 우리의 가슴을 울립니다.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이것을 꿰뚫지 못하여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윤회를 벗어나지 못한다."라는 말씀은 본경 바로 앞 대인연경(D15)의 앞 부분에도 나오는

말씀입니다. 거기에서 이것은 바로 '연기(緣起)'입니다.

 

그러하기에 사성제는 연기라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괴로움의 일어남, 괴로움의 사라짐. 그리하여 그 일어남·사라짐의 법으로

오온을 바로 보아(正見)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 버린 채 머무는 것' ,

또한 바른 마음챙김(正念)을 지니고 바른 삼매(正定)를 증득하여(等至)

마음의 해탈과 통찰지에 의한 해탈을 구족하여 머무는 것이 세존의 뜻이라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통찰지를 철저하게 닦아 생긴 마음은

 (취착이 없어져서)

 바르게 번뇌들로부터 해탈하나니,,,"

 

라는 위의 세존의 말씀과 궤를 같이 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6] 법의 거울(法鏡) 법문을 설하심

 

법의 거울 법문은 아난다 존자가 세존께 사부대중 中 죽은 자들이 죽은 뒤 어디에 태어났는지

계속 물어보자 그때그때마다 물어보면 여래에게 성가신 일이라고 하시며,

이 '법의 거울 법문'을 설하시면서,

 

다음의 4가지 조건을 갖춘 자는 적어도 예류자가 되어

'다시는 악처에 떨어지지고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정등각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고  

스스로 자신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고 말씀하신 법문입니다.

 

그 4가지 조건은

 

1) 부처님에 대한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 ( http://blog.daum.net/ibakdal/17371062 )

2) 가르침(法)에 대한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 ( http://blog.daum.net/ibakdal/17371063 )

3) 승가에 대한 움직이지 않는 깨끗한 믿음 ( http://blog.daum.net/ibakdal/17371064 )

4) 계(戒)를 구족함

 

입니다.

 

1) ∼ 3)에 대해 부처님이 설하신 세부 내용은 테라와다 불교(상좌부 불교)에서 불자의 기본이라고

이야기되어지는 '삼보예경'(Buddha Vandana, Dhamma Vandana, Sangha Vandana)과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며,

 

저 또한 이 '삼보예경' 中 적어도 승가공덕은 부처님의 입멸後 승가에서 재가신자들의 믿음을 위하여

승가에서 승가를 위해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던 바, 

부처님께서 직접 설하신 바인 줄 알고,

참으로 이와 같이 있는대로 보존하고 전해주시는 승가에 고마운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7] 부처님의 간곡한 부탁 -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머묾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머물러야 한다.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부탁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면 마음챙김은 무엇인가?'라고 자문하신 다음

 

그것은 바로 몸에, 느낌에, 마음에, 법에 마음챙기는 사념처(四念處)가 그것임을 천명하시고

그리하여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가 되어 머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또한 마음챙김에 이어 자나깨나 무엇을 하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분명히 '알면서' 행할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8] 벨루와가마에서의 마지막 안거 -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세존께서는 벨루외가마에서 마지막 안거를 명하십니다.

이 마지막 안거 中에 세존께서는 '혹독한 병에 걸리셔서 죽음에 이르르는 고통'이 생기지만

내기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반열반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하셔서

정진으로 그것을 극복하십니다.

 

아난다 존자가 걱정을 많이 했음을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아래와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1) 비구승가는 나에게 무엇을 더 바라는가?

    나는 안과 밖이 없이 법을 설하였다. 나의 법에는 스승의 주먹과 같은 것이 따로 없음을.

2) '나는 비구승가를 거느린다.'거나 '비구승가는 나의 지도를 받는다.'라는 생각이 없음을.

 

 

이어서 하시는 다음 세존의 말씀은 너무나도 꾸밈없고 처연하여

과연 그분은 어떤 분이었을까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아난다여,

    이제 나는

    늙어서 나이 들고 노후하고긴 세월을 보내고 노쇠하여,

    내 나이가 여든이 되었다.

 

    아난다여,

    마치 낡은 수레가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움직이는 것처럼

    여래의 몸도 가죽 끈에 묶여서 겨우 (살아) 간다고 여겨진다.

 

    아난다여,

    여래가 모든 표상들을 마음에 잡도리 하지 않고

    이런 (세속적인) 명확한 느낌들을 소멸하여

    표상없는 마음의 삼매에 머무는 그런 때에는 여래의 몸은 더욱더 편안해진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아난다에게

 

1) 자신을 섬으로 삼고(自燈明) 자신을 귀의처로 삼아(自歸依) 머물고,

    남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2) 법을 섬으로 삼고(法燈明) 법을 귀의처로 삼아(法歸依) 머물고,

    다른 것을 귀의처로 삼아 머물지 말라.

 

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이와 같이 하는가를 설하시면서

몸(身)에서 몸을, 느낌(受)에서 느낌을, 마음(心)에서 마음을, 법(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는 자되어 머무는

사념처(四念處)가 바로 그것임을 설하셨습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들숨날숨(身念處)으로 부터 시작하여 '한 길 이 몸뚱이'를 벗어나지 않고

피난처를 구하고 구경의 지혜를 얻는 법을 천명하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9] 짜빨라 탑묘에서 - 세존께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시다

 

이 부분을 읽을 때마다 마음이 괴롭고 혼란스러웠습니다.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누구든지 사여의족(四如意足), 혹은 네 가지 성취수단 즉,   

혹은 뜻대로 자유자재한 신통력을 일으키는 다리. 혹은 네 가지 뜻이 같은 신족(神足)으로

1) 열의를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行)를 갖춘 성취수단(욕여의족(欲如意足))
2) 정진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정진여의족(精進如意足))
3) 마음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심여의족(心如意足))
4) 검증을 (주로 한) 삼매와 정근의 의도적 행위를 갖춘 성취수단(사유여의족(思惟如意足))

                                                                            (디가니까야 제18경 「자나와사바경」22절)

을 온전히 닦은 자이면,

 

원하기만 하면 일겁을 머물 수도 겁이 다하도록 머물 수도 있다고 말씀하시며

당신께서는 바로 이와 같은 분이므로 세상에 더 머물 수도 있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아난다는 그때 그 마음이 마라에 사로잡혀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1)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2)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3) 세상을 연민하고,

 4) 신과 인간의 이상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 부디 선서께서는 일 겁을 머물러 주소서."라고

 세존께서 세상에 더 머물러 주실 것을 간청하지 않습니다.

 

 

경에 의하면 여래께서는 아난다에게 이 짜빨라 탑묘를 포함해서 그 전에부터 약 18번 정도를

같은 뜻으로 말씀하셨으나 아난다는 위와 같은 간청을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또한 마라는 여기 짜빨라 탑묘에서의 5번의 간청 외에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직후

네란자라 강둑 염소치기의 니그로다 나무 아래서부터도 세존께서 반열반에 들기를 간청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는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수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신 後 다음의 게송을 읊으십니다.

 

    "잴 수 없는 (열반과) 존재를 견주어 보고

     성자는 존재의 상카라를 포기하였고

     안으로 침잠하고 삼매에 들어

     껍질을 벗듯이 자신의 생성을 벗어버렸노라."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반열반을 간청했던 마라의 이야기를, 그리고 생명의 상카라를 

포기하셨음을 말씀하셨을 때 그제서야 아난다는 세존께 세상에 더 머물러 달라는 청을 드립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이미 때가 아님을, 그리고 이미 마음을 정하셨고 선언을 하셨으므로 돌이킬 수

없고, 또한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모든 것은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므로 당신 또한 영원히

머무를 수는 없는 일이라고 아난다에게 상기시킵니다.

 

 

 

세존께서는 세상에 더 머무시기를 원하셨던 것인가? 그러한 갈애가 있으셨던 것인가?

라는 질문이야말로 이 경을 볼 때마다 저를 혼란에 빠뜨리고 괴롭게 했던 질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라고 결국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세존께 대한 한 방향의 믿음 때문이 아니라,

여러가지 논리적인 추론과 그 과정 속에 생겨난 제 마음의 어떤 표상 때문입니다.

 

세존께서는 여래·아라한·정등각이시며 9가지 공덕을 온전히 갖추신 분입니다.

모든 갈애를 부수고 번뇌를 멸진하여 뛰어넘으신 분이십니다.

 

모든 여래께서 갖추시는 사무외(四無外, 네 가지 담대함, 두려움 없음) 中

'그대는 번뇌 다 한 자라고 천명하지만, 이러한 번뇌는 완전히 멸하지 못했다.'라는 그러한

오점으로부터 그분께서는 완전히 자유로우신 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도 제 마음에는 한 가지 의문이 더 남아 있었습니다.

삶에 대한 '갈애'까지는 아니더라도 그러한 간청을 끝내 하지 못했던 아난다 존자에 대한 '아쉬움'

정도는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닐까라는 의문입니다.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아난다 존자가 묻자 세존께서는 큰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를 설하십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1) 여덟의 회중이 나를 알아보지 못함, 2)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팔승처),

3) 여덟 가지 해탈에 대한 말씀을 하시고 난 후에야,  아난다 존자에게 깨달으신 직후부터

오늘 짜빨라탑묘에서 있었던 마라의 반열반 간청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 가지 법문은 아난다 존자가 물어보거나 청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세존께서 설하신 이유가

궁금했습니다. 혹여나 아난다 존자에게 아쉬운 마음이 있어셔서 '나와 같은 자를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느냐?'라고 '그래서 내가 바라던 간청을 하지 옷한 것 아니냐?'라고 아쉬움에

질타하시는 모습으로도 보일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몇 번이고 곰곰히 읽어 보고는 그것이 아니다.

아난다 존자에게 일말의 아쉬움을 표현하신 것이 아니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1) 사람들의 회중이던 신들의 회중이던 세존께서 그 회중에 들어 법을 설하고 기쁘게 하시더라도

    그들이 그분 여래를 알아보지 못함,

2) 그분은 사실 여덟 가지 지배의 경지를 온전히 갖추신 분으로(사리뿟따 존자의 말과 같이)

    (계 혹은 존재하는 모든 세상이 있는 한 그 모든) '세상의 주인'라는 것을 알아 보지 못함,

3) 여덟 가지 해탈(팔해탈)을 온전히 갖추심에 그 위험을 아시고도 그 계(界)에 머무시고

    그 세상과 그 곳에 머무는 뭇 중생들에 대한 자비를 갖추신 여래임에도 그를 알아보지 못함

 

等 에 대한 부처님으로서의 세상에 대한 연민의 자탄(自嘆)이었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은 '여래만의 고독'이라고 부를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스님은 경전의 출처는 모르겠으나 이런 법문을 들려주셨습니다.

"아라한 십만이 있더라도 한 분의 벽지불과 비교할 수 없으며,

 벽지불이 십만이 있더라도 한 분의 부처님과 비교할 수 없다."고.

 

한 분의 아라한·정등각 부처님이 세상에 머무실 때,

그 부처님을 온전히 알아 줄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아무도 있을 수 없습니다.

설사 어떤 아라한 제자라 하더라도 그 분을 잴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부처님은 고독할 수 밖에 없습니다.

여래만이 여래를 알아 볼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이 틀린 말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아난다 존자가 묻지 않은 상기 이어지는 3가지 법문은

'잴 수 없는 열반과 존재를 견주어 보고 생명의 상카라를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면서 포기'하시면서,

이제 세상 혹은 모든 존재와는 이별하시면서

 

세존께서 스스로 당신이 어떤 분인지 돌아보시고,

또한 다른 중생에 대한 연민 때문에 이 세상에 머무셨던 바, 

머무셨던 이 세상에 대한 여래로서의 마음의 소회를 마지막으로 스스로 읊으신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의처(依處)와 전생(轉生)과 대상(對象)'의 일체를 여의신 분이라

말하자면 '고독'이라는 것이지 대상을 전제로 하고 대상을 의지하는 그러한 고독의 영역에

속하는 것도 아닌 그러한 것일거라고 짐작해봅니다.

 

 

 

결론적으로 세존께서는 세상에 더 머묾에 대한 '갈애'가 있는 것도,

또한 세존의 뜻에 맞게 간청을 하지 않은 아난다 존자에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세존께서 중생이 청하면 세상에 더 머무시겠다는 뜻은 분명히 가지고 계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이유는 '1) 사람들의 이익과 2) 사람들의 행복과 3) 세상을 연민하고 4) 신과 인간의 이상

과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그러므로 이런 잘못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가 이런 잘못을 범했다.'라고 하신 말씀에는

갈애나 아쉬움에 따른 원망이 아니라 '그대가 어리석어 청해야 할 것을 청하지 않은 잘못 있다.'고

아직 부족한 제자의 잘못을 분명히 지적하시는 담담함과 당당함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그때 아난다 존자에게 하신 '그대는 여래의 깨달음을 믿는가?'라고 물음은

큰 울림을 전해줍니다. 그때 아난다 존자께서 세존께 '그러합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답했을 때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세존의 제자들이 결집한 본경에 있어서 어디에도 세존께서 당신의 세상에 마묾에 대해

아난다와 그러한 일련의 일이 있었다는 것에 대해서 하나도 숨김이 없다는 사실은 많은 것을 의미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일로 아난다 존자에게 회를 내시지도, 갈등을 하시지도, 연연해 하시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아난다 존자를 끝까지 살피시고 격려하십니다. 

 

그러한 담담함과 당당함은 깨달음을 얻은 직후에 반열반을 간청하고, 45년이 지난 후 다시와서

그때  세존의 말씀을 상기시키면서 졸라대는 마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잠시도 주저함이 없으십니다.

이 짜빨라 탑묘에서 비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자 말자, 세존께서는 즉시 비구들을 불러 모아

놓으시고 당신이 마지막으로 해야할 일들을 마치 전광석화처럼 처리하십니다. 

어어지는 37보리분법에 대한 선언과 당신의 반열반에 대한 선포를 하시는 그것입니다.

참으로 초연한 대웅(大雄)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10] 나는 이러한 법을 설하였다.

 

1) 세존께서는 무슨 법을 설하셨는가?

 

혹자는 세존께서는 한 마디도 법을 설한 적이 없다라고도 얘기하고,

혹자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이러한 법을 , 저러한 자들에게는 다른 자들에게는

설하지 않는 다른 법을 설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신께서는 안과 밖이 없이(당신이나 당신이 아닌 자이거나, 혹은 그것이 승가이던 심지어는 외도이던의 뜻으로 이해됩니다.) 차별없이 설하시고,

또한 당신의 가르침에는 스승의 주먹(살아있을 때에는 제자들에게도 가르쳐주지 않고 신만이

알고 계시다가, 죽을 때에는 수제자에게만 손바닥을 펴서 쥐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것의 의마라고 합니다.)과 같은 것은 없다고 천명하신,

그 세존께서 당신의 반열반을 선언하기 위하여 비구들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이렇게 천명하신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나는 어떤 법들을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설하였는가? 

 

    그것은

 

    1)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2)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3)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4) 다섯 가지 기능(五根),

    5) 다섯 가지 힘(五力),

    6)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7) 여덟 가지 구성 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다."

 

바로 「37보리분법」을 설하셨음을 천명하셨습니다.

 

 

2) 제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대들은 그것을 

 

    1) 호지한 뒤,(持)

    2) 받들어 해야 하고,(行)

    3) 닦아야 하고,(修)

    4) 많이 (공부지어야) 한다.(精進)

    5) 그래서 이 청정범행이 길이 전해지고 오래 머물게 해야 한다."(傳)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3)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이것이

 

    1) 많은 사람들의 이익을 위하고,

    2) 많은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고

    3) 세상을 연민하고,

    4)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하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반열반 하실 것을 선언하시면서 그 자리에서 읊으신 게송을 기억해야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내 나이 무르익어 나의 수명은 이제 한계에 달했도다.

     그대들을 버리고 나는 가리니

     나는 내 자신을 의지처로 삼았다.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말고 마음챙김을 가지고

     계를 잘 지켜라.

     사유(思惟)를 잘 안주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잘 보호하라.

 

     이 법과 율을 통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무는 자는

     태어남과 윤회를 버리고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

 

 

 

 

11] 4가지 법의 무더기(法蘊)는 깨달음과 꿰뚫음의 대상이다.

 

세존께서는 대반열반경에서 여태까지의 법문을 종합하시듯이 여러번 4가지 법온 즉,

계, 정, 혜, 해탈을 설하십니다. 그것은 위 2]에서 와 같이

이것이 계, 정, 혜다. 그리고 통찰지를 잘 닦은 마음은 해탈한다라고와 같이 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이 4가지 법온에 대해서 이번에는 다음과 같이 설하시므로

이것은 유념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1) 성스러운 계(戒)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2) 성스러운 삼매(定)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3) 성스러운 통찰지(慧)를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4) 성스러운 해탈(解脫)을 깨닫지 못하고 꿰뚫지 못하였기 때문에

 

나와 그대들은 이처럼 긴 세월을 치달리고 윤회하였다.

또한 이제 이 4가지를 깨닫고 꿰뚫었으므로 다시 태어남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이 4가지 법온은 사성제, 연기와 동격에 놓임을 알 수 있습니다.

세존께서 무엇을 깨달으셨는가 내지 무엇을 설하셨는가에 대해서도

4가지 법온, 사성제, 연기의 동격(同格)은 이어지는 세존의 게송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매통찰지위없는 해탈 -

     이 법들을 명성을 가진 고따마는 깨달았도다.

 

     이처럼 부처는 최상의 지혜로 안 뒤에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였노라.

 

     이제 괴로움을 끝낸

     눈을 갖춘 스승은 반열반할 것이다."

 

 

여기서 또 한가지 마음에 새긴 것이 있습니다.

저는 계(戒)는 도닦음을 위한 보조수단 내지 필수요건 정도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기 세존의 말씀을 따라 계(戒)는 당연히 그러하기도 한 것이지만, 훨씬 그 이상,

계(戒)는 그 자체로서 깨달음의 대상이요 꿰뚫음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4아승지 10만 겁의 기나긴 세월, 깨달음의 여정을 걸어 오신 여래다우시고

법다우시고 '온 몸에 털이 곤두서는' 가르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계(戒)를 지키지 않는 자는 깨닫고 꿰뚫어야 할 것을 마치치 못한 자이고

계(戒)를 지키지 않는 자는 결국 해탈에 필수불가결한 요소를 마치지 못한 자이므로

그러한 자가 해탈에 이르는 경우란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12] 세존의 말씀인가 아닌가?

 

세존께서는 이어서 비구들에게 당신께서 반열반하신 後

어떤 것이 법(세존의 말씀)인지 아닌지 서로 주장하면서 논란이 있을 것을 이미 예상하신 듯

그것을 분별하는 방법을 아래와 같이 설하셨습니다

 

 

어떤 비구가

 

1) 이것을 세존으로부터 받아지녔다고 하던,

2) 장로들과 유명한 스승이 있는 승가로부터 받아지녔다고 하던,

3)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장로들로부터 받아지녔다고 하던,

4) 많이 배우고, 전승된 가르침에 능하고, 법을 호지하고, 율을 호지하고, 마띠까(論母)를 호지하는

    한 분의 장로로부터 받아지녔다고 하던,

 

그가 이것이 법이요, 율이요, 부처님의 교법이라고 할 때

그것을 인정하지도 공박하지도 말고

 

그 단어와 문장들을 주의 깊게 들어서

경과 대조해보고 율에 비추어

맞으면 받아들이고

틀리면 '이것은 세존의 말씀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 비구가 잘못 호지한 것입니다.'라고

물리쳐야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3] 반열반을 향하여 - 모든 세심한 배려를 다하심

 

비구들에 대한 이러한 마지막 가르쳐야할 부분을 다 가르치신 後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로부터의

마지막 공양을 시작으로 세존의 반열반은 그 마지막을 향해 치달립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피가 나오는 적리에 걸려서, 죽음에 다다르는 극심한 고통'이 생기셨음에도

마음챙기고 알아차리시면서 이를 감내하시고 아래와 같은 모든 세심한 배려들을 실천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대장장이의 아들 쭌다가 자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로그 그를 위로할 것을

   아난다 존자에게 지시하신 것

 

- 여래께서 한 쌍의 살라나무 밑에 누우시자

   때 아닌 그 꽃들이, 하늘나라의 만다라 꽃들이, 하늘나라의 전단향가루가,

   하늘나라의 음악이, 하늘나라의 노래가 흩날리고 연주되는 것을 보시고,

 

   그러나 여래에게 최고로 존중하고 예배하는 것은 이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비구나 비구니나 청신사나 청신녀가

   1) (출세간)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고,

   2) 합당하게 도를 닦고

   3) 법을 따라 행하여 머무는 것

   임을 설하신 것

 

- 신들도 여래를 친견할 수 있도록 우빠와나 존자를 물리신 것

 

- 반열반하신 후 찾아올 곳이 없으면

  1) 세존께서 태어나신 곳

  2) 세존께서 성도하신 곳

  3) 세존께서 처음 설법하신 곳

  4) 세존께서 반열반 하신 곳을

  찾아 절박한 마음을 일으키면 죽어서 천상세계에 태어난다고 격려의 약속을 주신 것

 

- 여인들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설하신 것

- 여래의 존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설하신 것

- 아난다 존자를 위로하고 격려하고 비구들 앞에서 칭찬하신 것

- 그 와중에 유행승 수밧다를 제자로 받아들이신 것

- 당신이 반열반하시면 법과 율이 그들의 스승이 될 것을 설하시는 것

- 비구들간의 호칭을 변경하여 위계질서를 정하신 것

- 승가가 원한다면 사소한 계목들은 폐지해도 좋다고 유연성을 주신 것

- 찬나 비구에는 최고의 처벌을 하여 깨닫도록 인도하신 것

 

等이 바로 그것입니다.

 

 

 

14] 마지막 유훈

 

세존께서는 반열반하시기 직전 비구들을 불러 모아 놓으시고 아래의 두 가지 말씀을 하십니다.

 

찻 번째는, 어느 한 비구라도

부처나, 법이나, 승가에 대해서, 그리고 도나 도닦음의 다섯 가지에 대해서

의심이 있거나 혼란이 있으면 '지금 물어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나중에 부처님이 면전에

계실 때 여쭤보지 못했다고 자책하지 말고 지금 물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이야말로 그분의 마지막 유훈이 되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제 그대들에게 당부하노니,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

 

가 그것이었습니다.

 

 

 

세존의 장례와 관련하여 우리가 기억해야할 것 중에는 이런 것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존께서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비구들은 세존의 존체를 수습하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제자 비구들이 해야할 것은 세존의 장례 中에도 오직 세존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1) 근본에 힘쓰고, 2) 근본에 몰두히고, 3) 근본에 방일하지 않고

근면히고 스스로 독려하여 머물'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존의 장례는 그분의 말씀대로 청정한 믿음이 있는  끄샤뜨리야, 바라문, 장자들인 현자들에 의해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면 이들 뿐아니라 하늘의 천신들이 이 장례의 과정에 깊이 개입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인간과 신들이 함께 치른 장례였습니다.

 

또한 그렇게 치뤄진 그분의 장례는 슬프고 장엄한 그런 종류의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무렵 하수구와 쓰레기 더미에조차 무릎이 빠질 정도로 만다라와 꽃들이 하늘에서 내려왔고

하늘과 인간의 춤과 화환과 향과 음악과 노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그것은 큰 축제와 같은 것은 종류의 것이었을 수도 있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이와같이 대반열반경은 끝을 맺습니다.

다른 경과는 달리 어떤 주제를 두고 설해진 것이 아니라 어떤 시점부터 세존이 반열반하실 때까지

일어났던 일이나 사건들을 시간의 순서대로 쭉 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분 세존의 반열반을 담고 있는 것이어서 그분께서 머물렀을 때의 모든 가르침을

종합하고 마무리하는 면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같이 받아지녔습니다.

 

 

    높고 높은 스승님

    길 가르쳐 주신 분

    억겁 묶인 저에게 자유를 주신 분

    청정한 믿음으로 눈물 흘립니다.

 

 

 

 

이 대반열반경을 사경한 공덕으로

행복하고 위험없는 열반으로 장애없이 도착하길,,,

 

수 많은 생 윤회할 때

고통 위험 원수들과 나쁜 것들 안 만나고

모든 행복 축복들을 바람대로 이루기를,,,,

 

오늘 지금 행한 모든 공덕 몫을

부모 스승 친척 친구 자신보호

천신들을 시작으로 삼십일천 존재하는 제도 가능 모든 중생

닙바나 성취하길 바라며 회향합니다.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3. 11.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