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中部)/M106.흔들림없음에적합한길경-無着

※後記: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을 마치며,,,,

이르머꼬어리서근 2018. 8. 27. 07:19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은

               

세존께서 꾸루의 깜맛사담마라는 꾸루들의 성읍에 머무실 때

비구들에게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여 격류를 건너는 것'을 설하신 경입니다.

          

'각각의 증득'이라함은 수행자가 바르게 도를 닦을 때 그 과정상 순차적으로 경험하고 얻게되는

각각의 경지 내지 지경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본 경에서 세존께서는 초선∼4선과 공무변처 및

식무변처 선정의 6가지 증득을 '흔들림 없음'의 증득으로, 그 다음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를,

다음으로 해탈·열반을 설하시는 방법으로 그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고' 다시 그 증득의 위험을 바로

보아 그 증득을 고수하거나 머물러 있지 않고 그를 벗어남으로써 '격류를 건너는 것' 즉 해탈·열반에

이르는 법을 설하고 계십니다. 

         

             

■ 본 경의 특이한 점

               

세존의 가르침에서 경(經)에서 초선∼제4선의 4가지 색계 선정, 공무변처∼비상비비상처의 무색계의

선정 4처, 그리고 마지막으로 상수멸의 9가지 선정은 그 각각이 고유한 특성을 지니는 한 개의 경지, 증득 내지 등지(等地)라고 불리며, 이를 통털어 구차제주등지(九次第住等地)라고 하고, 이를 순서대로 입정, 머묾, 출정, 반조하고, 다시 역순으로도 입정, 출정하는 것을 자유로이 할 수 있게 공부하라고

세존께서는 항상 설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당신 자신도 그렇게 하여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고 정등각을 이루셨다고

천명하십니다. 또한 이 과정은 양면해탈 즉, '통찰지에 의한 해탈(慧解脫' 뿐 아니라 이에 더하여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얻기 위한 필수과정이기도 합니다.

                                    

                                       ( * 띠뿟사 경, A9:41: http://blog.daum.net/ibakdal/17370453

                                         * 심재 비유의 짧은 경: M30: http://blog.daum.net/ibakdal/17371983

                                         * 기따기리 경, M70: http://blog.daum.net/ibakdal/17371182 및 주석)

                  

                                      

본 경은 상수멸에 대해서는 별도로 언급하고 있지는 않기에 구차제주등지를 설하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다른 많은 경에서 초선∼제4선, 공무변처∼비상비비상처의 4선4처(四禪四處)의 색계선과

무색계선을 그 해당 선정(禪定, jhana)을 나타내는 고유의 정형구로 설하시는 것에 비해, 본 경은  

초선∼제4선과 공무변처, 식무변처의 무색계 선정을 '흔들림 없음'의 증득이라고 묶어서 설하시면서,

또 이에 더하여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증득, 해탈열반에 이르기까지 해당 증득이 어떠한 특성을

가지는 것인지 보충적으로 더욱 상세히 설하시고 있어 참으로 소중한 법문이라 생각됩니다.

                      

미얀마 등에서 위빳사나(觀)의 수행 전통은 잘 전해지고 있는 반면에, 삼매(定, samadhi)의 증득이나

그 연장선 상에 있는 선정(禪, jhana)의 증득은 소위 신통(神通)과도 깊은 연관이 있다고 하거니와

어떤 극단적인 이들은 '그 명맥이 끊어졌다.'고 할 정도로 그 수행의 실체와 증득의 구체를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팔정도(八支聖道)를 설하시면서 초선∼제4선의 선정(禪定, jhana)을 '바른 삼매'라고 항상 설하십니다. 선정을 제외하고는 팔정도의 한 구성요소를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바른 삼매(定)'는 37가지 도닦음(보리분법)에서 사여의족에서, 오근, 오력, 칠각지에서도 각각 삼매, 정(定), 정각지(定覺支) 등으로그 분명한 구성요소를 이루고 있어 선정을 제외하고는

도닦음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것도 사실입니다.

                                                      (* 원한다면 경, M6: http://blog.daum.net/ibakdal/17371675)

                  

                       

그러므로 4선4처에 대한 보론(補論)이랄 수 있는 법문을 담고 있는 본 경은 구차제주등지 그리고 그

각 등지를 넘어서는 팔해탈(八解脫), 내지 팔승처(八勝處)의 구체에 접근할 수 있는 보물지도와도 같은

귀한 법문이라고 생각됩니다.

                

                

                      

1] 초선 ∼ 제4선

                      

 

다른 경에서의 정형구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

초선

-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 일으킨 생각(尋)과 고찰(伺)이 있고
- 떨쳐버림에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

목욕가루 반죽이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음

- 감각적 욕망이란                 
  1) 무상, 2) 허망, 3) 거짓되고
  4) 부질없는 것, 5) 환영(幻影),
  6) 어리석은 자들의 지껄임이다.

  현재의 감각적 욕망
  미래의 감각적 욕망,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
  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
  이 둘은
  7) 마라의 영토, 8) 마라의 범위,
  9) 마라의 미끼, 10) 마라의 소유지.

- 이것 때문에 나쁘고 해로운 마음의
  상태인 욕심과 악의와 성급함이
  일어난다.
  →성스러운 제자가 공부지을 때
     장애가 된다.

- 이들을 제거하여 마음을 제한 없고
  무량하게 잘 개발
  →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재생으로]
      나아가는 그의 알음알이는
      흔들림 없음에 이를 것







   
    





   




제2선

- 일으킨 생각과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고찰은 없고               
-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

※ 흘러들어오는 물이나 비가 없어도
  
밑바닥에서 솟아나오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

제3선

-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

물속에 잠긴 채 핀 연꽃들과 같이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속속들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음

제4선

-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
  (捨念淸精) 제4선(四禪)

※ 머리까지 온몸에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있는 사람처럼,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속속들이
   스며들게 함


[시사점]

                    

'계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먜'

    

- '바른 삼매(正定, samadhi)인 초선∼제4선의 선정(禪定, jhana)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계(戒)를 철저히 닦아서 생긴 삼매'라고 하시어 계를 철저히 닦고 수지하는 것이 이러한 선정을

   증득하는 전제조건임을 설하십니다. 계(戒)를 철저히 닦고 꿰뚫고 수지할 만큼 마음을 조복시킨

   자, 마음을 길들인 자가 아니면 선정을 얻을 수가 없는 도리입니다.

                                                  ( * 대반열반경, D16 : http://blog.daum.net/ibakdal/17371215)

                              

   하면 세존께서 천명하신 바 근본계율 43가지, 혹은 비구계율(vinaya) 227계율을 지키지 않는 자가

   선정을 얻었다함은 헛된 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가 없는 것이 사람의 마음이거니와

   세존의 가르침은 단 한마디라도 진실무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 선정의 선행조건 6가지

                               

- 세존께서는 계정혜(戒定慧)로 단계적으로 설하시면서 초선∼제4선의 선정(禪定)을 설하실 때,

   항상 그 앞에 6가지를 계와 더불어 선행조건으로 설하십니다. 그것은

                          

   1) 계를 구족 → 어느 곳에서든 두려움을 보지 못하며,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함

   2) 6가지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 → 안으로 더렵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함

   3)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구족

   4) 필수품만으로 만족함

   5) 외딴 처소를 의지하여 수행에 전념함

   6)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의 다섯 가지 장애(五蓋)로부터 벗어나

       마음을 청정하게

                 

   의 6가지 선행조건입니다.

                      

                        

   그리고 이같이 6가지 선행조건이 충족되고 무르익었을 때,


     "자신에게서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납니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희열이 생깁니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輕安)합니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낍니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삼매에 듭니다."

                                

  라고 세존께서는 항상 설하셔서 어떤 자가 바른 삼매, 즉 선정을 증득하는지를 상세히 설하십니다..

                                                   ( * 사문과경, D2: http://blog.daum.net/ibakdal/17369869 이하)

                        

                       

  6가지 선행조건을 충족한 자, 그것이 무르익은 자, 그리하여 '행복한 자의 마음'이라야 이같은

  선정을 증득하는 것입니다.

                               

  1) 계를 수지하지 못하여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한 자, 안으로 스스로 비난할 것이 남아 있는 자,

  2) 감각기능를 제어하지 못하여 안으로 스스로 그 마음이 더렵혀지는 자,

  3) 5가지 장애를 벗어나지 못하여 마음이 청정하지 못하고 스스로 행복하지 않은 자의 마음이 

  바른 삼매, 즉 선정을 얻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 모든 선정(jhana)의 뿌리 _ 감각적 욕망을 바로 보아 벗어남

                           

- 본 경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은 초선∼제4선을 다른 경과 같이 각각의 그 정형구로

   설하시지 않고, 이 색계4선에 무색계 선정인 공무변처, 식무변처까지를 합하여 '흔들림 없음'의

   증득으로 통칭하고 그 선정들의 속성을 설하시는 한편, 이들 선정의 기본 내지 뿌리가  어디에

   근거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밝히고 계신 바, 그것은 바로 '감각적 욕망'을 떨쳐버리고 벗어남입니다.

                                              

   이것은 바로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리고'로 설명되는

   초선(初禪)의 근본과 일치합니다. 그러므로 초선, 제2선, 제3선, 제4선, 공무변처, 식무변처의

   선정 혹은 그 위의 선정들까지도 모두 '감각적 욕망'을 제거하여, 마음을 제한 없고 무량한 것으로

   잘 조복받고 길들이는 것이 그 근본임을 함의하는 것입니다.

                                

                                 
- 세존께서는 이러한 이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본 경에서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 특별히 다음과 같이

   상설하십니다.

                         

       "비구들이여,

        감각적 욕망이란                 

        1) 무상하고 2) 허망하고 3) 거짓되고 4) 부질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것은 5) 환영(幻影)이고 6) 어리석은 자들의 지껄임이다.

                                 

        현재의 감각적 욕망미래의 감각적 욕망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의 이 둘은 

                                

        7) 마라의 영토이고 8) 마라의 범위이고 9) 마라의 미끼이며 10) 마라의 소유지이다.

                        

                            

        이것 때문에 나쁘고 해로운 마음의 상태인 욕심과 악의와 성급함이 일어난다.

        이들은 성스러운 제자가 공부지울 때 장애가 된다."라고.

                         

                        

                        

2. 공무변처 ∼ 비상비비상처

                             

 

다른 경에서의 정형구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

공무변처

-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물질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모두
  네가지 근본물질[四大]
  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들[所造色]이다.






식무변처

-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무한한 알음알이(識)'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1) 현재와 미래의 감각적 욕망
      그에 대한 인식,
  2) 현재와 미래의 물질과 그에 대한
      인식, 이 둘은 무상하다.

- 무상한 것은 기뻐할 가치가 없고
  환영할 가치가 없고
  고수할 가치가 없다.

무소유처

-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1) 현재와 미래의 감각적 욕망
      그에 대한 인식,
  2) 현재와 미래의 물질과 그에 대한
      인식,
  3)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 이들이 남김없이 멸하는 곳,
  그것은 고요하고 그것은 수승하나니
  그것은 무소유처이다.
- 자아나 자아에 속하는 것이 공하다
- 나는 어디에도 없고
  누구에게도 결코 속하지 않는다.
  내 것은 어디에도 없고
  내 것은 누구에게도 없다.

비상
비비상처

-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
  구족하여   머문다.














- 1) 현재와 미래의 감각적 욕망
      그에 대한 인식,
  2) 현재와 미래의 물질과 그에 대한
      인식,
  3)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
  4)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 이들이 남김없이 멸하는 곳,
  그것은 고요하고 그것은 수승하나니
  그것은 비상비비상처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나는
  버린다.' 그리하여 평온을 얻는다.
  그러나 그 평안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고수한다.


[시사점]

                       

1) 정신물질(현상)

                                       

■ 정신물질(현상, Reality)과 알음알이(consciousness)의 상응에 따른

                                                                    오온의 전개와 나 자신에 대한 천명

                             

- 정신물질(현상, Reality)의 원인, 근원, 기원 및 조건은 알음알이(識)라고 세존께서는 설하셨습니다.

   그리고 알음알이에 의해서 정신물질은 발전하고 증장합니다.

                                                          (* 대인연경, 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2)

                           

- 또 이 알음알이는 동시에 정신물질을 그 원인, 근원, 기원 및 조건으로 합니다.

                                                          (* 대인연경, 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3)

                                        

- 이같은 알음알이와 정신물질의 상응(相應)에 의해서 윤회는 전개되는 것이고,

   정신물짏은 이 상응하는 알음알이와 더불어 '나' 혹은 '내가 사는 세상'이라는 형태로

   '나'의 여섯 가지 감각기능인 눈, 코. 귀, 혀, 몸, 마노라는 감각기관에 

   형색, 소리, 냄새, 맛, 감촉, 심리현상이라는 형태로 접촉되고 감득되어

   '나' 혹은 '나의 것'으로 취착하게 되는 오온 즉 존재의 다섯 무더기 즉 형색(물질, 色)이라는

   물질(현상)과, 느낌(受), 인식(想, sanna, perception), 행(行, sankara).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의 정신(현상)으로 '나'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천명합니다.

                                                         (* 대인연경, 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1166)

                               

- 기실 내가 차레로 눈이 없고, 귀가 없고, 코가 없고, 혀가 없고, 몸이 없고, 마지막으로 이 마음까지

   없다면 그 어떤 방법으로도 '나'나 '세상'이나 정신물질이나 현실(Reality)라는 것을 이야기할 수

   없거니와, 주체도 대상도 없어 그런 이야기를 할 어떤 실마리도 얻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대인연경, 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0)

                               

                      

■ 정신(현상) & 물질(현상)의 특성

                               

- 정신의 무리(名身)는 그 고유성질, 특징, 표상, 개요가 '이름짓기'로 얻어지는 것이며,

   물질의 무리(色身)는 그 고유성질, 특징, 표상, 개요가 '부딪힘'에 의해서 얻어진다고

   세존께서는 설하십니다.

                                                          (* 대인연경,D15: http://blog.daum.net/ibakdal/17370181)

                               

   우리가 '나' 혹은 '세상'이라고 감득(感得)하는 모든 것,

   혹은 존재의 구성요소인 '다섯 무더기(五蘊)'는 물질 무더기(色蘊)이거나 정신 무더기(名蘊) 말고는

   없습니다. 정신(현상)과 물질(현상)이 전부입니다. 

               

                  

2) 물질(현상)

                                 

- 세존께서는 ''존재'가, '나'는 무엇인가?' 혹은 '이 세상은 무엇인가?'를 탐구해 나가면서

   그의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가  언젠가는 '부딪힘'이라는 특성으로 감득되는'물질(현상,

   Reality))'을 초월하여 '정신(현상, Reality)'만이 존재하는 무색계(無色界)에 이른다고 설하십니다.

            

                          

■ 물질은 '업, 마음, 온도, 음식'에서 생겨난다.

                          

-  세존께서는 '물질(현상, Reality)'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설하십니까?

                                     

  ·'업, 마음, 온도, 음식'에서 생겨난다고 설하십니다.

   세존의 가르침을 따르면, '물질(현상, Reality)'은 적어도 어떤 존재 내지 관찰자의 '업과 마음'

   이라는 非물리적(?) 요소가 선행되지 않으면 '물질(현상)' 자체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현대물리학과 완전히 다른 점입니다.

                                    

- 볼 수도 있고 부딪힘도 있는 물질, 볼 수는 없으나 부딪힘은 있는 물질,

   볼 수도 없고 부딪힘도 없는 물질이 있다고 하십니다.                       

                                                          (* 합송경, D33: http://blog.daum.net/ibakdal/17371412)

                                    

■ 4가지 근본물질과 파생된 물질


 - 물질은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모두,

    네 가지 근본물질(事大)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所造色)이다.

                              (*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 M106: http://blog.daum.net/ibakdal/17372720)

             

                             

■ 다발지어 드러남 / 같이 생겨나고 서로 의존하며 상호 조건이 되는 방식으로 드러남

                         

  - 청정도론 등 아비담마를 따르면 물질(현상)은 깔라빠(kalapa)로 다발지어 생겨나며(드러나며,

     emergency), 깔라빠는 8가지의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아위닙뽀까(avinibboga) 즉 '분리할 수

     없는 것', 혹은'영양소를 8번째로 한 것', 내지 '순수한 8원소'로 구성된 것이 최소한의 깔라빠이며,

     여기에 아비담마 상의 다른 물질들이 첨가되어 모든 물질이 드러나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그 8가지 아위닙뽀까는 '지, 수, 화, 풍, 형색, 냄새, 맛, 영양소'의 8가지입니다.

                                          

     그러나 근본물질은 어디까지나  지, 수, 화, 풍의 네 가지입니다. 그런데 이 '근본물질'들은

     독립적으로 생겨나지 않습니다. 이 땅, 물, 불, 바람의 요소가 '같이 생겨나서, 서로 의존하며,

     상호 조건이 되는' 방식으로만 생겨납니다(드러납니다).

                             ( ※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 후기 참조: http://blog.daum.net/ibakdal/17372314)

                          

                         

■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가 소멸하면 물질(현상)도 남김없이 소멸

                             

  세존께서는

                              

         "(열반이라는) 특별한 경지는  

          볼 수 없고 무한하며 

          모든 곳으로부터 (도달하게 되는) 성소의 계단을 가졌다.

                            

          여기서물과 땅과 불과 바람은 굳건히 서지 못하며 

          여기서길고 짧고 미세하고 크고 아름답고 더러운 것과 

          정신과 물질은 남김없이 소멸한다.

                      

          알음알이가 소멸하면 

          남김없이 소멸한다."

                   

      라고 설하십니다.

                                                         (* 께왓다 경, D11: http://blog.daum.net/ibakdal/17370107)

                                    

   - 세존께서는 이같이 정신물질(현상)이 알음알이를 근원으로 형성된 것이므로

      알음알이가 소멸할 때 물질(현상) '남김없이' 소멸한다고 설하십니다.

            

                               

■ 물질(현상), 물질현실(Reality)의 실상

                                    

하면 물질(현상) 내지 물질현실(Reality)은 결국 무엇입니까?

                               

- 알음알이를 근본원인으로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존재' 업과 인과와 그에 따른 '' 알음알이(, consciousness)

   를 천명하기 위하여,

-''에게 , , , 바람의 요소가 어떤 단위로, 예를 들면 플랑크 상수 이상으로만. 파동 내지

   에너지가 비로소 양자화되어

-'공간' 혹은 '시간' 내지 뭂질정신현상의 인과율(causality)의 동시성(synchronization)을 보장하기

   위한 '시공간(時空間)'이라는 무대에

-'' '의도(업)'을 따라 결합하고 모이고 나타나고 드러나고(emergent) 머무르고 사라지는(rise

   and fall) 현상이요,

- 적어도 ''에게는 그것이 그가 쓰고 나온 '존재'의 감각기능의 특성을 따라 느껴지고, 인식되기에

   그에게는 그것이 '현상'이나'환상'이 아니라 '현실(Reality)'로 받아들여지고

- 그러기에 그에게는 해석의 문제 내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의 문제가 남아있지만

   그것이 다름 아닌 유일한 '현실(Reality)'일 수 밖에 없는 것,

                             

바로 그것이 물질(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예, 그것을 두고 현실이라고 합니다.

현실(現實)이란 말의 새김은 진실, 참된 것(實) 내지 그를 향한 여정의 '드러남(現)'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안내자(guide)요. 거짓없는 실시간 중계방송이요, 시공간상의 움직일 수 없는

기록이요, 저 언덕은 아니지만,,, 저 언덕으로 건너가기 위해 건너가야 할 다리요, 언제든 극복하고

인욕해야 할 장애이기도 한 것이요,, 이 취착과 미혹의 폭류를 건넌 자에게는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없이 '지금여기'에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위없는 청정으로 일어남 사라짐에 들지 않은

채 머물 수도 있는 현실이라 생각됩니다. 그러기에 현실은 '나'의 투영이요 '나'의 번지수이기도

합니다.

                     

                           

■ 공무변처 _ 어떻게 욕계·색계(물질계)을 벗어나는가?

                           

본 경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에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수행하는 자가 이 물질(현상)을

넘어서는가에 대해서 설하고 계신다고 생각됩니다.

                     

세존께서는 그는

                       

   "물질이라면 그것이 어떤 것이든

    그것은 모두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과 그 근본물질에서 파생된 물질들(所造色)이다.'

                          

라고 숙고하고 이런 경지에 청정한 믿음을 내고, 그의 알음알이는 이같은 믿음에 '흔들림 없음'을

증득한다고 설하십니다.

                                 

그에게 이 물질(현상)은 무엇으로 보이는 것일까요?

그에게는 그것이 무엇이든 원인을 따라 허공에 사대가 모여있는 것으로 파악될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것이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그 어떤 물질이라도 말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그것이 몸뚱아리든 유정이든 무정이든 물질이라면 그 형색 등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사대가 모여있는 것'이라고 알 뿐이고 그것에 확신한다라고 생각됩니다.

                 

                         

       "보라, 잘 치장했고 상처덩이이고

        잘 세워진 저 몸을.

        그것은 고통스럽고 많은 관심의 대상이고

        견고하게 머물지 않는다.


        보라, 보석과 귀걸이로

        잘 치장한 형색을.

        해골이 피부에 포장되어

        옷으로 아름답게 꾸며졌구나."

                                                     (* 랏타빨라 경, M82: http://blog.daum.net/ibakdal/17372495)


이 게송은 랏타빨라 존자가 출가하여 성취하신 후, 부모님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에 들렀을 때

그의 옛 아내들에게 한 게송의 일부입니다. 존자의 이같은 게송은 의미에 있어서나 혹은 감정적으로도 과장된 것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존자는 '실로' 이와 같이 보고 아시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그 수행자는 물질(현상)을 현실(Reality)나 실상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오로지 '무한한 허공'만이 실상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머물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도 거룩한 마음입니다. 감각적 욕망을, 거친 물질계를 여읜 고귀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한한 허공'에 사대가 모였을 뿐이라는 그의 물질계에 대한 인식은

기실 틀린 인식도 아닌 것입니다. 이렇게 그는 물질계(욕계, 색계)를 초월하는 것이라 추론합니다.

               

                         

■ 식무변처 _ 어떻게 공무변처를 벗어나는가?

                           

이어서 세존께서는 어떨게 그가 위의 '무한한 허공'이라는 공무변처를 벗어나, '무한한 알음알이(識)'

라는 식무변처로 향하는지 설하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현재의 감각적 욕망과 미래의 감각적 욕망,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과 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현재의 물질이건 미래의 물질이건, 

    현재의 물질에 대한 인식이미래의 물질에 대한 인식이건,

             

    이 둘은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기뻐할 가치가 없고 환영할 가치가 없고 고수할 가치가 없다."

             

라고.

         

            

그는 '무한한 허공'만이 실상이고 물질(현상)이란 원인을 따라 공간에 사대가 모이고 흩어질 뿐이라는

그의 인식이 그의 그러한 인식(sanna)에 근거한 알음알이에 근거한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비록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물질과 그에 대한 인식을 바로 보아 '무한한 허공'일 뿐이라는

인식에 도달한 것이지만, 그 '인식'자체가 원인인, 인식을 조건으로 형성된 것이어서, 무상한 것이므로 그 위에 세워진 '무한한 허공'이라는 인식도 결국 그러한 '인식'의 연장선 상에 있는 것임을 봅니다.

           

그러므로 그는 이제 이 모든 것, 즉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이 '무한한 알음알이'의 소산이며,

'무한한 알음알이'의 현전(現前)야말로 이 모든 것의 실상이라고 인식하게 됩니다.

이것도 고귀한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김각적 욕망, 거친 물질계를 초월하여, 게다가 이 모든 것이

알음알이(consciousness)의 드러남이라는 기실 틀리지 않는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 무소유처 _ 어떻게 식무변처를 벗어나는가?

                 

이어서 세존께서는 어떻게 그가 '무한한 알음알이'가 실상이라는 식무변처에서 벗어나

'아무것도 없다.'는 무소유처에 이르게 되는지 설하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현재의 감각적 욕망과 미래의 감각적 욕망,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과 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현재의 물질이건 미래의 물질이건, 

    현재의 물질에 대한 인식이건 미래의 물질에 대한 인식이건,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이건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멸하는 곳그것은 고요하고 그것은 수승하나니 그것은 무소유처이다."

                           

   "나는 어디에도 없고 누구에도 결코 속하지 않는다. 

    내 것은 어디에도 없고 내 것은 누구에게도 없다.'

                  

라고 숙고한다는 말씀하시는 부분이 그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무한한 알음알이'의 드러남일 뿐이라는 그의 실상에 대한 인식은 다시 한 번

반전합니다. 그것은 그러한 인식조차도 하나의 인식(sanna)일 뿐이라는 그의 깨달음 때문입니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공무변처, 식무변처와 같은 선정들도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이라고 하시어

그조차도 하나의 인식일 뿐이라는 것을 분명히 하십니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그도 실상은 아닌

것입니다.

                         

그는 결국 그 인식조차도 소멸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의 인식에 다다르게 됩니다.

즉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만이 이 모든 것의 실상이라고 인식하는 것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그는 '나'도 '나의 것'이라는 것도 없으며, 일체가 없는 것이 실상이기에 '내'가

'누구'에게 속하는 것도 아니요, '내 것'이 누구의 것에 속하는 것도 아니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이것도 수승한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그 마음은 감각적 욕망, 거친 물질계, 알음알이를 넘어서 

알음알이의 실마리가 되는 일체의 인식 자체를 염오하고 부인하여 결국 '아무것도 없다.'라는

인식에까지 도달한 고귀한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기실 정신물질에 대한 그의 인식은 온전히 틀린 것도 아닙니다.

            

                 

■ 비상비비상처 _ 어떻게 무소유처를 벗어나는가?

                      

세존께서는 이어서 '아무 것도 없다.'라는 것이 실상이라고 인식하는 무소유처에서

어떻게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혹은 그 자체로는 인식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아주 미세한 인식만이 있는 '비상비비상처'로 향하게 되는지 설하신다고 생각됩니다.

           

그는

                       

   "현재의 감각적 욕망이건 미래의 감각적 욕망이건,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현재의 물질들이건 미래의 물질들이건, 

    현재의 물질들에 대한 인식이건 미래의 물질들에 대한 인식이건,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이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건

                    

    이들은 모두 인식들이다

    이들이 남김없이 멸하는 곳그것은 고요하고 그것은 수승하나니 그것은 비상비비상처이다."

                       

라고 숙고한다고 설하십니다. 그는 '아무것도 없다.'라는 무소유처의 인식마저도

결국 하나의 '인식'(sanna, perception)이라는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에 도달합니다.

               

                       

이어지는 아난다 존자의 질문은 이 비상비비상처에 대한 다른 관점을 제시합니다.

                         

   "이것이 없었다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있지 않았다면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나는 버린다.'라고.

    이와 같이 하여 그는 평온을 얻습니다."

                         

비상비비상처의 인식에 이른 그에 대해 위와 같은 표현을 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같은 아난다

존자의 표현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부인하지 않으십니다.

                           

그는 결국 '아무것도 없다.'라는 실상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출발하여

'있는 것을 없다.'라고 부인하지는 않는 것 즉, '인식되어 있는 것은 있다.'라고 전향한 것으로

보입니다. 느낌에 의해서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 것은 없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의 인식은 이제 그 '있는 것'을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미세한 인식으로만

대하면서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버린다.'는 쪽으로 마음 기울입니다.

그는 이렇게 '존재를 버리면서' '평온'을 얻습니다. 그러기에 그가 '인식'이 생겨나서 무엇을

무엇이라고 인식(想, perception)하는 것이 그에게는 끔찍한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도 수승하고 고귀한 마음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감각적 욕망, 거친 물질계, 알음알이에 의한

정신물질의 전개, 그리고 마지막으로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나는 버린다.'와 같이 

존재를 염오하여 버리는 데까지 이르렀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러한 마음 기울임은 온전히 틀린 방향을

향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의 질문에 답하여

                      

   "그는 그 평온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고수한다. 

    그가 그 평온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고수하기 때문에 

    그의 알음알이는 그것에 의지하고 그것을 취착한다.

                  

    아난다여,

    취착이 남아있는 비구는 열반을 얻지 못한다."

                     

라고 하시어 수행자가 이 '비상비비상처의 평온'을 취착하고 의지해서는 열반을 얻지 못한다라고

설하십니다. 세존께서는 "비상비비상처는 취착의 대상 가운데 최고의 대상이다."라고 설하십니다.

                     

이어서 세존께서는

                         

   "그는 그 평온을 기뻐하지 않고 환영하지 않고 고수하지 않기 때문에 

    그의 알음알이는 그것에 의지하지 않고 그것에 취착하지 않는다.

             

    아난다여,

    취착이 남아있지 않는 비구는 열반을 얻는다." 

                         

라고 설하시어 열반에 이르는 자의 알음알이는 '비상비비상처의 평온'조차 취착하지 않고,

그러한 평온 또한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되었기에 그의 의지하는 바가 없음을 천명하십니다.

                             

                         

세존께서는 출가하신 후 알라라깔라마로부터 무소유처를, 웃따까 라마뿟따로부터 비상비비상처를

배우고 그것을 온전히 증득하십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그 각각의 증득이 결국 각각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에 '다시 태어나게 할 뿐'이라고 깨달으시고 그것들을 염오하며 떠났다고 설하셨습니다. 이 각각의 증득에 대해서 '칼날은 있지만, 칼끝이 없다.'라고 평하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존재의 소멸'. '존재로부터의 벗어남',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존께서 '단멸론'을 주장하는 자들을 비유하시는 다음의 비유는 무소유처와 비상비비상처에

대해서도 원용될 수 있는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중생들이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단멸과 멸절과 파멸을 주장하는 사문 ․ 바라문들은

    존재 더미[오취온]를 두려워하고, 존재 더미를 혐오하면서도 

    존재 더미 주위를 뛰어 다니고 존재 더미 주위를 맴돌고 있다."

                                                 (* 다섯과 셋 경, M102: http://blog.daum.net/ibakdal/17372684)

                                 

무소유처는 '있음'을 부인하고 '없음'이라는 인식을 거머쥠이요, 비상비비상처는 '있고 없음'에

머무름을 부인하고 '존재를 버린다.'고 하지만 그 또한 '존재'를 반연함이기 때문입니다.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다.' 내지 '취착없음'이란,,,

오온을 부인하고 버리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거머쥐는 것도 아니요, 존재를 부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여 존재를 거머쥐는 것도 아닙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고, 항상하지 않는 것은

항상하지 않다고, 괴로움은 괴로움이라고, 번뇌는 번뇌라고, 내가 아닌 것은 내가 아니라고,,,  

존재 무더기를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아, 있고없음을 있는 그대로 두고 넘어서서 지금여기 머무는

것이라고 생각해 봅니다.

                                

그를 위해서 남아있는 관문이 다음의 상수멸 그리고 해탈·열반의 관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성제를 꿰뚫어 알고 본다.'라 함은 그렇게 알 것을 알고, 닦을 것을 닦고, 버릴 것을 버려,

실현해야 할 것을 실현하는 그 끝에 그렇게 서 있습니다. 

               

              

                          

3. 상수멸/해탈·열반 _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다.

              

 

다른 경에서의 정형구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

상수멸

-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써 보아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성스러운
해탈·열반

-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함

-'있는 것, 존재하는 것, 그것을 나는
  버린다.' 그리하여 평온을 얻는다.
  그러나 그 평안을 기뻐하고 환영하고
  고수하지 않는다.

- 그의 알음알이는 그 비상비비상처의
  평안에 의지하지 않고,
  그것에 취착하지 않는다.

- 1) 현재와 미래의 감각적 욕망과
      그에 대한 인식,
  2) 현재와 미래의 물질과 그에 대한
      인식,
  3)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
  4)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
  5) 비상비비상처에 대한 인식이건

  존재 더미[오취온]가 있는 한
  이 모든 것이 존재 더미이다.

  취착없이 마음이 해탈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사(不死)이다.'라고
  숙고한다.


[시사점]

                      

1. 해탈·열반 _ 정신물질(현상)에 취착하는 한, 이 모든 정신물질이 '존재'한다.

              

■ '취착없는 마음의 해탈'을 향한 긴 여정

                        

ㅇ 세존께서는 위와 같이 초선∼제4선, 공무변처 및 식무변처 선정의 증득을 포함하여

    '흔들림 없음'의 증득으로, 이어서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을 각각 어떤 원인으로 얻고,

    어떤 원인으로 벗어나는지를 설하신 후,

                 

    마지막으로 그가 어떤 것을 원인으로 그의 마음이 해탈·열반을 증득히여 '존재의 소멸',

   '존재로부터의 벗어남', 내지 '괴로움의 소멸', '번뇌의 소멸', '의처(依處), 윤회(轉生), 대상(對象)을

    여읨'에 이르는지를 설하십니다.

                          (* 우다나, 빠딸라가마의 품, 열반의 경: http://blog.daum.net/ibakdal/17370609)

                     

ㅇ 그의 마음은 정진을 통해 이미 긴 여정을 걸어왔습니다. 이것도 참으로 수승한 일입니다.

    위의 모든 증득은 '삼매(samadhi)' 즉, '마음 집중'의 결과로써 얻어진 것입니다.

    펼쳐지는 모든 정신물질현상을 쫒아가기 마련이며, 뭍에 꺼내놓은 물고기처럼 날뛰는 마음을

    길들이고 조복(調服)시켜 한 가지 대상에 집중한 결과라는 것을 생각하면 그는 참으로 엄청난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것도 단순히 10가지 까시나 혹은 40가지 명상주제에 마음집중만 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게 삼매, 선정, 혹은 증득을 얻으려 한 그 원인 즉, 마음 집중의 방향이요 

    마음 기울임의 방향입니다.

                   

ㅇ 그는 그것을 통하여 이미 초선(初禪)에서부터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 버렸습니다(초선∼4선).


    더 나아가 물질(현상)의 본질을 바로 보아 그것을 벗어납니다(공무변처, 식무변처).

    그런 그의 마음은 이런 경지에 청정한 믿음을 얻어 태산처럼 '흔들림이 없습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번에는 그의 인식(sanna, perception)이라는 정신(현상)조차 무상함을 보아

    존재없음에 이릅니다(무소유처). 


    그는 그 또한 형성된 인식임을 보아 거기서 벗어나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닌 지경에

    머물며 존재를 버린 평안을 얻습니다(비상비비상처).

                     

    다시 그는 최고의 취착의 대상인 비상비비상처가 주는 평안도 이것도 형성된 것이라고 꿰뚫어 알아

    비상비비상처의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도 없고, 생명을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지하는

    6가지 감각장소만큼의 번잡함만이 있고, 그로부터의 느낌과 인식마저 '나 아님'을 보아 그를 

    소멸한 상태에 들어 머뭅니다(상수멸).


    이것을 무엇을 의미합니까?  느낌(受, feel)과 인식(想, perception)을 그치면 그의 마음작용에는

    그에 따른 행(行, sankara)과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비록 존재하고

    있기는 하나 존재의 본질이라고 할 일체 정신물질(현상)을  여읜 채 머무는 것입니다.   

                 

                

ㅇ 그런 그는 구경의 지헤에 가까이 갔지만 아직 '존재의 실상'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그런 그는 어떻게 '존재의 실상'을 꿰뚫어 알아 이 모든 것이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불사(不死)'를

    얻습니까?

                         

    그는 상수멸(想受滅)에 출정합니다. 그리고 반조합니다.

                         

    -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리고,,, (초선∼4선)

    - 물질(현상)이란 공간이라는 무대에 사대가 모여서 드러났다가 사라지는 것임을 꿰뚫어 보고 알고

                                                                                                                                  (공무변처)

   - 인식(sanna, perception)이라는, 시간이라는 무대에 펼쳐지는 정신(현상)도 무상하여 고수할

      가치가 없음을, 모든 것이 인식으로부터 출발한 알음알이의 반연일 뿐임을 꿰뚫어 보고 알고

                                                                                                                                (식무변처)

   - 일체 존재의 본질이 존재하지 않음을 꿰뚫어 보고 알고(무소유처)

   - 인식하는 것도 인식하지 않는 것도 아니어 존재를 버린 지경을 꿰뚫어 보고 알고(비상비비상처)

   - 생명을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자하는 6가지 감각장소만이 존재하나, 존재의 기반이라고 헐

      그로부터의 느낌(受)과 인식(想)을 소멸하고,  그로 인해 형성(行, sankara))과 대상을 아는

      알음알이(識)이라는 최후의 정신(현상)까지도 소멸한 채 머물렀던 그입니다.(상수멸)

                                  

      ( * 흰두교나 베다의 가르침은 '나'는 '나'의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러한

           소아(小我)를 탐착하지 않고 전체 우주를 영원히 창조, 유지, 파괴하는 우주적 의식과의

           합일인 범이일여(梵我一如) 내지 개전일여(個全一如)를 통한 자아의 완성을 이야기 하는 바,

      

           그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조차를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것으로 항상하지 않고,

           그러기에 그도 본성이 괴로움일 뿐이며, 그것에 진실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음을 꿰뚫어

           알고 보아 '알음알이의 소멸'을 설하시는 세존의 가르침은 참으로 바라문의 전승과는 판이하게

           다른 것이며 여래, 정등각자의 사자후가 아닐 수 없습니다.)

                      

          

ㅇ 상수멸로부터 출정(出定)한 그는 반조하며 숙고합니다.

                         

   - 도대체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은 무엇인가?, 존재의 근거가 되는 이 다섯 무더기(오온)는

      무엇인가?, 이것들은 도대체 왜 생겨났는가?,,,, 이 '존재'란 도대체 무엇인가?,,, 라고.

                          

   - 그는 연기(緣起)의 법을 따라 이 모든 정신물질(현상)이 갈애(愛)로부터,, 취착으로부터 '생겨난'

      것이요, '드러난' 것임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리고 그 갈애는 그 이전에

      무명(無名, 지혜없음, 사성제를 모름)으로부터 시작된 것임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리하여

      일체 정신물질이 알음알이(識, consciousness)와 물질의 상응(相應)을 따라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고 봅니다. 무명(지혜없음)으로 인한 알음알이(識)가 소멸할 때

      일체 정신물질(현상)도 '남김없이 소멸함'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는 비로소 존재더미(오온, 정신물질현상)가 무엇인지 바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존재'를 바로 보게 됩니다.

               

   - 그런 그는 '나'를 포함한 일체 정신물질(현상)이 원인을 조건으로 형성된 것이며,

      항상한 것이 아니며, 소멸하는 것이 정해져 있으므로 괴로움이라는 것을, 그속에 그 어떤 것도

      '나'라고 취착할 것이 없음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 그런 그는 '니'를 포함한 일체 정신물질(현상)이 오직 '괴로움'임을 꿰둟어 알고 봅니다. 

       그런 그는 '나'를 포함한 일체 정신물질(현상)이 6가지 감각장소에서 일어난 갈애를 따라

       일어난 것임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런 그는 '나'를 포함한 일체 정신물질(현상)이 6가지 감각장소에서 '취착이 없어져서'

       갈애가 멸진할 때 사라지는 것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는 바르게 보고, 바르게 사유하고, 바르게 말하고, 바르게 행위하고, 바르게 생계하고,

       바르게 정진하고, 바르게 마음챙기고, 바른 삼매에 듦으로써 그같은 바른 깨달음에 이를 수

       있었음을 반조하며 꿰뚫어 알고 봅니다.

             

       그는 이 모든 것이 오직 번뇌임을, 그 번뇌의 일어남을, 그 번뇌의 소멸을,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방법을 꿰뚫어 알고 봅니다.

                              

    - 그는 그렇게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합니다.'

                                                       (* 대전기경, D14: http://blog.daum.net/ibakdal/17371153)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 존재에 기인한 번뇌, 무명에 기인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비로소

       해탈(解脫, 풀어서 벗어남)합니다. 해탈하여 해탈했음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 사문과경, D2: http://blog.daum.net/ibakdal/17370509)

             

       그는 '오직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요, 오직 괴로움이 머물고 사라질 뿐이니,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되지 않음'을 봅니다. 

                                                       (* 와지라경, S5.10: http://blog.daum.net/ibakdal/17370029)

                  

       그의 마음은 '취착없음', '갈애의 부숴짐'에 이르러 그 어떤 일어남·사라짐에도 다시는 들지

       않습니다. 이것이 윤회의 종식입니다.  

                                                       (* 법구경, 게송 153∼154, 부처님이 깨달으신 후 첫 번째 법문)

                 

       그는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기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지 않기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는 '존재'를 바로 보아,

       '존재'를 벗어나 버렸습니다. 그는 '불사(不死)'를, '위없는 청정'을 얻었습니다. 그는 나고죽음을

       여의었습니다. 그는 비로소 고요함에 들었습니다.

                             (*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 M106: http://blog.daum.net/ibakdal/17372726)

                   

                     

■ '존재더미(오취온)가 존재하는 한, 이 모든 것이 존재더미이다.' _ 궁극의 존재론

                   

그는 이같이 숙고합니다.

                        

   '현재의 감각적 욕망이건 미래의 감각적 욕망이건, 

    현재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미래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인식이건, 

                        

    현재의 물질들이건 미래의 물질들이건, 

    현재의 물질들에 대한 인식이건 미래의 물질들에 대한 인식이건, 

                  

    흔들림 없음에 대한 인식이건,

    무소유처에 대한 인식이건,

    비상비비상처에 대한 인식이건, 

                      

    존재 더미(오취온)가 존재하는 한 이 모든 것이 존재 더미이다. 

    취착없이 마음이 해탈하는 것, 그것이 바로 불사(不死)이다.'라고,'

                          

                       

"존재더미(오취온)가 존재하는 한, 이 모든 것이 존재더미이다.",,,,

세존의 이 일구(一句)의 가르침은,,,, 지옥을 꿰뚫어 버린 심연에서나 나올 궁국의 존재론으로

삼천대천세계와 그곳에 거주하는 뭇중생들을 전율하게 하는,,

괴이하고 진실하여 소름이 끼치는 느낌으로 제게는 다가옵니다.

                   

그러나 이렇게 알고 보지 않고는,,, '나'와 이 '세상'이란 벗어날 수 없는 굴레이거니와,

이렇게 존재의 실상을 꿰둟지 않으면 기실 '나'와 이 '세상'이란 것이 서 있을 곳도 없으며,

그렇게 알고 보지 않고는 모든 것이 결국 이 모든 것은 환영에 떨어지고 말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현실과 같은 꿈을 꿀 때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맹목의 무한 루프(Loop)와도 같아서 그 안에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은

도대체 왜 이것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알고 보아 이 모든 것, 일체 정신물질(현상), '나'와 억조창생의 '뭇생명들' 그리고 '세상'은

비로소 제 자리와 의미를 얻습니다. '나'는 비로소 나가 되었고, '세상'은 비로소 세상이 되었으며,

환영(illusion)은 철벽같은 현실(reality)이, 정신물질(현상)은 정신물질이 되었습니다.

                                  

이 말씀은 이렇게 읽히기도 합니다. "존재를 취착하는 한, 이 모든 것은 '존재'한다."                       

그는 이렇게 '확고부동한 마음의 해탈'을 증득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선정(jhana)/팔해탈/팔승처/공(空)

                

사선사처(四禪四處)와 상수멸의 구차제주등지, 팔해탈, 팔승처, 공(空)의 경지에 대한 세존의

가르침들은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각 경(經)의 가르침을 비교하면 아래와 같은 도표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수행으로 증득하지 못했고 아비담마를 공부하지 못한 제가 그려본 시험적인 도표입니다)


 

정형구

팔해탈

팔승처

공(空)의 측면

초선-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고찰(伺)이 있고

-
떨쳐버림에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
  있는 초선(初禪)
   
제2선

- 일으킨 생각과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고찰은
  없고
                              
-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







- 첫 번째
  해탈을
  통하여

- 안으로
  색계에 속하는
  선에 들어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면서
  밖으로 1)제한된,
  2)무량한 물질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
  라고 인식함










- 마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고
 
숲이라는 인식
  하나만
  마음에 잡도리

- 마을 사람이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어떤 번잡함도
  없고,

- 마을, 사람이라는
  인식은 空함을
  꿰뚫어 앎

- 숲이라는 인식
  하나 만큼은
  空하지 않다. 
제3선-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

- 2번째 해탈을
  통하여

- 안으로
  물질들에
  대한 인식이
  없으면서
  밖으로
  물질들을
  본다.






-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3)제한된,
  4)무량한 물질을
  본다.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
  라고 인식함






 
제4선

- 즐거움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했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
  (捨念淸精)
  제4선(四禪)





- 3번째 해탈을
  통하여

- '깨끗하다.'고
  확신한다.














- 안으로 물질을
  인식하지 않으면서
  밖으로
  5)청, 6)황, 7)적,
  8)백의
  색, 외양, 광명을
  가진 물질을 보며,

  이것들을
  지배하면서,
  나는 '알고 본다.'
  라고 인식함







- 사람, 숲이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어떤
  번잡함도 없고,

  땅이라는 인식
  하나만을
  마음에 잡도리
  (까사나 하나만을)

- 사람, 숲이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알고,

  땅이라는 인식
  하나만이
  마음에 있다.
  (空하지 않다.)
공무
변처
- 물질(色)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
  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4번째 해탈을
  통하여

 

- 물질이라는 인식,
  사대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이 없고,

  물질·사대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앎.

- 공무변처의 인식
  하나만이 마음에
  있다.
  (空하지 않다.)

식무
변처

-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무한한 알음알이(識)'
  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5번째 해탈을
  통하여

 - 물질이라는 인식,
  공무변처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이 없고,

  물질, 공무변처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앎.

- 식무변처의 인식
  하나만이 마음에
  있다.
  (空하지 않다.)
무소
유처

-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아무 것도 없다.'
  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6번째 해탈을
  통하여

 - 공무변처, 식무변처
  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이
  없고,

  공무변처, 식무변처
  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앎

- 무소유처의 인식
  하나만이
  마음에 있다.
  (空하지 않다)
비상
비비상

-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비상비비상처
  (非想非非想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 7번째 해탈을
  통하여

 - 식무변처, 무소유처
  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이 없고,

  식무변처, 무소유처
  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앎

- 비상비비상처의
  인식 하나만이
  마음에 있다.
  (空하지 않다)
상수멸

- 비상비비상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 상수멸(想受滅)을
  구족하여 머문다.

- (그리고 그의
   통찰지로써 보아
   번뇌를 남김없이
   소멸한다.)

- 8번째 해탈을
  통하여


-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라는 인식을
  조건하여
  생긴 번잡함이
  없고,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라는 인식이
  空함을 꿰뚫어 앎

-'표상없는 마음의
  삼매' 하나만을
  마음에 잡도리함

- 생명를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자하는
  6가지 감각장소와
  관련한 번잡함만이
  있다.
  (空하지 않다)
성스
러운
해탈
열반

- 오온을 바로 보아,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함

  

- 이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도
  형성된 것이고
  의도 된 것이다.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무엇이건
  무상하고 소멸
  되기 마련인
  것이라고
  꿰뚫어 알아
  해탈한다.,

- 감각적 욕망, 존재,
  무명에 기인한
  번뇌를 조건하여
  생긴 어떤 번잡함도
  없다.

- 생명를 조건으로
  하고 이 몸을
  의자하는
  6가지 감각장소와
  관련한
  번잡함만이 있다.
  (空하지 않다)

→ '
지극히 청정한
    구경의 위없는 空'


* 팔해탈: 대반열반경, D16, http://blog.daum.net/ibakdal/17371211

* 팔승처: 대반열반경, D16, http://blog.daum.net/ibakdal/17371210

* 공(空)의 측면: 공에 대한 짧은 경, M121, http://blog.daum.net/ibakdal/17372098

             

                

                     

4. 맺으며

                                

본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길 경(M106)은 7.18일 사경을 마치고 후기를 쓰는데 한 달이 넘게

걸렸습니다. 여러 가지 일로 애를 쓰고 장애가 되는 일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무엇 때문인지 마음을

집중하여 후기를 쓰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스스로 궁금했던 많은 것들을 하나씩 정리하지 않으면 안되었고, 이미 사경을 했던 여러 경들을 다시

확인하여 마음에 그 듯을 하나하나 새기지 않고는 후기를 쓸 수 없었던 것도 어려운 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을 통해서 '그분 세존께서는 과연 무엇을 말씀하셨던가?'라는 저의 의문은 많은 것을

알고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역시 그분은 초지일관 그것을 설하셨습니다. 조금도 흔들림 없는 그분의 가르침은 확신과 청정한

믿음을 가지게 합니다.

            

                 

아직 신발 끈을 매고 있는 저 자신을 봅니다. 이제 그만하면 길을 떠날 때도 되었는데,,,

아직도 세간의 빚, 출세간의 빚 운운하며 미련과 갈애에 붙들려 있는 제 모습은,,,

어찌보면 세세생생을 이러고 살았던 한심하고 처량한 제 모습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본 경을 맺으십니다.

                       

   "아난다여, 이처럼

    나는 1) 흔들림 없음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다.

    나는 2) 무소유처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다.

    나는 3) 비상비비상처에 적합한 닦음을 설했다.

    나는 4) 각각의 증득을 의지하여 격류를 건너는 것을 설했다.

    나는 5) 해탈을 설했다." 

              

                 

   "아난다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했다.

                       

    아난다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이 있다. 참선을 하라.

                

    아난다여,

    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이같이 새겼습니다.

이같이 상세한 법문을 해주신 석가모니 부처님께 감사드립니다.

거룩하신 부처님과, 가르침과, 승가에 귀의합니다. ((()))




시작을 모르는 과거로부터 윤회하면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가르침, 승가,

부모님, 스승님,

저보다 공덕이나 나이가 많은 분들께,

혹은 이때까지 저와 인연이 닿았던 천신들, 비인간들, 사람들, 

축생들, 혹은 미물의 몸을 입었던 분들이라 할지라도,

                                                  

제가 어리석고 지혜롭지 못하여

취착으로,,  애욕으로,,, 성냄으로,,, 폭력과 잔인함으로,,, 무명으로,,,

몸과 말과 마음으로 잘못한 것들,,,  

수미산처럼 쌓여있습니다.

                       

이제 그러한 잘못을 진실로 참회하며,,,

용서해 주시기를 청하면서

예경드립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또한 다른 이들이

저에게 범한 잘못들도

때를 씻어버린 선한 분들의 마음으로 다 용서합니다.

마음 속 깊이 박힌 적대와 악의와 잔인할 수 있음과 비난과 쇠살들 모두 뽑아버립니다.

            


본경을 사경한 공덕 몫을

아버님과 어머님 그리고 처와 제 가족들에게, 특별히 정진하고 있는 아들에게,,,

곤경과 속박을 건너 세간과 출세간의 빚을 갚고자 하는 저 자신에게,,,,

저를 지켜보고 도우시는 모든 천신들과 비인간들에게,,,,

어려울 때 도움을 주신 친척, 친구들, 도반들께,

경을 번역하시느라 노고를 마다 않으신 대림스님과 각묵스님 건강하고 평안하시기를,,,

장유 반룡산과, 지리산 실상사와 지리산, 설악산, 그리고 보라산에, 그리고 영천의 식진암에 계시는

모든 천신들과 약카들, 간답바들, 꿈반다들, 용들과 비인간들에게,,,

우 또다나 사야도와 일창스님께,,,


부처님의 법 듣기를 좋아하고 그 제자들을 보호하는 천신들을 시작으로

31천 거주하는 제도가능 모든 중생들께,


부처님의 법을 따라 무너지지 않는 행복과 평안을 얻으시기를,,,

여래님들의 무한한 자애와 지혜와 위신력이 함께 하시기를,,, 보호 받으시기를,,,

이 회향으로도 이 늪을, 진흙탕을, 윤회와 미혹을 벗어나고 건너갈 큰 힘을 얻으시기를,,,

장애없이 닙바나 이르시기를 염원하면서,,,,

회향합니다.   ((()))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고르게 고르게 고르게 나누어 가지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2018. 8. 27.