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이란 무엇인가.
모르던 사실을 궁리 끝에 알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수행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으며 일상에서도 자주 경험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는 당연한 사실에 대해서도 모르고 살아가는 경우가 있다.
누가 가르쳐 주어도 피상적으로만 와 닿을 뿐이고
고민을 거듭해 보지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알 수 없다.
그러다가 때가 무르익었을 때 비로소 무릎을 치면서 ‘아! 그렇구나’라고 깨닫게 된다.
깨달음과 더불어 우리는 기존의 낡은 생각들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깨달음의 내용이 어떻든 깨닫고 난 연후에는 인식과 실천에 변화가 따라온다.
예컨대 우리는 불필요한 오해와 편견으로 누군가를 미워할 수 있다.
그러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오해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경우가 있다.
미워하던 그 사람이 오히려 은혜로운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그 순간
기존의 편견과 거부감은 눈 녹듯이 사라진다.
그리하여 자신이 저질렀던 그간의 무례에 고개를 숙이며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전혀 다른 눈길로 대하게 된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특히 삶의 근원적 문제에 관한 깨달음은 우리의 인생을 새로운 지평으로 이끌 수 있다.
깨달음의 빨리어(Pāli) 원어는 보디(bodhi)이다.
‘깨달은 분’이라는 의미의 붓다(buddha)라는 이름이 바로 여기에서 유래하였으며,
불교(buddhism)라는 종교의 명칭 또한 여기에 근거를 둔다.
“붓다라는 이름은
어머니가 지어 준 것이 아니고 아버지가 지어 준 것도 아니다.
형제가 지어 준 것도 아니고 자매가 지어 준 것도 아니다.
친구가 지어 준 것도 아니고 친척이 지어 준 것도 아니다.
사문이나 바라문이 지어 준 것도 아니고
하늘의 신이 지어 준 것도 아니다.
이것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해탈을 이루어
일체를 아는 지혜와 함께 얻은 진실한 명칭이다.”
그렇다면 붓다는 과연 무엇을 깨달았을까?
도대체 무엇을 깨달았기에 붓다가 될 수 있었을까.
초기불교 경전에는 깨달음에 대해 각기 다르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들이 전해진다.
그러나 ‘상적유경’에 제시되듯이 붓다의 깨달음은 사성제(四聖諦)로 집약할 수 있다. 즉
모든 인간이 괴로움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苦聖諦),
그것의 원인은 내면의 탐욕과 집착이라는 것(集聖諦),
그러한 괴로움을 극복한 경지가 있다는 것(滅聖諦),
그것을 이루는 길이 존재한다는 것(道聖諦)
을 깨달았던 것이다.
붓다는 바로 이것을 깨달아 실현하고서 주변에 알리는 것으로 평생을 일관했다고 할 수 있다.
사성제를 내용으로 하는 깨달음의 발현 양상은 어떠한가.
다음의 경구는 이 문제에 관한 초기불교의 입장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비구들이여,
나는 완전한 지혜(aññā)의 성취가 단번에 이루어진다고 말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반대로
점차적으로 배우고
점차적으로 실천하고
점차적으로 발전하여
완전한 지혜의 성취가 있게 된다.”
이렇듯 붓다는 점차적인 닦음에 의해 점진적으로 무르익는 깨달음을 가르쳤다.
초기불교에서 가르치는 깨달음이란 높은 전망대에 올라가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발을 내딛는 위치가 높아지면 그만큼 보이는 범위가 더 넓어지는 것과 같다.
‘삿짜상윳따’에는
“사성제에 대한 지혜와 견해가 청정해진 연후에야 비로소
신과 인간들에 대해 위없는 바른 깨달음(anuttaraṃ sammāsaṁbodhi)을 얻었다고
선언하였다”
는 내용이 기술된다.
나아가 과거세·미래세·현세를 막론하고
어떠한 사문이나 바라문이든지 깨달은 내용을 있는 그대로 말한다면
곧 사성제이니 바로 이것을 힘써 닦으라는 가르침이 반복된다.
사성제는 괴로움의 현실을 인식시키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점진적인 자각의 여정을 밝힌다.
따라서 이것은 ‘괴로움을 극복하고 즐거움을 얻는 과정(離苦得樂)’으로 바꾸어 말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불교의 존재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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