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느낌에 마음챙김의 4개조
1. 느낌에 마음챙김의 4개조
"5)'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6)'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7)'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라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내쉬라라.'며 공부짓는다.
8)'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짓고 '마음의 작용을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며 공부짓는다. |
■"희열을 경험하면서"
- "두 가지 방법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piti-patisamvedi).'
그것은 대상을 통해서와 미혹하지 않음을 통해서이다.
1) 그는 희열이 있는 두 禪(즉 초선과 제2선)에 든다.
그가 그것에 드는 순간에 禪을 얻음으로써 대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대상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
2) 희열이 있는 두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을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을
통해서 희열을 경험한다."(청정도론 VIII.226∼227) 즉
1)은 사마타를 닦았을 때의 희열이고,
2)는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 고, 무아의 특상(lakkhana)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희열을 말한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 청정도론은 "행복을 경험하면서(sukha-patisamvedi)"도 희열의 경험과 같은 방법으로
두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즉
1) 사마타를 닦아서 禪에 들었을 때의 행복과
2) 禪에서 출정하여 무상, 고, 무아의 특상을 꿰뚫는 위빳사나를 할 때의 행복을 말한다.
다른 점은 행복은 초선부터 제3선까지 경험된다는 것이다.(청정도론 VIII.229)
■"마음의 작용을 경험하면서"
-"마음의 작용(心行, citta-sankhara)은 느낌의 무더기(受蘊)과 인식의 무더기(想蘊)를
말한다.
네 가지 禪들로 '마음의 작용을 경험한다(citta-sankhara-patisamvedi)'고
알아야 한다."(청정도론 VIII.229)
- 본서 교리문답의 짧은 경(M44) §14에서도 "도반 위사카여,
들숨과 날숨이 몸의 작용이요,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말의 작용이고,
인식(想)과 느낌(受)이 마음의 작용입니다."라고 하여
느낌과 인식을 마음의 작용으로 설명하고 있다.
2.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으로 느낌에 마음챙김(受隨觀)을 확립함
"비구들이여, 이렇게 공부지을 때 그 비구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1)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2) 근면하고, 3) 분명히 알아차리고 4)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 들숨날숨을 잘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은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이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비구는 그때에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受隨觀) 1)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2) 근면하고, 3) 분명히 알아차리고 4) 마음챙기는 자 되어 머무는 것이다." |
■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
- "'느낌들 가운데서 한 가지 (형태의) 느낌'이란 세 가지 느낌 가운데 하나인
즐거운 느낌(樂受, sukhavedana)를 두고 설한 것이다.
"'잘 마음에 잡도리 하는 것(sadhukam-manasikaram)'이란 희열 등을 경험함으로써 생긴,
확실하게 마음에 잡도리함이다.
- 그렇다면 마음에 잡도리함(作意, manasikara)이 즐거운 느낌(樂受, sukhavedana)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것은 다만 설명을 위주로 말씀하셨을 뿐이다.
마치 "무상에 대한 인식(無常想,anicca-sanna)의 수행에 몰두하고 전념한다."(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25)는 곳에서는 인식(想, sanna)이라는 이름으로써
통찰지(慧, 般若, panna)를 설하신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여기서도 마음에 잡도리함이란 마음으로써 느낌(受)을 설하셨다고
알아야 한다.
- 이 네 개조의
첫 번째 구절에서 희열의 제목 아래 느낌을 설했고,
두 번째 문구에서 행복(즐거움)이라고 한 것은 본성에 따라서 설하신 것이다.
마음이 작용(心行)의 두 문구에서는 "인식과 느낌은 마음부수이다.
이 법들은 마음과 결합된 마음의 작용이다."(Ps,i.188)라는 말씀이 있고,
또 "일으킨 생각(尋)과 마음의 고찰(伺)을 제외하고 마음과 연결된 모든 법들은
마음의 작용(心行)에 포함된다.(cf. Yam.i.229)라는 말씀이 있기 때문에
마음의 작용이라는 이름으로써 느낌을 설했다.
이 모든 것을 마음에 잡도리함이라는 이름에 포함시켜 여기서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
이라고 설하셨다."(SA.iii.271)
- 비록 그렇더리도 이 느낌은 대상이 없기 때문에 느낌을 관찰랗 수가 없다고
만약 말한다면, 그렇지가 않다.
왜냐하면 마음챙김의 확립(念處)의 주석서에서도 "즐거움 등 각각의 토대를 대상으로
삼아 오직 느낌이 느끼지만 그 느낌의 일어남을 두고 '나는 느낀다.'라고 하는 일상적인
어법이 있다.(DA.iii.77)라고 설했고, 나아가 희열의 경험 들을 설명할 때도 이것은
설명했다.
- 「청정도론」도 다음과 같이 설했다.
"희열의 경험은 두 가지 형태가 있다. 즉 ① 대상으로써, ② 잊지 않음으로써 경험한다.
어떻게 대상으로써 희열을 경험하는가?
그가 희열이 있는 두 가지 禪(즉 초선과 제2선)에 들 때 그 증득의 순간에
禪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희열을 경험한다. 대상을 경험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희열을 경험하는가?
희열이 있는 두 가지 禪에 들었다가 출정하여 禪과 함께한 희열은 파괴되기 마련이고
사그라지기 마련이라고 명상한다. 그가 위빳사나를 하는 순간에 특상을 경험하기 때문에
잊어버리지 않음으로써 희열을 경험한다."(Vis, VIII.226∼227)
-「무애해도」도 이와 같이 설한다.
"긴 들숨을 통해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과 흩어지지 않음을 알 때 마음챙김이 확립된다.
그 마음챙김과 그 지혜로 인해 희열을 경험한다."(Ps.i.177 등)
이와 같은 방법으로 나머지 구문들의 뜻도 알아야 한다.
이처럼 禪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희열과 즐거움과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듯이,
이 禪과 함께한 느낌이라 불리는 마음에 잡도리함을 얻음에 의해
대상으로써 느낌을 경험한다. 그러므로 "그때 비구는 느낌들에서 느낌을 관찰하면서
머문다."라고 하신 것을 참으로 잘 말씀하신 것이다."(MA.IV.140∼141)
■ 「들숨날숨에 마음챙김」으로 「느낌에 마음챙김(受隨觀)」을 확립
- 대념처경 본문과(D22)와 한국마하시선원 우 또다나 사야도께서 감수하시고 일창스님이 대역한
마하시사야도의 「마하사띠빳타나숫따」(대념처경)의 내용 등을 감안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근본도리 | 수행방법 | 증득 | 주의점 | 통찰의 대상 | ||
2. 느낌을 | - 대상: 느낌 | 1 | 희열을 알면서 | - 희열 or 행복이 희열과 행복이 | - 느낌에 대한 | |
2 | 행복을 알면서 | |||||
3 | 마음형성(心行) 을 알면서 | - 초선∼제4선정 과 위빳사나로 느낌,인식,형성 무더기(受蘊, 想蘊, 行蘊)을 꿰뚫어 알면서 | ||||
4 | 마음형성(心行)을 고요하게 하면서 | - 이같이 알아 느낌,인식,형성 무더기(受蘊, 想蘊,行蘊)작용 을 고요하게 하면서 |
* 수행의 목표
- 안팎으로(자신과 다른 이에 대해서) 느낌[느낌, 인식, 형성무더리가는 마음의 Process 혹은
마음형성(心行)]을 관찰하며,
거기서 일어나는 현상과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 (위와 같은 뜻으로) '느낌 무더기만이 존재하는구나'
[느끼는 혹은 인식하고 형성하는 개인은 없다)라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 계속 생멸하는 취착무더기라는 형성 세상 중에
어떠한 것도 나, 자아, 나의 것이라고 갈애와 사견으로 더 이상 집착하거나 의지하지 않아
세상에서 어떤 것도 움켜쥐지 않음
-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고, 마음챙기는 자가 되어 머묾
- 이같이 느낌 무더기[느낌, 인식, 형성무더리가는 마음의 Process 혹은 마음형성(心行)]에
대해 '느낌 무더기일 뿐이다'라고 관찰하며 지낸다.
3. 그리햐여 무엇인가? _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은 오온을 바로 봄 中
느낌/지각/형성(受蘊/想蘊/行蘊)을 바로 봄이다.
- 이 부분의 마지막에서 이런 정리를 해두고 넘어가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도대체 이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이란 무엇인가하는 것에 대하여입니다.
앞 부분 들숨날숨의 마음챙김을 실마리로 한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오온을 바로 봄' 中에서 이 몸을 시작으로 하여 '물질'을 바로 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정리한
바 있습니다.
- 느낌에 마음챙김의 4개조는 1) 희열을 경험하면서, 2) 행복을 경험하면서, 3) 마음의 작용(心行)을
경험하면서, 4) 마음의 작용을 고요하게 하면서 '둘숨날숨에 마음챙기는' 수행입니다.
그 내용은 위의 주석과 같이 희열이 있는 초선과 2선, 행복이 있는 3선의 증득과 그로부터 출정하여
위빳사나로 반조하는 과정,, 그리고 또한 초선∼4선의 증득과 위빳사나를 통한 물질무더기로부터
시작하여 마음으로 가는 매개인 느낌(受), 지각(想), 형성(行)의 무더기를 경험하고 꿰뚫어 아는 것,
그리고 그 마음의 작용(心行)을 고요함에 이르게 하는 것을 요체로 하고 있습니다.
- 그러하므로 세존께서 설하신 바 '오온을 바로 봄' 중에서 앞의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 물질무더기
(色)를 비로 봄이라면, 이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은 느낌(受), 지각(想), 형성(行) 무더기를
바로 보는 수행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대전기경, D14, http://blog.daum.net/ibakdal/17371153)
- 그는 이와 같이 수행하여 느낌무더기일 뿐인 것이 있구나,, 지각무더기일 뿐인 것이 있구나,,,
형성무더기일 뿐인 것이 있구나라고 볼 뿐,,, 또한 그것들이 연기(緣起)의 법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그 모든 것이 결국 괴로움이 드러난 것일 뿐이라는 것을,,, 그것이 무상하다는
것을,,, 여기 그 어떤 것도 나도, 나의 것도, 나의 자아도 아님을 꿰뚫어 아는 것에 이르는 수행을
설하시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심지어 그는 마음의 작용(受蘊, 想蘊, 行蘊)을 고요하게 함에 이르러 아예 느낌과 지각이 끊어버린
채 상수멸(想受滅)에 머물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실로 사념처에 마음챙김의 확립은 열반에 이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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