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109.보름밤의 긴 경-오온을 바로 봄

※後記; 1) 보름밤의 긴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8. 11. 10. 07:23


보름밤의 긴 경은

           

세존께서 사왓티의 동쪽 숲에 있는 미가라마따(녹자모)의 강당에 머무실 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의문을 가지고 있는 법에 대해서 질문드리고자 합니다.'로 시작하여

세존께서 그 질문에 답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설하신 모든 법문들이 세존께서 법에 대해 말씀하신 것처럼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고,

미묘하고, 심오하고, 보기 어렵고, 미세'합니다만 그중에서도 특히 오온(五蘊)과 관련한 법문은

그 심오함이 망망대해와 같은 바, 이「보름밤의 긴 경」도 그런 경들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세존께서 가르치신 바 '해탈'이란 「대전기경」(D15)에서와 같이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는 것인데,, 그 핵심은 바로 '오온을 바로 보는 것'

내지 '어떻게 보는 것이 오온을 바로 보는 것인가?'에 대한 직접적인 가르침을 본 경은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 오온(五蘊)에 관한 11가지 질문과 답

           

1] 무엇을 두고 취착하게 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이라고 합니까?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란

             

    취착의 [대상인] 물질의 무더기[色取蘊], 

    취착의 [대상인] 느낌의 무더기[受取蘊],

    취착의 [대상인] 인식의 무더기[想取蘊], 

    취착의 [대상인] 심리현상들의 무더기[行取蘊

    취착의 [대상인] 알음알이의 무더기[識取蘊]이다."

        

              

2] 취착하게 되는 다섯 무더기 다섯 무더기(五取蘊)는 무엇이 그 뿌리입니까?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는 갈애에 뿌리를 둔다."

            

            

3] 취착과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는 같습니까? 다릅니까?

                

   "비구여,

    동일하지도 않고다르지도 않다.

              

    비구여,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 취착이다."

              

→ 어째서 '동일하지 않다.'라고 하셨는가?

    다섯 무더기(五蘊)에 대한 '열망과 탐욕' 즉 '갈애'가 없을 때, 다섯 무더기(五蘊)는 

    정신·물질이며, 알음알이(識)의 투영일 뿐이다. 그러나 그에 대한 '갈애'를 일으키지 않으므로

    일체가 청정할 뿐이다.

            

    어째서 '다르지도 않다.'라고 하셨는가?

   '열망과 탐욕' 즉 '갈애'가 있을 때, 그 정신·물질들은 거머쥠으로 인해서 '존재'가 생겨난다.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로 거머쥐고, 존재적 실체로서 영속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해서 취착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로써 일체 괴로움이 일어나고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온(五蘊)이냐 오취온(五取蘊)이냐의 문제는 그들 자체로서는 같거나 다른 것을

    논할 수 없다. 별도의 차원으로써 '열망과 탐욕' 혹은 '갈애'의 유무(有無), 그에 따른

    '취착(取着)'의 유무에 따라 같기도 다르기도 한 것이기 때문이다. 

           

           

4] 취착하게 되는 다섯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다양하고 차이가 있습니까?

               

이 질문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습니까?'이다.

그러나 주석을 따르면 그 뜻은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고) 다양합니까?'의 뜻이다.

          

   "비구여,

    차이가 있을 수 있다."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비구여, 여기 어떤 자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미래세에 [나의] 물질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느낌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인식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심리현상은 이렇게 되기를!

    미래세에 [나의] 알음알이는 이렇게 되기를! 이라고'.

               

    비구여, 이와 같이 취착의 다섯 가지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차이가 있다."

               

→ 다섯 무더기에 대한 열망과 탐욕은 단순하지 않다. 심연에 뿌리하고 실로 끈질기고 다양하다.

    물질(몸)에 대해서, 느낌에 대해서, 지각에 대해서, 형성에 대해서, 알음알이(의식)에 대해서.

    그리고 또 그것은 또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6가지 감각기관이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심리

    현상을 감각접촉하여 일어나는 대상(色), 느낌(受), 지각(想), 잠재성향과 의도가 개입된 지음과

    형성(行), 그리하여 이것은 이것이라고 거머쥔 견해와 알음알이(識)의 무더기에 대해서다.

    그러므로 그것은 것은 '전부'에 대한 혹은 '존재 전체'에 대한 갈애다.

               

    세존께서는「대념처경」(D22)에서 사성제를 상세하게 설하실 때

    갈애는 6가지 감각기능 즉, 눈, 귀, 코, 혀, 몸, 마음의 각각에서 根, 境, 識, 觸, 受, 想, 行, 愛, 㝷,

    伺 의 10가지로, 곧 이 60가지에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가 소멸한다.'라고 설하셨다.

    어찌 다양하고 뿌리깊지 아니한가?

           

                

5] 어째서 그것들을 무더기(蘊)이라고 합니까?

                

물질(色)의 무더기든, 느낌의 무더기든, 인식의 무더기든,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든,

알음알이의 무더기든,

             

   "1)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2) 의 것이든 의 것이든,

    3) 거칠든 섬세하든,

    4) 저열하든 수승하든,

    5)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렇게 하여 무더기라는 술어가 무더기에 적용된다."

             

→ 시간을 기준으로 과거, 미래, 현재,

    내 몸 안팎을 기준으로 안과 밖,

    욕계 내지 색계의 요소를 기준으로 거칠고 섬세함

    저열하고 수승함 기준으로 저열함 수승함,

    공간을 기준으로 멀리있고 가까이 있음을 기준으로.

    또 그것은 업과 마음과 사량분별 등에 의해서 증장한다. 침으로 무더기라고 할 만하다.

              

                

6] 무엇을 원인으로, 무엇을 조건으로 다섯 무더기(五蘊)이 드러납니까?

                

   "비구여,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이 원인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을 조건하여

                                                                                            물질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觸]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느낌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인식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감각접촉이 원인이고 감각접촉을 조건하여 심리현상들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정신과 물질[名色]이 원인이고 정신과 물질을 조건하여 알음알이의 무더기가 드러난다."

          

             

→ 여기서 연기(緣起)를 이같이 간략히 설하셨다.

    바로 순관(順觀)으로 윤회의 도리를 설하심이요, 역관(逆觀)으로 그 윤회를 끝내는 도리를

    설하심이요, '위빳사나(慧)'의 구체를 설하심이다. 오온(五蘊)을 바로 보는 근본 도리 즉,

    연기(緣起)를 간략히 설하심이다.

               

    1) 연기 법문의 정점(頂点)은 윤회의 도리를 설하신 아래의 부분이라 생각된다.

                

           "바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은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를 통해서 마침내

               

           '정신 · 물질(名色)이 있을 때 알음알이가 있으며,

            정신 · 물질을 조건으로 하여 알음알이가 있다.' 

            라고 통찰지로 분명하게 꿰뚫어 보았다."

                

           "비구들이여, 그러자 위빳시 보살에게 이런 생각이 둘었다.

                       

           '이 알음알이(識)는

            정신 · 물질에 다시 되돌아오고 

            더 이상 넘어가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태어나고 늙고 죽고

            죽어서는 다시 태어난다."

                             

                                             ( * 대전기경, D14: http://blog.daum.net/ibakdal/17371151)

                 

                  

    2) 또한 여기서 정신·물질과 알음알이의 존재의 이유다. 그것은 오온(五蘊)을 천명하기 위함이라고

        설하신다

              

           "이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호 조건에 의해

            (윤회)는 전개되는 것이다. 

                  

            정신·물질은

            이 알음알이와 더불어

                

            (오온의) 이러한 상태를

            천명하기 위한 것이다."

                     

                                            (* 대인연경, 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1166)

             

                

7] 어떻게 보기에 '이것이 존재의 실체다.'라는 견해(有身見)가 생겨납니까?

            

세존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오온(五蘊) 즉

물질(form, 色蘊), 느낌(feel, 受蘊), 인식(perception, 지각, 想蘊), 심리현상(sankara, formation,

형성, 行蘊), 알음알이(consciousness, 의식, 識蘊)에 대해서

           

   "1) 이것들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2) 이것들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3) 자아 안에 이것들이 있다고 관찰하고

    4) 이것들이 펼쳐진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관찰

            

    하기 때문에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고 하는 견해(有身見)이 생긴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8] 어떻게 해서 '이것이 존재의 실체다.'라는 견해(有身見)를 벗어납니까?

          

세존께서는 이 질문에 대해서,

          

오온(五蘊) 즉

물질(form, 色蘊), 느낌(feel, 受蘊), 인식(perception, 지각, 想蘊), 심리현상(sankara, formation,

형성, 行蘊), 알음알이(consciousness, 의식, 識蘊)에 대해서

               

   "1) 이것들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2) 이것들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3) 자아 안에 이것들이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4) 이것들이 펼쳐진 가운데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해서 불변하는 존재더미가 있다고 하는 견해(有身見)가 생기지 않는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9] 무엇을 두고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의 '달콤함/재난/벗어남'이라고 합니까?

               

세존께서는 항상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무더기(五取蘊)의 '달콤함'과, '재난'과 '벗어남'을

꿰뚫어 알아서 취착없이 벗어남을 설하십니다. 이 바구는 그러므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물은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오온(五蘊) 즉,

물질(form, 色蘊), 느낌(feel, 受蘊), 인식(perception, 지각, 想蘊), 심리현상(sankara, formation,

형성, 行蘊), 알음알이(consciousness, 의식, 識蘊)의 각각에 대해서

               

1) '달콤함'이란 이것들은 조건하여 일어난 즐거움과 기쁨이 그 '달콤함'이요,

2) '재난'이란 이것들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는 것을 두고 '재난'이라고 하는 것이며,

3) '벗어남'이란 이것들에 대한 열망과 탐욕을 길들이고 버리는 것을 두고 '벗어남'이라고 함을

                

설하셨습니다.

             

                

10]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는 생각과 잠재성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질문한 비구의 연속적인 질문은 이 열 번째 질문이 마지막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마직 질문은 이 연속적인 질문의 정점(頂点)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위 9가지 질문에 대한 세존의 법문을 온전히 이해하여 받아들였다고 할 때, 그리하여 존재의

구성요소 혹은 존재로 드러남의 방식인 이 다섯 가지 무더기(五蘊)에 대하여,, 그것들이

             

1) 무상(無常)하고,

                     

2) 무상하기 때문에 괴로움(苦, dukkha)을 가져오며, 혹은 무상한 것임에 따른 괴로움을 오히려

    '삶이란 원래 그런 것'이라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 즐거움이라고 받아들이고(常樂我淨)

    그 다섯 무더기의 참된 모습이 결국은 염오해 마지 않을, 혹은 끝장내지 않으며 안될 괴로움(苦,

    dukkha)임을 고집스럽게 외면하고 있다 할지라도,,,  

                    

3) 그것이 '나' 아님을, '나의 것', '나의 자아'가 아님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면

    그로 인한 '갈애(愛'와 '취착(着)'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나'라 함이 남아 있음으로 해서 '갈애, 자만,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요,

'갈애, 자만, 무명'이 있음으로 해서 각각 대응하여 '탐냄, 성냄, 어리석음'이 끊어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비구의 질문이 마지막에 이르러 "(이와 같이 설하신 취착하게 되는 다섯 무더기를)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나', '나의 것', '나의 자아'라는 생각과,,, 잠재성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귀결이기도 합니다.

           

           

세존께서는 이 질문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답하셨습니다.

               

세존께서는 오온(五蘊) 즉,

물질(form, 色蘊), 느낌(feel, 受蘊), 인식(perception, 지각, 想蘊), 심리현상(sankara, formation,

형성, 行蘊), 알음알이(consciousness, 의식, 識蘊)의 각각에 대해서

                       

   "그것이 그 어떤 것이든그것이 

              

    1)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2) 의 것이든 의 것이든,

    3) 거칠든 섬세하든,

    4) 저열하든 수승하든,

    5)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본다.   

                 

                 

    비구여,

    렇게 알고 이렇게 보는 자에게

    알음알이를 가진 이 몸 외부의 모든 표상들 가운데서 

    라는 생각과 내것이라는 생각과 자만의 잠재성향이 생기지 않는다."라고.

                       

'오온을 바로 봄'이라 함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바로 팔정도의 첫 번째인 '정견(正見)' 즉 '바른 견해' 혹은 '바로 봄'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위빳시 부처님을 포함하여 과거 일곱 부처님들께서 깨달으신 도리를

즉 모든 여래들께서 해탈하는 도리를 설하시면서

                    

   "그가 (나 등으로) 취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일어나고 사라짐에 대한 관찰을 하면서 머물자

     

    오래지 않아  

                  

    1) 취착이 없어져서 

    2) 번뇌들로부터  

    3) 마음이  

    4) 해탈하였다."

                                        ( * 대전기경, D14: http://blog.daum.net/ibakdal/17371153)

                    

라고 함도 바로 이를 두고 하신 말씀이라 생각됩니다.

           

                  

11] 자아가 없다,, 그렇다면 누가 업을 짓고, 누가 과보를 받는다는 말인가?

                 

이 질문은 본 경에서,

                 

   "그러자 다른 어떤 비구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으로

    물질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느낌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인식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심리현상들은 자아가 없다고 한다.

    알음알이는 자아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자아가 없이 지은 업들은 도대체 어떤 자아와 접촉하는가?'라고."

                  

하는 질문입니다. 위 10가지 오온과 자아에 관한 질문에 이어서 다른 비구가 위와 같은 의문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주석서는 이 질문의 뜻이 "이 비구는 '(업을 저장하는) 자아가 없는데

어떠한 자아에 서서 그 업이 과보(vipaka)를 생성하는가?'라는 것임을 설명합니다.

                 

이어서 주석은 "그것은 상견(常見,sassata-dasana)에 빠지는 것임을 아셔서" 그 다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설하시는 것으로 되어있는 바, 훌륭한 주석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쓸모없는 인간은

    알지 못하고 무명에 빠져 그의 마음이 갈애에 지배되어

    마음으로 스승의 교법을 능가하리라고 생각하면서,,, "

             

그와 같이 생각한다고 설하시며 마지막 법문을 이어 가시지만,,, 얼핏 보면 일어날 수 있는 당연한

의문에 대하여 당신의 가르침을 세우시기 위해서 그를 비난하신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세존께서는 결코 그러실 분이 아니시며, 또 이 비구의 질문은 결코 그렇게 녹녹한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고, 오온을, 연기를, 사성제를, 업과 과보를 꿰뚫어 알지

못하는 자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기도 하기에 경에서도 이같이 별론(別論)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Ⅱ. 자아가 없다면 누가 업을 짓고 받는다는 말인가?  


     (이 비구의 질문에 대해서는 본 경 후기 2)에서 별도로 다루겠습니다.

      무엇보다 길어서 Daum에서 한꺼번에 다 display가 되기 어렵기도 합니다.)




. 세존께서 비구의 의문에 답하심       

   

■ 오온을 바로 봄을 설하심

     

여기 세존께서는 어떻게 해야 오온을 바로 보는 것인지 설하십니다.

     

- 물질, 느낌, 지각, 형성, 알음알이의 다섯 무더기 각각에 대해서 

     

   1) 그것이 무상한가? 항상한가?라고 물으시고, 그것이 무상[無常]함을 밝히십니다.

   2) 그 무상한 것이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물으시고, 그것이 괴로움[苦]임을 밝히십니다.

   3) 그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여기는 것이 타당하겠는가?라고

      오온에 자아가 없음[無我]을 밝히십니다. 

    

    

- 연이어 세존께서는 이 다삿 가지 무더기 각각에 대해서, 그것이

    

   1)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2)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3) 거칠든 섬세하든,

   4) 저열하든 수승하든,

   5)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고 설하셨습니다.  


 

- 이어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면서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을 염오하고

         느낌을 염오하고 

         인식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을 염오하고

         알음알이를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사라지고

         탐욕이 사라지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꿰뚫어 안다."  라고 설하셨습니다.                                           

 


-  이같이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는 도리를 

    밝히셨습니다.  ((()))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석가모나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학대와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과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정진하고 있는 아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불모산과 반룡산,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약카들, 간답바들, 꿈반다들, 용들과 

비인간들에게,,,부처님의 법을 지키고 전하시는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약카들을 거느리시는 꾸웨라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약카들, 간답바들을 거느리시는 다따랏따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간답바들, 꿈반다들을 거느리시는 위룰하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꿈반다들,

용들을 거느리시는 위루빡까 대천왕과 그를 따르는 용들에게,,  

부처님의 제자들을 지키고 보호하는 공덕을 새기고 감사드리며,,,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8.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