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기(佛紀) 2564년? 2644년, 부처님 오신 날
오늘 5.6일은 '붓다의 날' 혹은 '웨삭 데이(Vesak Day)'라고 불립니다.
우리나라에서 음력 사월 초파일(4.8일)을 '부처님 오신 날' 혹은 '석가탄신일'이라고 정해
기념하지만,, 소위 남방불교 국가들에서는 오늘을 '부처님 오신 날'로 기념하고, UN에서도
그 전통을 존중하여 1999년에 공식적으로 기념일로 제정했다고 합니다.
'웨삭(Vesak)'은 빨리어 '위사카(visakha)'에서 유래한다고 합니다.
빨리어 위사카가 웨사카(vesakha)로 변했고, 지금의 '웨삭'이라는 단어로 정착 된 것이라고.
위사카는 인도의 달력으로는 2월에 해당한다고 합니다.
세존께서는 위사카의 보름날에 탄생하셨으며, 같은 날에 성도하셨으며, 같은 날에 반열반 혹은
입적하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부처님 오신 날'이요, '부처님 이루신 날'이요,
연민으로 법을 다 설하시고 가신 '부처님 가신 날'이기도 합니다.
우라니라에선 불기(佛紀) 2564년으로, 또한 '부처님 오신 날'이라고 기록되므로, 자칫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탄생하신지 2564년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께서 입적하신 해를 기준으로 2564년입니다.
왜냐하면,, 불기 2564이라고 하는 것은 올해 서기 2020년에 544년을 더한 것으로(2020+544=2564),
그 이유는 이론마다 나라마다 다르던 불기(佛紀)를 통일하기로 하여 1956년에 타이와 미얀마에서
전해온 입적하신지 544년 설을 택했기 때문입니다.
「544년 설은 타이와 미얀마에 전해 온다. 제4차 세계불교도대회는 1956년 11월 네팔 수도
카트만두에서 열렸다. 이때 불교국가마다 서로 다르게 사용하고 있는 불기를 통일하기로
결의하고 1956년을 불기 2500년으로 정했다.
또한 양력 5월 15일을 부처님오신날로 결정하였다. 세계불교도대회에서는
석가모니의 생존시기를 기원전 624년 ∼ 기원전 544년으로 공식 채택하였다.
대한민국의 청담, 효봉, 동산 스님이 참석하였다.
1970년 이후, 대한민국 조계종은 세계불교도대회의 공식 채택 기준인 544년을 취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2015년은 불기 2559년이다. 그러나 부처님오신날은 세계불교도대회의
양력 5월 15일을 채택하지 않고, 음력 4월 8일을 채택하고 있다.」
(* 출처: https://librewiki.net/wiki/%EB%B6%88%EA%B8%B0)
음력 4월 초파일을 오래된 전승에 따라 부처님 오신 날로 새기는 것은 의미있다고 생각됩니다.
문제는 왜 그렇게 정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불멸기원(佛滅紀元)' 즉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한 해를
'불기(佛紀)'의 시작 기준으로 삼는 연대표기법을 쓰고 있다는 점입니다. 위 회합에서 세존께서
기원전 624년에 태어나셔서 80년을 머무시다가 기원전 544년에 입적하신 것을 공식적으로 채택하고
있는 점에서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이 불기(佛紀)는 서기(西紀) 즉 서력 기원(A.D. Anno Domini) 즉 예수 '탄생' 이후라는 연대표기법과는 완전히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올해 2020년은
- 세존께서 태어나신 해를 기준으로는 2644년이 되는 해요,
- 29세에 출가하셔서 35세에 성도하셨으므로 성도하신 해를 기준으로는 2609년이 되는 해이며,
- 입적하신 해 기준으로 2564년이 되는 해입니다.
어찌보면,,, '불기(佛紀) 2564년' 즉 세존께서 입멸하신지 2564년이라고 하면서
'부처님 오신 날' 혹은 '석가탄신일'로 이 날을 기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날을 기준으로 '불기(佛紀) 2644년'이라고 정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무리 '오신 적도 가신 적도 없는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말입니다.
■ 예경드리고 축복하여 마땅한 날
석가모니 부처님은 '오지도 가지도 머물지도 않는 법', '불사(死死)의 법'을 우리에게 설하셨고
전하셨습니다.
"수행승들이여,
이러한 세계가 있는데, 거기에는
땅(地)도 없고, 물(水)도 없고, 불(火)도 없고, 바람(風)도 없고,
무한공간의 세계(空無邊處)도 없고,
무한의식의 세계(識無邊處)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 세계(無所有處)도 없고,
지각하는 것도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非想非非想處)도 없고,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태양도 없고 달도 없다.
수행승들이여, 거기에는
오는 것도 없고, 가는 것도 없고, 머무는 것도 없고,
죽는 것도 없고, 생겨나는 것도 없다고
나는 말한다.
그것은
의처(依處)를 여의고,
전생(轉生)을 여의고,
대상(對象)을 여읜다.
이것이야말로 괴로움의 종식이다."
(* 우다나, 빠딸리가마의 품, 열반의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609)
"나는 까시의 성으로 가서 법의 바퀴[法輪]를 굴리리라.
어두운 이 세상에 불사(不死)의 북을 울릴 것이다."
(* 성스러운 구함 경, M26, http://blog.daum.net/ibakdal/17371946)
"아난다여, 그대는 이 법문을
1) '여러 종류의 요소'라고 호지하라.
2) '네 가지 회전'이라고도 호지하라.
3) '법의 거울'이라고도 호지하라.
4) '불사의 북'이라고 호지하라.
5) '위 없는 승전(勝戰)'이라고도 호지하라."
(* 여러 종류의 요소 경, M115, http://blog.daum.net/ibakdal/17372826)
그분은 오지도 가지도 않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분명히 오셨고, 그분만이 하실 수 있었던 일,,, 그분 말고는 그 누구도 불가능했던 일,,,
그 법을 깨닫고 실현하고 전해주셨고,,,, 그리고 가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무엇인지, 왜 생겨났는지, 이 모든 것에 출구라는게 있는지,
그 출구에 어떻게 이르는지를 설하신 유일한 분입니다. 다른 어떤 존재도 이를 설한 이는 없었습니다. 그 어떤 비구도, 성자(聖者)도,아라한도, 조사(祖師)도, 범부도, 축생도, 아귀도, 약카도, 천신도,
마라(마왕)도, 범천도, 그 어떤 무정(無情)도,,,, 그 법을 설한 이는 없었습니다.
하여 심계의 모든 존재들이 손꼽아 기다리던 그분의 탄생이었습니다.
참으로 삼계(三界)가 받들어 축복하여 마땅할 전우주적 일대사인 그날입니다.
그분의 설하심으로 인해 모든 존재들은 존재로서의 의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세상은 파멸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알아야 하고, 무엇은 버려야 하고, 무엇은 닦아야 하는지, 도대체 끝없는 윤회의 길에서
무엇을 실현해야 마땅한 것인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존재들은 행복이 무엇인지 청정함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 「마간디야 경」(M75)에서의 가르침
2020년 부처님 오신 날을 마음에 기리면서 올해의 소회를 남기려다 맛지마니까야 제75경인
「마간디야 경」의 가르침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과연 그분은 무엇을 가르치셨나, '열반이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가 하는 것을 검색하다가 입니다.
그분은
"병 없음이 최상의 이득이고
열반은 최상의 행복이라.
도 가운데 불사(不死)로 인도하는 팔정도가 최고로 안전하네."
(* 마간디야 경, M75, http://blog.daum.net/ibakdal/17372408)
라고 설하셨습니다. 어찌보면 이상하고 어색하기도도 석가모니 부처님의 이 게송은
참으로 심심미묘하고 아름다워 세세생생 가슴에 새길만한 금언입니다.
세존께서는 당신을 '존재의 파괴자'요 '성장을 파괴하는 자'리고 비난했던 마간디야 유행승에게
당신은 육문(六門)이 여섯 가지 대상을 좋아하고 기뻐하고 즐기는 것을 길들이고 지키고 보호하고
단속하는 것을 가르친다고 설하시면서, 당신께서도 재가자였을 때 한 때 그러하였음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러한 '감각적 욕망'에 탐닉하였다가 나중에 그것들을 바로 보아 그러한 감촉들에
대한 갈애를 제거하고, 열망을 없애고, 갈증이 사라져서 '안으로 마음이 고요한 상태에 머물렀음'을
설하십니다.
이는 감각적 욕망과도 다르며, 해로운 법들과도 다르며, 천상의 즐거움조차도 능가하는 기쁨이므로
다시는 저열한 것을 부러워하거나 거기에서 즐거워하지 않았음을 설하시며, 이는 신들이 인간들의
즐거움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과 같고, 나병에서 나은 환자가 다시는 숯불구덩이에 뜸을 뜬다거나
숯불구덩이에 들어가지 않으려 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존께서는 중생들이 감각적 욕망을 탐닉하는 것이 나병 환자가 일시적인 위안과 만족을 위해
숯불구덩이에 뜸을 뜨는 것과 같아, 어느 정도 위안과 만족을 주지만 결국 과거도 미래도 현재도
그 상처를 더욱 악화시킬 뿐이라고 설하시며, 그들이 그와 같이 하는 것은 그 감각기능이 손상되어
전도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위 게송에서 그 '병 없음'에 대해서 이렇게 설하십니다.
"마간디야여, 그와 같이
내가 만일 그대에게 '이것이 그 병 없음이고 이것이 그 열반이다.'라고 법을 설하면
그대는 병 없음을 알고 열반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그대가 눈이 생김과 동시에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들에 대한 탐욕이 없어질 것이다.
그대신
'나는 오랜 세월 이 마음에 의해 속고 기만당하고 현혹되었구나.
왜냐하면 나는 참으로
물질(色)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느낌(受)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인식(想)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심리현상들(行)을 취착하면서 취착했고,
알음알이(識)를 취착하면서 취착했다.
그런 나에게
취착[取]을 조건으로 존재[有]가 있고,
존재를 조건으로 태어남[生]이 있고,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생겨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겨난다.'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모든 세상, 모든 중생 병에서 벗어나기를, 행복하기를!! ((()))
2020.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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