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말
먼저 이것을 알야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 지혜(nana)와 관련된 술어 밎 단어들 _ 대림스님 譯 「청정도론』 서문에서
"위의 기본 법수 외에 초기불교와 주석서 문헌군들에서
가장 중요하게 나타나는 술어는 아마 지혜와 관련된 용어들일 것이다.
아니 그 성격상 기본법수들보다더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불교는 지혜의 가르침이요 이런 지혜를 통해서
내 안에서 법을 확인하는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혜라 하면 얼른 반야를 떠올린다.
그 이외의 지혜에 대해선 생각해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아니 반야(panna, Sk. prajna)가 아닌 것은 알음알이 놀음이거나
지식쯤으로 치부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되면 부처님 가르침을 자칫 단편적으로 이해하는데 그치고 만다.
그러나 초기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다향한 지혜를 말씀하고 계신다.
√ jna(to know)에 여러 가지 접두어를 붙여서
부처님께서는 기존의 베다문헌이나 초기 산스끄리뜨 문헌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다양한 전문 술어를 만들어 지혜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내고 계신다.
이제 초기경에서부터 나타나며 특히 주석서 중의 주석서인 『청정도론』에서
정확하게 정의하고 있는 술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먼저 염두에 두어야할 점은 √ jna(to know)에서 파생된 술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는 점이다. 하나는 불교의 지혜를 나타내는 술어군이고
다른 하나는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알음알이, 인식)에 관계된 술어군이다.
먼저 전자부터 살펴보자.
초기경과 『청정도론』에 나타나는 지혜에 속하는 술어 들은 다음과 같다.
냐나(nana, 지혜),빤냐(panna, 통찰지), 아빈냐(abhhinna, 초월지),
빠린냐(parinna, 통달지), 안냐(anna, 구경지)이다.
【1】 냐나(nana)
지혜를 나타내는 가장 보편적인 술어이다.
nana는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이나 지식을 나타내는 경우에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전문술어로 사용될 때는 예외 없이 지혜를 뜻한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모두 ‘지혜’로 옮기고 있다.
초기경에서도 예를 들면 둑케 냐나(dukkhe nana, 괴로움에 대한 지혜)
등으로 나타나며, 이는 장부 상기띠숫따(D33)와 디숫따라 숫따(D34)에서는
10가지 지혜로 정착이 되었다.
무애해도에서는 73가지 지혜가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술어로 사용되며
본서에서도 마찬가지이다.
【2】 빤냐(panna)
pra(앞으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반야(般若)로 음역하고 있으며 지혜를 나타내는 술어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술어이다.
이 빤냐는 냐나와 거의 동의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냐나가 지혜 일반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빤냐는 통찰해서 아는 조금 특수한 영역을 나타내는 술어라고 봐야 한다.
이것의 동사 빠자나띠(pajanati)도 같은 의미를 나타내고 있다.
본서에서는 모두 ‘통찰지’로 옮겼다.
문자적으로 보면 그냥 피상적으로 대상을 분별해서 알거나 (vijanati, 위자나띠, 分知 ⇒ vinnana, 識)
뭉뚱그려 아는 것(sanjanati, 산자나띠, 合知 ⇒ sanna, 想)을 넘어서서
‘앞으로 더 나아가서(pra-) 아는 것’을 뜻한다.
이것이 반야의 가장 초보적인 의미라 하겠다.
그래서 꽃들이 있구나(산자나띠)라거나 장미, 백합, 라일락이 있구나(위자나띠) 라고
대상을 그냥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저 대상을 변하는 것으로(無常, anicca, Sk. anitya) 알고,
그러기에 필경에는 고(苦, dukkha Sk. duhkha)일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며,
그러기에 어떤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으로(無我, anatta, Sk.anatma) 아는 것을 pajanati라고 한다.
그 외에도 사제(四諦)를 안다든지
특히 긴 념처경(大念處經, D22)에서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알고(pajanati)’ 등의
공부짓는 과정에 중요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가장 눈여겨봐야 할 점은 ‘해탈했으면 해탈했다고 안다 (pajanati)’(위 9, 14번 주해 참조할 것),
그리고 여실지견(如實知見)으로 옮기는 ‘yathabhutam pajanati’ 등으로
초기경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쓰이고 있다.
역자는 본서에서는 그래서 ‘통찰지’로 옮기고 있으며 ‘pajanati’는 꿰뚫어 안다’로 옮기고 있다.
이 술어는 빠띠웨다(pativedha, 통찰), 빠띠윗자띠 (pativijjati, 통찰하다)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만 봐도 통찰 혹은 꿰뚫음의 의미가 강하다.
【3】 아빈냐(abhinna)
abhi(향하여, 위로, 넘어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 다.
불교에서 만들어진 술어 가운데서 접두어 ‘abhi’는 대부분 ‘수승한’의 의미가 있고
그래서 한문으로 勝을 써서 번역하고 있다.
(예를 들면 Abhidhamma를 勝法으로 옮김) 문자적인 의미로 본다면
‘위로 초월하여 안다’는 뜻이다.
아빈냐(abhinna)는 일반적으로는 모든 종류의 신통을 나타낸다.
특히 찰아빈냐 (chalabhinna, 여섯 가지 초월지)는 육신통(六神通)으로 한역된 술어이다.
그러나 역자는 일반적으로 신통으로 옮기고 있는 ‘iddhi’ 와 구분 짓기 위해서
아빈냐를 ‘초월지’로 옮기고, 잇디(iddhi)는 ‘신통’으로 옮긴다.
『아비담마 길라잡이』에서는 ‘abhinna’를 ‘신통지’로 옮겼다.
그러나 아빈냐는 신통만을 뜻지는 않는다.
본서 III. §15에서 “처음 禪을 닦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禪의 근접삼매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는 삼매의 수행을 도닦음(patipada)이라 한다.
근삼매부터 시작하여 본삼매까지 계속되는 통찰지를 초월지(abhinna)라 한다.”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것은 본삼매에서 생기는 지혜이므로 초월적이다.
서양의 ‘transcendental’과도 통하는 의미이다.
삼매의 상태에서 나타나는 초월적인 현상이기 때문이다.
신통이란 것도 역시 그러한 것이다.
그래서 ‘초월지’라 옮겼다. 물론 이 초월지에는 여러 가지 신통들도 다 포함된다.
72) 여기에 대해서는 『금강경 역해』136-40을 많이 참조하였다.
【4】 빠린냐(parinna)
본서에서 중요하게 쓰이는 술어에는 빠린냐(parinna)가 있다.
이것은pari(둘 레에, 원만히)+√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문자적인 의미대로 무엇을 ‘완전히, 철저히, 원만히 안다’는 뜻이다.
경에서 ‘모든 취착을 철저히 안다는 말(sabbupadana-parinna-vada)’이라는
등으로 나타난다. 반야를 통해서 성취되는 지혜이다.
본서에서는 ‘통달지’로 옮기고 있다.
중부의 M43에 “빤냐(통찰지)는 무엇을 목적으로 합니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빤냐(통찰지)는 무엇을 목적으로 합니 까?”라는 질문에 대해서
“빤냐(통찰지)는 아빈냐(초월지)를 목적으로 하고
빠린냐(통달지)를 목적으로 하고
빠하나(버림)를 목적으로 합니다.”라고 나타난다.
이처럼 아빈냐(초월지)와 빠린냐(통달지)는
빤냐(통찰지)가 있어야 개발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본서 XX. §3에는 다음의 세 가지 통달지를 설명하고 있다.
“안 것의 통달지(nataparinna, 知遍知), 조사의 통달지(tiranaparinna, 審察遍知),
버림의 통달지(pahanaparinna, 斷遍知)가 있다.
물질은 변하는 특징을 가지고, 느낌은 느껴진 특징을 가진다고
이와 같이 그 법들의 개별적인 특징을 조사함으로써 생기는 통찰지가 안것의 통달지이다.
물질은 무상하고 느낌은 무상하다는 방법으로
그 법들에게서 보편적인 특징을 제기한 뒤 생기는 보편적인 특징을 대상으로
가지는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조사의 통달지이다.
이런 법들에서 영원하다는 인식 등을 버림으로써 생긴 특징을 대상으로 가진
위빳사나의 통찰지가 버림의 통찰지이다.”
그리고 이것의 동사 빠리자나띠(parijanati)는 ‘철저히 안다’로 옮기고 있다.
【5】 안냐(anna)
안냐(anna)는 a(이리로, 넘어서)+√ jna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
경에서는 모든 번뇌를 멸한 구경의 경지를 나타내는 술어로 나타난다.
그래서 본서에서는 ‘구경지’ 혹은 ‘구경의 지혜’로 옮겼다.
즉 “생은 멸했다. 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바를 모두 다했다.
이제 이 이후에 다신 존재하지 않는다고 꿰뚫어 안다.”는 것을
경에서는 안냐(anna)라고 부르고 있다.
그 외에도 동사 아자나띠(ajanati)는 제자들이 세
존의 법문을 ‘원숙하게 완전히다 안다’고 할 때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탐욕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증오는 마음의 오염원이다. 미혹은 마음의 오염원이다’ 라고
오랜 세월을 이런 법을 설하셨습니다.
[이것을] 저는 완전히 알고 있습니 다.(M14/i.91)”
【6】 삼빠자나(sampajana)
이러한 특별한 영역의 지혜에는 포함시킬 수 없지만
주석서에서 지혜로 취급 하고 있는 √ jna에서 파생된 중요한 술어로
삼빠자나(sampanna)를 들 수 있다.
먼저 이것의 동사 삼빠자나띠(sampajanati)부터 살펴보자.
이것은 앞에서 언급한 빠자나띠(pajanati)에다 다시 접두어 sam(함께)을 더 첨가한 것이다.
이것의 중성 명사형인 삼빠자나(sampajana)는 sati(念)와 함께 쓰여서
사띠삼빠자나(sati-sampajana)로 많이 나타나는데
이는 正念正知로 번역하고 있듯이 마음챙김의 부에서 중요한 술어로 쓰이고 있다.
본서에서는 ‘분명하게 알아차림’으로 옮겼다.
특히 「긴 념처경」에 “비구는 나아갈 때에도 물러날 때에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智) 행한다 (sampajana-kari).” 등으로 나타난다.
특히 율장에서 쓰여서
예를 들면 삼빠자나 무사와다(sampajana-musa-vada)라 하면
잘 알고 있으면서 고의로 거짓말하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삼빠자나띠는 충분히 잘 아는 것,
고의성이 짙을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을 뜻한다 하겠다.
이를 통해서 「긴 념처경」에 나타나는 알아차림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긴 념처경」 등에 나타나는 삼빠자나(sampajana, 분명하게 알아차림) 를
다시 주석서에서는 여성형 추상명사인 삼빠잔냐(sampajanna)로 표기하여
위의 여러 추상명사와 동일한 계열로 표기하며 이를 지혜(nana)라고 설명하고 있다.
본서에서는 이를 ‘분명한 지혜’로 옮긴다.
이와 같이 초기경에서는 여러 가지로 지혜를 나타내고 있다.
이제 √ jna가 지혜가 아닌 일반적인 앎의 뜻으로 나타나는 술어들을 살펴보자.
【7】 산냐(sanna)
먼저 '인식'으로 옮기고 있는 산냐(sanna)는 sam(함께)+√ jna에서 파생된 여성 명사이다.
이것의 동사 산자나띠(sanianati)는 일반적으로 ‘인식하다’는 의미인데
예를 들면 여러 다른 종류의 꽃들을 ‘꽃’이라고 합쳐서(sam) 인식하는 것,
즉 표상 (表象)하고 지각하는 것을 뜻한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식에는 소위 말하는 계열화작업이 들어가는데
수많은 경험을 바탕으로 해서 A1, A2, A3 등을 보고 우선 일차적으로 A라고 인식하고
지각하는 작용을 생각하면 접두어 sam(함께, totether)이 쓰인 의미를 유추해볼 수 있을 것이다.
경과 주석서에서는 단순한 지각이나 표상작용만이 아닌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것은 니밋따(nimitta, 표상)나 빤냣띠(pannatti, 개념) 등과도 또한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8】 윈냐나(vinnana)
'알음알이'로 옮기는 윈냐나(vinnana)는 vi(분리해서)+√ jna에서 파생된중성명 사이다.
중성명사형 어미 ‘-na’는 모두 진행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앞에서 나온 여러 단어들이 여성형 추상명사인데 반해서
윈냐나는 진행을 나타내는 중성명 사형 어미 ‘-na’를 붙여서 만든 단어라는 것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동사형 위자나띠(vijanati)는 문자 그대로 ‘분별해서 안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면 한 곳에 놓인 여러 가지 꽃들을 보고
장미, 백합, 카네이션, 튤립 등으로 분리해서(vi-) 아는 것을 말한다 하겠다.
물론 장미니 백합이니 하고 인식하는것 자체는 산냐이지만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는 말이다.
윈냐나(識)는 서양학자들이 ‘mere awareness’라고 이해하고 있듯이
개념작용 (nation, 산냐)이 생기기 이전의 단계로 매찰나 대상을 접하는 순간순간 생기는
(생겼다가는 멸하고 또 다시 다른 조건에 의해서 생겼다가는 멸하고를 반복하는)
그런 알음알이 작용(consciousness)을 뜻한다고 하겠다.
그래서 주석서에서는 이것은 항상 찟따(citta, 마음, 心)와 동의어로 간주되며
감각기능과 감각대상과 더불어 찰나생ㆍ찰나멸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동사로서 경에 많이 나타나는
산자나띠(sanjanati)와 위자나띠(vijanati)를 굳이 분별해서 말해본다면
어떤 대상들을 보고 저게 꽃이라고 인식하면 그것은 산자나띠라 할 수 있겠고,
저것은 장미꽃, 저것은 무슨 꽃이라고 분별해서 안다면 그것은 위자나띠라고 할 수 있겠다.
산자나띠와 위자나띠는 이처럼 서로 반대되는 기능을 표현하고 있다고 하겠다.
이 산자나띠와 위자나띠 두 가지는 우리가 보통으로 대상을 인식하는 것을 표현한 말이라 보면
무리가 없을 것이다.
본서 XIV. §§3-6에서 붓다고사 스님은 ‘sanjanati, vijanati, pajanati’라는 의미를 중심으로
‘sanna. vinnana, panna’의 의미를 비유와 함께 설명하고 있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9】 빤냣띠(pannatti, 개념)
그리고 아비담마에서 아주 중요하게 등장하는 빤냣띠(pannatti, 개념)도 이 어근에서 파생된 술어이다.
이것은 빠자나띠(pajanati)의 사역형태인 빤냐뻬띠(pannapeti)에서 파생된 명사로
‘알게 하다, 선언하다, 지적하다, 인정하다, 정의 하다’ 등의 뜻에서
‘알게 하는 것 = 개념, 정의, 이름’ 등을 뜻하며,
아비담마에서는 82가지 법을 제외한
우리가 개념 짓고 이름 붙여 아는 모든 것을 빤냐띠라고 한다.
마음과 마음부수들과 대상의 역동적인 관계를 통해서 산출된 것으로써
예를 들면 ‘자아, 인간, 컴퓨터, 책상, 산하대지, 꽃’ 등 우리가 이름붙여 아는 수많은 것들을
개념(빤냐띠)들이라 이해하면 된다.
【10】 윈냣띠(vinnatti)
이와 유사한 술어로 윈냣띠(vinnatti)가 있다. 같은 방법으로
이것은 위자나띠(vijanati)의 사역동사인 윈냐뻬띠(vinnapeti)에서 파생된 명사인데
아비담마 에서는 까야 윈냣띠(kaya-vinnatti)와 와찌 윈냣띠(vaci-vinnatti)로 정착되었다.
중국에서는 각각 身表와 言表로 옮겼으며
역자는 ‘몸의 암시’와 ‘말의 암시’ 로 옮겼다.
이는 각각 몸의 업(身表)과 말의 업(口業)과 연결된 중요한 술어이다.
⑪ 그리고 본서에서는 아눈냐(anunna)도 제법 나타나는데
주로 I장에서 부처님께서 사용해도 좋다고 허락하신 네 가지 필수품과 관련된 문맥에서 나타난다.
그래서 ‘허용, 허락’ 등으로 옮겼다.
⑫ 그 외에 빠띤냐(patina)도 나타나는데 이는 ‘명제, 맹세, 약속, 서원 등으로 문맥에 따라 옮겼다."
말의 혼돈을 막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수고로이 해주신,,,,
김해 장유 초기불전연구원 대림스님, 각묵스님께 감사드립니다!! ((()))
불사가 원만히고 구족하게 이루어지기를!!
붓땅 사사낭 찌랑 띠따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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