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누룻다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에 있는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실 때
빤짜깡가 목수가 아누룻다 존자 등을 공양에 청하여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이
같은가 다른가를 묻는 것을 계기로 하여, 아누룻다 존자가 그에 대한 답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은 뜻도 다르고 표현도 다른 것이다.
이와 같은 빤짜깡가 목수의 질문에 대해서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아래와 같이 설하십니다.
1) '무량한 마음의 해탈'
- '무량한 마음의 해탈'이라고 함은 수행자가
·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무량하고 원한없고 악의없는 마음으로
세상을 가득 채우고 머무는 것을 말한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에서 세존께서는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을 닦으라고 라훌라 존자를 가르치시는 바
이 수행의 결과는 각각 악의의 제거, 잔인함의 제거, 싫어함의 제거, 적의의 제거로 나타납니다.
(*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 M62, http://blog.daum.net/ibakdal/17372300)
2) '고귀한 마음의 해탈'
- '고귀한 마음의 해탈'이라함은 수행자가
「길들임의 단계 경」(M126)에서 세존께서 설하신 바와 같이,
1> 계(戒)를 잘 지키고, 2> 육문(六門)을 잘 잔속하고, 3> 음식에 적당함을 알고,
4>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5> 모든 행동에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구족하고,
6>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에 전념하게 되어,,,
7> 마음의 오염원이고 지혜(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한 뒤,,,
8>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이라는 큰 기둥에 자신의 목을 묶어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관찰(위빳사나)을 통해,. 연기(緣起)로써,,
- 오온(五蘊) 즉 몸에서는 물질현상을, 느낌과 마음에서는 정신현상을)과
- 이 일체가 일어나고 사라지는 도리 즉
법에서 다섯 가지 장애, 오온, 육내외처, 칠각지, 사성제의 5가지 법
를 성찰하여,,,,
9> 위와 같이 자신을 묶고 성찰하는 과정에,, 또한 그러한 결과로써,,,
"그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면
마침내 저 세속에 얽힌 재빠르게 일어나는 생각들이 사라진다.
그런 생각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마음은 안으로 확립되어 고요해지고 하나에 고정되어 삼매에 들어"
(*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M119, http://blog.daum.net/ibakdal/17372857)
또한
"오라, 비구여. 그대는
1) 몸에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2)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3)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4)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생각을 일으키지 마라.' "
(* 길들임의 단계 경, M125, http://blog.daum.net/ibakdal/17372918)
을 성취하여,,, 또한,
세존께서는 수행자가 칠각지를 성취함이 바로 사념처(四念處) 즉,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마음챙김 각각의 수행마다에서 칠각지를 성취함을 설하시는 바,
그 각각에 대해서 념각지, 택법각지, 정진각지, 희각지, 경안각지 연후에
그러한 결과로써
"몸이 평안하고 행복한 자(경안각지)는 마음이 삼매에 든다(정각지).
비구가 몸이 편안하고 행복하여 마음이 삼매에 들 때
그때 그에게 삼매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가 생긴다."
(*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경, M118, http://blog.daum.net/ibakdal/17372852)
와 같이 '삼매(samadhi)'를 _ 이 경우 '바른 삼매'에 해당하므로 초선∼4선의 '선정'(禪定, jhana)을
증득하여 그 마음의 선한 증득의 결과로써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색계 천상, 이어지는 법문에서
2선천인 소광천, 무량광천, 변정천 등의 광천(光天)에 태어날 정도의 삼매_ 를 증득한 것을 두고
'고귀한 마음의 해탈'이라고 설하신 것으로 추론됩니다. 즉 '바른 삼매'인 '초선∼4선'의의
'선정(禪定, jhana)'를 증득한 것을 두고 이르는 말씀이라 새겨집니다.
■ "무량한 마음의 해탈'
_ 사무량심(사범주, 네 가지 거룩한 머묾의 법)은 수행자에게 필수적인 것이다.
세존께서는 '무량한 마음의 해탈(사무량심 해탈)'을 항상 강조하십니다. 그것이 세존께서 가르치시는
궁극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비구들이 수행하고 지녀야 할 필수적인 것으로 설하십니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은 가르침들을 들 수 있습니다.
1) 세존께서는 당신의 승가에는 1> 37보리분법, 2> 사무량심, 3> 부정과 무상의 인식, 4>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의 이 4가지 수행에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고 설하십니다.
'자비/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의 사무량심 즉 네 가지 거룩한 머묾(사범주, 四梵住)의 법은
세존께서 이렇게 인가하시는 정법수행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들숨날숨에 마음챙김 경, M118, http://blog.daum.net/ibakdal/17372847)
"1) 관용이 (그 특징인) 인욕은 최상의 고행이고
2) 열반은 최상이라고
부처님들은 설하신다.
3) 남을 해치는 자는 출가자가 아니며
4) 남을 괴롭히는 자는 사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 대전기경, D14, http://blog.daum.net/ibakdal/17371160)
라고 설하시고,,, 모든 부처님들의 가르침이 그러하다고 설하셨습니다.
수행자들이 계(戒)를 수지해야 하는 근본도리를 설하신 것입니다.
그가 재가지든 출가자든 그에게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이
없다면,,, 잘못된 길을 들어선 것입니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를 따르면,,,
1>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이란 '악의'를 제거한 마음이요,
2> '연민(悲)'이 힘께한 마음이란 불쌍히 생각하여 '잔인함'을 제거한 마음이요,
3> '더불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이란 자신을 깨끗하다고 하고 다른이를 더럽다하여
'싫어함'을 제거한 마음이요,
4> '평온'이 함께한 마음이란 수순의 지혜를 증득하여 어떤 경우라 할지라도 '적의'를 제거한
마음입니다.
(*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 M62, http://blog.daum.net/ibakdal/17372300)
그가 그의 마음에 '악의'가,,, '잔인함'이,,, '싫어함'이,,, '적의'가 극복되지 못했다면,,,
그는 먼저 그 마음을 조복받아야 한다는 가르침입니다. 악의와 잔인함과 싫어함과 적의의 마음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는 세존의 가르침이 어디에 서있는 것인지 몰라 길을 잃은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당신께서는 당신 스스로 '일체의 악한 법을 정복했기에, 나는 승리자이다.'라고
설하십니다. (* 성스러운 구함 경, M26, http://blog.daum.net/ibakdal/17371946)
하물며 그 제자들이야 말하여 무엇하겠습니까?,,,
3) 세존께서는 이 사무량심이야말로 '비구의 재물'이요, '비구의 재산'이라고 설하십니다.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이 없는 비구는 가난하고 빈천한 것입니다.
(* 전륜성왕 사자후 경, D26, http://blog.daum.net/ibakdal/17371299)
4) 세존께서는 '계를 지니고 덕스러운 성품을 지닌 비구들'이 마라의 사주를 받은 자들이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히고, 모욕'할 때 바로 '자애. 연민, 더불어 기뻐함. 평온'이 함께하는
이 사무랼심에 머물러 이를 극복한다고 설하십니다.
(* 마라 견책 경, M50, http://blog.daum.net/ibakdal/17372206)
5) 세존께서는 사무량심을 닦아 '무량한 마음의 해탈'을 증득하면 그는
'제한된 (욕계의) 업이 더 이상 여기에 남아있지 않아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아'
색계천상 이상의 천상인 '범천의 일원'이 된다고 항상 설하십니다.
(* 삼명경, D13, http://blog.daum.net/ibakdal/17371145)
6) 그러나 세존께서는
계목의 단속으로 제어하고,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하고,
'자애/연민/더불어 함께함/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으로 사무량심 해탈을 증득했다 하더라도
그것은 세존의 가르침에서 '겉껍질을 얻은 것'에 지나지 않고 '심재를 얻은 것'이 아니다라고
항상 설하십니다.
(* 우둠바리까사자후경, D25, http://blog.daum.net/ibakdal/17371268)
10) 세존께서는 '마음의 오염원'을 버리지 않는 비구 즉,
'욕심, 악의, 분노, 적의, 모욕, 얕봄, 질투, 인색, 속임수, 사기, 나쁜 바램, 삿된 견해' 등을
버리지 못한 것을 '사문의 더러움, 사문의 오점, 사문의 흠'일 설하시고,,,
그렇게 '사문에게 어울리지 않는 도닦음'을 닦는다라고 설하십니다.
이러한 비구들은 '지옥에 태어나고, 악도의 고통을 경험하게 된다'고 설하십니다.
또한 이러한 비구들을 '마따자라는 무기가 덮개에 싸여 있는 것과 같다.'라고 비유하십니다.
(* 앗사뿌라 짧은 경, M40, http://blog.daum.net/ibakdal/17372070)
세존께서 가르치신 지혜는 한없이 날카로운 칼과도 같습니다. 그런 지혜와 그 지혜를 쓰는 법을
아는 자가 그 마음에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이 함께하는 마음이 없고,,,
'탐욕, 성냄, 분노, 적의, 모욕, 얕봄, 질투, 인색, 속임, 사기, 완고함, 뻔뻔함, 자만, 거만, 허영,
방일', 또는 '나쁜 바램, 삿된 견해'를 여의지 못한다면,,, 그 해악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는
무지한 자의 그것보다 비할 수 없을 정도로 클 것입니다.
11) 세존께서는 '논쟁에서 이기기 위해 법을 배우는' 이들이 있어 법을 배워도 '법을 배우는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다.'라고 설하십니다. 세존의 법은 이 미혹의 강을 건너기 위해서 배우는
것입니다. 세존의 법은 지적인 유희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는 이들을 뱀을 잘못 잡아
그 몸통이나 꼬리를 잡은 자와 같아 뱀의 머리가 그를 물게 되이 죽음이나 죽음에 버금가는 고통에
이르게 된다고 설하십니다.
(* 뱀의 비유 경, M22, http://blog.daum.net/ibakdal/17371903)
세존께서는 이들이 세존께서 가르치신 수승한 법들을 배워 안다 할지라도 그 궁극의 의미를
체득하지 못한 채,,, 그 마음에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이 함께하는 사문다움이
없으면서,,, 감각적 욕망을 탐닉하면서,, 말로는 '나는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서 그렇게 한다.
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서 그렇게 한다, 나는 감각적 욕망에 대해 일으킨 생각이
없이 그렇게 한다.'라고 하지만 그것은 근거가 없다라고 설하십니다.
그는 그렇게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결국 감각적 욕망에 이끌리고 탐닉하면서,,, 뜻대로 되지
않으면 화를 내고, 잔인해지고, 싫어하고, 적의를 드러내게 됩니다. 그로 인해 그는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을 겪게됩니다.
- 이와 같은 점에서도 세존께서 위 1)에서 설하신 바와 같이 세존의 승가에는 '사무량심'을 닦는 데에
전념하는 비구들이 있다고 설하신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한 '마음의 오염원'들을 완전히 털어낸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있겠습니까?,,,
각각의 잠재성향을 따라 자신의 마음의 성찰하고,,, 자신이 부족하다면 더 이상의 지혜를 추구하는
것보다는 먼저 바다와 같은 '사무량심'을 닦는 데 전념하는 것도 바라밀을 닦고 채워가는 빛나는
수행자의 모습이라 생각됩니다.
'바라밀'을 닦아 성취한다고 합니다. 보시, 지계, 출리, 지혜, 정진, 인욕, 진실, 결정, 자애, 평온의
열 가지 바라밀입니다. 이 중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자애, 평온의 바라밀은 그 근본을 이룬다고
할 것입니다. 열반은 당기려고 애를 써서 이르는 것이 아니라,,, '바라밀(parami)'을 닦고 채워
때가 무르익어야 한다고 들었습니다.
'사무량심' 해탈(자애의 해탈, 연민의 해탈, 더불어 기뻐함의 해탈, 수순함을 증득한 평온의 해탈)의
원을 세우고 사무량심 '바라밀'을 닦는 수행자의 모습이야말로 설사 아라한의 도과를 증득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거룩한 '보살'의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디팡카라 부처님(연등불)으로부터 수기를 받으시고,,,
그렇게 4아승지 10만 대겁을 바라밀을 닦아 당세에 붓다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
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이같은 삶을 '거룩한 삶'이라고 여래들께서 설하신다고 자애경(metta
sutta)에서 설하셨습니다.
(* 자애경, metta sutta, 숫타니파타, http://blog.daum.net/ibakdal/17371480
■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의 분기점(分岐点)
- 세존의 이와 같은 가르침들 속에서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은 어디가 그
분기점이 되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세존의 가르침에서 '자애/연민/더불어 기뻐함/평온'의 '사무량심(四無量心)', '사범주(四梵住)',
혹은 '네 가지 거룩한 머묾'의 법은 비구들의 필수품이요 더 높은 수행을 위해 닦기 위한 기본이
되는 것이지만,,, 세존께서는 그것이 도닦음의 끝이 아님을 분명히 설하십니다.
그것은 세존의 가르침 중에서 '겉껍질을 얻은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설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무량심'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 세존의 가르침의 끝이고 더 이상은 없다고 한다면,,,
그는 세존의 가르침을 크게 훼손하는 것이 아닐 수 없습니다.
- 수행자가 언제 '사무량심'을 닦는지는 경을 따르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삼명경에서 _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한 뒤
1> 계(戒)를 잘 지키고, 2> 육문(六門)을 잘 단속하고, 3> 음식에 적당함을 알고,
4>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5> 모든 행동에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구족하고,
6>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에 전념하게 되어,,,
7> 마음의 오염원이고 지혜(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 제거하여
마음을 청정하게 한 뒤,,,
그는 '사무량심'을 닦는다고 세존께서는 「삼명경」(D13)에서 설하십니다.
(* 삼명경, D13, http://blog.daum.net/ibakdal/17371144
2) 마하수닷사나경 _ 초선∼사선을 증득한 뒤
- 전륜성완왕인 마하수닷사나 왕은 초선∼4선을 증득한 뒤 사무량심을 닦았다고 합니다.
(* 마하수닷사나경, D17, http://blog.daum.net/ibakdal/17370263)
3) 앗타까나가라경 _ 초선∼4선의 뒤, 무색계 선정의 앞
- 아난다 존자께서 앗타까나가라의 다사마 장자에게 법을 설하실 때
불사(不死)에 이르는 11가지의 법 중에서 초선∼4선의 증득 뒤에, 공무변처∼무소유처의
무색계 선정의 증득 앞에 '사무량심'해탈을 설하십니다.
(* 앗타까나가라경, M52, http://blog.daum.net/ibakdal/17372222)
- 새겨야 할 점 중에 하나는 아난다 존자께서는 사무량심 해탈도 불사(不死)의 문이라고
설하시면서, 사무량심 해탈 각각에 대해 그도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그 무엇이건, 무상하고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그는 여기에 확고하여 번뇌의 소멸을 얻습니다[阿羅漢]."
라고 설하시는 점입니다.
4) 앗사뿌라 짧은 경 _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하고, 삼매를 얻은 뒤
- 세존께서는 '사문에게 어울리는 도닦음'을 설하시면서
1> 그가 욕심, 악의, 분노, 적의, 모욕, 얕봄, 질투, 인색, 속임수, 사기, 나쁜 바램, 삿된 견해 등의
'마음의 오염원'을 제거한 뒤
2> 그러한 '나쁘고 해로운 이 모든 법들에서 자신이 청정함'을 보아,,,
환희가, 희열이, 몸이 편안함을, 마음이 행복함을, 그리하여 행복한 자의 마음이 삼매에 들고
3> 그러한 그가 '사무량심'을 닦아 '안으로 고요함'을 얻기에
이를 두고 사문에 어울리는 도닦음을 실천 수행한다고 하는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 앗사뿌라 짧은 경, M40, http://blog.daum.net/ibakdal/17372072)
■ '사무량심' 해탈이 겉껍질을 얻은 것이라면,, 무엇이 심재를 얻은 것인가?
- 구차제주등지(九次第住等至)의 증득과 사성제를 보아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함[양면해탈]
(* 심재 비유의 짧은 경, M30, http://blog.daum.net/ibakdal/17371983)
-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
"이처럼 청정범행은
1) 이런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2) 계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3) 삼매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고,
4) 지와 견의 구족을 공덕으로 삼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이야말로
청정범행의 목적이고 청정범행의 심재이고, 청정범행의 완결이다."
(* 심재 비유의 긴 경, M29, http://blog.daum.net/ibakdal/17371979)
-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고, 사무량심을 닦고, 천안통을 얻음
· 본 주제에 보족적으로,,, 세존께서는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고행의 청정'을 설하시면서,,,
계의 구족, 다섯 가지 장애(五蓋)의 제거, 연후에 사무량심을 닦음을 설하시고
숙명통의 증득을 백목질을 얻은 것에 비유하시고,,, 연후에 천안통을 증득한 하는 것을
그가 금욕을 통하여 얻는 최상이요 심재를 얻은 것이라고 설하십니다.
사무량심 해탈을 닦은 수행자가 다시 마음을 기울여 천안통을 증득하는 과정을 설하신 것으로
이해됩니다. (* 우둠바리까사자후경, D25, http://blog.daum.net/ibakdal/17371270)
■ 천신들이 지닌 안색과 광명의 차이
- 본 경에서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소광천과 무량광천의 천신들의 예를 들어 그 안색과 광명에
차이 있음을 설하시면서,
· 그 광명의 크기가 다른 것은 마음의 닦음의 크기가 다르기 때문이며,
· 그 광명이 어떤 것은 오염이 있고 어떤 것은 청정한 것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완전히 떨쳐내지
못하여 흐릿하게 선(禪)을 닦은 것과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완전히 제거하여 또렷하게 선(禪)을
증득한 것을 그 원인과 조건으로 그렇게 되는 것이라고 설하셨습니다.
■ 삼백생(三百生)을 범천에서 게속해서 태어남
- 도반인 사비야 깟짜나 존자가 아누룻다 존자께서 천신들에 대해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라거나
'그것은 이럴 것이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 천신들은 이러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
언급하자,
아누룻다 존자께서는 "전에 나는 오랜 세월 그 천신들과 함게 지낸 적이 있고 함께 이야기 한적이
있고 전에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습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대해 주석은 '장로가 바라밀을 닦아 채워갈 때 선인들의 집단에서 출가하여 선(禪)의 증득을
일으켜 삼백 생을 계속해서 범천(brahma-loka)에 머물렀던 것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아누룻다 존자께 예경합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학대와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오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악의와 잔인함과 싫어함과 적대,
그리고 감각적 욕망을 향한 갈애와 나라는 자만,,,
다른 이에 대한 비난과 사악함의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 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야다나바투의 공부 성취되기를 바라면서,,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불모산과 반룡산과 보리원, 지리산과 실상사, 설악산, 영천의 식진암,
그리고 보라산에 거하시는
모든 천신들과 약카들, 간답바들, 꿈반다들,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전하시는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약카들을 거느리시는 꾸웨라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약카들,
간답바들을 거느리시는 다따랏따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간답바들,
꿈반다들을 거느리시는 위룰하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꿈반다들,
용들을 거느리시는 위루빡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용들에게,,
또한 야마천왕과 그를 따르는 천신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공덕을 새기고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이
고통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위험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위험에서 벗어나기를,,,
슬픔에 빠져있는 모든 존재들이 슬픔에서 벗어나기를,,,
부처님의 법을 만나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하신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9. 9.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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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천신들이 지닌 광명의 차이와 그 원인 _ 마음 닦음의 크기 & 장애를 제거한 정도 (0) | 2019.09.19 |
4. '고귀한 마음의 해탈' _ 마음챙김을 통해 마음을 조복시켜 선정을 얻음에 의한 해탈 (0) | 2019.09.19 |
3. '무량한 마음의 해탈' _사무량심(四無量心/四梵住)에 의한 해탈 (0) | 2019.09.18 |
2. '무량한 마음의 해탈'과 '고귀한 마음의 해탈'은 같습니까, 다릅니까? (0) | 2019.09.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